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오른 러브레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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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림
By 이태림 기자

시한부 아이돌과 그를 구하려는 팬의 시간 전쟁 제61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수상작

한밤중 한강 다리 위, 휠체어가 멈춰 서고 빗줄기가 내린다. 세상이 끝난 줄 알았던 순간, 한 남자가 우산을 펼쳐 들고 다가와 조용히 묻는다. "괜찮아요?" 잠시 후, 바로 그 남자는 호텔 옥상에서 몸을 던진 톱스타가 되어 뉴스 속 자막으로만 남는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절망의 정점에서 거꾸로 질주해, 팬이자 평범한 청춘이었던 한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시간의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시한폭탄처럼 소모되어 가는 톱 아이돌 류선재(변우석)와, 그를 인생의 등대로 삼고 살아가던 팬 임솔(김혜윤)이 있다. 선재는 수영 유망주 출신이다. 고교 시절 어깨 부상으로 수영복 대신 마이크를 잡게 되고, 밴드 '이클립스'의 보컬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스타 반열에 오른다. 겉으로는 팬과 스포트라이트에 둘러싸인 화려한 삶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극심한 우울과 번아웃 속에서 중심을 잃어가는 중이다. 마치 물속에서 천천히 가라앉는 사람처럼.

반면 솔은 열아홉에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겪은 뒤, 영화 감독의 꿈을 접고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청춘이다. 병원 침대에서 우연히 본 신인 밴드 '이클립스'의 무대, 그리고 인터뷰에서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라고 말해 준 선재의 한마디가 솔이 삶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 유일한 앵커가 된다. 그 이후로 선재는 솔의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이유' 그 자체가 된다. 마치 암흑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별처럼.

문제는 그 별이 너무 빨리 떨어져 버렸다는 것. 어느 날 밤, 콘서트를 보고 나와 구직 면접을 보러 갔다가 장애를 이유로 또다시 문전박대를 당한 솔은, 한강 다리 위에서 우연처럼 선재와 마주친다. 선재는 팬인지도 모른 채, 휠체어가 멈춰 선 솔에게 우산을 씌워 주고 사라진다. 그게 둘의 마지막 인사가 된다. 몇 시간 뒤, 뉴스 속 속보는 선재의 극단적 선택을 전한다. 병원으로 향하던 솔은, 소중히 간직하던 선재의 시계가 강물에 빠지자 무작정 몸을 던져 그것을 붙잡으려 한다. 자정이 되는 순간, 시계가 반짝이며 되감기 시작하고, 솔이 몸을 일으켜 눈을 뜬 곳은… 15년 전, 2008년 여름, MP3가 전성기였고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BGM을 신중하게 골라 넣던 바로 그 시절이다.

강력한 염원이 소원으로 이뤄지다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솔 앞에는 아직 수영부 에이스이자 평범한 열아홉 살 소년인 류선재가 서 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의 시간은, 이때부터 완전히 뒤틀린다. 솔은 ‘이 사람의 죽음을 막는다’는 단 하나의 목표만으로 과거의 시간표를 고치기 시작한다. 선재가 어깨 부상을 입지 않게 막으려 하고, 수영 대신 연예계로 향하게 만든 분기점을 지우려 한다. 동시에, 고등학생 시절 자신이 한때 짝사랑했던 학교 얼짱 김태성(송건희)까지 끼어들면서 묘한 삼각 구도가 형성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정말 흥미로운 지점은, 솔이 과거를 바꾸려 애쓰면서 알게 되는 뜻밖의 진실이다. 자신은 한 번도 기억하지 못했던 순간들, 선재는 이미 그때부터 솔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 잘못 배달된 택배 상자, 비 오는 날 우산을 건네며 스쳐 지나간 인연, 수영부와 일반고 사이의 교차되는 시선들. 선재의 눈에는 늘 솔이 있었다. 솔이 선재의 팬이 되기 훨씬 전부터, 선재는 솔의 '덕후'였다. 이 일방적인 팬심의 방향이 알고 보면 처음부터 서로를 향한 쌍방향 화살표였다는 설정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감정적 엔진을 구동시킨다.

