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이 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예술산업관에서 열린 갈라 디너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Magazine Kave=Park Su-nam]](https://cdn.magazinekave.com/w768/q75/article-images/2026-01-29/c22e931e-0ed2-4f10-8a7c-f5220c8090fb.jpg)
2026년 1월 28일의 워싱턴 D.C.는 차가운 포토맥 강의 안개와 연방 정부의 석조 건물이 뿜어내는 정적인 무게감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내셔널 몰의 심장부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 예술산업관(Arts and Industries Building, AIB) 내부의 온도는 전혀 다른 차원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19세기 미국의 산업 혁명을 상징하는 ‘경이의 궁전’이었던 이 유서 깊은 건축물은 그날 밤, 전기에너지가 아닌 5,000년 한반도 역사가 응축된 미학적 광휘로 빛나고 있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 해외 순회전인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의 성공적인 마무리와 폐막을 기념하는 갈라 디너는 단순한 기업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가문의 집념이 어떻게 국가의 영혼을 구원했는지, 그리고 ‘비어 있음’을 미덕으로 삼는 동양의 철학이 어떻게 서구의 ‘채워진 욕망’과 조우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대한 서사시였다.
이 역사적인 밤의 공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릇이 된 장소의 연대기를 짚어보아야 한다. 스미스소니언 예술산업관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군 중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로, 아돌프 클루스와 폴 슐츠가 설계하여 1881년 제임스 A. 가필드 대통령의 취임 축하 무도회를 개최하며 문을 열었다. 1876년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에서 가져온 60량 분량의 전시물을 수용하기 위해 세워진 이 건물은 미국의 기술적 천재성과 진보, 그리고 문명을 증명하는 공간이었다. 강철과 유리가 빚어낸 19세기의 산업적 합리주의가 지배하던 이 공간에,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보낸 1,500년 전의 불상과 조선의 달항아리가 들어선 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메타포였다.
갈라 디너가 열린 로툰다 광장, 과거 거대한 ‘미국 상(Statue of America)’이 에디슨의 전등을 들고 서 있던 그 자리에는 이제 한미 양국의 정·재계 거물들이 모여 한국 미학의 정수와 대면하고 있었다. 참석자 명단은 그 자체로 글로벌 권력의 지형도였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을 필두로 테드 크루즈, 팀 스콧, 앤디 킴 등 미 의회의 핵심 인사들이 자리를 지켰고, 코닝의 웬델 윅스 회장,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의 개리 디커슨 CEO, 야후의 공동 창업자 제리 양 같은 기술 패권의 설계자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실리콘 웨이퍼의 미세 공정을 논하던 차가운 이성을 잠시 내려놓고, 빗물 갠 인왕산의 묵직한 바위산과 달빛을 머금은 듯한 백자의 곡선 앞에서 인간적 경외심을 공유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삼성의 생산 거점이 있는 텍사스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건희 컬렉션이 단순한 문화 향유를 넘어, ‘소프트 파워’를 통해 ‘하드 파워(반도체, 가전)’의 결속력을 다지는 민간 외교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인사말에서 현대 한국의 번영이 70여 년 전 3만 6천 명의 미국 참전용사들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역사의 부채를 문화적 교류로 승화시키는 세련된 수사를 선보였다. 장내에는 루디 B. 미킨스 시니어 등 6·25 전쟁 참전용사 4명이 귀빈석에 앉아 있었으며, 이는 과거의 혈맹이 미래의 문화적 동반자로 진화했음을 상징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발터 벤야민은 수집이라는 행위를 ‘흩어짐에 대한 투쟁’이라고 정의했다. 수집가에게 소유는 대상과 맺을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관계이며, 수집가는 물건 속에 자신이 살게 된다고 믿는다. 20세기 대한민국이 겪어야 했던 주권 상실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 한국의 문화유산들은 전 세계로 흩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병철 창업회장과 이건희 선대회장의 수집은 단순히 비싼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민족의 ‘아우라’를 박제하고 보호하려는 처절한 문화적 광복 운동이었다.
