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브매거진=최재혁 밤늦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 한복판에서 젊은 남자들이 뒤엉켜 싸운다. 쇠파이프가 허공을 갈라 울컥 내려찍히고, 피와 빗물이 뒤섞인 아스팔트 위에 끝내 서 있는 사람은 두 명뿐이다. 훗날 서울 조직 세계의 판도를 갈라 놓는 두 전설, 기준과 기석이다.
네이버 웹툰 '광장'은 이 피비린내 나는 한 장면의 기억을 품은 채 15년을 훌쩍 건너뛰어, 이미 전설이 되어 사라졌던 한 남자의 귀환으로 문을 연다. 조직의 정점에서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잘라 판을 떠난 남자, 지금은 절름발이 중년으로 돌아온 기준이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거지 행색으로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하지만 활 대신 주먹을 들고.
전설의 귀환 "저 아저씨가 뭘 하겠어"
현재의 기준은 겉으로만 보면 그저 다리 저는 아저씨일 뿐이다. 허름한 차림, 때가 묻은 운동화,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 조직판의 젊은 깡패들은 그를 대놓고 무시한다. "저 아저씨가 뭘 하겠어"라는 눈빛이 공기처럼 떠다닌다. 마치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 앞에 선 늙은 브루스 웨인처럼. 하지만 오래된 보스와 원로들은 안다. 이 남자가 한때 서울 판을 반쪽 내던 싸움의 주인공이었고, 지금 자신들이 누리는 평화 같은 일상이 사실은 이 남자가 피로 쌓아 올린 균형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보스는 그런 기준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나 건넨다. 이제는 폭력 대신 장사로 먹고살고 싶은 친구의 레스토랑을, 한 번만 봐 달라는 것이다.
그 부탁을 받은 동생 기석은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3대 독자인 사장이 운영하는 그 가게는 돈 냄새는 나지만 장사는 엉망이다. 위생도, 동선도, 직원 관리도, 손님 응대도 하나같이 최악이다. 기석은 조직에서 단련된 '현장 감각'으로 가게를 싹 갈아엎으려 든다. 메뉴 구성부터 조명과 테이블 배치, 직원의 말투와 눈 맞춤까지 하나하나 지적하며, 사장에게는 '인간 세탁'이 먼저라고 일갈한다. 마치 고든 램지가 키친 나이트메어를 찍듯, 하지만 욕설 대신 주먹이 배경에 깔려 있는. 손님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는 연습을 시키고,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으라고 강하게 밀어붙인다. 말투는 거칠지만, 하는 행동만 놓고 보면 아주 현실적인 경영 컨설팅에 가깝다.
문제는 이 사장이 그런 현실 파악을 받아들일 인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어릴 때부터 돈과 권력에 둘러싸여 자란 데다, 누구에게도 진지한 제지를 받아 본 적 없는 인간. 마치 조커가 말한 "평생 누구한테도 한 대 안 맞아본 놈"처럼. 그는 기석의 지적을 조언이 아니라 모욕으로만 받아들인다. 특히 손님과 직원들 앞에서 체면이 구겨졌다고 느낀 순간, 그의 눈빛이 완전히 뒤집힌다. 몇 번의 신경전 끝에, 사장은 결국 조직 바깥의 폭력배를 사서 기석을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저 놈 좀 치워." 이 세계에서는 그 한마디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복수의 시작...침묵이 끝나는 순간
밤거리를 걷던 기석은 기습을 당한다. 어두운 골목에서 여러 명에게 에워싸인 채 무참히 두들겨 맞는다. 싸움 실력만 따지면 결코 쉽게 쓰러질 인물이 아니지만, 숫자와 기습, 뒤에서 작동하는 배신의 손은 그 모든 능력을 순식간에 무력화한다. 마치 대부에서 소니 콜레오네가 톨부스에서 당하듯. 결국 기석은 처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고, 이 사건은 조직 내에서도 그저 '사고' 정도로만 처리된다. "운이 없었다"는 말 한마디로 정리되는 죽음, 그렇게 동생이 지워지는 순간부터 '광장'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생의 시신 앞에서 기준은 묵묵히 서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반응이 없다.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는다. 다만 독자는 몇 컷 안에 느낀다. 이 사람 안쪽에서 무언가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마치 킬빌의 베아트릭스 키도가 병원 침대에서 깨어나는 순간처럼. 기준은 감정 폭발보다 먼저 머릿속에서 관계도를 그려 본다. 보스의 친구, 그 친구의 아들, 그를 둘러싼 행동대장과 실무진들. 동생을 죽인 손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그 위에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지 하나씩 짚어 나간다. 그리고 조용히 결심한다. "판을 한 번 다시 뒤집을 때가 왔다."
