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gazine kave]=이태림 기자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단칸방, 어린 형제가 좁은 방 안을 쩔뚝거리며 뛰어다닌다. 1970년대 개발 붐이 한창이던 시절, 건설 노동자 아버지를 둔 이강모(이범수)와 형 이성모(박상민), 막내 이미주(황정음)의 가족은 비록 가난하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마치 네오리얼리즘 영화 속 가난한 가족처럼, 하지만 전후 이탈리아가 아니라 개발독재 시대의 한국에서. 그러나 어느 날, 재개발 이권을 노린 권력자와 건설업자의 음모로 현장이 날림 공사와 붕괴 사고의 무대가 되고, 강모의 아버지는 진실을 알고도 입을 다물지 못한 죄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이 모든 일을 설계한 냉혈한 권력 브로커 조필연(정보석)은 사건을 깔끔하게 덮기 위해 가족까지 제거하려 들고, 어린 형제는 폭발과 화재 속에서 서로를 잃어버린 채 강제로 흩어진다. '자이언트'의 거대한 서사는 바로 이 가족의 파괴에서 출발한다.
시간이 흐르고, 강모는 이름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다. 공사판 막노동, 심부름, 브로커의 운전기사 같은 허드렛일을 하며 버티던 그는, 건설판의 생리를 몸으로 익혀 간다. 누가 진짜 권력을 쥐고 있는지, 도면 한 장이 얼마짜리 목숨을 좌우하는지, 재개발이라는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삶이 무너지는지 몸으로 배운다. 마치 대부에서 비토 콜레오네가 뉴욕 뒷골목의 룰을 배우듯. 그리고 언젠가 자신과 가족을 짓밟고 올라간 자들의 목줄을 틀어쥐겠다는 복수를 굳게 다짐한다. 그런 강모 앞에 어느 날, 자본과 권력을 동시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나타난다. 이름뿐인 하청업체에서 시작해 하나씩 공사를 따내고, 야간 작업과 위험한 지하 공사를 직접 뛰면서 그는 서서히 '판을 짜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조필연...‘한국판 마키아벨리’의 탄생
반대편 축에서 조필연은 이미 정치와 정보기관, 재벌을 잇는 거대한 축을 구축해 간다. 토건 이권과 군사정권의 개발 정책을 발판 삼아, 그는 끊임없이 위로 기어오른다. 국회 복도와 호텔 스위트룸, 비밀 수사실을 오가며 그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살려두고, 방해가 되는 사람은 기록에서 지워 버린다. 마치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랭크 언더우드가 한국 토건 산업에 환생한 것처럼. 어린 시절 한 번 스쳐 지나간 줄만 알았던 이강모라는 이름이, 성인이 된 뒤 건설업계에서 다시 들려오기 전까지, 조필연의 인생은 승승장구의 연속이다.

드라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세 번째 축을 세운다. 바로 검사로 성장한 형 이성모다. 죽었다고 믿었거나, 서로가 서로를 잊을 수밖에 없었던 세월을 지나, 성모는 법과 제도의 언어로 조필연의 악행을 정면에서 겨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냉정하고 원칙적인 엘리트 검사지만, 내면에는 아버지의 죽음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응어리져 있다. 강모가 건설판에서, 성모가 법조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조필연이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 서는 순간, '자이언트'는 가족극·성장극·정치 스릴러가 한꺼번에 얽힌 장대한 복수 서사로 본격적으로 가속한다. 마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세 가지 정체성으로 원수들을 포위하듯.
이들의 궤적에 또 다른 무게를 더하는 인물이 있다. 재벌가 외동딸이자 백화점과 건설 계열의 후계자로 준비되는 황정연(박진희)이다. 특권층의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정연은 강모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개발의 이면과 노동자의 현실, 그리고 아버지 세대가 쌓아 올린 부의 그늘을 마주하게 된다. 강모와 정연의 관계는 단순한 신분 차이 로맨스를 넘어선다. 둘의 사랑과 갈등, 협력과 배신은 곧 한국 경제 성장 신화의 빛과 그림자가 부딪히는 지점과 겹친다. 마치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가, 하지만 침몰하는 배가 아니라 급속도로 성장하는 국가에서 만난 것처럼.
시대를 관통하는 서사 1970~90년대까지
'자이언트'의 전반부는 1970년대 판자촌 철거와 고속도로 건설 현장, 신도시 개발의 열기 속에서 펼쳐진다. 철거민들이 쫓겨나는 새벽의 골목, 안전장비 하나 없이 매달린 노동자들, 비 오는 날에도 멈추지 않는 터파기 공사 장면이 반복되며, 드라마는 성장 신화의 이면에 깔린 누군가의 피와 눈물을 시청자의 눈앞에 내놓는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이지만, 동시에 멜로드라마처럼 감정적인. 강모는 그 한복판에서 돈과 명예를 잡기 위해 몸부림치면서도, 자신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잊지 않으려 한다. 성모는 불법 정치자금과 비자금 수사를 통해 '위에서 내려오는 압력'과 싸우고, 정연은 회장 자리를 둘러싼 재벌가의 내부 권력 다툼에 휘말리면서 점점 더 고립된다.
세 인물의 선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조필연은 언제나 한 발 앞서 있다. 증거를 없애고, 사람을 없애고, 때로는 아군을 버리는 데 주저가 없다. 그는 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바뀌는 순간마다 자신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명되어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더욱 자신감을 얻고, '나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든다. 마치 차이나타운의 노아 크로스가 LA의 물을 지배하듯, 조필연은 서울의 땅을 지배한다. 드라마는 이러한 오만함이 어떻게 균열을 불러오는지, 그리고 그 균열 틈으로 강모·성모·정연이 어떻게 파고드는지를 긴 호흡으로 쌓아 올린다.


