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 잡는 나쁜 녀석들 ‘드라마 나쁜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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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림
By 이태림 기자

배우 마동석 인지도를 전국구로 높인 드라마 코리아드라마어워즈 KDA상 수상작

도심 한복판, 차가운 밤거리. 경찰 호송차가 달리던 도로 위에서 갑자기 피가 분수처럼 튄다. 교도소로 이감되던 사형수들이 한순간에 도살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명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괴물이 괴물을 사냥했다"는 말이 공포처럼 번지는 가운데, 형사 오구탁이 다시 소환된다. 징계로 감봉·대기발령을 전전하던 문제 형사, 사건만 해결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악명으로 악명 높은 인물. 오래전 자신의 딸을 잃은 뒤, 그는 스스로 브레이크 없는 맹견이 되었다. 그런 오구탁에게 상부가 미끼처럼 제안을 던진다. "악으로 악을 잡자는 겁니다."

드라마 '나쁜 녀석들'은 이렇게 포문을 연다. 경찰 조직 안에서조차 "저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지점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드는 형사와, 그가 모아온 세 명의 범죄자로 팀을 구성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점화된다. 첫 번째는 조직 폭력배 전설, 박웅철. 한때 도시를 장악했던 1세대 조직 보스로, 지금은 감방에서 '모범적으로' 형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주먹의 무게만큼은 현역이다. 마치 은퇴한 복싱 챔피언이 여전히 펀치를 잊지 못한 것처럼. 두 번째는 청부 살인범 정태수. 필요하면 언제든 사람을 제거할 수 있는 프로 킬러지만, 유일하게 손대지 못한 과거의 인연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 있다. 세 번째는 IQ 165, 최연소 범죄 심리학 박사이자 연쇄살인범 이정문. 겉으로는 조용하고 공손한 청년인데, 그 두개골 속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과 같은 잔혹한 기억이 파일처럼 정리되어 있다.

오구탁은 이 셋에게 현실적인 미끼를 던진다. 형을 감경해 주겠다, 혹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겠다. 대신 경찰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라.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형식상 팀의 리더는 검사 유미영이다. 수사는 매뉴얼대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에게 '나쁜 녀석들'은 법과 정의의 경계가 얼마나 얇고 흐릿한지매 순간 들이민다.

각 에피소드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강력 범죄 사건을 하나씩 포획한다. 이유 없는 연쇄살인, 젊은 여성만 표적 삼는 성폭행·살인범, 보복 폭력, 조폭 간 전쟁, 권력층의 범죄 은폐까지. 경찰은 늘 한 발 늦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수사만으로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어렵다. 그때마다 오구탁 팀이 투입된다. 정의의 사도처럼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박웅철은 조폭식 협박과 폭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정태수는 외과의사처럼 정확하게 급소를 노리며, 이정문은 범인의 심리를 추적하며 다음 수를 계산한다. 그들의 방식은 구원이라기보다 더 큰 폭력에 가깝다. 하지만 그 폭력이 없었다면 또 누군가가 죽었을 거라는 사실이, 이야기 내내 시청자를 불편하게 찌른다.

어울릴 수 없는 네 사람, 그렇기에 어벤져스

겉으로 보기엔 기묘한 조합이지만, 사건이 쌓일수록 네 사람은 서로의 과거와 상처를 조금씩 해독하게 된다. 오구탁이 왜 이정문을 집요하게 증오하는지, 이정문이 자신의 범죄를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지, 박웅철이 과거 조직에서 하산한 이유, 정태수가 손대지 못한 유일한 '표적'의 존재. 사건과 사건 사이를 봉합하는 이 인물들의 비밀이 드라마의 척추다. 특히, 오구탁의 딸이 살해된 사건과 이정문의 과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뒤에 어떤 경찰 조직의 비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지, 그리고 진짜 괴물은 누구인지에 대한 수수께끼는 결말까지 드라마를 견인하는 중심 동맥이다.