구조를 허무는 전략가, 15년 전 그날의 기억
기준의 방식은 단순한 분풀이가 아니다. 그는 곧장 사장을 찾아가 사적 보복을 하는 대신, 주변 구조부터 모조리 흔들기 시작한다. 레스토랑을 둘러싼 자금 흐름, 보호비 구조, 상권 배치, 그 위에 올라타 이득을 챙기는 조직의 라인까지. 말 그대로 도시 한복판 광장에 세워진 성을 밑동부터 허무는 작업이다. 마치 와이어의 오마르가 거리를 청소하듯, 하지만 총 대신 주먹과 전략으로. 다리는 이미 예전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지만, 머리와 손은 여전히 정확하다. 필요할 때는 과거 자신의 이름을 전설로 만들었던 폭력도 주저 없이 꺼낸다. 다만 이제 그의 주먹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 냉정한 계산 위에서만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회상으로 제시되는 15년 전 여의도 '광장' 싸움은 중요한 축을 이룬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서울 패권을 놓고 두 조직이 정면으로 부딪쳤던 그날, 기준은 단순히 주먹만 날렸던 깡패가 아니었다. 누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어느 타이밍에 밀어붙여야 하는지, 어떻게 상대의 허를 찌를지 설계하던 전략가였다. 마치 300의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필레 협곡을 선택했듯. 그 싸움에서 살아남아 전설이 된 뒤, 그는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끊어 잔혹한 세계에서 물러난다. 자신이 떠나야만 동생과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덜 피를 보며 살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생의 죽음은, 그의 희생과 타협이 결코 충분하지 않았음을 처절하게 증명한다.
현재의 기준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직판 전체가 서서히 술렁인다. 젊은 행동대장들은 "지금은 그냥 절름발이 아저씨 아니냐"며 허세를 부리지만, 오래된 세력은 서늘한 공포를 느낀다. 예전에 기준과 함께 광장에 섰던 자들은, 그가 다시 판에 등장했다는 소식만으로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살벌했던 그날 밤의 기억과 자신들이 저질렀던 선택들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마치 존 윅이 다시 총을 잡았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의 공포처럼. 웹툰은 과거와 현재의 조각을 번갈아 배치하면서, 한 사람의 복수가 어떻게 한 도시의 질서를 뒤흔드는지를 점점 선명하게 그려 나간다.

동시에 '광장'은 기준 주변 인물들의 삶도 세밀하게 잡아낸다. 동생을 잃고도 어쨌든 일상을 이어가야 하는 가족들, 조직 안팎의 눈치를 보며 생계를 잇는 후배들, 탑처럼 얽힌 권력 구조 속에서 나름의 생존 전략을 짜는 중간 보스들. 누구도 완전히 선하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악하지도 않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타협하고, 눈을 감고, 때로는 손을 더럽혀 살아간다. 기준의 복수는 이런 세계에서 "어디까지가 정의이고 어디부터가 또 다른 폭력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만든다.
