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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기에 세상을 바로 잡는 남자 ‘네이버 웹소설 광마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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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협객’의 삶을 탐구하는 과정 누적 조회수 5,000만 회 기록한 대히트 작

[KAVE=최재혁 기자] 밤하늘 아래, 피 냄새와 술 냄새가 뒤섞인 싸구려 주점. 손님을 상대하던 점소이 이자하는 어느 순간, 자신이 언젠가 ‘광마’라 불리며 천하를 피로 물들일 사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과거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도, 앞으로 걸어갈 시간도 모두 일그러진다. 네이버 웹소설 유진성의 ‘광마회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천하를 뒤집어 놓은 광인이, 미쳐버리기 전의 시점으로 돌아와 버렸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다시 미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번에는 세상을 미치게 만들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이자하는 첫 생에서 이미 천하가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누구도 따라잡지 못하는 무공, 예측할 수 없는 광증, 그리고 검 끝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 하지만 그 미친 생의 끝에서 그가 얻은 것은 승리라기보다는 허무에 더 가까웠다. 세상을 뒤흔든 만큼, 자기 안도 산산조각 나 버린 인물. 그런 그가 눈을 뜨니,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피 묻은 검이 아니라 술상과 술병이다. 아직 무림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전, 작은 주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바로 그 시절로 돌아온 것이다. 날것의 욕망과 증오로만 움직이던 괴물이, 다시 평범에 가까운 몸을 손에 넣은 순간, 작품은 묘하게 씁쓸한 유머와 함께 두 번째 생을 시작한다.

평범하지 않은 ‘개과천선’

하지만 ‘평범한 일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주점이라는 공간 자체가 이미 무림의 변두리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강호의 인물들이다. 이름난 문파의 제자, 음지에서 움직이는 살수, 어디 소속인지 알 수 없는 고수들까지. 이자하는 점소이의 몸으로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도, 첫 생에서 쌓아 올린 감각으로 상대의 숨결과 기세를 읽어낸다. 말투, 걸음걸이, 술 마시는 방식만 봐도 어느 정도의 무공을 지녔는지 가늠하는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독자는 ‘이미 한 번 미쳐 본 자’의 시선으로 무림을 구경하게 된다.

이 세계의 시점 또한 흥미롭다. 우리가 무협에서 익숙하게 보는 구파일방, 명문정파 체계가 이미 완성된 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 혼란기다. 각 세력은 아직 이름도, 형식도 정리되지 않은 채 뒤엉켜 있고, 마도와 정파의 경계도 지금만큼 선명하지 않다. 이자하는 바로 이 과도기에 다시 떨어진다. 한 번의 생을 끝까지 살아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미래의 방향을 손에 쥔 채, 이제 막 태동하려는 세력과 인물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그가 훗날 ‘정형화된 역사’가 될 판을 어떻게 깔아 가는지 지켜보게 된다.

주요한 갈등은 이자하의 내적 싸움에서 시작된다. 첫 생에서 그는 광증에 휘둘려 수많은 이들을 죽였고, 결국 스스로도 무너졌다. 회귀한 뒤의 그는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래서 더욱 잔혹해질 수도 있고, 정반대로 달라지려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여전히 날카롭고 잔인하지만, 어긋난 결을 가진 이들을 보면 예전처럼 가볍게 베어 버리지 못한다. 과거에는 아무 생각 없이 죽여 넘겼을 이들을 이번 생에서는 곁에 두고 지켜보기도 한다. 놈들이 언젠가 자신을 배신해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더 깊이 개입하며 관계를 만들어 간다.

전생의 적이 이번 생에 ‘호형호제’?

인물 관계의 축도 독특하다. 이자하 주변에는 마교의 괴짜 고수들, 각 문파의 문제적 천재들, 세상에 마음을 닫고 산수만 바라보던 은둔 고수들까지 온갖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대부분 첫 생에서 이자하와 악연으로 얽혀 있거나, 혹은 이름 없이 스쳐 지나간 이들이다. 이번 생에서 그는 그런 인물들을 다시 마주한다. 다만 예전처럼 검을 바로 뽑는 대신, 그들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보려 한다. 언젠가 역사에 큰 이름을 남길 ‘삼재’ 역시 이 서사와 맞물려 등장한다. 천하를 뒤흔드는 세 명의 재앙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속죄가 아니라 세계의 형태를 바꾸는 거대한 변곡점으로 이어진다. 이 변곡점이 어디로 수렴되는지는, 직접 마지막까지 읽으며 확인하는 편이 훨씬 짜릿하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자하의 싸움은 단순한 대결 구도를 넘어선다. 과거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기에 광마가 되었는지, 그 선택을 만든 시대의 공기와 구조는 무엇이었는지를 하나씩 마주한다. 그는 자신의 광증을 단순히 ‘미친 성격’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광증은 어쩌면 세계가 사람을 몰아넣은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두 번째 생에서의 그는 적을 베면서도, 적이 된 사람의 사연을 끝까지 듣고, 때로는 그들을 살려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인다. 문제적인 인물들이 모여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그 세력이 후대의 역사를 바꿀 토대가 되는 과정은, 무협이라는 장르 안에서 보기 드문 장기적 설계다.

