![구준엽 서희원, 27년 된 코트와 208도 갤럭시가 된 기적 [Magazine Kave]](https://cdn.magazinekave.com/w768/q75/article-images/2026-02-04/ca48d104-21b3-4e9e-a856-c2cddfdb707a.jpg)
현대 대중문화의 흐름 속에서 연예인의 로맨스는 대개 일시적인 화젯거리로 소비되곤 한다. 그러나 한국의 아티스트 구준엽과 대만의 배우 서희원(쉬시위안)이 보여준 서사는 단순한 스타의 결합을 넘어, 현대인이 상실해가는 ‘운명’과 ‘인연(Inyeon)’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가로질러 전화번호 하나로 다시 연결된 이들의 이야기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순정이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한류(Hallyu)라는 단어가 정립되기도 전인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의 남성 듀오 ‘클론(Clon)’은 중화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원조 한류 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1998년, 대만 가수 소혜륜의 콘서트장은 두 사람의 운명이 교차한 역사적 장소였다. 당시 대만의 신성 서희원은 클론의 공연을 보고 구준엽의 팬이 되었으며,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호감을 드러낼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구준엽 또한 서희원의 청순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매료되었고, 두 사람은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연인으로 발전했다. 서희원은 한국어를, 구준엽은 중국어를 배우며 서로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의 연예계는 스타의 연애에 극도로 보수적이었다. 소속사의 반대와 현실적인 장벽 앞에 구준엽은 결국 이별을 선택해야만 했다. 훗날 그는 "내가 바보 같았다. 다 버리고서라도 그녀를 잡았어야 했다"며 뼈아픈 후회를 고백하기도 했다. 이별하던 날 공항에서 밤새 서로를 안고 울었던 두 사람은 그렇게 기약 없는 이별을 맞이했다.
이별 후 서희원은 드라마 ‘유성화원’의 ‘산차이’ 역을 통해 아시아 톱스타로 성장했고, 왕샤오페이와의 결혼과 이혼 등 다사다난한 개인사를 겪었다. 반면 구준엽은 한국에서 DJ로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놀라운 점은 서희원이 긴 세월 동안 구준엽과 연애하던 시절의 전화번호를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거의 인연에 대한 무의식적인 보존 욕구이자, 기적을 바라는 잠재적 기다림이었다.
2021년 11월, 서희원의 이혼 소식을 접한 구준엽은 용기를 내어 20년 전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여전히 그 소녀였다. "하이, 워 쓰 광토우(안녕, 나 광토우야)." 과거의 애칭을 부르는 이 한마디에 20년의 세월은 마법처럼 사라졌다. 팬데믹으로 국경이 막힌 상황에서도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통해 법적 부부가 되었고, 영화 같은 재회를 이뤄냈다. 서로의 약지에 새긴 영구적인 문신 반지는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야속하게도 이들에게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2025년 2월 초, 서희원이 일본 여행 중 급성 질환으로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단순 폐렴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승모판 탈출증'이라는 기저질환과 과거 출산 시 겪은 임신중독증의 후유증이 원인이었다. 급격한 온도 변화가 약해진 심장에 치명타를 입힌 것이다. 20년을 돌아 만난 사랑이 단 3년 만에 사별로 끝맺음한 순간이었다.
아내를 떠나보낸 구준엽의 삶은 숭고한 추모의 과정이 되었다. 그는 대만 진바오산 묘역 인근에 머물며 매일 아내를 찾고 있다. 2026년 2월 2일, 서희원의 1주기 추모식에 구준엽은 27년 전 그녀에게 선물 받았던 낡은 코트를 입고 나타났다. 이 코트는 단순한 의복이 아닌, 이별의 세월 동안 그가 간직해온 신의와 사랑의 증거였다. "다음에 만나면 영원히 같이 있자"는 그의 마지막 편지는 전 세계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시간을 이긴 그들의 사랑은 비록 비극으로 막을 내렸으나, 그 그리움은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