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회장 한복판, 잔치상 위로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백수 아들 때문에 눈칫밥 먹는 엄마(고두심), 체면 세우느라 안간힘 쓰는 아버지(김인환), 예식장 직원과 실랑이 중인 형제들까지 모두의 레이더는 오직 '가족의 체면'과 '잔치 진행'에만 고정되어 있다. 영화 '엑시트'는 이 어딘가 숨 막히는, 마치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듯한 가족 회갑연 장면으로 막을 연다.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대학 시절 산악 동아리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그러나 사회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번번이 추락을 거듭한 장기 백수다. 집에서는 눈칫덩이, 친구 모임에서도 늘 "그냥 뭐...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지"라며 얼버무리는 인물. 오늘도 겨우겨우 엄마의 강요로 연회장 서빙 알바를 뛰며, 마치 투명인간처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돌아다닌다.
그런데 이 구질구질한 연회장에서 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온다. 같은 동아리 후배였던 의주(임윤아). 지금은 이 건물 연회 이벤트 팀의 정규직 사원으로 일하는, 말 그대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후배'다. 용남은 반가움과 자격지심이 뒤엉킨 복잡한 심경으로 어설픈 친근함을 내보이지만, 의주는 어색한 미소 뒤로 프로다운 거리를 유지한다. 둘 사이에는 찬란했던 과거 추억과 팍팍한 현재의 격차가 동시에 가로놓여 있다. 이 미묘한 공기를, 영화는 코미디로 포장하되 씁쓸함으로 길게 우려낸다.
그러는 사이, 도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폭발 일보 직전의 위기를 맞는다. 원인 모를 유독가스가 도심 곳곳에서 분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엔 멀리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순식간에 숨을 들이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쓰러뜨리는 치명적인 가스로 돌변한다. 건물 밖 거리는 지옥도가 되고, 사람들은 도망칠 틈도 없이 아스팔트에 쓰러진다. 연회장도 예외는 아니다. 창밖으로 기괴한 연기가 스며들고,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들이 재난 영화의 한복판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때부터 영화는 기어를 확 올린다. 유독가스는 가벼워서 위로 떠오르고, 건물 1층, 2층, 3층을 차례차례 삼켜버린다. 생존을 위한 선택지는 단 하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여기서 그동안 '쓸모없어 보였던' 용남의 과거가 갑자기 빛을 발한다. 산악부 시절, 누구보다 클라이밍을 잘했던 청년의 스킬이, 순식간에 가족과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술로 탈바꿈한다. 난간을 타고, 외벽을 기어오르고, 로프를 걸어 구조 동선을 만드는 일이 용남의 몫이 된다. 의주 역시 과거 동아리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용남과 함께 건물 안팎을 종횡무진하며 생존 루트를 개척해 나간다.
재난을 코믹하게 마주하다
도시 전체가 하얀 독가스로 잠식되는 가운데, 영화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거리로 시선을 내리깔며 관객에게 ‘저 아래로 떨어지면 끝’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용남과 의주는 옥상과 옥상 사이를 뛰어넘고, 외벽 에어컨 실외기와 간판을 발판 삼아 이동한다. 가스의 높이는 끊임없이 상승하고, 이들이 확보할 수 있는 안전 지대는 점점 좁아진다. 재난의 규모는 커지지만, 영화는 철저히 두 사람과 한 가족, 한 건물을 중심으로 서사를 조인다. 결말부에 이르러 이들이 어떻게 구조 신호를 보내고, 어떤 방식으로 탈출의 실마리를 잡는지는 여기서 더 언급하지 않겠다. '엑시트'의 마지막 몇 장면은 재난 영화 치고는 놀랍도록 통쾌하고 또 웃기는 리듬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틀어진 현실을 다시 비틀기
'엑시트'는 겉보기엔 전형적인 재난·탈출극이다. 유독가스라는 위협 요소, 제한된 공간, 시간이 지날수록 좁아지는 안전 지대, 그리고 평범한 인물이 영웅으로 거듭나는 구조까지 장르의 기본 공식을 교과서처럼 따라간다. 그런데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그 공식을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현실에 정밀하게 끼워 넣었다는 데 있다.
용남은 2010년대 한국 청년의 가장 흔한 얼굴이다. 스펙은 나름 괜찮지만 취업은 안 되고, 집에서는 "넌 도대체 뭐 하며 사니?"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인 장기 취준생. 그는 마치 이력서라는 이름의 로프를 잡고 끝없이 벽을 오르려 하지만, 매번 손이 미끄러져 추락하는 클라이머 같다. 영화 초반 그가 가족 모임에서 느끼는 수치심, 눈치, 불편함은 재난보다 먼저 관객의 속을 답답하게 짓누른다.
이때 클라이밍이라는 설정이 단순한 액션 장치를 넘어 은유로 작동한다. 고시 공부, 스펙, 자격증으로 환산되지 않는 취미와 청춘의 시간들은, 보통 ‘쓸데없는 짓’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엑시트'는 그 "쓸데없는 짓"이 어떤 순간에는 생존을 좌우하는 능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용남이 난간을 타고 건물 외벽을 기어오르는 장면은, 그가 자기 인생에서 남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시간들을 통째로 끌어올리는 장면처럼 보인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좋자고 했던 경험들이 결국 자신과 타인을 살린다는 구조. 여기에 관객들이 뜨겁게 공명했다.

