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gazine kave=이태림 기자]
정호석의 시작은 무대가 아니라 바닥이었다. 광주에서 자란 소년은 음악이 나오면 어깨가 먼저 움직였고, 학교가 끝나면 거울 앞보다 연습실 바닥을 더 오래 바라봤다. 그는 유년기부터 춤을 배웠고, 지역에서 활동하던 언더그라운드 댄스팀 ‘뉴런’의 일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몇 해 동안 꾸준히 댄스 아카데미에서 기본기를 쌓으며, 몸이 문장처럼 말할 수 있다는 감각을 익혔다. 2008년 전국 규모의 댄스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던 기록은 ‘재능’이라는 단어가 허사가 아니었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 재능은 기교가 아니라 태도에서 더 분명했다. 같은 동작을 수십 번 반복하고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성격, 관객이 없는 시간에 더 크게 땀 흘리는 습관이 그를 만들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은 춤에서 천천히 번졌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많지만, 춤으로 노래의 서사를 세우는 사람은 드물다. 정호석은 그 드문 쪽에 가까웠다. 2010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하면서 그는 무대의 언어를 ‘랩’으로 확장했다. 당시 그는 원래 보컬 포지션으로 출발했지만, 팀의 색과 자신의 성향을 맞추며 랩을 본격적으로 익혔다. 낯선 발성, 낯선 호흡, 낯선 단어들 사이에서 그는 춤처럼 ‘리듬의 논리’를 먼저 잡았다. 데뷔 전인 2012년에는 조권의 곡 ‘Animal’에 피처링 래퍼로 참여해, 연습생이 무대 밖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인사를 남겼다.
2013년 6월 13일, 방탄소년단이 데뷔한 날 제이홉은 팀의 에너지 엔진으로 관객 앞에 섰다. 데뷔 초의 방탄소년단은 거칠고 날것이었다. 그 속에서 제이홉의 춤은 날카로움에 온도를 더했고, 과장 없이 정확한 동작으로 ‘다 같이’의 합을 만들었다. 스포트라이트가 한 사람에게만 쏠리기 쉬운 아이돌 무대에서, 그는 팀 전체가 더 빛나게 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결국 제이홉을 ‘퍼포먼스 리더’라는 자리로 데려갔다.

대중이 방탄소년단의 존재를 더 크게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 제이홉의 이름도 함께 또렷해졌다. 2015년과 2016년을 지나며 팀의 서사가 확장될 때, 그는 무대에서 감정의 고저를 몸으로 번역해냈다. 2016년 ‘Wings’ 시대의 인트로 ‘Boy Meets Evil’에서 제이홉은 유혹과 내면의 갈등을 퍼포먼스로 설계했고, 이어지는 솔로곡 ‘Mama’에서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감사의 감정을 밝고 리드미컬한 랩으로 풀어냈다. 그의 솔로 파트는 흔히 ‘잠깐의 개인기’로 소비되기 쉽지만, 제이홉은 그 짧은 시간에 콘셉트의 핵심을 꽂아 넣는다.
2018년에는 ‘Trivia 起: Just Dance’로 사랑을 ‘춤’이라는 은유로 바꾸며, 제이홉이 왜 무대에서 설득력이 강한지 증명했다. 2020년 ‘Map of the Soul: 7’의 ‘Outro: Ego’는 이름 그대로 그의 자아를 응시한 곡이었다. 화려한 별명 뒤의 본명, 무대 위의 밝음 뒤의 고민을 솔직하게 꺼내며 그는 단순한 ‘긍정 담당’에서 한 단계 멀리 나아갔다. 방탄소년단의 다큐멘터리와 무대 비하인드에서 자주 포착되는 그의 얼굴은 늘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은 노력의 결과에 가깝다. 팀이 무너질 듯 흔들릴 때 분위기를 살리고, 동시에 리허설에서는 가장 까다롭게 디테일을 요구하는 사람. 제이홉의 리더십은 ‘밝음’과 ‘엄격함’이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유형이다.
