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마트에 떨어진 혁명가 ‘네이버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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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By 최재혁 기자

병맛 뒤에 숨은 ‘사회학’ 1세대 웹툰작가 ‘김규삼’의 대히트작

|케이브매거진=최재혁 기자 망한 마트 한복판에 혁명가가 내려앉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네이버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이 황당무계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이름값조차 처량한 지방 대형마트, 천리마마트다. 손님은 없고, 재고는 쌓이고, 직원들은 의욕이 바닥을 찍었다. 모회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폐점만 기다리는 '유령 점포'에 가깝다. 엑셀 시트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언제든 삭제 버튼이 눌릴 준비가 된 셀 같은 곳.

이 버려진 매장에 어느 날 본사의 골칫거리 부장, 정복동이 좌천되듯 내려온다. 다들 "저기 가면 승진은 끝"이라며 고개를 젓지만, 정복동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마치 체 게바라가 갑자기 편의점 점장 발령을 받은 것처럼, 이곳을 "혁명의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는 듯한 눈빛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렇게 한다.

자본주의의 쓰레기통에서 건진 인재들

정복동은 천리마마트를 살리겠다는 정상적인 방법에는 관심이 없다. 매출 증대? 고객 만족도? 본사 KPI? 그런 건 애초에 그의 사전에 없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존 마트에서라면 절대 뽑지 않을 사람들을 '인재'라 부르며 채용하는 것이다. 전과가 있는 사람, 노조 운동하다 찍혀서 갈 데 없는 노동자, 사회 부적응자, 자칭 혁명가, 철학자 지망생까지…… HR 필터에 걸러져 사회 바깥으로 튕겨 나와 있던 이들이 하나둘 천리마마트로 모여든다.

이들의 이력서는 기업의 기준으로 보면 쓰레기지만, 정복동의 눈에는 "체제를 뒤흔들 동력"으로 보인다. 마치 어벤져스가 범죄자와 괴짜들로 구성된 것처럼, 천리마마트 직원들은 정상 사회의 낙오자 올스타팀이다. 그렇게 천리마마트는 '사람을 버리는 시스템'에서 튕겨 나온 존재들이 모여 스스로를 다시 설계해 나가는 이상한 공간으로 변한다. 일종의 실패자들의 유토피아, 혹은 자본주의의 재활용센터.

마트 운영 방식도 기묘하다.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파는 대신, 직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밀어붙이는 기획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누구도 사지 않을 것 같은 상품, 난데없는 체험 행사, 마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줄지어 시행된다. 고객 중심? 시장 조사? 그런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은 천리마마트 자동문 밖에 두고 들어온다.

매출은 안 오르고 본사는 속이 타지만, 마트 안에는 묘한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정복동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본다. '적자'라는 낙인이 찍힌 점포와 사람들을,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건 경영이 아니라 실험이고, 비즈니스가 아니라 저항이다.

이 와중에 본사 쪽에는 정반대의 인물이 있다. 대기업의 전형적인 엘리트 샐러리맨 문석구는 천리마마트를 발판 삼아 승진 가도를 달리고 싶어 한다. 그의 목표는 간단하다. 문제만 안 터지게 조용히 관리해서, 언젠가 본사에서 인정받고 올라가는 것. 그래서 그는 "이상한 짓"만 골라 하는 정복동의 행보에 치를 떤다.

매출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기획, 채용 시스템을 무시한 인사, 본사의 지침을 대놓고 어기는 행동들. 문석구 눈에는 정복동이 미친 사람, 혹은 회사에 대한 테러리스트에 가깝다. 마치 질서정연한 체스판에 갑자기 바둑알을 던져 넣는 사람처럼.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는 이 미친 판 위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회사란 무엇인지 계속 묻게 되는 인물로 바뀌어 간다.

문석구와 정복동의 대립은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다. 이건 시스템의 충실한 부품으로 사는 삶과,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는 삶의 충돌이다. 둘 다 나름의 논리와 생존 전략이 있다. 문석구가 꼭 나쁜 사람이어서 승진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가 배운 세상의 규칙이 그런 것이다. 반대로 정복동이 꼭 영웅이어서 혁명을 외치는 게 아니라, 그는 이미 그 시스템 밖으로 튕겨 나온 사람이다. 이 미묘한 균형 덕분에 작품은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어선다.

