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식은 뒤에 시작되는 진짜 로맨스 ‘드라마 눈물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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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림
By 이태림 기자

눈물의 여왕이 당신의 눈물을 빼앗다 제6회 뉴시스 한류엑스포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수상작

재벌가 저택의 끝도 보이지 않는 드라이브웨이 위, 검은 차 한 대가 느리게 들어선다. 문이 열리고 내리자마자 고개부터 숙이는 사위 백현우(김수현), 그 앞을 하이패션 화보처럼 걸어 나오는 재벌 3세 홍해인(김지원).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결혼식도, 설렘도 다 지나간 뒤, 이미 3년 차 권태기 부부의 풍경에서 시작한다.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카메라가 '그 후 3년'을 비추기 시작한 것처럼. 시작부터 "해피엔딩 이후"를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 셈이다.

현우는 시골 용두리 출신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기업 법무이사가 된 '흙수저 성공 서사'의 주인공이지만, 현실은 〈스카이캐슬〉이나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오는 화려한 역전극과는 거리가 멀다. 집에서는 늘 처가 식구들 눈치를 보며, ‘시골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싸워야 한다. 회의석상에서 의견을 내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식탁에서는 미묘한 무시를 견뎌야 한다. 마치 〈기생충〉의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에서 느꼈던 계급의 벽을, 현우는 매일 아침 식탁에서 느낀다. 다만 그는 반지하가 아닌 대저택에 살고, 짜파구리 대신 프렌치 코스 요리를 먹을 뿐이다.

반면 해인은 퀸즈 그룹의 백화점을 책임지는 CEO이자, 할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후계자다. 냉정하고 야심 찬 경영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옷과 보석을 휘감고 사는 여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프리슬리를 한국 재벌가 버전으로 재해석한 듯한 캐릭터다. 둘은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 한마디 섞기보다 비서에게 전달사항을 부탁하는 사이가 되어 있다. 같은 침대에 누워 있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서울과 용두리만큼이나 멀다.

그래서 현우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단어는 사랑이 아니라 "이혼"이다. 그는 대학 시절 친구이자 잘나가는 이혼 전문 변호사 김양기(문태유)를 찾아가 조심스레 상담을 청한다. 마치 〈결혼 이야기〉의 찰리와 니콜처럼, 한때 사랑했던 두 사람이 서류 위에서 재산과 감정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혼 조건을 머릿속에 정리하면서도, 집에 돌아가면 습관처럼 해인의 야근을 챙기고, 속이 안 좋다는 말에 약을 사다 놓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도 헷갈린다. 과연 정말 사랑이 식은 걸까, 아니면 상처와 오해가 켜켜이 쌓여 길을 잃은 걸까. 마치 오래된 책장 사이에 꽂혀 있는 사진 한 장처럼, 감정도 어딘가에 끼어서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위태로운 균형은 한 통의 진단서로 완전히 무너진다. 어느 날, 해인은 병원에서 '뇌종양, 예후 좋지 않음'이라는 잔혹한 판정을 받는다. 시한부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그녀는 가족에게조차 진실을 숨긴 채 혼자 버티려 한다. 마치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 폭력의 흔적을 숨기듯, 해인은 죽음의 그림자를 혼자 끌어안는다. 하지만 현우는 곧 아내의 이상 징후를 눈치챈다. 이유 없는 두통과 실수, 갑작스러운 실신. 차갑고 완벽하던 사람이 조금씩 부서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남편의 눈빛이 여기서부터 달라진다. "이혼해야겠다"던 마음은 어느새 "끝까지 곁을 지켜야 한다"는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한다.

한편, 재벌가 내부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진다. 해인의 어린 시절 인연이자 월가 출신 투자 전문가 윤은성(박성훈)이 등장하면서, 퀸즈 그룹을 노리는 인수·합병 음모가 서서히 드러난다. 은성은 겉으로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온화한 친구처럼 행동하지만, 속내는 전혀 다르다. 마치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랭크 언더우드처럼 계산된 미소 뒤에 칼날을 숨긴 인물이다. 홍수철(곽동연)·천다혜(이주빈) 부부를 비롯한 홍씨 일가의 허영과 욕망을 교묘하게 자극하며, 그룹의 지분 구조와 권력 판도를 뒤흔들 준비한다. 해인의 곁을 맴도는 그의 존재는, 이미 삐걱거리는 부부 관계에 또 다른 균열을 낸다. 사랑과 음모, 질투와 배신이 한 냄비에 끓는 상황이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의 레시피지만, 이 작품은 재료를 요리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서울에서 용두리로, 계급을 건너는 여정

