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VE=이태림 기자] 한국 여행자들이 식당에서 가장 먼저 눈여겨보는 메뉴 중 하나가 닭도리탕이다. 빨간 국물 속에서 큼지막한 닭 조각과 감자가 들썩이고, 파향과 고추냉 내음이 훅 끼친다. 밥 한 숟가락을 국물에 적셔 올리면 ‘이게 한국의 매운맛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외국인의 눈에는 낯설 수 있지만, 한국인의 기억 속 닭도리탕은 주말의 가족밥상, 야외 나들이, 비 오는 날의 저녁과 겹쳐 있다. 한솥 끓여 나눠 먹는 공동식 문화, 매운맛과 단맛을 정교하게 맞추는 양념 감각, 넉넉한 탄수화물이 만든 포만감이 모두 이 한 냄비에 들어 있다.
닭도리탕의 역사를 풀어보면 생활사와 언어사, 지역 음식 문화가 얽혀 있다.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은 20세기 중반 대중화된 표현인데, ‘도리’가 일본어라는 주장과 한국어 동사 ‘도려내다’에서 왔다는 설이 공존한다. 오늘날 식당과 레시피에서는 ‘닭볶음탕’이라는 이름도 널리 쓰이는데, 국물의 양을 조절하며 ‘끓여 볶는다’는 조리 핵심을 드러낸다. 명칭 논쟁과 무관하게 조리 원리는 소, 돼지보다 기름기가 적은 닭을 양념장에 푹 조려 뼛속까지 간을 들게 하는 데 있다. 1960~80년대 밀가루·쌀이 귀하던 시절, 감자와 당근 같은 뿌리채소로 양을 불리고, 고춧가루와 간장으로 간을 맞춘 실용적 한냄비요리가 바로 닭도리탕이었다. 도시화가 진행되며 닭고기 유통이 쉬워지자 가정식에서 대중 메뉴로 빠르게 확산했고, 군대·합숙·회식 문화와 맞물려 ‘여럿이 먹는 음식’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았다.
멸치·다시마 육수 + 달큰함이 핵심
닭도리탕의 기본 구조는 단순하다. 닭, 채소, 양념, 물, 그리고 열이다. 하지만 단순함이 맛을 보장하진 않는다. 조리의 포인트는 닭 손질, 잡내 제거, 양념 배합, 불 조절, 농도 관리로 나뉜다. 먼저 닭은 토막 낸 생닭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껍질의 지방을 어느 정도 제거하되, 완전히 벗기면 풍미가 줄어든다. 토막을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대파 뿌리·통후추·생강과 함께 끓는 물에 1~2분 데쳐 헹구면 잡내가 말끔해진다. 이 ‘데치기’ 과정을 생략하면 양념이 탁해지거나 닭 비린내가 남는다.
양념의 골격은 고춧가루, 고추장, 간장, 다진 마늘, 다진 생강, 설탕 또는 물엿, 후추, 참기름이다. 비율은 기호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초 공식은 다음과 같이 기억하면 좋다. 고춧가루 3, 고추장 1, 간장 2, 설탕 1, 마늘 2, 생강 0.5, 후추와 참기름은 마무리에서 손끝으로 더한다. 여기에 맛의 깊이를 담당하는 ‘은근한 뒤맛’ 재료가 들어간다. 멸치·다시마로 낸 육수, 사과·배 간 것, 맛술, 청주, 양파즙, 시판 치킨스톡 한 꼬집 같은 것이 그 역할을 한다. 달큰함을 과하면 금세 물리는 맛이 되니, 달콤함은 ‘혀끝에서만 스치듯’ 조절하는 게 핵심이다.
채소는 감자·당근·양파·대파가 정석이다. 감자는 전분이 국물을 은근하게 걸쭉하게 만들고, 당근은 단맛과 향을 더한다. 양파는 국물 단맛과 감칠맛의 바탕이며, 대파는 마무리 향을 쥔다. 여기에 떡·곤약·버섯(표고·느타리), 애호박, 양배추를 넣으면 식감이 다양해진다. 특히 양배추는 국물의 매운맛을 부드럽게 중화하면서 씹는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여기서 '묵은지'를 추가하면 맛의 깊이가 달라진다. 한국의 김치를 잘 익힐수록 깊은 맛이 더해지는 묵은지로 변모하게 되는데, 묵은지를 넣은 닭도리탕의 맛은 감칠맛이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인은 묵은지 닭도리탕에 밥을 3공기는 먹을 정도다.
조리 순서는 간명하다. 첫째, 데친 닭과 양념 일부를 ‘겉면 코팅’하듯 재운다. 찜냄비나 두꺼운 냄비에 닭을 깔고, 양념의 2/3를 넣어 약불에서 5분쯤 뒤적여 양념이 닭 표면에 달라붙게 한다. 이 과정이 있어야 나중에 국물이 분리되지 않고 닭 속살까지 간이 잘 밴다. 둘째, 육수(또는 물)를 자박하게 붓고 센불로 끓여 올라오는 노란 기름거품을 걷어낸다. 이때 강불로 ‘한소끔 치켜세우기’를 해야 닭의 표면 단백질이 수축하면서 육즙이 안에 갇힌다. 셋째, 거품을 걷었으면 중불로 줄여 감자·당근을 넣고 15~20분 조린다. 뚜껑은 반쯤 덮어 수분 손실을 조절한다. 넷째, 양파·떡·버섯을 넣고 남은 양념 1/3과 간장으로 최종 간을 맞춘다. 다섯째, 국물 농도가 바닥에서 ‘툭툭’ 끊길 정도로만 졸인다. 너무 되직하면 금세 짜지고, 너무 묽으면 밥과 붙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대파, 청양고추를 넣고 약불에서 1~2분 향을 올리면 끝이다.