병맛 뒤에 숨은 ‘사회학’

웹툰은 에피소드식 구성 속에 다양한 인물을 쉴 새 없이 쏟아낸다. 마트 하나를 둘러싸고,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대기업 본사 직원, 지역 상인, 손님, 심지어 동네 정치인까지 얽히고설킨다. 각 인물은 사회 어딘가에서 본 듯한 캐리커처이면서도, 미묘하게 구체적인 디테일을 가지고 있다. "나도 저런 상사 밑에서 일해 봤는데", "동네 마트에 꼭 저런 사람 있다" 싶게 만드는, 현실과 병맛이 적절히 섞인 캐릭터들이다.

초반의 주요 갈등은 "망해가는 마트를 기어코 살리려는 사람들"과 "아예 망하게 놔두고 싶은 사람들"의 충돌처럼 보인다. 그러나 회가 거듭될수록, 이야기는 단순한 매출 경쟁에서 벗어나 '회사와 인간'의 관계로 옮겨간다. 누군가는 회사의 부품으로 살다 버려지고, 누군가는 그 부품을 갈아 끼우는 입장이며, 누군가는 그 시스템 전체를 뒤집어엎고 싶어 한다.

천리마마트는 이 충돌의 한복판에 세워진 실험장이다. 물론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는 직접 읽어 보는 편이 좋다. 중요한 건 이 웹툰이 마지막 순간까지 "정말로 값싼 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 아니었을까"라는 질문을 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트라는 공간이 상징적이다. 모든 것에 가격표가 붙고, 모든 것이 거래되는 곳. 그런데 거기서 거래되지 않는 가치를 찾으려 한다는 게.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가장 큰 매력은, 겉으로는 병맛 코미디를 내세우면서도, 그 안에 꽤 날카로운 사회 풍자를 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말단 마트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동은 사실 한국식 자본주의가 낳은 풍경들에 대한 거대한 패러디다. '망한 점포'는 구조조정과 효율성을 외치는 대기업 구조 속에서 언제든 폐점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업부를 연상시키고, 인사고과에서 밀려난 정복동은 "조직에서 애매하게 너무 똑똑해 불편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겉으로는 좌천이지만, 사실은 본사가 보기에도 제거하고 싶은 인물인 셈이다.

정복동이 천리마마트에 모으는 사람들은 한 명 한 명이 사회의 그늘에서 밀려난 이들의 축소판이다. 학벌·스펙 경쟁에서 탈락한 청년, 노조 활동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노동자, 고용 안정성 바깥으로 튕긴 비정규직들. 이들은 어디서나 "문제 인력" 취급을 받지만, 천리마마트에서는 ‘특이하고 귀한 인재’가 된다.

이 전환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웹툰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라는 질문을, 이 병맛 채용 과정을 통해 꾸준히 던진다. 마치 '기생충'이 반지하와 대저택의 대비로 계급을 이야기했다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본사와 지점, 정규직과 비정규직, 성공한 매장과 망한 매장의 대비로 같은 이야기를 한다. 다만 봉준호는 칼로 찌르고, 김규삼 작가는 슬랩스틱으로 때린다.

연출 톤은 기막히게 가볍고 어이없는데, 대화의 내용은 종종 뼈를 때린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이 "대체 여긴 왜 이렇게 비효율적이냐"고 불평하면, 정복동은 "회사에 헌신해 봐야 남는 건 뭐냐"고 되묻는다. 혹은 "이렇게 장사해서 망하면 어쩌냐"는 질문에 "망해도 사람은 남는다"고 받아치는 식이다.

엄청난 명대사처럼 포장하지 않아도, 이런 대사들은 한국 사회에서 조직과 일, 가성비에 시달리는 독자에게 묵직하게 박힌다. 병맛 개그의 탈을 쓴 채, 꽤 진지한 노동·자본 담론을 슬쩍 끼워 넣는 솜씨다. 마르크스가 개그맨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자본론을 썼을지도 모른다.