사건의 규모도 점점 증폭된다. 처음에는 개별 강력범죄를 해결하는 식의 옴니버스 구조처럼 보이지만, 점차 배후에서 실을 조종하는 더 큰 세력이 드러난다. 고위층과 경찰의 유착, 범죄자를 대량생산하는 시스템, 누군가는 감옥에 가고 누군가는 웃으며 빠져나오는 구조. 오구탁은 처음에는 단지 "악질 범죄자들을 더 악질적인 방법으로 처리해버리겠다"는 수준의 복수심으로 가동되지만, 어느 순간 이 게임판 자체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 판의 정중앙에 자신이 모아온 '나쁜 녀석들'이 서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구 하나 깨끗하게 탈출할 수 없는 상황, 드라마는 그 불편한 지점을 절대 회피하지 않는다. 결말부에서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향한 총구를 거두고, 혹은 겨누게 되는지는 직접 작품을 보며 확인하는 편이 좋다. 이 드라마는 작은 반전이 아니라, 인물들 사이의 감정선 전체를 뒤집는 한 방을 마지막까지 아껴두는 타입에 가깝다.

하드보일드에 100% 집중한 나쁜 녀석들

'나쁜 녀석들'의 가장 큰 힘은 장르물로서의 밀도다. OCN이라는 채널이 추구해 온 하드보일드 범죄물의 DNA를 가장 잘 계승한 작품 중 하나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에피소드당 러닝타임이 길지 않은데도, 사건의 기승전결과 인물의 심리 변화가 꽉 압축되어 있다. 대사와 장면 사이에 불필요한 여백이 거의 없어서, 한 화가 끝나면 체력적으로도 약간 고갈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둡기만 한 건 아니다. 마동석이 연기하는 박웅철의 주먹 코미디, 셋의 케미스트리에서 나오는 블랙유머가 곳곳에 산소통을 틔워준다. 웃음마저도 온화한 게 아니라, 피 냄새 나는 현장 한가운데서 튀어나오는 거친 농담이라 더 기억에 각인된다.

연출 톤은 초반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어둡고 거칠다. 밤 장면이 지배적이고, 거리의 조명도 의도적으로 차갑게 조율한다. 비가 오는 골목, 버려진 공장, 텅 빈 창고처럼 범죄물이 애호하는 공간들이 총동원되지만, 클리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카메라가 늘 인물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물의 얼굴과 몸이 화면을 거의 포화시키는 구도가 많아서, 누가 누구를 때리는지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붕괴하고 있는지'에 시선이 고정된다. 액션도 화려한 안무보다 무게 중심에 가깝다. 박웅철의 한 방은 스턴트처럼 보이기보다 실제로 ‘맞으면 죽겠다’ 싶은 둔탁함이 있고, 정태수의 움직임은 최대한 움직임을 절약하면서 효율적으로 종결하려는 킬러의 동선처럼 설계돼 있다. 마치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이 격투 장면에서 보여주는 경제적 폭력처럼.

각본은 ‘악으로 악을 제압한다’는 단순한 컨셉을, 꽤 복잡한 도덕적 딜레마로 증폭시킨다. 이 드라마에서의 경찰 조직은 결코 청렴하지 않다. 현장의 형사들은 때로 정의감을, 때로는 실적을 위해 선을 넘고, 검사와 상부는 정치적 이해에 따라 사건을 은폐하기도 한다. 이 안에서 오구탁 팀의 존재는 모순의 결정체다. 분명 범죄자고, 언젠가는 다시 수감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그들이 무대에 등장할 때에야 비로소 도시가 정숙해진다.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들이 정말 "나쁜 녀석들"인가, 아니면 이들을 이렇게 제조한 시스템이 더 악질인가. 그 불편함이 이 드라마의 후유증이자, 독특한 매력이다. 마치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과 조커가 던지는 "우리가 정말 다른가?"라는 질문처럼.