이건희 컬렉션은 2만 3천여 점이라는 방대한 양도 놀랍지만, 그 안에 담긴 ‘보존의 의지’가 더 큰 무게를 갖는다. 2021년 삼성 일가가 이 방대한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했을 때, 이는 사적인 소유에서 공적인 공유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국가적 기여’로 기록되었다. 갈라 디너 현장에서 홍라희 명예관장은 고대 유물부터 근현대 마스터피스까지 컬렉션의 범위를 넓혀온 과정을 회고하며, 한국 미술의 정체성이 과거의 유물에 머물지 않고 현대의 전위적 예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강조했다. 스미스소니언 NMAA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그 기증의 첫 번째 해외 결실로, 누적 관람객 6만 5천 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한국 미술 전시라는 기록을 세웠다.
전시된 수많은 보물 중 미국 관객들의 영혼을 가장 강력하게 뒤흔든 것은 단연 백자 달항아리(Baekja Daeho)였다. 17~18세기 조선의 성리학적 절제미를 대변하는 이 항아리는 화려한 채색이나 금박 장식 대신 ‘여백(Yeobaek)’이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여백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관람자의 시선과 마음이 머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남겨진 ‘비어 있음의 충만함’이다.
달항아리는 결코 완벽한 구형이 아니다. 거대한 크기 때문에 아래위 두 개의 반구를 따로 빚어 이어 붙여야만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비대칭과 이음새의 흔적은 오히려 항아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영국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달항아리를 향해 "겸손의 미덕에 대한 지고한 헌사"라고 찬사한 바 있다. 완벽을 강요하는 서구의 대칭 미학과는 달리, 달항아리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긍정하며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천연스러운 무심함’은 현대인들이 갈구하는 치유의 미학과 맞닿아 있으며, 전시 기념품 샵에서 달항아리 관련 굿즈가 매진 행렬을 기록한 것은 이러한 대중적 공감의 결과이다.
예술 비평가들은 달항아리를 가리켜 ‘시간을 삼킨 항아리’라고 부른다. 200년 전의 흙이 현대의 캔버스 위에서 새로운 생명체로 거듭나듯, 이건희 컬렉션 속의 달항아리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영감이다. 권대섭 같은 현대 작가들이 달항아리를 재해석하며 존재와 부재, 형상과 공(空)의 경계를 탐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달항아리가 한국인의 내면을 상징한다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Inwangjesaekdo)’는 한국인의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혁명을 보여준다. 1751년, 정선이 76세의 노구에 그린 이 걸작은 ‘진경산수화(True-view landscape painting)’의 정점이다. 정선 이전의 화가들은 중국의 관념적인 산수를 모방하며 가보지도 않은 명산을 상상으로 그렸지만, 정선은 자신의 발밑에 있는 조선의 실제 풍경을 붓 끝에 담았다.
인왕제색도는 비가 갠 직후의 인왕산을 묘사한다. 젖은 화강암 바위는 짙은 먹색으로 묵직하게 내려앉고, 계곡 사이로 피어오르는 안개는 눈부신 백색의 여백으로 대비된다. 이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실학(Silhak) 운동의 시각적 발현이며,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우리 것’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려는 주체적인 선언이었다. 묵직한 바위산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반복적인 먹선은 현대의 추상화 기법을 예고하는 듯한 전위성을 띠며, 이는 2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의 관객들에게도 강력한 시각적 충격을 안겨준다.
이번 스미스소니언 전시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고전 미술을 현대의 팝 문화와 연결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시장 한구석을 차지한 19세기 사자 모양의 법고대(Drum Stand)는 불교 사찰의 의식 도구였지만, 미국 MZ 세대 관람객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들은 이 해학적인 사자의 표정에서 2025년 넷플릭스를 강타한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의 캐릭터 ‘더피(Derpy)’를 발견했다.
