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거지가, 다시 추락하는 이야기 ‘드라마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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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림
By 이태림 기자

인간의 탐욕이 그려가는 여정의 끝에 도달하다 제2회 청룡시리즈어워즈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필리핀 카지노 한가운데, 한국말이 뒤섞인 칩 소리와 담배 연기가 흩어진다. 마치 마피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지만 이탈리아가 아니라 마닐라에서. 그 중심에 서 있는 남자가 있다. 바로 카지노 업계의 전설이자 자수성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차무식(최민식)이다. 드라마 '카지노'는 이 사내가 어떻게 빈털터리 고학생에서 해외 카지노 왕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수사망의 한가운데 서게 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동시에 그를 끝까지 추적하는 한국 경찰 오승훈(손석구)의 시선과, 필리핀 한인 사회에 퍼진 공포를 교차시키며, '돈 냄새 나는' 범죄 서사시를 만들어 낸다.

이야기는 무식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 폭력, 빽 하나 없는 지방의 삶. 그는 학교 대신 돈을 선택하고, 사소한 도박판과 환치기, 사채를 오가며 '돈의 언어'를 배운다. 마치 MBA 대신 뒷골목에서 경영학을 배우는 것처럼. 성인이 된 무식은 영어학원을 차려 지역 유지로 올라서는가 싶더니, 학원 비리와 사기 사건으로 나락을 맛본다. 경찰서를 드나들고, 세무조사를 버티면서도 그가 포기하지 않는 건 단 하나다. "어떻게든 판 위에 다시 올라간다"는 집착이다. 좀비처럼 죽어도 다시 일어나는, 자본주의의 불사신. 그 집착은 결국 불법 환치기와 해외 원정 도박 알선으로 이어지고, 무식은 자연스럽게 필리핀 카지노라는 거대한 무대로 밀려 나간다.

필리핀에 도착한 차무식은 처음부터 '황제'가 아니다. 현지 브로커들의 눈치를 보며 한국 손님을 하나둘 끌어 모으고, 환전과 판돈을 챙기며 서서히 자기 사람을 심어 간다. 마치 체스 게임의 첫 수를 두듯, 느리지만 치밀하게. 그 옆에는 십수 년을 함께한 오른팔 정팔(이동휘)이 있다. 정팔은 욕망과 불안이 동시에 보이는 인물로, 무식의 지시라면 "형님, 한 번 해보시죠"라며 몸을 던지는 타입이다. 둘은 필리핀 로컬 세력, 한국 조폭, 경찰, 정치인까지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줄타기를 하며 카지노 비즈니스를 키운다. 판이 커질수록 커미션도 늘어나고, 한국에서 날아온 '큰 손'들이 무식을 찾는다. 어느새 그는 "필리핀에서 돈 좀 쓴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거쳐 가야 하는 이름이 된다. 마치 마약 카르텔의 보스처럼, 하지만 다루는 건 코카인이 아니라 도박 중독과 환전 수수료.

돈이 모이는 곳에 시체도 모인다

그러나 돈이 모이는 곳에는 피도 모인다. 이건 자본주의의 만고불변의 진리다. 무식의 사업을 둘러싸고 배신과 살인이 잇달아 터진다. 빚을 갚지 못한 손님이 필리핀 골목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카지노 판돈을 건드린 조직원이 잔혹하게 처리된다. 한국에서는 "필리핀에서 한국인만 죽어나간다"는 뉴스가 올라오고, 외교 문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인다. 이 사건들 한가운데를 파고드는 인물이 바로 강력계 형사 출신으로 필리핀 대사관으로 발령 난 오승훈(손석구)이다. 오승훈은 현지 경찰과의 공조를 빌려 사건을 수사하지만, 곧 이 살인 사건의 이면에 한국 정부, 정보기관, 필리핀 권력층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한 겹씩 벗길 때마다 더 깊은 부패가 드러나는.

격렬한 폭력 장면과 동시에, 드라마는 필리핀에 터를 잡은 교민들의 삶도 보여준다. 누군가는 무식을 도움닫기 삼아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그를 '하늘 같은 형님'으로 모시며 하루를 버틴다. 그들에게 카지노는 직장이자 유일한 탈출구이다. 마치 탄광이 폐업한 마을의 주민들이 새로 들어선 공장에 매달리듯. 하지만 판이 커지자, 무식의 세계는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뒷돈을 챙기려는 공권력, 카지노 이권을 노리는 다른 한국 조직, 필리핀 현지 세력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서, 그의 왕국은 서서히 균열을 맞는다. 샌드캐슬처럼, 겉보기엔 웅장하지만 파도 한 번이면 무너질 수 있는.

이때부터 '카지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무식의 일생을 해부하듯 보여준다.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아역의 얼굴 위에, 최민식의 현재 얼굴이 겹쳐지고, 한국과 필리핀, 시골과 카지노 홀, 경찰서와 호텔 스위트룸이 번갈아 등장한다. 마치 대부 2편이 비토 콜레오네의 과거와 마이클의 현재를 교차 편집하듯. 드라마는 무식이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그 선택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뒤틀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오승훈이 "돈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둔 수사를 고집하면서, 점점 더 위태로운 선을 건너기 시작한다. 두 남자는 서로를 알듯 모른 듯, 필리핀이라는 낯선 땅 위에서 서서히 충돌 궤도를 맞춰 간다. 히트의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처럼, 한 화면에 함께 있지 않아도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누가 살아남고, 무엇이 무너지는지, 마지막 결과는 시청자가 직접 확인해야 할 영역으로 남겨 둔다.

