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남녀 네이버 웹툰/말하지 못한 문장들의 연애사

schedule 입력:
최재혁
By 최재혁 기자

지독히 현실적인 2030 한국 연애

좁은 운동장 위, 해가 기울어가는 오후. 누렇게 바랜 잔디 위를 민남주가 마지막 힘을 짜내 뛰어간다.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선 순간, 발끝이 공을 차는 감각보다 다리에 전해지는 이상한 통증이 먼저 찾아온다. 무릎이 꺾이고,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관중석의 웅성거림이 멀어지듯 흐려진다. 네이버 웹툰 '방백남녀'는 바로 이 장면에서 한 소년이 축구선수의 꿈을 스스로 파괴하는 순간을 응시하며 시작한다. 마치 '위플래쉬'의 앤드류가 드럼 스틱을 던지는 순간이나, '블랙 스완'의 니나가 발목을 꺾는 순간처럼, 꿈과의 파국적 이별을 선택하는 그 찰나를 포착한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완결작으로, 재능을 가졌지만 끝까지 달릴 형편과 마음을 동시에 잃어버린 청년의 초상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민남주는 한때 유망한 축구선수였다. 그러나 재능과 노력, 그리고 돈이 교묘하게 얽힌 현실 속에서 그는 언제나 미묘하게 밀려나는 쪽에 서 있었다. 더 좋은 장비와 레슨을 받는 동료에게 출전 기회를 빼앗기고, 감독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씩 연습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애매한 대우와 지친 몸뿐이다. 그렇게 몰린 끝에 그는 경기 도중 일부러 몸을 던져 부상을 택한다. 더 이상 뛰지 못하게 만드는 파괴를 새로운 출구로 선택한 것이다. 마치 '그래비티'에서 샌드라 불록이 우주선 밖으로 나가듯, 남주는 자신의 꿈이라는 우주선 밖으로 스스로를 밀어낸다. 부상 이후 남주는 축구와 완전히 결별하지도, 그렇다고 붙잡지도 못한 채 애매한 거리에 서 있는 인물이 된다. 한때 자신을 전부 바쳤던 꿈이 이제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이자 트라우마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독히 현실적인 2030 한국 연애

여주혜는 남주와 정반대 지점에서 이야기에 들어온다. 겉으로 보기엔 차분하고 똑 부러진 성격, 어느 정도 안정된 직장과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면에는 남주 못지않은 상처와 불안이 밀푀유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쌓인 오해, 사랑받지 못했다는 감각, 타인의 시선에 과하게 예민해진 마음이 그녀의 일상에 오래된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작품은 주혜를 극단적인 비극의 주인공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쯤 지나쳤을 법한 일상의 균열 속에 놓인 인물로, 퇴근길 지하철의 침묵과 좁은 원룸의 공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마치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이 뉴욕을 떠돌듯, 주혜도 서울의 일상을 표류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적인 로맨스라기보다, 서로의 상처가 만들어 낸 궤적이 우연히 겹쳐진 결과에 가깝다. 과거의 무게 때문에 제대로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잊어버린 남주, 상처를 건드릴까 봐 한 발씩 물러나며 관계를 조절해 온 주혜는 처음부터 매끄럽게 어울리지 못한다. 대화는 삐걱거리고, 오해는 쉽게 쌓이고, 서로의 진심과 행동 사이에는 늘 미묘한 간극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목 '방백남녀'의 의미가 드러난다. 두 사람은 마치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처럼, 속으로는 다른 말을 하면서도 입 밖으로는 정반대의 말과 행동을 내놓는다. 마치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의 기억을 지우면서도 계속 찾아가듯, 이 둘도 상처를 숨기면서 동시에 드러낸다.

독자는 칸 밖에 적힌 내면의 문장과 말풍선 안의 대사를 동시에 읽으며 이 아이러니한 거리감을 생생하게 체감하게 된다.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거창한 사건 대신 작은 일상적 사건들로 채워진다. 회사에서의 작은 실수, 오래된 친구와의 어색한 술자리, 가족 모임에서 튀어나오는 말 몇 마디가 남주와 주혜의 상처를 건드린다. 남주는 축구의 흔적이 묻어 있는 모든 장면에서 쉽게 무너진다. 길가에서 마주친 조기축구 모임, TV 스포츠 뉴스 하이라이트,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까지 모두 그를 과거로 끌어당긴다. 마치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 챈들러가 집 안 냉동고만 봐도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듯, 남주에게 세상의 모든 축구 장면은 트리거다.

