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리봉동 중국거리의 좁은 골목, 비 오는 밤 네온사인이 아스팔트 위로 번지는 사이로 남자들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흥정을 한다. 돈을 갚겠다는 말 대신 주먹이 먼저 오가고, 그 한가운데를 누가 봐도 형사 같지 않은 덩치가 쇄빙선처럼 파고든다. 이 동네를 담당하는 강력반 형사 마석도(마동석)다. 말로 설득이 안 되면, 석도는 말 대신 몸으로 협상한다. 기둥에 사람을 꽂아 넣고, 유리창을 깨고, 그러면서도 "다치지 말라니까"라고 투덜거리는 형사. 영화 '범죄도시'는 이 투박한 한마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대놓고 거친 톤으로 밀어붙이는 작품이다. 마치 소주잔을 내려놓듯, 조용히가 아니라 '탁' 소리 나게.
영화 속 가리봉동은 한국인, 중국동포, 조선족, 각종 조직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좁고 복잡한 생태계다. 홍기철파, 왕 회장의 조직, 중국 식당 사장과 환치기 브로커들까지, 석도와 강력반장 전일만(최귀화)은 이 복잡한 판을 주먹과 정보력으로 겨우겨우 관리해 왔다. 서로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이권을 나눠 가진, 기묘한 균형의 세계다. 마치 서로 눈치 보며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가게 주인이 신고를 하면 석도가 나가서 "형님, 여기까지 합시다" 하며 조폭을 털어 주고, 대신 다음번에는 딴 사건에서 형사가 눈을 감아 주는 식의 암묵적인 룰이 작동한다.
이 균형을 아예 뒤집어엎는 존재가 바로 장첸(윤계상)이다. 중국 연변에서 건너온 일당의 두목 장첸은, 기존 조직들의 룰 같은 건 애초에 모른다. 처음 등장부터 느낌이 다르다. 허름한 승합차 뒷좌석에 늘어져 있다가, 표적이 나타나자 담배를 털고 내려 칼을 뽑는다. 그 동작이 마치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무심하다. 사람을 죽이는 방식도, 시체를 처리하는 방식도 노골적으로 잔혹하다. 좁은 골목에서 망치와 칼을 휘두르고, 한밤중 모텔 복도에서 웃으며 사람을 난도질한다. 이 잔혹함은 말 그대로 "도시를 먹으러 온 짐승", 정확히는 먹이사슬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침입종 그 자체다.
장첸 일당은 기존 조폭 조직들을 차례로 접수한다. 겉으로는 회를 사주고 술잔을 돌리다가, 뒤돌아서 칼을 꽂는다. 마치 체스판을 뒤집듯. 돈 되는 가게와 환치기 라인, 카지노 자금줄을 순식간에 장악하고, 동네 상인들에겐 상상도 못 할 폭력을 휘두른다. 가리봉동은 공포에 잠기고, 예전부터 석도와 눈을 맞추며 인사하던 식당 사장, 폐지 줍는 노인 같은 '동네 사람들'까지 피해자가 되어 간다. 석도는 그제야 "이건 선 넘었다"며 본격적인 소탕 작전에 들어가지만, 상대는 지금까지 만나 본 어떤 범죄자와도 결이 다르다. 마치 다른 게임의 룰북을 들고 온 플레이어처럼.


수사라기보다는 동네 대청소
강력반의 수사 방식은 우아하지 않다. CSI의 과학수사도, 셜록 홈스의 추리도 없다. 수사라기보다 거의 '동네 전체를 카펫 청소기로 쓸어버리기'에 가깝다. 아침부터 밤까지 중국 식당, 유흥주점, 환치기 사무실을 들이닥치며 주인과 종업원을 모조리 붙잡아 온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고함이 오가고, 수갑 채운 용의자들이 복도에 줄줄이 앉는다. "니 장첸 알아?"라는 질문이 마치 노래 후렴구처럼 반복되고, 거짓말이 들통날 때마다 책상이 뒤집힌다. 그러면서도 형사들은 라면을 끓여 먹고, 잡아 온 애들끼리 "누가 누군지 기억도 안 난다"며 투덜대는, 이상할 정도로 생활감 넘치는 수사 현장을 보여준다. 마치 동네 철물점 주인이 도둑 잡듯.