위기가 깊어질수록 이야기는 서울과 재벌가 저택을 벗어나, 현우의 고향인 용두리로 내려간다. 다소 촌스럽지만 따뜻한 부모 백두관(전배수)과 전봉애(황영희), 말보다 잔소리가 앞서는 누나 백미선(장윤주), 한때 복싱 선수였던 형 백현태(김도현)와 조카까지, 이 '시골 가족'은 화려한 퀸즈 가문의 정반대 축으로 서 있다. 마치 〈리틀 포레스트〉나 〈삼시세끼〉에서 본 듯한,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이상적인 시골 풍경'이다. 해인은 처음으로 "회장님의 손녀"가 아닌, 그냥 한 사람으로서 시골 마을에 발을 들인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땀 흘리고, 장터에서 흥정하고, 새참을 먹으며 일상을 나누는 순간들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한다. 샤넬 트위드 재킷 대신 작업복을, 에르메스 백 대신 비닐봉지를 드는 해인. 그녀가 밭에서 넘어지고, 흙이 묻고, 머리가 헝클어지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이 드라마는 묻는다. "완벽함을 벗어던질 때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 아닐까?"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가 로마 거리를 걸으며 진짜 삶을 맛보았듯, 해인은 용두리에서 처음으로 '홍해인'이 아닌 '백현우의 아내'로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아픈 아내와 헌신적인 남편"이라는 익숙한 멜로 공식만을 따라가지 않는다. 해인은 자신의 병을 지렛대 삼아 가족과 남편의 진심을 시험하는 사람으로도 그려지고, 현우 역시 죄책감에만 묶인 남편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과 두려움에 흔들리는 인물이다. 이혼 서류를 어떻게 처리할지, 아내에게 진실을 어디까지 말할지, 재벌가의 비리와 음모를 폭로할지 숨길지.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두 사람은 조금씩 다른 결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쌓여,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마지막 결말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구체적인 결론과 누가 무엇을 잃고 얻는지는, 직접 드라마를 끝까지 따라가며 확인하는 편이 좋겠다. 이 작품은 결말의 몇 장면이 전체 서사의 무게를 다시 정리해 버리는 타입, 마치 〈식스 센스〉의 마지막 반전처럼, 모든 것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프리미엄 막장 멜로의 정석

이제 작품성을 짚어보자. '눈물의 여왕'의 가장 큰 특징은, 결혼의 끝자락에서 출발하는 멜로라는 점이다. 보통 로맨틱 코미디가 첫 만남, 썸, 고백, 결혼을 향해 달려간다면, 이 작품은 이미 ‘결혼 후 3년, 서로에게 지친 부부’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보통의 K-멜로와 결을 달리한다. 시작부터 설레고 달콤하기보다, 싸늘하고 불편하다. 〈비포 미드나잇〉이 연인의 지루한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로맨스의 환상을 깼듯, 이 드라마 역시 결혼의 로맨틱한 포장지를 찢어 버린 뒤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차가운 공기를 한 겹씩 벗겨 내면서 다시 사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시청자에게 강한 후킹 포인트가 된다.

연출과 호흡 면에서, 이 드라마는 '프리미엄 막장 멜로'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재벌가 권력 다툼, 계모와 비자식, 냉혈한 장모, 음모 가득한 M&A, 시골 vs 도시의 대비, 시한부 병까지. 멜로드라마의 온갖 요소를 마치 뷔페처럼 다 끌어다 놓는다. 하지만 이를 대놓고 자극적으로만 소비하지는 않는다. 과장된 상황 속에서도 인물의 감정선을 꽤 치밀하게 따라간다. 특히, 대사와 시선 연출이 뛰어나다. "나 이제 너 안 사랑해" 같은 직설적인 한 줄 뒤에, 서로 등을 돌린 채 주먹을 꼭 쥔 손을 잡아 주지 못하는 장면을 붙여 감정을 완성한다. 〈플리백〉처럼 대사보다 침묵이, 말보다 시선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순간들이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자산이다. 백현우를 연기한 김수현은, 보기에는 완벽한 남편 같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열등감과 분노를 품고 있는 인물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재벌가 대식구 앞에서 웃는 얼굴로 술을 따르다가, 용두리 가족들 앞에서는 한껏 편안해지는 표정의 차이가 명확하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보여준 사이코패스의 얼굴과, 〈프로듀사〉에서 보여준 순박한 신인 PD의 얼굴이 한 캐릭터 안에서 오간다고 보면 된다. 홍해인 역의 김지원은 초반의 싸늘한 재벌 CEO와 병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 홍해인, 그리고 사랑을 다시 깨달아 가는 여자의 얼굴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한 장면 안에서 오만함·연약함·귀여움이 동시에 느껴질 정도다.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이 21세기 재벌가에 환생한 느낌이랄까. 둘의 케미스트리는 말 그대로 이 드라마의 "심장"이다. 몇몇 회차에서 시청률이 수직 상승한 것도, 이 둘의 감정선이 폭발하는 회였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조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윤은성(박성훈)은 냉정한 투자자이자 집요한 집착남의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며, 보는 내내 소름을 유발하는 악역의 존재감을 완성한다. 마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조던 벨포트처럼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캐릭터다. 홍수철(곽동연)·천다혜(이주빈) 부부는 코미디와 비극 사이를 넘나들며, "재벌 2세도 결국 어른 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SKY 캐슬〉의 김주영 코치가 만났다면 기절했을 법한 철없는 부부지만, 그 철없음 속에 묘한 인간미가 있다. 용두리 식구들은 전형적인 '농촌 가족' 클리셰처럼 보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는 인물로 그려지며 서사의 균형추를 잡아 준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쌍문동 가족들처럼, 촌스러움 뒤에 숨겨진 따뜻함과 지혜가 빛난다.

