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gazine kave=이태림 기자]
무대 위에서 RM은 늘 ‘말’로 먼저 걸어 나온다. 랩은 결국 언어의 스포츠이고, 언어가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 리더가 탄생한다. 김남준의 시작은 거창한 신화가 아니라 교실과 책상, 그리고 혼자 끼적이던 노트의 문장들이었다. 1994년 9월 12일 서울에서 태어나 일산에서 자란 그는 유난히 읽는 아이였다. 단어를 모으고 문장을 해체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알려졌지만, 그에게 ‘똑똑함’은 자랑보다 답답함에 가까웠다. 마음속에 쌓이는 질문이 많았고, 그 질문의 출구가 음악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랩을 쓰기 시작했고, ‘Runch Randa’라는 이름으로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활동하며 무대의 공기를 배웠다. 크루 ‘대남협’과의 교류, 동료 래퍼들과의 작업 속에서 그는 또래의 허세보다 ‘문장’으로 인정받는 쪽을 택했다. 비트 위에서 소리를 키우기보다 생각을 키우는 래퍼였다.
2010년, 그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한다.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떠올리면 믿기 어렵지만, 그 선택은 당시엔 안전한 길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대학과 진로를 이야기할 때 그는 연습실에서 새벽을 맞았고, 완벽하지 않은 발음과 호흡을 스스로 갈아엎었다. 데뷔는 2013년 6월이었다. 낯설고 거친 콘셉트, 큰 자본도 인프라도 부족한 팀. 그 틈에서 김남준은 ‘리더’로 불리기 시작했다. 리더십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팀이 필요로 하는 역할에서 생긴다. 멤버들이 각자의 불안을 끌어안고 있을 때 그는 가장 먼저 가사를 붙들었다. 무대 뒤에서 곡의 방향을 정리하고, 인터뷰에서 팀의 논리를 설명하고, 카메라 앞에서 어색함을 책임졌다. 데뷔 직후의 RM은 화려하기보다 절박했다. 그래서 팬들은 그 절박함을 사랑했다. ‘될까’가 아니라 ‘해야 한다’로 달려가는 눈빛은, 아직 이름 없는 꿈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데뷔 이후에도 그는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바쁜 활동 속에서도 온라인 대학에서 방송·엔터테인먼트를 전공해 학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광고·미디어 분야의 석사 과정에도 등록했다. ‘공부하는 아이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지만, 그가 정말로 붙잡은 것은 학력 자체가 아니라 ‘이해의 방식’이었다. 새로운 장르를 만날 때는 역사와 맥락부터 파고들었고, 낯선 도시를 방문하면 거리의 언어를 먼저 관찰했다. 그래서 그의 가사는 개인의 일기에서 출발해도, 늘 사회와 문화의 좌표를 품는다.


방탄소년단이 대중의 시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2015년 무렵부터다. 청춘의 불안과 분노, 성장통을 전면에 세운 음악이 조금씩 반응을 얻었고, 팀은 앨범마다 서사를 확장했다. ‘화양연화’의 연작이 방황의 감정을 촘촘히 붙잡을 때, RM의 가사는 이야기의 뼈대가 됐다. 2016년 ‘Wings’ 시기에는 욕망과 유혹, 자기 성찰이 더 복잡한 구조로 얽혔고, 2017년 ‘DNA’와 함께 세계 시장의 문이 크게 열리면서 팀은 한순간에 ‘글로벌 그룹’의 표준처럼 불리기 시작했다. 그 시기 RM의 역할은 더욱 무거워졌다. 영어 인터뷰의 최전선에 섰고, 세계 무대에서 한국어로 노래하는 팀의 이유를 스스로 설명해야 했다. 2018년 ‘Love Yourself’라는 큰 메시지가 전 세계로 퍼질 때도, RM은 ‘자기 사랑’이 공허한 구호가 되지 않도록 문장을 단단히 세웠다. 2019년 이후 스타디움 투어가 이어지고, 2020년 ‘Dynamite’, 2021년 ‘Butter’ 같은 곡으로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에서 이름을 확인받는 동안에도 그는 ‘리더’이면서 동시에 ‘기록자’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유행어 대신 맥락을 말했고, 팬덤의 감정만이 아니라 대중의 질문까지 함께 끌어안으려 했다. 2017년 11월, ‘Rap Monster’라는 이름이 더는 자신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활동명을 ‘RM’으로 바꾼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때부터 RM은 ‘Rap Monster’라는 직선적 이미지에서 한 걸음 물러나, 더 넓은 스펙트럼의 자신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름을 줄였다고 존재감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RM’이라는 두 글자 안에 래퍼, 작가, 리더, 한 사람의 청년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팬들은 그 변화를 ‘성장’으로 읽었고, 대중은 그가 유행을 좇기보다 자기 정의를 갱신하는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커리어가 커질수록 그는 더 간결한 이름을 택했고, 더 복잡한 세계를 다루기 시작했다. 2018년 공개된 플레이리스트 ‘mono.’는 성공 이후의 고독을 조용히 펼쳐 보였다. ‘seoul’과 ‘everythingoes’ 같은 곡에서 그는 도시와 자신을 겹쳐 놓으며, 유명해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외로움을 노래했다. 2022년 12월 발표한 첫 정규 솔로 앨범 ‘Indigo’는 ‘기록’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자신이 사랑해 온 것들, 지나온 시간,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정리. 그는 협업을 통해 폭을 넓히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같은 해 방탄소년단은 ‘Proof’를 내고 잠시 팀 활동의 속도를 늦췄다. 각자의 시간과 군 복무라는 현실이 겹친 선택이었다.