이 기본형 위에서 지역과 집집마다의 변주가 펼쳐진다. 매운맛을 좋아하면 청양고추, 붉은 건고추, 캡사이신 오일 대신 ‘고추기름’을 직접 내서 한 숟가락 섞는다. 고추기름은 식용유에 대파·마늘·마른 고추를 약불에서 서서히 우려 매운 향을 기름에 옮긴 것이다. 달큰함을 선호하면 양파 비율을 늘리고, 배 혹은 사과 간 것을 소량 섞는다. 깊이를 원하면 된장을 0.3큰술 정도 몰래 섞는데, 비율을 넘기면 장맛이 튀니 조심한다. 해산물 풍미를 원하면 멸치·다시마 대신 북어머리 육수를 쓰고, 말린 새우를 한 줌 넣어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닭도리탕의 맛을 해부해보면 네 층이 차례로 밀려온다. 먼저, 고춧가루의 직선적인 매운맛이다. 혀끝을 톡 자극하지만 곧바로 마늘과 생강, 양파에서 나온 단맛·알싸함이 뒤따른다. 다음으로 간장의 짠맛이 만드는 구조가 찾아온다. 짠맛은 단맛과 만나 감칠맛으로 보정되는데, 이때 멸치·다시마 혹은 닭뼈 콜라겐이 만든 농후감이 혀를 감싼다. 닭 자체의 풍미도 무시할 수 없다. 데치기로 잡내를 걷어낸 뒤 남는 지방의 고소함과 살의 담백함이 매운 양념의 배경이 된다. 끝으로 채소의 식감 레이어다. 감자의 푹푹 부서지는 전분, 당근의 사각거림, 양파의 투명해진 단맛, 대파의 상큼한 휘발성 향이 번갈아 올라와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닭도리탕의 맛은 ‘매운맛’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혀끝에 닿는 첫 느낌은 분명 고춧가루와 고추장이 만든 불의 맛이다. 하지만 이내 그 불길은 마늘과 양파, 생강의 단맛, 그리고 간장의 짭조름함에 부드럽게 감싸인다. 불의 열기와 단맛의 포근함이 맞부딪히며 혀 위에서 조화로운 긴장을 만든다. 그 다음은 닭 살코기가 부드럽게 풀리며 퍼지는 감칠맛이다. 뼈 근처의 진한 육즙이 고추양념과 섞이면서 묘하게 깊은 고소함을 남긴다. 특히 껍질 가까운 부위에서 배어 나오는 지방의 고소한 향은 국물 전체를 둥글게 만들어준다.
국물은 처음엔 묽어 보이지만, 끓일수록 점성이 생기며 바닥에서 ‘툭툭’ 끊기는 농도로 변한다. 이 농도가 닭도리탕의 생명이다. 감자에서 나온 전분이 매운 양념과 섞여 부드럽고 묵직한 질감을 만들고, 숟가락이 닭 살을 건드릴 때마다 붉은 국물이 은근히 흘러내린다. 그 한 숟가락에는 고추의 열기, 닭의 단백질, 감자의 포근함, 대파의 향긋함이 함께 녹아 있다.
맛의 후반부에는 매운맛이 아니라 ‘따뜻함’이 남는다. 처음엔 입안이 얼얼하지만, 곧 땀과 함께 긴장이 풀리고 속이 포근해진다. 이때의 매운맛은 고통이 아니라 위로에 가깝다. 맵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짜지만 밥 위에 얹으면 정확히 맞는 간이다. 닭도리탕의 진가는 바로 이 밥과의 궁합에 있다. 밥 한 숟가락에 국물을 적시고, 감자 한 조각과 닭고기를 함께 올려 먹는 순간, 매운맛은 단맛으로, 단맛은 감칠맛으로, 감칠맛은 다시 매운 여운으로 이어진다.
그 여운은 오래 간다. 매운 국물에 젖은 입술 끝이 따뜻하게 달아오르고, 혀끝에는 고추의 향이 남는다. 닭의 부드러움과 감자의 포근함이 그 불길을 달래며, 마지막 한입까지 리듬을 유지한다. 닭도리탕의 맛은 결국 ‘조화의 미학’이다. 불과 단맛, 짠맛과 부드러움, 자극과 위로가 공존하는, 그래서 한 그릇이 아니라 한 편의 음악처럼 느껴지는 요리다.

닭도리탕은 한국식 매운맛의 입문서이자, ‘한 냄비에 다 같이 숟가락을 모으는’ 공동체 감각을 체험하는 창구다. 뜨거운 김, 빨간 국물, 부드러운 닭 살코기, 감자의 포근함이 한 숟가락 안에서 겹겹이 만난다. 매운맛이 두려우면 고춧가루의 절반을 파프리카 파우더로 대체해도 색은 유지되고 화끈함은 줄어든다. 반대로 화끈함을 사랑한다면 청양고추 씨를 그대로 넣고 마지막에 산초가루 한 꼬집으로 알싸함을 덧칠한다.
닭도리탕의 매력은 결국 ‘밸런스’다. 고추의 열과 설탕·양파의 단맛, 간장의 짠맛과 닭의 고소함, 뼈에서 우러난 젤라틴의 점성과 감자의 전분이 서로를 지지한다. 그 균형이 맞는 순간, 밥은 국물에 자연스레 젖어 들고, 숟가락은 식탁 위에서 떠날 줄 모른다. 한국의 매운 한냄비요리를 한 그릇만 고르라면, 닭도리탕은 늘 상위권에 든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손이 많이 가지 않지만, 정성이 보이고, 매콤하지만 부드럽고, 무엇보다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때 가장 맛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상과 정서가 뜨거운 김처럼 피어오르는 그릇, 그것이 닭도리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