웃음의 스펙트럼, 개그의 정치학과 함께

개그의 결도 다양하다. 단순 슬랩스틱 코미디, 캐릭터의 과장된 리액션, 인터넷 밈을 활용한 말장난, 과한 상상력으로 밀어붙인 설정까지, 여러 층위의 웃음을 쓴다. 마치 재즈 연주자가 여러 음역을 오가듯, 작품은 가벼운 개그에서 씁쓸한 풍자까지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러면서도 주제 의식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수시로 정서를 환기한다.

천리마마트 직원들이 서로를 챙기는 장면, 본사에서 짤려 내려온 사람에게 "잘 왔다"며 자리를 내주는 장면, 손님이 거의 없는 가게에서 그래도 성실하게 일을 하며 자기 존엄을 지키려는 모습 등은, 웃음 뒤에 이상할 정도의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에서 했던 것처럼, 우스꽝스러움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건져내는 기술이다.

캐릭터 서사는 대체로 만화적 과장을 기본값으로 삼지만, 한 번씩 현실과 정확히 맞물리는 순간이 나온다. 예컨대, 본사에서 승진만 바라보던 문석구가 천리마마트의 '이상한 움직임'을 지켜보며 계속 흔들리는 과정은, 많은 직장인에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회사의 논리에 충실하게 살다 보니, 정작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해 왔는지 잊어버린 사람.

정복동은 그런 문석구에게 끊임없이 "너도 선택해야 한다"고 압박을 건다. 이 대립 구도 덕분에 작품은 단순 '밑바닥의 반란'이 아니라, 시스템 안팎의 사람들이 서로를 비추는 구조를 갖게 된다. 마치 '오피스'나 '파크 앤 레크리에이션' 같은 직장 시트콤이 일터를 무대로 인간 군상을 그렸다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한국식 재벌 구조와 비정규직 현실을 배경으로 같은 작업을 한다.

공간의 정치학: 마트라는 무대

작화 스타일은 깔끔하고 읽기 쉬운 선으로, 개그·감정·설정을 모두 편안하게 전달한다. 인물의 표정과 몸짓에 과장을 많이 얹어, 한 컷만 봐도 감정과 상황이 눈에 들어오게 구성했다. 마치 카툰 네트워크 애니메이션의 과장된 표정을 웹툰으로 옮겨놓은 것처럼.

천리마마트라는 공간도 중요한 무대다. 에스컬레이터, 계산대, 창고, 휴게실, 옥상 등, 마트의 여기저기가 에피소드마다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때로는 혁명 집회장이 되고, 때로는 피신처가 되고, 때로는 작은 연극 무대가 된다. 덕분에 독자는 "마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보는 기분을 얻는다. 마트는 더 이상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계급과 권력이 충돌하고 협상되는 미시정치의 현장이 된다.

직장인의 오아시스가 될 작품

매일 회사에서 숫자와 보고서에 쫓기며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은 직장인이라면, 천리마마트의 풍경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웹툰을 읽다 보면, "여기도 지옥이지만, 저기도 참 지옥이네" 하고 웃으면서도, 동시에 "그래도 저 정도로 엎어 볼 용기가 있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 보게 된다. 일종의 안전한 대리만족이자, 위험한 사상 실험이다.

사회 비판이나 노동 이슈에 관심은 있지만 무거운 책을 들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는 독자라면, 이 작품이 좋은 입구가 될 수 있다. 허탈한 병맛 개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체제와 인간, 효율과 존엄에 대한 질문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치 트로이 목마처럼, 이 웹툰은 코미디라는 포장 속에 비평적 사유를 숨겨 넣는다.

'실패해도 사람은 남는다'는 문장을 마음속에 품어 두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결국 망한 마트에서 시작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망했다'는 말이 더 이상 끝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망했는지, 누구와 함께 버텼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지켰는지가 훨씬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 감각을 한 번쯤 다시 확인해 보고 싶다면, 천리마마트의 자동문을 슬쩍 열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거기엔 싸구려 상품과 이상한 직원들이 있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도 있다. 망해도 괜찮다는 위로, 실패해도 남는 존엄, 그리고 자본주의가 놓치고 간 인간의 얼굴. 그게 천리마마트의 진짜 세일 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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