주혜는 반대로 관계의 끈이 팽팽해질수록 숨이 막힌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기대는 순간 상대가 떠나 버릴 것 같은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둘은 이상하게도 조금씩 서로의 곁으로 걸어간다. 남주는 주혜 앞에서만큼은 억지로 강한 척하지 않는다. 실패한 축구선수라는 낙인을 감추려 들기보다는, 가끔은 스스로를 비웃고, 가끔은 얼버무리며 자기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주혜 역시 남주 앞에서는 부담스럽게 완벽한 사람 역할을 내려놓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던 상처를 솔직히 털어놓고, 감당하기 힘든 하루를 버티고 나서야 비로소 웃는 법을 되찾는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기계적으로 치유해 주는 관계가 아니라, 상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시선이 되어 간다는 점이 두 사람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든다. 마치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와 셀린이 비엔나를 걸으며 서로의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듯, 남주와 주혜도 거창한 해결책 없이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당신의 만남은 운명적이지 않다

이 과정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방백남녀'는 수많은 엇갈림과 후회를 거쳐야만 겨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감정의 리듬을 충실히 따라간다. 오늘은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가도, 작은 말 한마디에 며칠씩 연락이 끊어지고, 다시 마주 앉았을 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색한 농담부터 주고받는 식이다. 남주가 예전 동료를 마주치고 얼어붙는 순간, 주혜가 가족과의 전화 한 통에 하루 종일 기분이 무너지는 순간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눈앞에 펼쳐진다. 작품의 초반 3분의 1은 이렇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스며들기까지의 어설픈 스텝과 불완전한 언어로 채워진다. 마치 '500일의 썸머'가 비선형으로 관계의 조각들을 펼쳐 보이듯, '방백남녀'도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관계를 직조한다. 결말이 어떤 선택과 재회의 순간으로 이어지는지는 직접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보길 권하고 싶다.

이제 작품의 미학적인 면을 해부해 보면, '방백남녀'는 제목 그대로 방백이라는 형식을 정교하게 활용하는 드문 웹툰이다. 연극에서 방백은 무대 위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들리지 않게 관객에게만 들려주는 독백이다. 이 웹툰에서 방백은 말풍선 밖에 놓인 자막, 인물의 얼굴을 가리거나 비워 둔 컷, 색이 빠져나간 흑백의 공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겉으로 주고받는 대사와 독자가 읽어 내려가는 내면의 문장은 서로 어긋난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지금 이 말이 너무 무거운 건 아닐까' 같은 불안이 떠다니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얼굴 전체가 검은 실루엣으로 처리되며 눈동자만 예민하게 흔들리는 식이다.

독자는 인물의 심리를 설명으로 전해 듣는 대신 화면을 통해 직접 체험하게 된다. 마치 '내부자들'이나 '더 크라운'에서 카메라가 캐릭터의 미세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잡아 내면을 드러내듯, '방백남녀'는 웹툰이라는 매체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내면과 외면의 괴리를 시각화한다. 또 하나 인상적인 지점은 얼굴과 표정의 사용법이다. 고태호 작가는 인물의 얼굴을 과장된 미형으로 그리기보다, 일상적인 이목구비 안에서 감정의 폭을 크게 흔든다. 웃고 있는 입술 아래로 딱딱하게 굳은 턱선, 미소를 띠고 있는데도 전혀 웃고 있지 않은 눈동자처럼, 미묘하게 어긋난 표정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어떤 장면에서는 아예 얼굴을 생략하고, 몸짓과 손의 위치, 배경만으로 감정을 전한다. 마치 '아멜리에'가 작은 디테일로 감정을 전달하듯, '방백남녀'도 손가락의 떨림, 어깨의 각도, 고개를 돌리는 속도 같은 미세한 몸짓으로 수천 마디를 대신한다. 색채 역시 중요하다. 평범한 일상 장면에는 비교적 부드럽고 따뜻한 톤이 쓰이지만, 트라우마가 떠오르거나 감정이 과열되는 순간 화면은 흑백 혹은 탈색된 색감으로 전환된다. 이때의 흑백은 과장된 공포나 쇼크를 노린 연출이 아니라, 기억 속 장면을 돌이켜 보는 듯한 거리감을 만들어 내며 독자로 하여금 인물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재조정하게 만든다. 마치 '신들린'이 과거와 현재를 색감으로 구분하듯, '방백남녀'도 현실과 트라우마를 색채로 분리한다.