그의 솔로 행보는 방탄소년단의 성장 곡선과 나란히 확장됐다. 2018년 공개된 믹스테이프 ‘Hope World’는 제목 그대로 ‘희망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Daydream’과 ‘Airplane’ 같은 트랙에서 그는 팬들이 알고 있던 이미지의 원형을 선명하게 그리면서도,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아이러니를 가볍지 않게 다뤘다. 2019년 ‘Chicken Noodle Soup’ 리메이크 협업은 그의 댄스 정체성을 전면에 세운 사건이었다. 익숙한 원곡의 에너지를 현대적으로 바꾸면서, 그는 춤과 음악이 서로를 밀어 올리는 방식 자체를 보여줬다. ‘BTS의 멤버’라는 설명 없이도, 무대에서 단독으로 완성되는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때 더 널리 확인됐다.
2022년 7월 발매된 첫 공식 솔로 앨범 ‘Jack in the Box’는 제이홉의 스펙트럼을 과감하게 뒤집었다. 선공개곡 ‘More’와 타이틀에 가까운 ‘Arson’은 ‘밝은 제이홉’이라는 고정관념을 흔들며, 불안과 욕망, 예술가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는 같은 해 7월 미국의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서 헤드라이너로 서며, 한국 솔로 아티스트로서 상징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2023년 3월에는 제이콜과 함께한 ‘On the Street’로 춤꾼의 출발점과 래퍼의 현재를 한 줄로 이어 붙였다. 무대 위에서나 곡 속에서나, 제이홉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I’m your hope, you’re my hope, I’m J-Hope.” 그 문장은 구호 같지만, 그의 커리어에서는 실제로 작동해온 자기 암시다.


제이홉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기분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매력은 대비에서 나온다. 무대에서는 폭발하듯 밝지만, 작업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하게 자신을 검열한다. 퍼포먼스는 흥을 주지만, 그 흥이 우연히 생긴 적은 거의 없다. 안무의 각을 맞추는 집요함, 리듬을 타는 순간에도 카메라의 각을 계산하는 감각, 동선과 표정을 동시에 설계하는 능력이 합쳐져 제이홉의 무대를 만든다. 그래서 그의 춤은 ‘잘 춘다’가 아니라 ‘말이 된다’로 남는다. 동작 하나가 곡의 감정선을 운반하고, 시선 하나가 다음 장면의 의미를 예고한다.
음악에서도 그는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을 쌓았다. ‘Hope World’의 밝은 팔레트는 팬들에게 위로를 줬고, ‘Jack in the Box’의 어두운 결은 대중에게 신뢰를 줬다. 한 사람이 밝기만 하다면 금세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제이홉은 밝음의 반대편을 보여주며 스스로의 이미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특히 ‘Boy Meets Evil’과 ‘Outro: Ego’ 사이의 간극은 그의 성장 서사를 압축한다. 유혹 앞에서 흔들리는 청년이, 결국 선택의 책임을 껴안고 ‘나’로 돌아오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제이홉은 퍼포먼스로 감정의 변화를 설득해냈고, 관객은 그 설득에 기꺼이 마음을 맡겼다.
무대 밖의 인간미 또한 그의 사랑을 견인했다. 예능과 라이브 방송에서 그는 자주 팀의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맡았지만, 그 유쾌함은 남을 깎아내리는 웃음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는 방식의 웃음이었다. 팬들이 제이홉을 ‘희망’으로 부르는 이유도, 그가 늘 웃기 때문이 아니라 웃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쪽을 택해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책임감이 강한 아티스트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남아 무대를 점검하고, 자신의 실수를 먼저 이야기하는 태도는 ‘프로’라는 단어를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2023년 4월 18일, 제이홉은 군 복무를 시작했고 2024년 10월 17일 전역했다. 그 사이에도 그의 뿌리를 보여주는 프로젝트는 계속 공개됐다. 2024년 3월에는 스트리트 댄스에 대한 애정과 여정을 담은 시리즈 ‘Hope on the Street’가 공개됐고, 같은 달 특별 앨범 ‘Hope on the Street Vol. 1’이 발매되며 그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전역 이후 그는 2025년 1월 프랑스의 자선 공연 무대에 오르며 복귀를 알렸고, 이어 첫 솔로 투어 ‘Hope on the Stage’를 진행해 서울에서 출발해 아시아와 북미 주요 도시를 돌았다. 2025년 여름에는 유럽 페스티벌 무대에도 이름을 올리며, ‘월드 투어 아티스트’로서의 체력을 증명했다.