타임슬립의 규칙은 생각보다 잔혹하다. 솔이 미래에 대해 말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마다 시간이 멈추거나, 상황이 기괴하게 왜곡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면 행동으로 막아야 한다. 그래서 솔은 작은 사건 하나하나에 온몸으로 개입한다. 선재의 수영 경기를 막으려 하고, 엄마의 화재 사고를 막으려 뛰어다니고, 선재의 연예계 데뷔를 부추기는 인물의 명함을 훔쳐 없애려 한다. 그 과정에서 선재의 친구이자 나중에 이클립스의 리더가 되는 백인혁(이승협)과도 얽히며, 밴드가 결성되기 전의 모습, 10대 소년들이 음악을 꿈꾸던 풋풋한 시절의 생생한 초상을 함께 본다.

하지만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는 원칙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게 작동한다. 선재의 죽음을 막은 줄 알았더니, 다른 형태의 위험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솔을 노리는 연쇄 납치범과 살인마, 선재를 뒤쫓는 집착 어린 범죄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엔터 업계의 어둡고 끈적한 그림자까지. 솔이 한 번 개입할 때마다 또 다른 타임라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전혀 다른 상처를 안게 된다. 현재와 과거,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 성공한 영화감독이 된 솔의 삶과 여전히 위태로운 선재의 스타 생활이 교차하면서, 드라마는 여러 개의 평행세계를 관객 앞에 펼쳐 놓는다. 마치 거울 미로처럼.

후반으로 갈수록 이 이야기는 단순한 첫사랑 타임슬립 로맨스를 넘어선다. 여러 번의 반복과 실패 끝에 서로에게 도달하려는 두 사람의 집요한 러브스토리, 그리고 "팬과 스타"라는 비대칭 관계를 뒤집는 서사로 확장된다. 선재는 수차례의 타임라인에서 솔을 지키고, 솔은 그 타임라인들을 기억하는 유일한 관찰자로서 다시 과거로 뛰어들 준비를 한다. 마지막에 어떤 선택이 기다리고 있는지, 결국 어느 시간이 둘의 최종 착륙지가 되는지는 직접 드라마를 보며 만나는 편이 좋다. 이 작품의 결말은 단순한 해피엔딩/새드엔딩의 이분법보다 조금 더 복합적이고 여운 깊은 감정을 남기기 때문이다.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솜씨

장르적인 측면에서 '선재 업고 튀어'는 타임슬립·로맨틱 코미디·청춘 성장 드라마를 매우 능숙하게 블렌딩한 작품이다. 설정만 놓고 보면 굉장히 웹소설스럽고 만화적인데, 이를 의외로 진지하게, 그리고 정서적 진폭을 살려 밀어붙인다. ‘내가 사랑하는 스타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간다’라는 다소 팬픽 같은 상상을, 단순한 덕질 판타지가 아니라 삶과 죽음, 우울과 회복, 사랑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끌어올린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 드라마는 타임슬립의 반복을 굉장히 영리하게 활용한다. 비슷한 시점으로 계속 돌아가지만, 솔의 선택이 달라질 때마다 주변 인물들의 삶이 조금씩 다르게 흘러가는 식이다. 같은 사건이 여러 번 변주되면서, 관객은 "이번에는 다르게 될까?"라는 긴장감을 자연스럽게 품게 된다. 마치 게임의 멀티엔딩을 하나씩 열어가는 것처럼. 예를 들어 솔의 사고가 일어나던 그날, 어느 타임라인에서는 휠체어 사고와 납치로 이어지고, 어느 타임라인에서는 솔이 먼저 대비해 경찰에 신고하고, 또 다른 타임라인에서는 선재가 대신 큰 상처를 떠안는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되감고 다시 틀어보는 실험이, 극 전체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캐릭터 구축도 단단하다. 류선재(변우석)는 ‘모든 걸 가진 남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위태로운 인물이다. 잘생김·재능·인기·성실함까지 다 갖췄지만, 그만큼 더 많이 착취당하고, 더 큰 책임감에 짓눌린다. 소년 시절의 순수함과 성인 시절의 무기력이 같은 얼굴 안에 공존하는 캐릭터인데, 변우석은 이 간극을 표정과 눈빛만으로 설득력 있게 채운다. 무대 위에서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다가도, 솔 앞에서는 여전히 고등학생 시절의 서툰 설렘으로 돌아가는 순간들이 거짓 없이 전달된다.