범죄 활극+자본주의 연대기=한국형 느와르의 진화

'카지노'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한국식 범죄 활극과 근현대 자본주의 연대기를 한데 묶어 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나쁜 짓 하다가 망하는 도박판의 신화"가 아니다. 한국 IMF 이후로 이어진 투기와 도박의 시대, 국내에서 밀려난 욕망이 어떻게 동남아의 카지노, 이른바 '코리아 마카오'로 흘러들었는지를 실존 인물의 삶 안에 녹여낸다. 차무식이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악당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가 만들어 낸 자수성가 신화의 뒤틀린 얼굴이다. 집요하게 올라가고, 절대 굽히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신념으로 밀어붙인 끝에 도달한 정점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의 다크 버전이랄까. 실리콘 밸리 대신 마닐라 뒷골목을 선택한.

이 세계를 지탱하는 건 압도적인 배우들의 연기다. 최민식의 차무식은 속으로는 늘 계산기를 두드리지만, 겉으로는 호탕하게 웃는 전형적인 '형님'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웃음과 분노, 애정과 잔혹함 사이의 간격이 몇 초 안에 오가는 순간들에서, 관객은 이 인물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체감하게 된다. 특히 부하 직원의 배신을 알아챘을 때, 말 한마디 없이 담배만 태우다 슬쩍 시선을 주는 장면은, 굳이 폭력을 보여주지 않아도 공포가 어떻게 조성되는지 교과서처럼 보여준다. 마치 상어가 물속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것처럼, 액션보다 정적이 더 무섭다는 걸 증명하는.

손석구가 연기하는 오승훈은 완전히 다른 에너지다. 투박하지만 물러서지 않는 형사, 피해자들을 향한 공감 능력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는 무식과 달리 화려한 재능이나 거대한 조직을 등에 업고 있지 않다. 대신 "사람이 죽었는데 관할 따질 때냐"라고 소리치는 태도로 버티는 캐릭터다. 마치 와이어의 맥널티 형사처럼, 시스템과 싸우는 외로운 기사. 손석구 특유의 건조한 말투와, 상황을 꿰뚫어 보는 눈빛이 더해지면서, 오승훈은 이 난장판 같은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관객이 의지할 수 있는 '정상감각의 중심'이 된다. 나침반처럼, 모두가 길을 잃었을 때 북쪽을 가리키는.

강윤성의 거친 리얼리즘...범죄도시의 연출 DNA

연출을 맡은 강윤성 감독은 영화 '범죄도시'에서 보여 준 거친 리얼리즘과 유머 감각을 OTT 시리즈 포맷에 맞게 확장한다. 그는 필리핀의 화려한 카지노 네온과 뒷골목의 습한 어둠을 대비시키며, "돈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아지는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큰 폭발이나 차 추격보다, 좁은 방 안에서의 대면, 협박, 눈빛 교환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연출이다. 마치 클로즈업이 총격전보다 강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서사적으로 '카지노'는 상당히 긴 호흡을 택한다. 과거와 현재,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는 구조 속에서, 시즌1은 주로 무식의 성장 서사와 사업 확대를, 시즌2는 본격적인 추락과 수사, 정리 국면을 다룬다. 덕분에 각 에피소드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 선택이 어떤 파장을 낳았는지"를 비교적 차분하게 보여 줄 여유가 생긴다. 마치 장편소설을 읽듯, 한 챕터씩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다만 이 긴 호흡은 호불호도 낳는다. 초반 몇 화는 사건보다 인물의 관계와 과거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에, 시청자에 따라 "느리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넷플릭스 시대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너무 스로우 번처럼 느껴질 수도.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는 폭력의 '양'이 아니라 '무게'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누군가 맞고, 피를 흘리고, 죽는 장면은 여럿 나오지만, 연출은 그걸 통쾌한 액션으로 소비하기보다는 "이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사소한 조폭 한 명의 죽음도, 그를 형으로 따르던 후배의 인생을 바꾸고, 결국에는 차무식 본인의 선택과 외교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한 사람의 죽음이 태풍을 만드는. 이 구조를 통해 '카지노'는 폭력과 돈이 맺는 인과관계를 냉정하게 그려낸다.

K-스토리의 매력에 빠지고 싶다면

그렇다면 '카지노'를 누구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느릿하지만 밀도 높은 범죄 서사를 좋아하는 시청자라면 이 드라마에 깊이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화려한 '한 방'보다는 인물들의 표정과 대화, 관계의 균열을 통해 긴장감이 쌓이는 과정을 즐기는 타입이라면 특히 그렇다. 마치 와이어나 소프라노스를 좋아했던 사람에게 잘 맞는. 최민식, 손석구 등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기대한 만큼의 연기 대결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반대로, 초반부터 빠른 전개와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카지노'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인물의 과거와 관계를 충분히 쌓아 둔 뒤에야 본격적인 폭발을 보여주는 편이라, 어느 정도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마치 마라톤 같은 드라마, 100미터 달리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폭력과 욕설, 도덕적으로 회색인 선택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가벼운 오락으로 소비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이런 범죄 드라마가 가능하구나"라는 감각을 한 번쯤 느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카지노'를 놓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단순히 누가 죽고 누가 다쳤는지보다, 그 많은 선택과 배신의 끝에 남은 것이 무엇인지, 나 역시 어떤 판 위에 서 있는지 곱씹어 보게 된다. 아마 마지막 에피소드를 넘긴 뒤에도 한동안, 필리핀 카지노의 형광등과 차무식의 굵은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 것이다. 그리고 그 맴도는 소리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계속 상기시킬 것이다. 마치 이명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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