2023년 12월 11일 RM은 군에 입대했고, 강원도에서 육군 15사단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무대가 멈춘 시간에도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2024년 5월 그는 두 번째 솔로 정규 앨범 ‘Right Place, Wrong Person’을 발표하며, 힙합의 문법을 기반으로 하되 대안적 질감과 불협의 아름다움, 흔들리는 자아를 전면에 세웠다. 다큐멘터리 ‘RM: Right People, Wrong Place’는 202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오픈시네마 섹션에서 처음 공개되며, 뮤지션 RM이 아니라 인간 김남준의 속도를 가까이 비췄다. 그 작품이 같은 해 12월부터 글로벌 공개로 이어지면서, 관객들은 화려함 뒤에서 스스로를 점검하는 한 창작자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가 마이크를 쥐고 말한 ‘우리 자신을 사랑하자’는 문장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팀이 걸어온 서사의 요약이었다. 해외 시상식과 방송이 이어지면서 ‘K팝’이라는 장르명 너머의 존재로 불릴 때도, RM은 언제나 한 발 앞서 설명했다. 낯선 문화권의 질문 앞에서 그는 방어적으로 굴기보다, 왜 이런 음악이 나왔는지부터 차근차근 풀었다. 그 태도는 팀의 이미지를 바꿨다. ‘아이돌’이라는 단어가 가진 선입견 위에, ‘작가’와 ‘아티스트’라는 단어를 얹어 놓는 작업이었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의 다수 곡에는 RM의 작사·작곡 참여가 깊게 스며 있다. 랩 파트만이 아니라 훅의 문장, 곡의 주제, 앨범의 흐름까지 영향을 미쳤다. 세계가 그들을 환호하는 동안에도 그는 자주 ‘우리는 지금도 배우는 중’이라고 말해 왔다. 그 겸손은 팬덤의 애정으로 돌아왔고, 대중에게는 ‘성장하는 스타’라는 신뢰로 남았다.
대중이 RM을 사랑한 이유는 단지 ‘리더’여서가 아니다. 그의 인기는 ‘설명하는 능력’에서 시작해 ‘공감시키는 문장’으로 완성됐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세계로 확장되는 동안, RM은 매번 그 음악의 주제를 자기 언어로 번역했다. 청춘의 분노를 말할 때는 사회를 향한 질문을 던졌고, 사랑을 말할 때는 자기혐오와 회복을 함께 껴안았다. ‘봄날’ 같은 노래가 이별의 서정을 넘어 집단 기억의 감각으로 남은 데에는, 단어 선택의 절제가 있었다. ‘피 땀 눈물’이 욕망과 성장의 우화를 만들 때에도, ‘Black Swan’이 예술가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에도, 그의 가사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구조를 세웠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낀다. 과장된 위로 대신 정확한 문장 한 줄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 법이다.
