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놓기 부끄러운 재난 SF 영화 ‘영화 대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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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By 최재혁 기자

‘신선한 시도’ 좋게 봐주기에는 ‘재미가 없다’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차트 1위 작품

[magazine kave]=최재혁 기자

도시는 물에 잠겼다. 고층 아파트만 겨우 물 위로 머리를 내민 채 섬처럼 떠 있고, 창문 밖 풍경은 바다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연구원 구안나(김다미)는 간헐적으로 울리는 경보음과 흔들리는 조명 속에서, 어린 아들 재인을 품에 안고 아파트 안 어딘가를 향해 계속 올라간다. 눈앞에는 계단 끝도 보이지 않고, 뒤에서는 탁한 물이 한 계단 한 계단을 집어삼킨다. 밖에서는 인류 문명의 마지막 잔해가 떠다니고, 안나의 손에는 작은 장치 하나가 꼭 쥐어져 있다. 그것은 단순한 연구 결과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사를 걸고 개발된 어떤 '열쇠'에 가깝다.

영화는 이 거대한 대홍수가 이미 벌어진 뒤의 세계로 관객을 곧장 던져 넣는다. 더 이상 뉴스를 통해 상황을 확인할 여유도, 정부의 공식 브리핑을 기다릴 시간도 없다. 인류는 사실상 멸망 직전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안나가 사는 아파트는 그중에서도 특수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물에 잠겨 가는 건물 내부 곳곳에는 아직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 포기하지 못한 가족, 무언가를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남아 있다. 안나는 본래 인공지능 연구원이었지만 이제는 과학자이자 엄마, 그리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과도한 역할을 동시에 떠안는다.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아들과 함께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참여한 비밀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특정 지점까지 옮겨야 한다. 영화는 초반, 그 프로젝트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인류의 기억과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한 시도였다는 암시를 던진다. 물에 잠겨 가는 복도와 끊어진 전선, 엘리베이터 샤프트를 가득 채운 물살 사이로, 안나는 그 장치를 지켜 내기 위해 몸을 던진다. 계단과 복도는 거의 미로처럼 설계되어 있고, 각 층마다 새로운 장애물과 인물이 등장한다.

어느 순간, 안나의 앞에 군인 출신 요원 손희조(박해수)가 나타난다. 그는 국가 차원의 극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견된 인물로, 안나의 연구 결과물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는 듯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협력이라기보다는, 이해관계가 잠시 겹친 동행에 가깝다. 손희조는 군인 특유의 냉정함으로 안나에게 선택을 재촉하고, 안나는 엄마로서의 본능과 연구자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계속 흔들린다. 이들의 대화 사이로, 아파트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구조 요청과 붕괴음이 끊임없이 스며든다.

중간중간 영화는 아파트 바깥의 세계를 짧게 비춘다. 이미 대부분의 도시는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위성 통신도 거의 끊어진 상태다. 생존자들은 고층 건물 옥상에서 서로 신호를 보내며 마지막 연결을 유지한다. 하늘을 가르는 구조 헬기, 물 위를 떠다니는 잔해, 멀리서 번쩍이는 폭발과 같은 이미지들이 짧게 지나간다. 하지만 중심 무대는 끝까지 아파트 내부다. 영화는 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 안나와 재인, 손희조, 그리고 다른 생존자들의 동선을 교차시키며 긴박함을 만들려 한다.

층을 옮길수록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어떤 층에서는 끝까지 집을 지키겠다는 노인이 버티고 있고, 또 어떤 층에서는 식량을 미끼로 다른 이들을 통제하려는 무리가 등장한다. 아이를 안고 있는 임산부, 가까스로 구조를 기다리는 환자, 자기 가족만이라도 살리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까지, 여러 유형의 생존자가 스쳐 지나간다. 안나는 그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누구의 손을 잡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영화는 반복해서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에서 그가 지니고 있는 '열쇠'의 정체와, 이 대홍수가 단순한 자연 재해로 그치지 않는다는 암시가 서서히 드러난다.

후반부로 갈수록 재난 영화의 외피는 점점 얇아지고, 인공지능과 시뮬레이션, 기억의 저장과 복제 같은 SF적 설정이 전면으로 올라온다. 안나는 자신이 개발해 온 시스템이 사실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이 대홍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손희조 역시 단순한 구조 요원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둘러싼 더 큰 계획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암시된다. 그러나 영화는 이 거대한 서사와 철학적 질문을 모두 아파트 내부의 좁은 공간과 제한된 인물들의 대화에 밀어 넣는다. 관객은 안나의 선택이 개인적인 모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라는 점을 알게 되지만, 그 결말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이 작품의 핵심 반전과 마지막 선택의 장면은, 아무리 논쟁적이라 해도 직접 보는 편이 나으니, 여기서는 문 앞까지만 데려다 두는 것으로 충분하겠다.