음악은 눈물 버튼을 정교하게 누르는 장치다. 남혜승 음악감독 특유의 서정적인 테마곡들이 주요 장면마다 깔리면서, 시청자의 감정을 한 번 더 끌어올린다. 특히 비 오는 밤, 병실 창가, 시골 논길 등을 배경으로 OST가 흐르는 장면들은,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플레이리스트에 남겨두고 다시 듣게 되는 힘이 있다. 〈도깨비〉의 OST가 그랬듯, 음악과 장면이 하나의 기억으로 새겨지는 마법 같은 순간들이 이 드라마에도 가득하다.

전 세계가 함께 울었던 이유

흥행과 화제성 측면에서 '눈물의 여왕'은 이미 기록적인 작품이다. tvN 역대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사랑의 불시착〉를 넘어섰고, 넷플릭스에서도 한국 드라마 가운데 최장 기간 글로벌 TOP10에 머물며 전 세계 시청자들의 입소문을 탔다. 여러 해외 매체가 2024년 최고의 K-드라마 중 하나로 꼽으며, "결혼 멜로의 새로운 기준"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만 통하는 재벌가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부부의 이야기로 읽혔기 때문이다.

물론 단점도 분명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재벌가 음모와 악역들의 행보가 다소 과잉으로 느껴진다는 지적이 있다. 현실 감각보다는 드라마적 장치가 앞서는 전개가 이어지면서, 초반의 섬세한 부부 심리극에서 조금씩 비틀려 나가는 느낌을 받는 시청자도 적지 않았다. 마치 〈펜트하우스〉의 막장 DNA가 갑자기 주입된 것처럼, 음모의 스케일이 커지면서 인물들의 내밀한 감정선이 희석되는 순간들이 있다. 병과 죽음이라는 소재를 눈물 유도 장치로 과도하게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어떤 인물은 갑작스럽게 각성하고, 어떤 인물은 다소 급하게 악행을 수습하는 등, 캐릭터 아크가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많은 사람을 울리고 웃게 한 이유는 명확하다. '눈물의 여왕'은 결국 "사랑이 끝났다고 믿게 된 두 사람이, 진짜 끝을 눈앞에 두고 나서야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의 피로, 가족과 회사 사이에서 갈린 책임, 상처를 주고받는 내내 말하지 못했던 진심들이 하나씩 얼굴을 드러낼 때, 시청자는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며 감정이입하게 된다. 〈비포〉 3부작의 제시와 셀린이 그랬듯, 사랑의 유통기한이 지난 뒤에도 남아 있는 무언가를 이 드라마는 포착해낸다.

비주얼이 폭발한 드라마

연애든 결혼이든, 어느 순간 서로에게 말보다 한숨이 많아졌던 시기를 겪어 본 이라면, 현우와 해인의 싸움과 화해를 보며 유난히 많이 웃고, 또 울게 될 것이다. "우리도 저랬었는데" 혹은 "우리도 저렇게 될까 봐 두렵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드라마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일종의 관계 시뮬레이션처럼 다가온다.

재벌·시골·회사·가족 드라마를 한꺼번에 보고 싶은 시청자에게도 잘 맞는다. 이 작품은 화려한 상류층 드라마와 훈훈한 농촌 가족극, 재벌가 스릴러와 핵심 멜로가 한 냄비에 들어가 있지만, 의외로 조합이 나쁘지 않다. 마치 〈기생충〉과 〈리틀 포레스트〉을 믹서기에 넣고 〈펜트하우스〉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살짝 뿌린 듯한 맛이다. 과장된 설정을 어느 정도 즐길 준비만 되어 있다면, 16부 내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따라갈 수 있다.

김수현과 김지원의 팬이라면 필수 관람작이다. 두 배우 모두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며, 특히 함께 있을 때의 케미는 "이 둘이 실제로도 좋아하는 거 아냐?"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팬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성찬이 따로 없다.

K-멜로의 전형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해외 시청자에게도 좋은 선택이다. "왜 한국 드라마는 사람들이 그렇게 울고 웃느냐"는 질문에, 이 한 편이 꽤 괜찮은 답이 되어 준다. 현실과 판타지, 눈물과 웃음,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한 번에 맛보고 싶다면, '눈물의 여왕'은 제목값을 충분히 해 내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 아마 이런 생각이 조용히 떠오를지도 모른다. ‘끝났다고 믿었던 순간에도, 사실은 아직 조금 남아 있던 마음이 있었구나.’ 사랑의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생각했던 순간, 사실은 그냥 라벨이 바래서 안 보였을 뿐일 수도 있다는 것. 그 찌뿌둥한 감정을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작품을 조심스럽게 권한다. 단, 티슈는 넉넉히 준비하슈. 제목은 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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