후반으로 갈수록 강모는 더 이상 단순한 피해자의 위치에 서 있지 않다. 그는 굵직한 공사를 따내는 중견 건설회사의 대표가 되고, 때로는 정치권과 손을 잡기도 하며, 자신만의 사람들을 거느린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어린 시절의 꿈은 어느새 복수와 책임, 욕망과 윤리의 경계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시청자는 강모의 선택 하나하나가 조필연과 얼마나 닮아 가는지, 혹은 어디서 선을 그으려 하는지 지켜보게 된다. 마치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영웅으로 죽거나 악당이 되거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듯. '자이언트'는 바로 그 긴장 속에서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결말에서 누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지켜내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는 편이 좋다. 이 드라마는 결과보다 과정, 승리보다 그 대가를 끝까지 묻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 인물을 세우는 법
'자이언트'의 가장 큰 강점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서사를 개인의 복수극과 정교하게 엮어 냈다는 점이다. 많은 드라마가 시대상을 배경 정도로만 소비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 시대는 캐릭터를 규정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힘 그 자체로 기능한다. 토건 개발과 중화학 공업 육성, 대형 건설사의 탄생, 재벌 체제의 공고화,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이어지는 권력 구조의 변화까지, 실제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이 캐릭터의 삶과 밀착되어 흘러간다. 마치 포레스트 검프가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듯, 하지만 코미디가 아니라 비극으로. 인물들은 이 거대한 흐름을 '이용하는 자'와 '휘말리는 자', 그리고 결국 '바꾸려 드는 자'로 나뉘고, 각각의 선택은 곧 시대에 대한 태도처럼 읽힌다.
서사 구조 역시 탄탄하다. 어린 시절의 파국에서 출발해 청년기의 성장과 실패, 중년기의 충돌과 재편으로 이어지는 50부가 넘는 대하 드라마를 끝까지 끌고 가려면 인물들의 동기가 단단해야 한다. '자이언트'는 이 지점에서 거의 교과서에 가까운 설계를 보여준다. 강모에게는 가족을 빼앗긴 분노와 밑바닥을 통과한 자의 생존 본능, 그리고 성공에 대한 야망이 동시에 깔려 있다. 성모에게는 정의감과 복수심, 법이라는 무기를 믿고 싶어 하는 이상이 얽혀 있고, 정연에게는 사랑과 가족, 기업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내적 갈등이 있다. 이 복합적인 욕망들이 충돌하고 변주되기 때문에, 시청자는 1회에서 느낀 감정을 30회, 50회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 마치 교향곡의 주제가 악장마다 변주되듯.
연기와 캐릭터 구축은 이 드라마를 클래식 반열에 올려놓은 또 다른 축이다. 이강모라는 인물은 분노와 유머, 생활력이 뒤엉킨 캐릭터다. 시장 바닥에서 욕을 섞어가며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공사판 한가운데서 치를 떨며 울부짖는다. 조필연은 그 정반대편에 서 있다. 숨소리 하나, 눈빛 한 번까지 통제하는 냉혈한으로, 공개 석상에서는 미소를 잃지 않지만 비공개 공간에서는 사람의 운명을 숫자와 서류로 계산한다. 마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처럼, 감정 없이 살인을 집행하는. 두 인물이 같은 프레임 안에 서는 순간 화면의 밀도와 긴장감이 확연히 달라지고, 시청자는 이 둘의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회차를 넘겨볼 동력을 얻는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진짜로 흥미로운 지점은, 성공 신화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 꽤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데 있다. 누군가의 성공 뒤에 깔린 수많은 실패와 희생을, 편집으로 가려 버리는 대신 정면으로 보여 준다. 강모의 성공을 응원하는 동시에, 시청자는 그 성공이 조필연의 방식과 완전히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돈과 권력이 모이는 방식은 비슷하고, 차이는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불과하다는 냉혹한 진실. 드라마는 도덕 교과서처럼 훈계를 늘어놓지 않는다. 인물들의 선택과 후폭풍을 끝까지 보여 준 뒤, 그 의미를 해석하는 일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마치 데어 윌 비 블러드가 석유 산업의 탄생을 보여주듯, 자이언트는 한국 건설 산업의 탄생을 보여준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장편 드라마 특유의 늘어짐과 몇몇 서브플롯의 과잉은 피하기 어렵다. 멜로드라마적 갈등이 반복되면서 정작 구조 비판의 날이 무뎌지는 순간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와 캐릭터 아크가 워낙 강력해, 완주하고 나면 이런 단점들은 대체로 거대한 이야기의 질감 속에 흡수된다. 오히려 이 약간의 투박함이 당시 공중파 대하 드라마의 문법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절한 복수담이 당신의 스타일이라면
이제 이 드라마를 누구에게 권하고 싶은지 정리해 보자. 한국 현대사의 공기를 이야기 속에서 느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자이언트'는 거의 필수에 가깝다. 교과서의 연도와 정책 이름 대신, 공사판 먼지와 철거 현장의 비명, 국회 복도와 재벌 회장실의 거래가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어 다가오기 때문이다.
또, 성공과 복수 서사를 좋아하지만 단순한 사이다 엔딩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주는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즐길 수 있다. 여기서 승리는 언제나 대가를 요구하고, 복수는 완성될수록 더 큰 공허를 남긴다. 그럼에도 끝까지 싸우려 드는 인물들의 고집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빠른 전개에 익숙해진 요즘 시청자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몇 회만 넘어가면, 당신은 어느새 강모 형제와 함께 먼지 날리는 공사판과 휘황한 빌딩 숲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한국이라는 나라의 성장 신화를 떠올리는 감정선이 조금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마치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화려한 스카이라인 너머 그 밑에 깔린 수많은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여운이 길게, 아주 길게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