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세상을 구하다 ‘네이버 웹툰 전지적 독자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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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림
By 이태림 기자

최고의 웹소설이 최고의 웹툰으로 2021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수상작

[magazine kave]=이태림 기자

퇴근길, 지하철 안. 무료한 일상 속 유일한 낙은 10년 넘게 연재된 B급 재난 웹소설 한 편이다. 늘 그렇듯 주인공이 죽고 회귀하고, 또 죽고 회귀하는 뻔한 전개. 그런데 그 소설이 드디어 완결이 난 바로 그날, 세계가 진짜로 멸망하기 시작한다. 전광판이 꺼지고, 열차가 멈추고, 허공에 떠오른 작은 요정 같은 존재가 선언한다. "지금부터 이 지구는 시나리오에 따라 운영됩니다." 네이버 웹툰 '전지적 독자 시점'은 이렇게, 평범한 지하철 한 칸을 세계의 끝으로 만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갑자기 〈부산행〉 찍는 느낌이지만, 좀비 대신 우주급 리얼리티 쇼가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김독자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성실하지만 존재감은 희미하고, 직장에서도 대체 가능한 인력 중 한 명. 연말 회식 때 누가 안 왔는지 한참 후에야 깨닫게 되는 그런 사람. 딱 하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은 괴상한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줄여서 멸살방)을 완주한 유일한 독자라는 것뿐이다. 10년간 3,149화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읽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원피스〉 팬덤도 명함을 못 내밀 수준의 집념이다.

그런데 그 작품 속에서나 등장하던 '도깨비 방송'이 현실에 나타나고, 소설에 나오던 첫 번째 재앙 시나리오가 그대로 실행된다. 지하철 칸 안 사람들의 머리 위로 '참가자 정보' 창이 떠오르고, 실패하면 죽는 게임이 강제로 시작된다. 〈소드 아트 온라인〉처럼 게임 안에 갇힌 게 아니라, 현실 자체가 게임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김독자는 깨닫는다. "이 전개… 내가 다 읽었던 그 소설 그대로잖아."

그때부터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제목의 진짜 의미가 드러난다. 누구보다 먼저 미래의 전개를 알고 있는 사람. 김독자는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어떤 시나리오가 어떤 순서로 펼쳐질지,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여기서 탈락할지를 알고 있다. 게임으로 치면 뉴비들 사이에 숨어든 만렙 공략 유튜버쯤 되는 포지션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것은 '이야기의 뼈대'일 뿐, 실제 현실은 조금씩 삐끗하며 어긋난다. 나비 효과가 실시간으로 작동한다. 그는 계속해서 선택해야 한다.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가게 둘 것인가, 아니면 감독이 스포일러를 다 읽어버린 회차를 억지로 고쳐 쓰듯 개입할 것인가.

우주급 리얼리티 쇼, 지구판 개막

도깨비들이 중계하는 '시나리오'는 일종의 생존 게임이자 쇼다. 〈더 헝거 게임〉이나 〈배틀로얄〉을 우주 스케일로 확장했다고 보면 된다. 참가자들은 각자 스폰서가 될 '성좌'를 선택해 후원을 받는다. 고대 신화나 영웅, 괴물의 이름을 딴 성좌들은 흥미로운 참가자의 싸움을 후원하고, 그 대가로 코인을 쏜다. 트위치 후원 시스템을 신화 세계관에 접목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잔혹하다. 여기서는 "ㅋㅋㅋ 존잼" 댓글이 곧 생명줄이 된다.

참가자는 그 코인으로 스킬을 사고, 특성을 강화한다. 시나리오가 진행될수록 룰은 더 잔혹해지고 복잡해진다. 열차 칸을 벗어나 도시 전체가 게임판이 되고, 도시를 넘어서 국가 단위, 세계 단위의 판이 열린다. 〈포켓몬스터〉의 체육관 시스템을 재난 서바이벌에 이식한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 거대한 구조 속에서도 김독자의 목표는 단순명쾌하다. 소설의 결말을 바꾸는 것, 그리고 자신이 좋아했던 인물들을 최대한 많이 살려 내는 것. 일종의 "모든 캐릭터 구제 엔딩" 루트 공략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인물을 만난다. 소설 속 '진짜 주인공'이자 괴물 같은 전투력을 가진 유중혁. 수백 번 회귀를 거쳐 모든 감정이 마모된, 〈Re: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의 스바루를 하드코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캐릭터다. 현실에선 선배이자 시나리오 안에서는 동료가 되는 유상아, 언제나 비아냥거리지만 누구보다 서사를 사랑하는 작가 한수영, 그리고 수많은 독자와 참가자들.

이들은 처음엔 김독자를 이상하게 여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이상한 타이밍에 나타나며, 누군가의 대사를 미리 읊기도 하는 사람. 마치 영화관에서 "아 여기서 저 사람 죽어"라고 스포하는 친구처럼 짜증 나지만, 그게 실제로 생명을 구한다면? 김독자는 그런 시선을 감수하면서도 계속해서 '독자만 알고 있는 미래'를 이용해 판을 뒤집는다. 때로는 스포일러를 무기로, 때로는 의도적인 변수를 던지는 방식으로.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한 가지 사실이 점점 뚜렷해진다. '다 알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는 것. 〈해리 포터〉에서 덤블도어가 느꼈을 그 무게랄까. 미래를 알고 움직인 선택들이 새로운 파국을 낳고, 소설에는 없던 변수가 계속해서 생겨난다. 유중혁의 회귀는 원래 작중 설정에서조차 비극의 반복이었다. 김독자가 개입하면서 그 비극의 결이 달라지긴 하지만, 누군가가 대신 상처를 떠안는 구조 자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터스텔라〉의 머피가 아빠를 원망했던 것처럼, 선의의 개입이 항상 환영받는 건 아니다. 독자는 어느새 "김독자의 개입이 정말 모두를 위한 최선이었을까?"라는 질문을 품기 시작한다.