캐릭터 구축도 탁월하다. 오구탁은 요즘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정말로 매끄럽지 않은 형사다. 의협심과 분노, 죄책감과 자기파괴 욕구가 뒤엉켜 있는 사람. 딸을 잃은 트라우마가 그를 질질 끌고 다니지만, 동시에 그 트라우마를 핑계 삼아 더 폭력적으로 변모해 간다는 자각도 갖고 있다. 강직한 주인공이라기보다, 끝없이 추락하다가도 마지막 선에서 겨우 정지하는 인물이다. 이정문은 이 드라마의 가장 기이한 축이다. 살인마이자 천재,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복합적인 포지션. 그의 공허한 눈빛과 어딘가 어긋난 친절함은, 목숨을 구해도 안심이 안 되는 느낌을 준다. 마치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가 클라리스를 도와주면서도 결코 신뢰할 수 없었던 것처럼. 박웅철은 인간적인 정이 가장 풍부하게 묻어나는 캐릭터다. 한때 도시를 장악했던 보스지만, 가족과 부하, 자신의 '의리'에 대한 감각은 누구보다 선명하다. 정태수는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하는 인물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킬러, 하지만 특정 인물과 얽힌 과거에서는 누구보다 감정적으로 무너진다.

이 세 캐릭터가 한 팀으로 가동될 때 작품의 진가가 폭발한다. 같은 범죄자이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도덕의 좌표도 다르다. 어느 순간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다가도, 다른 순간에는 "너는 진짜 선 넘었다"며 선을 긋는다. 이 미묘한 거리가 그대로 긴장감으로 변환된다. 이들의 관계가 단단한 동료애로 정리되지 않고, 끝까지 불안하게 진동하는 구조가 '나쁜 녀석들'을 쉽게 망각되지 않는 장르물로 만들어 준다. 마치 '히트'의 닐 맥컬리와 빈센트 한나처럼, 적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가장 이해하는 관계의 긴장감.

대중적 사랑을 획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케이블 채널에서 보기 힘들었던 강도 높은 폭력성과 어둠, 그러면서도 각 인물의 서사를 견고하게 쌓아 올린 구성 덕분에, 장르물을 애호하는 층에서는 거의 '필수 관람작' 취급을 받았다. "선한 사람은 이미 다 절멸했다"는 듯한 세계관 속에서도, 아주 작고 사적인 정의감이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지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스핀오프 영화와 후속 시즌이 제작된 것도, 이 세계관과 캐릭터에 대한 팬덤의 집착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증명한다.

악이 악을 때려잡으면 우린 누굴 응원할까?

'나쁜 녀석들'에는 완전히 결백한 인물이 없다. 모두가 어느 정도는 오염되었고, 상처 입었고, 누군가에게는 가해자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더 불편하다. 이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캐릭터를 추적할 수 있다면, 마지막 회를 보고 난 뒤 꽤 오래 두개골 안이 시끄러울 것이다.

또, 한국식 하드보일드 장르물을 탐색하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거의 교본 같은 존재다. 스타일 과잉의 히어로물이 아니라, 실제로 골목 어귀에서 조우할 것 같은 범죄자들과 형사들의 전투. 화려한 추격전과 총격전 대신, 좁은 계단과 방 안에서 벌어지는 육탄전. 장르의 기본기와 정서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경유할 만하다. 마치 누아르 영화를 논할 때 '말타의 매'나 '차이나타운'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드라마를 건네고 싶다. '나쁜 녀석들'은 명확한 답을 선언하지 않는다. 어떤 인물은 조금 나아진 것 같다가도 다시 붕괴하고, 어떤 인물은 끝내 자신을 사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마지막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이 인생 전체를 전복시키지 못한다 해도,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다르다. 이 모호하고도 현실적인 결론이, 장르물 이상의 잔상을 남긴다. 그런 이야기를 탐색하고 있다면, '나쁜 녀석들'은 당신의 밤을 한동안 어둡게, 그리고 이상하게 뜨겁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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