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gazine kave=최재혁 기자]
한여름, 햇빛이 모래를 달구고 튜브와 파라솔이 다닥다닥 붙어 선 부산 해운대 해변. 소리 높은 상인의 호객, 파도에 뛰어드는 아이들, 술에 취한 관광객이 뒤엉킨 그 한가운데에서 최만식(설경구)은 묵직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태국에서 일어났던 쓰나미로 연희의 아버지를 목숨 앞에서 놓쳐 버렸다는 죄책감을 안고 돌아온 뒤, 그는 해녀 강연희(하지원)의 주변을 맴돌며 일부러 더 시끄럽게 웃고 더 가볍게 농담을 던진다. 사과라는 단어를 끝까지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포장마차에서 국물을 따라주고, 택시를 대신 잡아 주고, 수리해야 할 집 안 일을 나서서 도와주며 자기 나름의 속죄를 이어 간다. 연희는 그런 만식을 동네에서 오래 본 사람 대하듯 툭툭 밀어내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이미 그를 오래전부터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묘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서울에서는 전혀 다른 온도의 시간이 흐른다. 지질학자 김휘(박중훈)는 암반 구조와 해저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불길한 수치를 확인한다. 동해 해저에서 감지되는 미세한 이상 징후가 쌓이고, 모니터에 찍힌 숫자와 그래프가 하나의 결론을 향해 모여든다. 한국에서도, 그것도 인구가 밀집한 휴양지 해운대 일대에서 대형 쓰나미가 일어날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과거 쓰나미 피해 현장에 있었던 경력이 그를 괴롭히고, 학자로서의 양심과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 서로를 잡아당긴다. 이혼한 아내 이유진(엄정화)은 방송 앵커로 일하며,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이 재난 시나리오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딸을 바라보는 김휘의 눈에는, 연구 보고서의 문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초조함이 켜켜이 차오른다.
바다를 가장 가까이에서 상대하는 사람의 시선도 있다. 해양경찰 수상구조대원 최형식(이민기)은 물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관광객, 안전 수칙을 무시하는 피서객 사이를 뛰어다니며 하루를 보낸다. 그는 바다가 무섭기보다 익숙한 사람에 가깝다. 물길이 바뀌는 순간을 몸으로 감지하고, 파도가 갑자기 세지는 패턴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욕설을 퍼부으며 난동을 부리다 물에 빠진 희미(강예원)를 구조하면서, 두 사람의 기묘한 로맨스가 시작된다. 한쪽은 목숨을 건 구조를 하고 돌아왔는데, 다른 한쪽은 억울하다며 고래고래 소리부터 지르는 이 어긋난 첫 만남이, 이후 영화에 가벼운 웃음과 애틋함을 동시에 불어 넣는다.

영화 초반의 해운대는 재난 영화라기보다 여름 휴가 영화처럼 보인다. 바닷가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만식과 연희, 개점 준비에 여념이 없는 연희의 식당, 구조대원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형식, 방송국과 연구실을 오가며 현실과 이론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김휘의 일상이 교차 편집으로 이어진다. 감독은 이 평범한 풍경들을 충분히 길게 보여 준다. 관객은 이들의 웃음과 투덜거림, 사소한 갈등을 보며 어느새 정을 붙이게 된다. 이 평범함이 길게 쌓일수록, 곧 닥칠 재난이 더 잔혹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잠시 그 사실을 잊고 싶어진다.
그러나 화면 구석에는 조금씩 금이 가 있다. 바닷가에 떠밀려 오는 죽은 물고기, 멀리 해상에서 잡히는 이상한 파형, 김휘의 보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관료들의 회의실, 관광객 숫자를 줄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경고를 미루자는 말들이 배치된다. 익숙할 정도로 현실적인 이 장면들은, 재난이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이 아니라, 미리 보였던 여러 징후와 무시된 경고의 결과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슬픔은 기쁨 뒤에 온다고 했던가...
운명의 날, 해운대는 올해 들어 가장 붐빈다. 학교 방학과 휴가, 지방 축제가 겹치면서 모래사장은 사람으로 가득 찬다. 연희는 식당을 정식 오픈할 꿈에 부풀어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고, 만식은 어떻게든 제대로 된 고백 한 번 하겠다는 마음으로 근처를 맴돈다. 형식은 바닷속과 모래사장을 오가며 구조 근무에 집중하는 척하면서도, 틈날 때마다 희미에게 연락을 띄울 핑계를 찾는다. 김휘는 마지막 보고서를 들고 관료들을 설득하려 애쓰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애매한 미소와 회피성 말뿐이다. 이들의 동선이 해운대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 엇갈리고 겹치는 장면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고 갑자기 바다가 조용해진다. 파도의 리듬이 끊기고, 물이 비정상적으로 빠져나가며 해변 앞이 넓은 갯벌처럼 드러난다. 사람들은 이 낯선 광경을 신기해하며 바다 쪽으로 더 다가간다. 손에 닿는 곳에 움직이는 물고기들이 보이고, 모두가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이 순간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이 퇴조가 거대한 쓰나미가 오기 직전의 징조라는 사실을. 그 인지의 차이가 화면 밖과 안의 긴장을 극대화한다.
김휘와 관청, 해경은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경보 발령과 대피 방송을 서둘러 내보내지만, 해변과 도심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남아 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수십 미터 높이의 물벽이 수평선을 가득 채우고, 도시를 향해 밀려들어 오는 순간, 영화는 앞서 쌓아 올렸던 모든 웃음과 일상을 단숨에 짓이기며 재난 장르의 본색을 드러낸다. 광안대교 위 차량들이 파도에 휩쓸리고, 고층 빌딩의 1층 로비로 물이 돌진하며, 지하 주차장과 지하철역, 터널까지 순식간에 물에 잠긴다. 형식은 구조대원으로서 마지막까지 줄을 붙든 채 사람들을 끌어 올리고, 만식은 본능적으로 연희와 주변 사람들을 향해 몸을 던진다. 각 인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누구를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 선택의 결과는 영화 후반의 가장 큰 정서적 파동이 되기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따라가는 편이 좋겠다.