그의 활동 연보를 더 촘촘히 들여다보면, ‘밝은 무대’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팀 활동 속에서도 그는 종종 협업의 접점을 넓혔다. 게임 OST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A Brand New Day’ 같은 곡에서는 낯선 보컬과 자신의 랩 톤을 부드럽게 섞으며, 무대형 퍼포머가 아닌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결을 드러냈다. 2020년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정회원으로 승격되며 창작자로서의 좌표도 분명히 했다. ‘잘 춤추는 멤버’라는 설명이 더는 충분하지 않게 된 시점이다.
솔로 전환기의 핵심은 ‘증명’이었다. ‘Jack in the Box’는 콘셉트부터 과감했다. 장난감 상자처럼 튀어나오는 기대 대신, 상자 안에 갇힌 자아를 꺼내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가 2022년 여름의 단독 페스티벌 헤드라이닝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야외 무대에서 그는 군더더기 없는 동선으로 관객을 장악했고, 밝음과 어둠을 한 세트 안에서 오가며 ‘한 사람의 쇼’를 완성했다. 2023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J-Hope in the Box’는 그 과정의 압박과 흥분을 기록했다. 완벽한 결과만 보여주기보다, 결과가 나오기 전의 불안까지 공개하는 태도가 그를 더 믿게 만들었다.
전역 전 공개된 ‘Hope on the Street’ 프로젝트는 제목처럼 그의 출발점을 다시 비췄다. 길거리에서 시작한 춤, 팀 ‘뉴런’의 기억, 그리고 스트리트 댄스가 그에게 남긴 윤리. ‘Hope on the Street Vol. 1’의 타이틀 격인 ‘Neuron’에서는 개코, 윤미래와 함께 올드스쿨 힙합의 질감을 살리며 댄서와 래퍼의 정체성을 한 곡에 겹쳐 놓았다. 그가 오랫동안 몸으로 배워온 ‘그루브’가, 이번에는 언어와 비트로 다시 환원된 셈이다.
전역 이후의 행보도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확장’이었다. 그는 2025년 초 파리의 대형 자선 공연에서 짧은 세트를 선보이며, 무대 감각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이어진 첫 솔로 투어는 공연 제목처럼 ‘무대 위에서 희망을 세운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투어의 피날레를 6월 13일과 14일로 잡아, 팀의 데뷔일과 자신의 솔로 커리어를 하나의 시간축에 겹치게 한 선택도 상징적이었다. 같은 해 여름 유럽의 대형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린 사실은, 제이홉이 더는 ‘그룹의 인기 덕을 보는 솔로’가 아니라는 점을 또 한 번 확인시켰다.
그가 지금부터 보여줄 미래는 성격이 비슷하되, 스케일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2026년 3월 20일로 예고된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과 투어는 제이홉의 ‘팀’ 서사를 다시 불러올 것이고, 동시에 그가 쌓아온 솔로의 서사는 완전체 활동에 새로운 색을 더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퍼포먼스’라는 말을 다시 정의해 온 사람이다. 춤이 노래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춤이 노래의 의미를 완성하는 방식. 그 신념이 계속되는 한, 제이홉의 무대는 다시 한 번 관객의 마음을 끌어올릴 것이다.
결국 제이홉의 핵심은 ‘희망’이 아니라 ‘연습’이다. 웃음은 결과이고, 집요함은 원인이다. 그가 다음 무대에서 보여줄 빛은, 오늘도 반복된 동작들 위에 놓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들으면 관객은 안도한다. 시작이든 귀환이든, 무대의 온도는 반드시 올라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그 믿음이 오래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