당신의 ‘인생 로맨스 웹툰’이 될 작품

구성과 호흡 면에서 보면, '방백남녀'는 로맨스 장르의 공식을 살짝 빌려오되 그 공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두 남녀가 친구가 되고, 서로를 의식하고, 언젠가 감정을 확인하는 흐름은 익숙하다. 그러나 이 웹툰은 설레는 장면보다 불편하고 어색한 순간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고백과 키스, 극적인 사건보다 말실수 후의 침묵과 메신저 창 앞에서 망설이는 손가락, 연락을 보내지 못하고 지워 버리는 문장들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로맨스는 달콤하다기보다 씁쓸하고, 때로는 사랑인지 그저 외로움의 반사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현실적인 멜로드라마로 기능한다. 마치 '노말 피플'이 완벽하지 않은 관계의 리얼리티를 담았듯, '방백남녀'도 매끄럽지 않은 사랑의 질감을 포착한다.

작품의 주제 의식은 '상처의 공유'와 '도피 이후의 삶'에 가깝다. 남주는 한때 온 삶을 바친 꿈이 무너졌을 때, 그 꿈을 증오함으로써 겨우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인물이다. 주혜는 반복되는 상처의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먼저 자기 존재를 지워 버리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방어해 왔다. 둘 다 세계와의 접촉을 줄이고 싶어 했지만, 결국 서로를 통해 조금씩 세계로 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상대를 통해 완전히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흔들리는 마음을 안고도 살아가 보기로 결심한다는 점이다. 이 미묘한 태도가 작품의 정서를 결정한다. 독자는 두 사람이 겪는 변화를 지켜보면서도 어느 순간 자신이 안고 있는 좌절과 미련, 부끄러운 선택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마치 '스포트라이트'가 거대한 진실을 다루면서도 결국 개인의 상처를 돌아보게 만들듯, '방백남녀'도 연애를 말하면서 각자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만든다.

대중적 사랑을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요소는 대사와 장면 구성의 세밀함이다. '방백남녀'의 대사는 과장되게 재치 있지도, 지나치게 문학적이지도 않다. 평범한 한국인의 말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가볍게 심장을 건드리는 문장을 툭 던진다. 특히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사소한 말들은 독자가 자신의 경험과 겹쳐 읽을 여지를 남긴다. 독립된 에피소드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후반부에 가서 하나의 정서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방식도 탁월하다. 초반에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던 농담이나 행동이 나중에 가서 '사실 그때부터 이 사람은…'이라는 깨달음으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하게 된다. 마치 '식스 센스'의 반전처럼, 처음부터 모든 힌트가 눈앞에 있었지만 두 번째 읽을 때야 보이는 구조다.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한때 무엇인가에 모든 시간을 바쳤다가 결국 포기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시험이든, 운동이든, 인간관계든 이유와 변명을 스스로도 다 설명하지 못한 채 뒤돌아선 기억이 있다면, 민남주의 서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변명처럼 들릴 것이다. 그가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기까지 거쳐야 하는 우회와 방황을 따라가다 보면, 아직 끝나지 않은 자기 안의 문장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레드가 앤디를 찾아 멕시코로 가듯, 남주도 자신의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시작한다.

관계 앞에서 유난히 예민해지는 사람에게도 이 웹툰은 오래 남는다. 약속 하나를 잡기 전에 상대의 기분과 스케줄을 몇 번씩 상상해 보고, 문장 하나를 보내기 전에 숱하게 고쳤다가 지워 본 적이 있다면, 여주혜의 방백은 이상할 만큼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선을 갈망하는 모순된 마음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내밀한 얼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방백남녀'는 특정 세대나 계층에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불안과 눈치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는 시대의 보편적인 멜로라 할 수 있다. 마치 '플리백'이 2000년대 한국 사회의 청춘을 담았듯, '방백남녀'는 2020년대 한국인의 내면을 담는다.

화려한 판타지나 자극적인 반전 대신 조용한 감정의 여운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을 천천히 음미해 볼 만하다. 한 화를 단숨에 몰아보기보다, 몇 편씩 나눠 읽고 나서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이 웹툰의 매력이다. 다 읽고 난 뒤에는 누군가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방백처럼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그 방백을 현실의 말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방백남녀'의 페이지들은 조용히 떠올라 다시 한 번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 읽고 나면 오래전 나에게 짧은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나서 지하철 안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듯, '방백남녀'를 읽고 나면 모든 사람의 말풍선 밖에 보이지 않는 방백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