메타 서사의 정점, 혹은 장르의 자기반영

'전지적 독자 시점'은 기본적으로 메타 서사다. 독자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캐릭터와 작가, 서사를 동시에 바라보는 구조다. 김독자는 단순한 이세계물 주인공이 아니라,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본 사람"이라는 상징에 가깝다. 수많은 회귀물, 게임 시스템물, 재난 생존물을 소비해 본 독자라면 익숙한 클리셰들이 작품 곳곳에 깔려 있는데, 이 웹툰은 그 클리셰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한 발 뒤에서 비틀어 본다.

예를 들어 '튜토리얼' 단계 말이다. 여기서 이 작품은 "튜토리얼이 튜토리얼인 줄 아는 사람"의 시점에서 그 단계를 바라본다.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깔았을 때 튜토리얼 미션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과, 이미 수십 판 돌려본 사람의 차이랄까. 이 미묘한 시선의 차이가 전체 서사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세계관 설계도 촘촘하다. 시나리오, 도깨비, 성좌, 채널, 코인, 확률 같은 개념은 게임과 스트리밍 플랫폼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빌려온다. 참가자들의 생존이 곧 '콘텐츠'가 되고, 먼 우주의 성좌들은 시청자이자 후원자다. 재미있게 싸우는 이에게 코인을 더 쏘고, 지루하면 시선을 거둔다. 이 구조는 단순한 설정을 넘어, 현실의 콘텐츠 소비 구조와도 정확히 겹친다.

인기 있는 이야기만 살아남고, 눈에 띄지 않는 서사와 인물은 쉽게 잊힌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방식, 넷플릭스가 시리즈를 킬(kill)하는 메커니즘, 웹툰 플랫폼에서 조회수 낮은 작품이 조용히 사라지는 과정 '전지적 독자 시점'은 이 메커니즘을 장르적 장치로 쓰면서도, 은근하게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독자와 시청자라는 존재는, 결국 얼마나 잔인한가." 〈블랙 미러〉가 기술로 묻던 질문을, 이 웹툰은 서사로 던진다.

캐릭터는 곧 서사다

캐릭터도 이 작품의 큰 자산이다. 김독자는 전형적인 '착한 주인공'과 거리가 있다. 계산하고, 숨기고, 필요하다면 거짓말도 한다. 〈데스노트〉의 라이토처럼 악랄하진 않지만, 〈셜록〉의 홈즈처럼 감정을 도구화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냉혈한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한 이야기를 현실에서도 지키고 싶은 사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온 독자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죽는 걸 못 견디고 팬픽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이랄까.

유중혁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수백, 수천 번의 회귀를 거치며 모든 것에 지친 전형적인 회귀물 주인공이지만, 김독자의 개입으로 서서히 다른 선택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둘의 관계는 단순한 동료나 라이벌이 아니라, 서로의 서사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공저자"에 가깝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와 샘처럼, 둘 중 하나만으로는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다.

한수영은 또 다른 층을 더한다. 실제 소설 '멸살방'의 작가이자 시나리오의 참가자로서, 작가와 독자, 캐릭터의 삼각관계를 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자기가 만든 캐릭터가 현실에서 움직이는 걸 보는 작가의 심정이 이 캐릭터에 담겨 있다.

누구의 책장에 꽂혀야 하는가

웹소설·웹툰 장르물을 오래 읽어온 사람이라면 거의 무조건 즐길 수 있다. 회귀물, 게임 시스템물, 먼치킨 판타지의 문법을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 작품이 어디서 전통을 따르고 어디서 비틀고 있는지가 더 잘 보인다. "아, 여기서 이런 메타 개그를 치네" 하는 순간들이 계속 나온다. 〈슈렉〉이 디즈니 공주물을 패러디하는 재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원본을 알아야 하듯이.

또, 이야기를 소비하는 자신의 태도를 한 번쯤 돌아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권하고 싶다. 우리는 늘 스크롤을 내리면서 누군가의 목숨과 눈물을 구경하고, "다음 화 궁금해요ㅠㅠ"라고 댓글을 단다. 좋아요를 누르고, 후원을 하고, 때로는 악플을 달기도 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그 시선을 끝까지 밀어붙여, 독자를 서사의 한 축으로 끌어들인다. "당신은 어떤 독자인가?"라는 질문이 작품 곳곳에 숨어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다른 웹툰이나 소설을 볼 때도 예전과 조금 다른 마음으로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트루먼 쇼〉를 본 후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없게 되듯이.

마지막으로, 자기 삶을 "남이 써놓은 시나리오대로만 흘러가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출근-점심-퇴근-넷플릭스-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반복되는 루프. 누군가 정해놓은 것 같은 인생의 체크리스트. 김독자는 남이 쓴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출발하지만, 결국 그 이야기를 다시 쓰는 쪽으로 움직인다. 물론 그 대가로 엄청난 상처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무임승차는 없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아마 이렇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독자는 누구지? 그리고 나는 언제쯤 내 이야기를 직접 쓰기 시작할 수 있을까?" '전지적 독자 시점'은 그 질문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오래 마음속에 남겨 둔다.

마치 좋은 영화를 보고 나와 멍하니 거리를 걷는 그 시간처럼.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이 웹툰은 분명 길게 여운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지하철을 탈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이 칸에서 시나리오가 시작된다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이미 김독자와 같은 독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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