야심만 거창한 침몰선

안타깝게도 '대홍수'는 설정만 놓고 보면 꽤 야심찬 재난 SF 영화지만, 그 야심을 실제 영화적 완성도로 연결하는 데는 거의 실패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장르의 혼합이 아니라 장르의 충돌이다. 재난 블록버스터, 모성 드라마, 인공지능과 시뮬레이션을 다루는 하드 SF, 인류의 윤리를 따지는 철학극까지 한꺼번에 껴안고자 하지만, 이를 하나의 결로 꿰어 주는 서사적 통로가 허술하다. 마치 장보러 갔다가 카트를 가득 채워 놓고는, 정작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 보니 재료가 서로 안 어울려서 아무것도 요리할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래서 관객의 체감은 '풍성하다'가 아니라 '정리가 안 된다'에 가깝다.

초반부 재난 묘사는 나쁘지 않다. 물에 잠긴 아파트 계단과 복도, 발전기가 꺼져 가는 지하 공간, 창밖으로 보이는 침수된 도시의 풍경은 한국 상업영화에서 보기 드문 비주얼을 보여준다. 물이 계단을 따라 차오르고, 좁은 공간에서 인물들이 숨을 헐떡이는 장면에는 분명한 긴장감이 있다. 문제는 이 긴장감이 이야기의 진행과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각적으로는 위기인데,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는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 잘라 붙인 듯 어색하고, 캐릭터의 감정선은 장면마다 튀어 오른다. 물은 무섭게 차오르는데 대사는 한가롭게 철학 토론을 하고,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이 갑자기 가족사를 털어놓는 장면은, 긴박한 스릴러라기보다 편집실에서 길을 잃은 드라마 같다.

구안나라는 인물은 설정만 보면 굉장히 매력적이다. 인공지능 연구자이자 싱글 엄마이고,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연구의 핵심을 쥔 사람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복합적인 인물을 충분히 풀어 내지 못한다. 안나는 상황에 따라 엄마와 연구자 역할을 오가지만, 그 사이의 갈등과 심리 변화가 설득력 있게 쌓이지 않는다. 잠깐 눈물 흘리고, 잠깐 결연한 표정을 짓고, 또 잠깐 분노하는 식으로 감정이 빠르게 전환될 뿐, 그 안에 관객이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감정의 샘플러를 빠른 속도로 훑어보는 느낌이다. 김다미의 연기는 그 빈틈을 채우기 위해 끝까지 버티지만, 배우의 에너지가 허술한 대사와 구조 속에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느낌이 강하다. 좋은 배우가 나쁜 대본을 만나면 이렇게 된다는 교과서적 사례다.

손희조 역시 마찬가지다. 박해수는 군인 출신 요원의 냉정함과 인간적인 동요를 동시에 보여 줄 수 있는 배우지만, 영화는 이 캐릭터를 '정보 전달 요원' 수준으로 소비해 버린다. 그가 왜 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믿고 어떤 지점을 두려워하는지에 대한 서사는 거의 없다. 대신 중요한 대목마다 손희조가 등장해 설정을 설명하거나, 불필요하게 거창한 대사를 던지면서 장면의 긴장감을 오히려 깬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요" 같은 대사를 네 번쯤 듣고 나면, 관객은 시계보다 시나리오 작가를 원망하게 된다. 재난 영화에서 관객을 이끌어야 할 인물이, 스스로도 이야기 안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설명으로만 해결하려는 각본의 나태함

각본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핵심 설정을 '설명'으로만 해결하려 든다는 점이다. 대홍수가 왜 일어났는지, 인공지능 프로젝트가 무엇을 노리는지, 인간의 기억과 의식이 어떻게 다뤄지는지는 대부분 대사와 짧은 플래시백으로 던져진다. 그 과정에서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열어 두는 대신, 애매한 용어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 혼란만 키운다. 좋은 SF는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상황으로, 인물의 행동으로 보여 주지만, '대홍수'는 마치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읽어 주는 것처럼 모든 걸 설명으로 때운다. 후반부에는 이야기의 성격을 뒤집는 수준의 설정이 등장하는데, 이 반전 역시 충분한 복선이나 감정적 준비 없이 갑자기 떨어진다.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놀랍다'보다 '그냥 뜬금없다'는 감상이 먼저 든다. 마술쇼에서 마술사가 트릭을 보여 주는 대신 "사실 여기 거울이 있어요"라고 설명해 버리는 격이다.

재난 영화로서의 쾌감도 부족하다. 물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장면이 있고, 특정 시퀀스에서는 확실히 스릴이 살아나지만, 전체적으로는 규모나 연출 측면에서 반복과 공백이 많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을 택한 만큼 밀실 재난극의 압박감이 나와야 하는데, 동선 설계와 공간 활용이 단조로워 층이 바뀌어도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15층이든 20층이든 비슷비슷한 복도와 계단이 이어지고, 물은 똑같이 차오른다. 이러니 관객이 체감하는 위기감도 점점 희미해진다. 물은 계속 차오르는데, 영화는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기분이다. 마치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것처럼, 땀은 많이 흘렸는데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느낌.