그러는 사이 장첸의 폭력은 더 노골적으로 치닫는다. 조직 간 납치와 협박, 인질극, 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살인. 점점 더 많은 피가 거리로 흘러나오고, 경찰청은 "이 사건을 조용히 끝내라"며 압박을 넣는다. 석도와 일만 반장은 중앙의 눈치를 보면서도, 선제압으로 판을 뒤엎기로 한다. 장첸과의 거리 추격전, 노래방과 호텔, 사우나와 모텔을 오가는 잠복과 습격이 이어지며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질주한다. 결국 마석도와 장첸이 정면으로 맞붙는 순간은, 이 영화 전체가 준비해 온 단 하나의 장면처럼 응축되어 터진다. 누가 어떻게 쓰러지는지, 그 싸움이 동네 사람들에게 어떤 결말을 안겨주는지는 직접 화면으로 확인하는 편이 좋다. 마지막 액션의 묵직함은, 미리 말로 설명하는 순간 마치 김 빠진 맥주처럼 힘이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장르의 기본기를 극한까지 밀어붙이기
이제 '범죄도시'가 가진 작품적 힘을 살펴보자.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스토리 자체가 놀랍게 새롭지는 않은데도 장르의 기본기를 극도로 잘 살렸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거친 형사가 동네를 어지럽히는 잔혹한 외부 세력을 때려잡는다"는 서부극 시절부터 내려온 아주 단순한 구조다. 그런데 이걸 한 시퀀스, 한 인물, 한 대사도 허투루 쓰지 않고 밀도 있게 쌓아 올린다. 러닝타임은 비교적 짧은 121분인데, 그 안에 인물 소개·세계관 구축·긴장 고조·유머·액션을 촘촘하게 배치해, 숨 돌릴 틈 없이 끌고 간다. 마치 잘 만든 햄버거처럼, 재료는 익숙해도 조립이 완벽하면 맛있다는 진리를 증명한다.
연출은 공간과 몸을 믿는 쪽을 택한다. 가리봉동의 좁은 골목, 계단, 주방, 모텔 방, 노래방 복도가 계속해서 반복 등장한다. 화려한 세트가 아니라, 실제 있을 법한 공간들이다. 카메라는 이 공간을 빠르게 휘젓기보다는, 인물의 몸을 따라 묵직하게 움직인다. 마석도가 주먹을 휘두를 때, 관객은 그의 어깨와 팔, 상대방의 몸이 '어디에 얼마나 세게 부딪히는지'를 거의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마치 권투 경기를 링사이드 좌석에서 보는 것처럼. 편집 역시 빠른 컷으로 액션을 잘게 쪼개는 '본 시리즈' 스타일이 아니라, 한 동작을 끝까지 보여주는 쪽이다. 그래서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다 같이 숨이 찬다.
새로운 액션 히어로의 탄생
마석도(마동석)라는 캐릭터는 한국형 액션 히어로의 새로운 원형을 만들어냈다. 흔히 떠올리는 형사의 이미지는 아니다. 지적이고 냉철한 추리형도, 정우성처럼 말라붙은 몸으로 총을 잘 쏘는 카리스마형도 아니다. 오히려 동네에서 떡볶이 사 먹고 애들 등짝 때릴 것 같은 '큰 형', 정확히는 동네 체육관 관장님에 가깝다. 그런데 이 덩치에서 나오는 폭력성이, 정의감과 생활감과 섞이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피투성이가 된 채 범인을 끌고 오는 장면에서도, 석도의 얼굴에는 "이놈 또 이런 짓 했냐" 하는 인간적인 피곤함이 배어 있다. 마치 퇴근 시간 넘긴 직장인의 한숨처럼. 그 덕분에 이 영화의 폭력은 무조건적인 영웅주의가 아니라, 조금은 지친 도시의 자구책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장첸(윤계상)은 한국 상업영화 악역 계보에 확실하게 이름을 새긴 캐릭터다. 아이돌 출신 배우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이국적인 말투와 잔인한 행동, 느릿느릿한 태도와 갑작스러운 폭발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칼을 들고 쫓아올 때 장첸의 얼굴은 과장된 광기라기보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찌르는 사람이 가진 공허함에 가깝다. 마치 공장에서 부품을 찍어내듯 사람을 처리하는 그 무표정함. 그 공허함이 오히려 더 무섭다. 주변 부하들 역시 과장된 코믹 캐릭터로 소비되지 않고, 하나의 폭력적 유닛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장첸 일당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화면의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는다.
