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면의 두 얼굴…늙어가고 있는 농심(NONGSHIM), 수출제왕 삼양(SYM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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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남
By 박수남 편집장

[K-ECONOMY 2] K-라면의 두 얼굴…늙어가고 있는 농심(NONGSHIM), 수출제왕 삼양(SYMYANG) [Magazine Kave=Park Sunam]
[K-ECONOMY 2] K-라면의 두 얼굴…늙어가고 있는 농심(NONGSHIM), 수출제왕 삼양(SYMYANG) [Magazine Kave=Park Sunam]

대한민국 식품 산업사(史)에 있어 2024년과 2025년은 단순한 회계연도의 경계를 넘어, 기존의 질서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립된 '혁명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라면 시장은 '농심 천하'였다. 신라면, 안성탕면, 짜파게티로 이어지는 철옹성 같은 라인업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성역과도 같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본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믿기 힘든 '골든 크로스'를 목격하고 있다. 만년 2인자, 한때는 회사의 존립마저 위태로웠던 삼양식품이 주가 100만 원 황제주 시대를 열어젖히며 시가총액과 영업이익률 측면에서 '거인' 농심을 압도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 놀라운 지각변동의 이면을 파헤치기 위해 두 기업의 재무제표부터 해외 공장의 가동률, 그리고 마케팅 전략의 미세한 균열까지 샅샅이 훑어보았다. 왜 삼양식품의 '불닭'은 전 세계가 열광하는 문화적 현상이 되었는가? 반면, 왜 농심의 '신라면'은 여전히 훌륭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에서 삼양만큼의 폭발적인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맛'의 차이에 있지 않다. 이는 변화하는 글로벌 소비 트렌드를 읽어내는 감각, 리스크를 감수하는 경영진의 결단,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을 설계하는 전략적 시야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삼양식품의 현재를 이해하려면 2010년대 초반, 그들이 처해있던 절박한 상황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당시 삼양은 라면의 원조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내수 시장 점유율 하락과 신제품 부재로 고전하고 있었다. 혁신은 풍요가 아닌 결핍에서 나온다는 경영학의 격언처럼, 삼양식품의 부활은 김정수 부회장의 '절박한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명동의 한 불닭 음식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매운맛을 즐기는 인파를 목격한 김 부회장의 직관은 단순한 제품 개발 지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맛의 극한'을 통한 카테고리 창조였다. 연구원들은 전국의 유명한 불닭, 불곱창 맛집을 순회하며 매운 소스 2톤, 닭 1,200마리를 소비하는 처절한 연구 과정을 거쳤다. 개발 단계에서 "너무 매워서 사람이 먹을 수 없다"는 내부의 혹평은 오히려 이 제품의 성공 요인이 되었다. 적당히 맛있는 라면은 세상에 넘쳐났다. 하지만 먹는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지만 쾌감을 주는, 도파민을 자극하는 라면은 불닭볶음면이 유일했다. 이는 2012년 출시 당시 틈새시장을 겨냥했으나,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인 '매운맛 챌린지'의 도화선이 되었다.

삼양식품이 농심과 가장 극명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은 제품을 정의하는 방식이다. 농심에게 라면이 '허기를 채우는 한 끼 식사'라면, 삼양에게 불닭볶음면은 '놀이'이자 '콘텐츠'였다.

2016년, 유튜버 '영국남자' 조쉬가 쏘아 올린 '불닭볶음면 챌린지(Fire Noodle Challenge)'는 삼양식품이 수백억 원의 광고비를 쏟아부어도 얻을 수 없는 거대한 마케팅 자산이 되었다. 전 세계의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은 자발적으로 불닭볶음면을 먹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송출했고, 이는 언어와 국경을 초월한 '밈(Meme)'으로 자리 잡았다.   

삼양식품은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 먹는 것+엔터테인먼트)' 전략으로 승화시켰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판'을 깔아준 것이다. 이는 최근 BTS의 지민 등 K-POP 스타들이 불닭볶음면을 즐기는 모습이 노출되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삼양식품은 이를 통해 별도의 막대한 마케팅 비용 없이도 전 세계 97개국에 브랜드를 침투시키는 효율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는 전통적인 TV 광고와 스타 마케팅에 의존하는 농심의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접근이었다.   

삼양식품의 주가가 폭등한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많이 팔려서가 아니라, '비싸게, 많이, 효율적으로' 팔리기 때문이다. 2025년 상반기 기준,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비중은 약 80%에 육박한다. 이는 내수 기업의 한계를 완전히 탈피했음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경이로운 영업이익률(OPM)이다. 2025년 1분기 삼양식품의 영업이익률은 25.3%를 기록했다. 이는 식품 제조업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수치로, 마치 IT 기업이나 바이오 기업의 이익률을 연상시킨다.

반면, 농심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농심의 2023년 기준 매출은 3조 4천억 원을 넘어섰고, 신라면은 여전히 글로벌 베스트셀러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시선은 차갑다. 그 이유는 농심의 수익 구조가 삼양식품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농심의 해외 매출 비중은 약 37%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여전히 매출의 60% 이상을 성장성이 정체된 국내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시장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라면 소비량이 구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 좁은 시장에서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 농심은 막대한 판촉비와 광고비를 지출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영업이익률이다. 농심의 영업이익률은 4~6%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 삼양식품의 1/4 수준이다. 이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지 못하는 내수 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국제 소맥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농심의 이익은 널뛰기를 반복한다. 해외 비중이 낮아 환율 효과로 원가 부담을 상쇄하는 '자연 헤지' 기능도 삼양보다 약하다.