매기 강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K-팝 걸그룹 ‘헌트릭스(Huntrix)’가 노래와 춤으로 귀신을 물리치는 현대적 무당(Shaman)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요괴와 수호신들은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호작도(Tiger and Magpie)나 민화 속 호랑이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과거 권위적인 양반들을 풍자하기 위해 바보처럼 묘사되었던 민화 속 호랑이가 21세기의 스크린 위에서 다시 살아나 전 세계적 팬덤을 형성한 것이다. 이는 고급 예술이 어떻게 대중 문화의 자양분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이며, K-컬처의 뿌리가 깊은 역사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전시장 입구의 ‘달항아리’ 조명과 ‘인왕제색도’ 기념품이 조기 매진된 것은 단순한 물욕이 아니다. 그것은 ‘헌트릭스’에 열광하는 10대 소녀부터 성악가 조수미의 아리아에 눈물짓는 중장년층까지, 한국의 미학적 정체성이 전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재용 회장이 주도한 이번 갈라 디너의 이면에는 ‘문화 외교’라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다. 장내에서 오간 대화는 도자기의 결만큼이나 정교한 반도체 공급망과 AI 생태계에 대한 것이었다. 코닝의 웬델 윅스 회장은 삼성과의 반세기에 걸친 파트너십을 언급하며, 이 컬렉션이 단순한 예술품의 나열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 전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창조를 향한 열정의 구현"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삼성이라는 기업이 단순한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인류의 기억을 보존하고 미래의 가치를 설계하는 ‘문화적 리더’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과정이다. 미국 정관계 인사들이 인왕제색도의 먹선을 바라보며 한국의 회복 탄력성을 실감할 때, 삼성의 반도체 투자에 대한 신뢰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고해진다. 소프트 파워(예술)가 하드 파워(기술)의 정당성과 신뢰를 부여하는 이 고차원적인 네트워크 강화는 이건희 컬렉션이 기증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일 것이다.
스미스소니언에서의 성공적인 서막은 시작일 뿐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글로벌 순회는 이제 미국의 산업 중심지 시카고와 인류 문화의 보고인 영국 런던으로 향한다. 2026년 3월부터 열리는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 전시는 마티스, 데 쿠닝 같은 서구 근현대 미술의 거장들과 이건희 컬렉션의 근대 회화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어 9월에는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서 유럽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국 미학의 정수를 선보인다.

이 대서사시는 결코 끝이 나지 않는 흐름과도 같다. 발터 벤야민이 우려했던 ‘기계 복제 시대의 아우라 상실’은 삼성 아트 스토어를 통해 오히려 ‘아우라의 보편적 확산’으로 반전되었다. 전 세계 수만 가구의 거실 TV 화면으로 송출되는 인왕제색도의 디지털 붓터치는, 원본의 고귀함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한국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공간에서 소유하게 하는 ‘민주적 미학’의 실천이다.

2026년 1월 28일 밤, 워싱턴의 갈라 디너 현장에서 흘러나온 조수미의 아리아는 비어 있는 예술산업관의 천장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마치 달항아리의 빈 속을 가득 채우는 관람객의 사유와 같았다. 이건희 컬렉션이 세계에 전한 진정한 메시지는 "우리는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지켜냈는가"에 대한 응답이다.

민족의 수난기에는 저항의 증거로, 번영의 시기에는 나눔의 철학으로 존재했던 이 유물들은 이제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전 인류의 유산으로 거듭나고 있다. 비어 있는 공간(여백)이 있기에 더 넓은 세계의 해석을 담을 수 있는 한국 미술의 유연함은, 삭막한 기술의 시대에 인간이 지켜야 할 마지막 ‘영혼의 보루’와도 같다. 이건희 컬렉션이 열어젖힌 이 미학적 지평은 시카고의 마천루와 런던의 안개 속에서도 여전히 백색의 빛을 발하며, 인류의 역사가 흩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주는 황금빛 이음새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