재난 블록버스터에 K-신파를 더하다
작품의 완성도를 살펴보면, 우선 눈에 띄는 지점은 장르의 조합이다. '해운대'는 할리우드식 재난 블록버스터가 보여 줘 온 서사를 빌리지만, 그 위에 한국형 가족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 생활 밀착형 코미디를 두껍게 덧칠한다. 초반 한참 동안 재난의 징후 대신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과 감정을 보여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객이 이들을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 '어디선가 볼 수 있었던 사람들'로 받아들이게 만들기 위해서다. 평범한 하루를 충분히 보여 준 뒤 그 하루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방식은, 재난 장면의 시각적 규모를 넘어서는 상실감을 만든다.
캐릭터 구성은 어찌 보면 전형적이다. 책임감은 있지만 말주변이 부족한 가장, 상처를 안고 웃음으로 버티는 여성, 과학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전문가, 까칠하지만 순수한 청년, 처음엔 짜증 나지만 끝에는 좋아하게 되는 인물까지. 익숙한 역할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전형성이 바로 '해운대'의 힘이다. 설경구와 하지원이 만들어 내는 만식과 연희의 관계는 실제 부산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남녀의 감정처럼 살아 움직인다. 지나가는 말이 상처가 되고, 아무 의미 없이 던진 농담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는 것을,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이민기의 형식은 젊고 거칠지만 책임감 있는 청년의 얼굴을 상징하며, 엄정화와 박중훈의 김휘-유진 관계는 중년의 현실과 부모의 고민을 재난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이렇게 다양한 세대와 위치의 인물이 한 이야기 속에 들어오면서, 영화의 정서적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한국 상업영화의 스케일 확장
연출 측면에서 이 작품은 당시 한국 상업영화가 구현할 수 있었던 재난 스케일의 상한선을 꽤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광안대교 붕괴, 고층 빌딩 침수,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장면은 한국 관객에게 강한 충격을 남겼다. 단지 컴퓨터 그래픽의 완성도 문제를 넘어, 구체적인 도시 공간이 무너지는 장면을 스크린에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와 예능, 홍보 영상 속에서 관광 이미지로 소비되던 해운대 해변과 마린시티, 광안대교가 이 영화에서는 갑자기 취약한 구조물로 바뀐다. 이 공간의 재맥락화가 주는 충격이 크다.
이 영화의 감정선은 전형적인 한국식 멜로의 문법을 따른다. 코미디와 갈등, 눈물을 차례대로 쌓아 올린 뒤 클라이맥스에서 한 번에 폭발시키는 방식이다. 재난이 닥쳤을 때 관객이 자연스럽게 울 수 있도록, 이미 충분한 애정을 쌓아 둔 셈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과잉도 보인다. 특히 후반부에는 웃음과 비극이 거의 맞물려 등장해 정서가 요동친다. 방금 전까지 웃기던 캐릭터가 직후 장면에서 비극적 선택을 하기도 하고, 감동적인 장면 직후에 다시 농담이 튀어나와, 어떤 관객에게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 들쭉날쭉한 정서의 진폭이야말로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리듬이기도 하다.
재난 영화로서 눈여겨볼 지점은, 이 작품이 재난 이전의 사회를 어떻게 그려 내는지다. 지질학자의 경고가 관료주의의 문턱에서 힘을 잃고, 휴가 철 관광 수입을 걱정하는 행정이 불편한 결론을 뒤로 미루는 모습은, 특정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풍경처럼 보인다. 감독은 누군가를 악인으로 지목하기보다, '설마 그런 일까지는 벌어지겠냐'는 안이함과 책임 회피를 자연스럽게 배치해 둔다. 이 익숙한 태도들이 누적된 결과가 재난의 규모를 키운다는 메시지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개인의 선택을 중심에 둔 점도 중요하다. 재난 상황에서 누군가를 먼저 구하고, 어떤 지점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지를 둘러싼 선택들이 인물의 서사와 맞물린다. 영화는 그 선택들에 대해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떤 인물의 희생은 크게 조명되고, 어떤 인물의 결단은 짧은 컷 몇 개로만 지나간다. 관객은 그 차이를 보며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상상하게 된다. 이 고민의 과정이 '해운대'를 단순한 스펙터클 이상으로 만들어 준다.
사람이 싫지만, 사람이기에 끌린다
재난 영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좋은 출발점이 된다. 잔혹한 장면이나 공포 연출만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인물의 관계와 감정을 충분히 쌓은 뒤 재난을 밀어 넣는 구조 덕분에, 장르적 긴장감을 부담스럽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부산과 해운대에 개인적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 속 풍경을 보면서 자신의 추억을 겹쳐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엽서와 사진 속에서만 보던 바다가,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 오가는 공간으로 바뀌어 보일 것이다.
요즘 세상을 보며 막연한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복잡한 감정을 정리해 볼 수 있다. '해운대'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동시에, 그 작은 인간들이 서로를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도 보여 준다. 폭발적인 CG와 소리 사이에서도, 결국 관객의 마음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뛰어드는 사람의 뒷모습이다. 여름밤, 가볍게 웃으면서도 한 번쯤 목이 메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한국식 재난 멜로의 전형을 다시 확인해 보고 싶다면, 지금 다시 '해운대'를 찾아 보는 선택은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