K-웹툰 작가의 뛰어난 연출력
작품의 완성도를 떠받치는 첫 번째 축은 연출이다. 장르적으로는 전형적인 조직 액션 느와르지만, 작가는 속도 조절에서 상당히 다른 길을 택한다. 초반부터 피 튀기는 난투와 사이다 복수가 등장하지만, 동시에 꽤 많은 컷을 관계 설명과 심리 묘사에 할애한다. 기준이 주먹을 한 번 휘두르기까지 독자는 그의 과거, 동생과 보스의 사연, 중간 보스들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보고 난 뒤다. 마치 스코세이지가 대부분의 시간을 캐릭터 구축에 쓰고 마지막에 폭발시키듯. 그래서 한 방 한 방에 감정의 무게가 실리고, 싸움 장면이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오래 미뤄 둔 청구서를 결제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캐릭터 설계도 공을 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기준은 전형적인 먼치킨 주인공의 틀을 쓰지만, 그 강함을 과시 대신 책임처럼 짊어지고 있다. 언제든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폭력을 쓸 때마다 그 뒤에 따라올 피와 후폭풍을 먼저 계산한다. 마치 로건이 발톱을 꺼내기 전 한 번 더 생각하듯. 그래서 독자는 그의 주먹에만 도취되지 못한다. "저 정도까지 해야 하나"라는 불편함과 "그래도 저 정도는 해야 바뀐다"는 동의가 계속 충돌하면서, 특유의 중독적인 긴장이 생긴다.
조연들도 장식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첫 화에서 죽는 동생 기석은 이후에도 기준의 결정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기석을 둘러싼 춘식과 행동대장들, 15년 전 광장 싸움의 생존자들, 각 조직의 중간 보스들은 몇 컷만으로도 캐릭터가 살아난다. 기준을 대놓고 무시하던 젊은 세력이 그의 과거를 알고 서서히 태도를 바꾸는 과정은, '전설'이라는 이름이 실제 폭력보다 더 큰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눈앞의 힘보다 이야기가 덧씌운 이미지를 더 무서워한다는 점을, 이 웹툰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작화와 액션 연출 역시 강점이다. 좁은 골목, 식당, 모텔, 공사장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난투는 컷 분할과 시선 처리 덕분에 동선이 또렷하다. 인물이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고, 다음 패널에서 어디에 떨어지는지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독자가 머릿속에서 장면을 끊김 없이 재생할 수 있다. 마치 이창동이나 나홍진의 영화에서 보는 폭력 장면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무겁고 사실적인. 어두운 회암시의 톤 위에 피와 네온사인, 자동차 헤드라이트만 번쩍이는 색감은 90년대 한국 느와르 영화의 공기를 웹툰 포맷으로 옮겨온 듯한 인상을 준다.
한 남자의 피비린내 나는 악전고투
결국 '광장'은 누군가를 시원하게 패서 이기는 이야기라기보다, 잘못 세워진 판을 어떻게든 끝까지 밀고 가 보려는 한 남자의 악전고투에 가깝다. 그래서 이 웹툰을 추천하고 싶은 독자는 분명하다.
한국형 조직 느와르의 공기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예전 조폭 영화가 주던 쓸쓸한 정서를, 훨씬 더 치밀한 서사와 리듬감 있는 액션으로 다시 맛보고 싶다면 '광장'은 거의 최적에 가까운 선택이다. 친구, 비열한 거리, 신세계를 좋아했다면 필독.

"맞을 놈은 맞았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소망을 넘어서, 폭력과 복수의 끝에는 무엇이 남는지까지 보고 싶은 독자에게 어울린다. 기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카타르시스와 피로감, 통쾌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남는 건 통쾌한 박수갈채라기보다 "저렇게까지 해야만 조금 나아지는 세상이면, 애초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는 질문에 가깝다.
마음 한구석에서 오래 삭힌 분노와 회한을 건드려 주는 작품을 찾는 이들에게도 '광장'은 잘 맞는 선택이다. 읽고 난 뒤 며칠 동안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여의도 광장의 빗소리와, 절름거리며 걸어가는 기준의 뒷모습이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진짜 무서운 건 주먹이 아니라, 주먹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구나." 그 깨달음이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라면, 광장이라는 이름의 웹툰에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 볼 가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