연출 톤도 일관되지 않다. 어떤 장면에서는 진지한 묵상과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가, 다음 장면에서는 낯 뜨겁게 과장된 감정선과 멜로 드라마의 클리셰를 그대로 끌어온다. 인류의 운명이 달린 선택을 논하던 입으로 갑자기 신파에 가까운 대사를 쏟아내니, 관객은 어디에 감정을 실어야 할지 헷갈린다. 장르 실험은 좋지만, 그 실험을 지탱할 기본 구조와 리듬이 갖춰지지 않으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결과만 남는다. '대홍수'는 그 함정에 그대로 빠진 작품처럼 보인다. 재난도, SF도, 드라마도 모두 어중간하게 흩어진 채,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편집실에서 길을 잃다

편집과 리듬 역시 문제다. 러닝타임은 길지 않은 편인데도, 중반부 체감 속도는 지루에 가깝다. 중요한 정보가 나와야 할 타이밍에 불필요한 대화가 길게 이어지고, 인물들이 계단과 복도를 오르내리는 장면이 비슷한 구도와 동선으로 반복된다. 관객은 안나가 또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방금 전 장면인지 새로운 장면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반대로, 후반부 세계관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거나, 감정의 여운을 느끼기도 전에 다음 장면으로 끊긴다. 깊게 파고들어야 할 부분은 얕게, 과감히 생략해도 되는 부분은 질질 끄는, 역전된 리듬감이 전반을 지배한다. 마치 중요한 시험 전날 밤, 정작 시험 범위는 안 보고 엉뚱한 부록만 세 시간 동안 정독한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꾸준히 제 역할을 한다. 김다미는 물에 잠긴 세트와 육체적으로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엄마로서의 공포와 책임감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끌어낸다. 젖은 옷과 지친 눈빛, 아들을 끌어안는 팔의 떨림 하나하나에서 절박함이 묻어난다. 박해수 역시 허술한 대사 속에서도 군인 특유의 긴장감과 피로감을 체현한다. 조연 배우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생존자의 얼굴을 나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하지만 좋은 연기가 좋은 영화와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은 배우들이 만들어 낸 감정의 순간들을 한데 묶어 줄 연출과 각본의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인상적인 장면 몇 개가 떠오르긴 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필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훌륭한 재료들이 부엌 구석에 따로따로 놓여 있을 뿐, 요리로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다.

넷플릭스 차트의 역설

흥미로운 지점은, 국내에서는 혹평을 많이 받으면서도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에서는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관객 입장에서는 '한국산 재난 SF'라는 포맷 자체가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특성상, 한 번 재생 버튼을 누르게 하는 힘만 있으면 초반 순위는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 화려한 포스터, 익숙한 배우들, 거창한 설정 소개만으로도 클릭 한 번은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와 장기적인 기억에 남는 힘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영화는 분명 주목받는 소재와 스타 캐스팅을 갖췄지만, 오랫동안 회자될 만한 깊이와 완성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차트 순위는 영화의 '인기'를 보여 줄 수는 있어도, 영화의 '가치'를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누가 이 배를 타야 하나?

이제 어떤 관객에게 '대홍수'를 추천해야 할지 생각해 보면, 솔직히 말해 이 영화는 완성도 높은 재난 영화나 탄탄한 SF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장르의 쾌감과 서사의 설득력을 모두 원하는 이에게는 답답함과 허탈함이 먼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대체 뭘 본 거지?"라는 질문이 남기보다는, "아, 아쉽다"는 한숨이 먼저 나올 것이다.

차라리 실패한 작품을 통해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과 장르 혼합의 함정을 공부해 보고 싶은 영화학도나 창작자에게는 일종의 반면교사로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좋은 의도와 화려한 설정만으로는 영화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아주 친절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법 수업에서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의 샘플로 활용할 만한 장면들이 수두룩하다. 설정 과잉, 설명 의존, 톤의 불일치, 캐릭터 활용 실패까지, 각본의 함정들이 총집합한 케이스 스터디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가끔 이런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퇴근 후 아무 생각 없이 넷플릭스를 켰다가 자동 재생되는 작품을 보며,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안 풀릴까" 되묻고 싶은 날. 한국식 재난 멜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하고 싶은 날. 혹은 좋아하는 배우가 얼마나 악조건 속에서도 연기로 버티는지 궁금한 날. 그런 기분일 때라면 '대홍수'는 한 번쯤 틀어 두고 마음속으로 마음껏 투덜거려 볼 만한, 묘하게 애매한 선택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깝다"는 것이다. 좋은 배우들, 흥미로운 소재, 시도할 만한 장르 혼합, 이 모든 요소가 갖춰져 있었는데, 정작 그것들을 하나로 엮을 단단한 서사의 뼈대가 없었다. 작품 자체가 주는 재미는 부족하지만, 관객의 혹평과 냉소를 이끌어 내는 힘만큼은, 제목처럼 제법 거센 물결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리고 그 물결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영화란 결국 좋은 재료를 모으는 것보다, 그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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