솔로 작업에서 그 사랑은 더 미세한 결로 드러난다. ‘mono.’의 차분함은 ‘유명한 사람의 밤’이 아니라 ‘사람의 밤’이었다. ‘Indigo’는 ‘어른이 되는 과정’의 표본처럼 들렸다. 색이 바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바랜 색에서 진짜 아름다움을 찾는 태도. ‘Right Place, Wrong Person’에서는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나’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정답 없는 청춘의 불안을 성숙한 방식으로 펼쳤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공개한다. 그 솔직함이 팬덤을 넘어 대중에게까지 확장되는 지점이 있다. RM이 ‘공부 잘하는 아이돌’로만 소비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지식을 과시하기보다 ‘사유’를 보여준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적고, 그 감정을 다시 멜로디와 라임으로 번역한다. 그런 태도가 ‘리더’라는 직함과 맞물릴 때, 사람들은 그를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 ‘시대의 화자’로 받아들인다.
또 하나의 사랑받음은 ‘솔직한 유머’에서 나온다. RM은 무대 위에서 완벽한 영웅을 연기하기보다, 실수와 민망함을 스스로 인정하며 웃음으로 바꿔왔다. 긴장한 멤버를 풀어주는 말, 분위기를 정리하는 한 문장, 팬들의 감정을 과열시키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태도는 화면 밖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대중 앞에서 흔들림을 숨기지 않되, 그 흔들림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 책임감이 ‘믿고 보는 리더’라는 평판을 만들었다.
무대 밖의 행보도 그의 세계관을 확장해 왔다. 그는 오랫동안 미술관을 찾고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으로 예술 애호가의 이미지를 쌓아 왔고, 2023년에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선정되며 패션 영역에서도 존재감을 보였다. 전역 직후인 2025년 6월에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트 바젤 현장에서 삼성전자의 ‘아트 TV’ 글로벌 앰배서더로 공개 활동을 시작하며, ‘취향’이 ‘일’이 되는 장면을 보여줬다. 여기서도 핵심은 같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그 감정을 어떻게 말로 전달하는지. 결국 RM의 무기는 여전히 ‘언어’다.
2025년 6월 10일,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다. 전역 현장에서 그는 “저는 15사단 군악대 병장 김남준입니다. 오늘 전역했습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며 긴 숨을 내쉬었다. 그 한마디에는 힘든 시간을 견딘 사람의 현실감과, 다시 무대에 서겠다는 약속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전역 이후의 RM은 속도를 과시하기보다 방향을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팀이 다시 모이는 시간표, 개인이 이어갈 창작의 호흡, 그리고 자신이 ‘지금’ 말할 수 있는 문장의 온도를 세심하게 맞춰가고 있다.
2026년 3월 20일, 방탄소년단은 새 앨범으로 완전체 컴백을 예고했고, 컴백 이후 월드 투어 계획도 함께 알려졌다. RM에게 2026년은 개인의 다음 작품 이전에 팀의 다음 시대다. 리더로서 그는 다시 한번 ‘우리가 왜 노래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도 계속 질문을 던질 것이다. 방송·엔터테인먼트 전공으로 학부를 마친 뒤 광고·미디어 분야의 대학원 과정을 밟아온 이력처럼, 그는 음악을 산업의 언어로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계산만 남는 타입은 아니다. 오히려 계산이 끝난 자리에서 감정을 붙잡고, 감정이 흩어지지 않도록 문장으로 고정시키는 쪽에 가깝다.
그가 남긴 ‘문장’의 양은 이미 방대하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작사·작곡 크레딧만 해도 200곡을 넘고, 그 안에는 팀의 타이틀곡과 수록곡, 멤버들의 솔로, 외부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촘촘히 얽혀 있다.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다. 그 많은 곡이 하나의 질문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이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RM의 미래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확장’이다. 래퍼로 출발해 작사가, 프로듀서, 문화적 화자로 경계를 넓혀왔고, 그 확장 속에서도 자신을 늘 ‘미완’으로 남겨둔다. 완성된 사람처럼 말하지 않고, 흔들리는 사람처럼 솔직하다. 그 솔직함이 그를 오래 사랑하게 만든다. 세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세계적 인기’만이 아니다. 한국어로 쓰인 사유가 세계의 감정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RM이 꾸준히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봄이 온다. 그 봄의 첫 문장을, 그는 또 어떤 단어로 시작할까.
그의 다음 문장은 아마도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다정하게 정리하는 한 줄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줄이 다시 수많은 사람의 하루를 견디게 할지도 모른다. RM은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서도 자신보다 노래의 의미를 먼저 세워왔다. 그래서 2026년의 무대는 ‘컴백’이 아니라, 또 한 번의 ‘증명’이 될 것이다. 참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