임솔(김혜윤)은 겉으로는 덕질에 진심인 밝은 팬이지만, 깊은 무력감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청춘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사고 이후 '살아남은 사람'으로 남겨졌다는 죄책감,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겪는 일상의 차별과 좌절이 선재라는 존재와 맞물릴 때, 이 인물은 단순히 사랑을 쟁취하고 싶은 여주인공이 아니라 "골든 타임을 되찾고 싶은 사람"으로 읽힌다. 김혜윤 특유의 빠르고 생기 넘치는 말투와 코믹한 리액션은 솔의 사랑스러움을 극대화시키고, 울컥하는 장면에서는 그간 쌓아 온 감정들이 댐이 무너지듯 한 번에 터져 나오게 만든다.

조연들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고교 시절부터 대학, 성인 시절까지 솔과 선재 주변을 채우는 친구들과 가족, 밴드 멤버, 소속사 관계자들은 각자 작은 서사와 동기를 갖고 있다. 백인혁(이승협)은 친구이자 밴드 리더로서 선재의 재능을 가장 믿는 사람이고, 동시에 누구보다 먼저 그의 이상 신호를 감지하는 인물이다. 김태성(송건희)은 처음에는 '첫사랑 짝사랑 남'이라는 전형적인 역할로 등장하지만, 솔에 대한 감정과 죄책감, 성장 과정이 겹치면서 입체적인 캐릭터로 정리된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우정과 갈등, 그리고 나이를 먹어 가며 달라지는 관계성이 드라마의 감정선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든다.

시간의 결을 시각화하는 연출

연출 면에서는, 고교 시절의 따뜻하고 포근한 색감과 현재의 차갑고 예리한 톤을 대비시키며 시간의 질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비·눈·물·빛을 활용한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시간 이동의 매개체인 시계, 한강 다리, 수영장, 콘서트장 같은 공간들은 여러 타임라인에 걸쳐 반복 등장하면서, 관객의 기억 속에 하나의 상징으로 각인된다. 마치 음악의 후렴구처럼.

OST와 밴드 '이클립스'의 음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재의 노래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모티프이자, 솔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감정의 다리 역할을 한다. 실제로 드라마 방영 당시 OST와 극 중 밴드곡들이 음원 차트 상위권을 석권하며, 서사와 음악이 함께 시너지를 내는 '성공한'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모든 면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연쇄 살인과 스토킹, 타임슬립의 룰이 한꺼번에 얽히면서, 일부 시청자에게는 다소 과하게 복잡하고 자극적인 서사로 느껴질 수 있다. 선재의 우울과 극단 선택 같은 민감한 소재가 드라마틱한 장치로 소비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적어도 그 고통을 가볍게 치장하거나 장식적 요소로만 활용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유지한다. 선재의 힘듦은 단순히 "신파의 연료"가 아니라, 연예 산업의 구조·팬 문화·개인의 정신 건강 문제까지 동시에 비추는 삼면경으로 기능한다.

잊혀진 감정을 폭발적으로 유발한다

대중적 사랑을 받은 이유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이 드라마는 ‘설레다가 울게 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굉장히 정교하게 설계했다. 학창 시절 복도, 야자 끝나고 집에 가는 어두운 밤길, 처음 들었던 노래, 그때는 몰랐던 누군가의 눈빛 같은 기억들을 시간여행의 포장지 안에 정성껏 넣어 전달한다. 그래서 해외에서도 'Lovely Runner'라는 제목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K-로맨스의 새로운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첫사랑과 학창 시절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자주 밀려오는 사람이라면, '선재 업고 튀어'는 거의 직격탄에 가깝다. 복도 끝 사물함 앞, 운동장 한쪽 벤치, 늦은 밤 PC방 골목 같은 풍경들 속에서, "그때 내가 한 번만 달리 말했더라면" "한 번만 용기를 냈더라면" 하고 스쳐 지나갔던 선택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이돌을 좋아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더 깊게 공명할 지점이 있다. 누군가의 음악에 기대 하루를 버텨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솔이 선재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를 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과장된 판타지가 아니라 아주 현실적이고 절박한 감정으로 느껴질 것이다. 반대로, 늘 누군가의 기대를 받으며 버텨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선재가 겉으로 웃으면서도 속으로 서서히 침몰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요즘 "시간을 다시 돌릴 수만 있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는 이들에게도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선재 업고 튀어'는 시간을 되감는 판타지를 허락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말하는 드라마다. 돌려도 완벽해지지 않는 시간이 있고, 바꾸어도 어딘가에는 상처가 남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마음 자체가, 이미 우리의 삶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을지 모른다고.

이 말을 잠깐이나마 믿어 보고 싶은 밤이라면, 이 드라마가 당신의 시간을 아주 부드럽게, 그러나 꽤 오래 흔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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