연출 톤도 절묘하다. 재난 영화 특유의 공포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끝까지 웃음을 놓지 않는다. 가스에 쫓겨 옥상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도, 실내 암벽장처럼 "파란색 잡을게요!" "저기 홀드!" 같은 동아리식 호흡이 오간다. 줄 하나를 걸 때도 정석적인 클라이밍 용어와 동작이 등장해, 장면이 과장된 '만화'가 아니라 실제 일어날 법한 사건처럼 느껴지게 한다. 동시에 재난 상황에서도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슬쩍슬쩍 등장해 블랙코미디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배우들의 에너지가 크게 작동한다. 조정석이 연기하는 용남은 그 특유의 신체 코미디와 생활 연기가 절묘하게 결합된 캐릭터다. 겁먹으면 괜히 더 큰 소리를 지르고, 몸은 이미 반쯤 나갔는데 얼굴은 두려움에 일그러져 있는 표정, 위기 상황에서도 주머니에서 집어든 게 콩고물 묻은 떡이라는 디테일까지 모든 것이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자극한다. 마치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스파이더 삼촌'이 건물을 기어오르는 기분이랄까. 윤아가 맡은 의주는 단순 '여주인공'이 아니다. 능숙하게 로프를 정리하고, 상황을 판단해 구조 동선을 짜는 실질적인 파트너다. 둘 사이에는 뻔한 로맨스 대신 묘한 동료의식과 동기 의식이 있다. 예전에 함께 동아리에서 땀 흘리던 선배·후배가, 이번엔 도시를 배경으로 다시 한 번 루트를 개척하는 셈이다.
미장센과 공간 활용도 빼놓을 수 없다. '엑시트'의 대부분은 연회장, 옥상, 주변 건물 외벽, 계단과 비상구처럼 아주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영화는 그 좁은 공간을 상·하·좌·우로 끝없이 쪼개 디테일하게 활용한다. 사다리를 매달고, 현수막을 뜯어 로프를 만들고, 옥상 물탱크와 간판, 에어컨 실외기를 모두 발판으로 이용한다. 수평 이동보다는 수직 이동에 방점을 찍으면서, 한국 재난 영화에서 보기 드문 '클라이밍 액션'의 진수를 보여준다. 관객은 어느새 손에 땀을 쥐고, 자기도 모르게 의자의 팔걸이를 꽉 움켜쥔다. 마치 자신도 함께 외벽을 기어오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사회적 맥락으로 보자면, '엑시트'는 어두운 한국 청년의 현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구석구석에 정교하게 박아둔다. 용남이 굴욕을 느끼는 장면들은 대부분 "취업 못 한 자식"이라는 프레임에서 비롯된다. 가족이 완전히 나쁜 사람들로 나오지도 않는다. 부모는 그저 걱정과 체면 사이에서 허둥대고, 형제들은 나름대로 살아남느라 바쁘다. 누구를 악당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청년 세대가 느끼는 '나는 쓸모없는 인간인가'라는 감정을 정확히 건드린다. 그런 인물이 재난 상황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진 능력의 가치를 확인하는 구조는, 간단하지만 꽤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물론 이 영화가 완벽하다고 보긴 어렵다. 재난의 원인이나 이후의 사회적 파장은 거의 다루지 않고, 유독가스라는 설정 자체도 어느 정도 판타지에 가깝다. 광범위한 피해 규모에 비해 주인공 가족에게 초점이 과도하게 맞춰져 있다는 인상도 있다. 그러나 '엑시트'는 애초에 재난의 정치학이나 시스템 비판보다, "평범한 청년이 몸으로 돌파하는 활극"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그 기획 의도 안에서는 준수하게, 그리고 꽤 영리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감정 과잉이나 불필요한 신파 대신, 몸개그와 아이디어, 공간 활용으로 승부를 본 점도 장점이다.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구조 신호
재난 영화는 보고 싶은데 지나치게 암울하고 무거운 작품은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 '엑시트'는 딱 들어맞는다. 이 영화는 분명 도시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상황을 다루지만, 끝까지 관객의 마음을 짓누르지 않는다. 위기 한가운데서도 웃음과 활력을 유지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묘하게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래, 아직 몸은 좀 쓸 만하네"라는 이상한 자신감도 생긴다.
또, 취업과 진로 문제로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한 번쯤 권해보고 싶다. '엑시트'가 해답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그동안 어른들이 알아주지 않던 능력, 스스로조차 하찮게 여겼던 취미와 경험들이 다른 각도에서 빛날 수 있다는 상상을 보여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언젠가 나를 살릴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과장처럼 들리지만,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한국 상업영화가 어떻게 장르와 현실, 코미디와 액션을 섞어낼 수 있는지 보고 싶은 관객에게도 '엑시트'는 훌륭한 사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 이런 생각이 조금은 들 것이다. "지금 내 삶이 재난 직전 같더라도, 한 번쯤은 몸부터 움직여볼까?" 거창한 교훈 없이도, 관객의 엉덩이를 살짝 들썩이게 만드는 힘. 그게 바로 '엑시트'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장점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