신라면은 위대하지만, 늙어가고 있다. 글로벌 Z세대에게 신라면은 '맛있는 라면'일지는 몰라도, 불닭볶음면처럼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은 '쿨(Cool)한 아이템'은 아니다. 농심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최근 '먹태깡'의 품귀 현상이나 '신라면 더레드', '신라면 툼바' 등의 스핀오프 제품 출시는 이러한 위기감의 발로다.   

특히 농심은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케데헌)'와의 협업을 통해 젊은 층 공략에 나섰다. 이는 농심으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지만, 삼양의 불닭 챌린지처럼 자발적이고 유기적인 바이럴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불닭의 성공은 소비자가 주도권을 쥔 '상향식' 문화였던 반면, 농심의 전략은 여전히 기업이 주도하는 '하향식' 캠페인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농심의 속도에 실망하고 있다. 삼양식품이 밀양 2공장을 전광석화처럼 완공하고 가동에 들어간 것과 달리, 농심의 생산 능력 확충은 신중하다 못해 느리다. 초기 투자 비용에 대한 보수적인 접근과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故 신춘호 회장 시절부터의 기업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해외 현지 생산은 물류비 절감 등의 이점이 있지만, 공장 설립과 안정화까지 막대한 고정비가 발생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농심의 영업이익률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1963년 국내 최초로 라면을 출시했으나, 1989년 우지 파동과 2010년 회사의 위기를 겪으며 벼랑 끝 전술을 체득했다. 오너인 김정수 부회장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야성적 충동'을 보여주었다.

반면 농심은 수십 년간 1등을 지켜오며 '관리의 삼성'과 유사한 시스템 경영을 안착시켰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완벽주의는 품질 관리에 유리했으나, 급변하는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데는 족쇄가 되었다. 농심의 의사결정 구조는 다분히 보수적이며, 불닭볶음면과 같은 파괴적이고 실험적인 제품이 내부 품평회를 통과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삼양식품은 '불닭'을 라면이 아닌 소스(Sauce) 브랜드로 확장했다. 불닭 소스, 불닭 마요, 불닭 스낵 등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라면을 먹지 않는 소비자까지 생태계로 끌어들였다. 이는 마치 디즈니가 IP를 활용해 영화, 굿즈, 테마파크로 돈을 버는 방식과 유사하다.

농심도 '먹태깡'의 성공 이후 다양한 '깡' 시리즈와 콜라보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이는 단발성 히트에 그치거나 기존 브랜드의 변주에 머물러 있다. 신라면이 강력한 브랜드임은 분명하나, 그것이 다른 카테고리로 무한 확장되는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은 약하다. 농심의 신제품들은 서로 시너지를 내기보다는 제각각 전투를 벌이는 형국이다.

농심은 "가장 한국적인 맛이 가장 세계적인 맛"이라는 철학으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 붉은 국물과 쫄깃한 면발은 아시아권에서는 통했지만, 국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서구권 소비자들에게는 진입 장벽이었다.

삼양의 불닭볶음면은 영리하게도 '볶음면'이라는 형식을 취했다. 이는 파스타나 볶음 요리에 익숙한 서구인들에게 훨씬 친숙한 포맷이다. 또한 치즈, 크림, 로제 등 서구인들이 선호하는 맛을 적극적으로 결합한 '까르보불닭' 등의 현지화 제품은 매운맛의 장벽을 낮추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농심이 '김치'와 '매운 국물'을 고집할 때, 삼양은 소비자가 원하는 '맛있는 매운맛'으로 유연하게 변신한 것이다.

국내 라면 시장에서 농심의 지위는 여전히 견고하다. 점유율 50% 이상을 유지하는 농심의 유통 장악력과 신라면, 짜파게티의 브랜드 충성도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2025년에도 농심은 신제품 출시와 기존 제품의 리뉴얼을 통해 3~4%대의 완만한 매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점유율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삼양식품의 국내 점유율은 현재 10% 중후반 대에 머물러 있지만, 해외에서의 성공이 국내로 역수입되는 '후광 효과'가 2026년까지 지속될 것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삼양의 브랜드 선호도가 상승하면서, 편의점 채널에서의 점유율 격차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특히 농심이 가격 인상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삼양은 프리미엄 건면이나 소스류 시장을 잠식하며 '영업이익 기준 점유율'을 높여갈 것이다.

지금 자본시장은 삼양식품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삼양의 혁신은 농심의 안정을 압도했다. 그러나 농심은 저력이 있는 기업이다. 50년 넘게 쌓아온 품질에 대한 신뢰와 글로벌 네트워크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2026년, 우리는 두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삼양식품이 '불닭'을 넘어선 글로벌 종합 식품 기업으로 진화하여 농심을 영원히 따돌리거나, 혹은 농심이 뼈를 깎는 쇄신으로 '거인의 귀환'을 알리며 왕좌를 탈환하거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방식 그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삼양은 성공의 도취를 경계해야 하고, 농심은 과거의 영광을 잊어야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소비자의 입맛과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은 도태되는 것과 동의어임을 두 기업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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