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폭력과 유머의 절묘한 배합이다. '범죄도시'는 상당히 잔혹한 폭력을 다루면서도, 웃음 포인트를 곳곳에 심어 놓는다. 용의자 심문실에서 중국어 통역이 오락가락하며 생기는 오해, 형사들끼리 서로 눈치 보고 떠드는 장면, 범인을 잡으러 갔다가 밥부터 먹고 보는 석도의 태도 같은 것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마치 코미디 쇼를 보듯. 하지만 그 웃음이 폭력을 가볍게 만드는 방향은 아니다. 웃다가도 곧바로 칼이 튀어나오고, 피가 튄다. 이 급격한 온도차가야말로, 영화가 가진 특유의 리듬이다. 마치 한여름 밤 캠핑장에서 고깃집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곰을 마주치는 것 같은.
그럼에도 '범죄도시'가 관객에게 유난히 사랑받은 이유는 명확하다. 오랜 시간 한국 상업영화는 범죄·느와르 장르에서 점점 더 어둡고 무거운 쪽으로 기울어 왔다. 도덕적 회색지대를 탐구하고, 모두가 더러운 세계를 그리는 것이 트렌드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거친 폭력과 쿨한 유머, 단순하지만 강력한 서사를 통해 "보고 나면 이상하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액션 영화"의 쾌감을 제대로 되살렸다. 마석도가 범인을 한 방에 눕히는 장면에서 관객이 터뜨리는 웃음과 환호는, 단지 폭력에 대한 동조라기보다, 답답한 현실에서라도 누군가가 일단 '한 대는 제대로 날려줬으면' 하는 욕망의 배출구에 가깝다. 마치 펀칭백을 한 방 날린 것 같은 후련함.
시원한 액션 쾌감 ‘마석도 유니버스’
장르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거쳐 가야 할 작품이다. 화려한 트릭이나 반전보다, 인물과 액션, 리듬으로 승부하는 정공법 액션의 맛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마동석식 액션, 이른바 '마석도 유니버스'의 출발점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필수다. 이후 시리즈가 스케일을 키워가며 베트남, 일본을 누비게 되지만, 첫 작품의 가리봉동은 유독 손에 잡힐 듯 생생한 현장감을 남긴다. 마치 데뷔 앨범의 거칠지만 순수한 에너지처럼.
반대로, 화면 속 폭력에 취약한 관객이라면 꽤 힘든 경험이 될 수 있다. 칼과 망치, 맨주먹이 난무하고, 인물들이 격렬하게 다치는 장면이 반복된다. R등급이 결코 장식이 아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이주민·소수자 재현 문제에 민감한 시각을 가진 이라면 불편함을 느끼게 될 여지도 크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선택하는 편이 좋다.

‘요즘 영화는 너무 길고 복잡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사람에게 '범죄도시'를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이 영화는 설명을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그 놈을 때려잡으려 하는지 처음부터 뚜렷하다. 대신 그 단순한 목표를 얼마나 통쾌하게, 얼마나 생생하게 달성해 내는지에 모든 힘을 쏟는다. 그런 직선적인 에너지에 한 번쯤 몸을 맡겨 보고 싶다면, 가리봉동의 골목을 함께 뛰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보고 나서 극장을 나올 때, 아마도 몸 어딘가에 아직도 마석도의 주먹이 남긴 진동이 조금은 울리고 있을 테니까. 마치 큰 북을 치고 난 뒤 공기 중에 남은 떨림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