등장인물이 납득가게 만드는 어마무시한 필력

‘광마회귀’의 가장 큰 힘은 단순히 회귀물이라는 틀을 가져왔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수없이 소비된 회귀라는 장치를, ‘광인’이라는 캐릭터에 결합해 완전히 다른 뉘앙스로 끌고 간다. 대부분의 회귀 주인공들이 거리낌 없이 효율과 이득을 계산하는 쿨한 전략가와 가깝다면, 이자하는 한마디로 말해 정반대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이미 한 번 세상 꼭대기를 찍어 본 인물이지만, 여전히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버럭 화를 내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즉흥성이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이 된다.

이 즉흥성은 유진성 특유의 문체와 합쳐지면서 ‘광증’의 설득력을 만든다. 이자하의 독백은 종종 산만하고 두서없다. 한 문장에서 분노했다가, 다음 문장에서 허무를 이야기하고, 그다음에서는 식당 메뉴를 고민한다. 의식의 흐름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대사와 내면 독백이 계속 이어지는데, 문제는 이 흐트러진 생각조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서사적 흐름으로 회수된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이상한 농담처럼 던져졌던 대사가 후반부에 가서 인물의 과거와 맞물리며 새로운 의미를 얻는 순간, 독자는 ‘광인’의 언어가 사실은 치밀한 설계 위에 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계관 역시 한국 무협 웹소설 가운데서도 상당히 야심적인 편에 속한다. 이 작품은 특정 시대의 사건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훗날 다른 작품들에서 ‘당연한 전제’로 소비될 설정들의 기원 이야기를 보여 주는 쪽에 가깝다. 구파일방과 명문정파, 정마대전과 같은 클리셰들이 이미 굳어지기 전에, 누군가의 선택과 우연이 겹쳐져 하나의 ‘상수’로 고정되는 과정을 그린다. 나중에 다른 무협 작품에서 너무 당연하게 등장하는 문파와 무공, 세계의 규칙들이 사실은 이자하와 그의 주변인들이 남긴 나비효과의 결과물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지점이 이 작품의 묘미다. 독자가 일정 수준 이상 무협 클리셰에 익숙할수록 더 크게 웃고, 더 깊게 공감하게 되는 구조이기도 하다.

전투 묘사도 조금 결이 다르다. 많은 웹무협이 ‘경공–내공–검기’처럼 단계와 수치를 나열해 전투력을 보여 준다면, ‘광마회귀’는 그런 수치화된 서열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누가 더 강한지는 수련 연한이나 경지 이름이 아니라, 장면 속에서 드러나는 기세와 심리전, 싸움의 맥락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자하가 검을 한 번 뽑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이미 수많은 말과 표정, 분위기의 변화가 쌓여 있어서, 실제로 싸움이 벌어질 때는 몇 줄의 묘사만으로도 인물의 우열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덕분에 전투는 기술 설명보다 감정과 서사의 연장선에 가깝게 읽힌다.

그렇다고 작품이 항상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분량이 상당히 긴 작품이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스케일이 크게 벌어지는 대신, 초중반에 공들여 쌓아 올린 조연들의 서사가 다소 희미해지는 구간이 존재한다. 각자의 상처와 욕망을 지닌 인물들이 초반에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다가, 마지막 큰 판에서는 결국 배경처럼 물러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주인공과 ‘삼재’를 중심으로 서사가 수렴되는 구조 자체는 설득력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가 애정을 쏟았던 몇몇 캐릭터들이 마무리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분명 남는다.

또 하나의 장벽은 장르적 문법에 대한 익숙함이다. 이 작품은 무협 입문자에게 친절한 편이 아니다. 구파일방, 마도, 정마대전 등 한국 무협 웹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용어와 감수성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출발한다. 그래서 무협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이 세계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왜 이런 가치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 반대로 이미 여러 편의 웹무협을 읽어 온 독자라면, 기존 작품들이 ‘전제’로 사용하던 기호들이 하나하나 탄생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강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광마회귀’가 수많은 독자에게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결국 인물들이 지닌 인간적인 매력 덕분이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그와 악연으로 만나 동료가 되는 사람들, 잠깐 스쳐 가는 인물들까지 각자의 사연과 욕망을 지녔다. 어떤 이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이는 스스로를 용서하기 위해, 또 어떤 이는 그저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광마의 주변에 모여든다. 이들이 함께 웃고 싸우고 배신하고 화해하는 과정은, 무협이라는 장르적 장식을 걷어내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인간 군상을 그린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진짜 재미는 ‘천하제일인’이 되는 여정이라기보다, 한 번 미쳐본 인간이 다시 사람들 사이에 서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 있다.

삶에서 한 번쯤 ‘도망치듯 포기한 꿈’을 떠올린 적 있는 사람에게도 이 소설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공부든, 운동이든, 일상이든, 끝까지 가 보지 못한 채 어딘가에서 손을 놓은 기억이 있다면, 회귀한 이자하가 과거와 마주치는 장면들이 남의 일이 아니게 느껴질 것이다. 다시 돌아가도 결국 같은 선택을 할까, 아니면 조금은 다른 길을 걸을까. 그 질문을 붙든 채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과거와 작은 화해를 시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관계와 세계에 쉽게 지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광기 어린 유머’를 통해 묘한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너무 진지하게만 세상을 보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속 심마를 안고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경험은 생각보다 큰 해방감을 준다. 웃기다가도 문장 하나에 뜨끔하고, 피 튀기는 전투 한가운데서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을 몇 번이나 겪게 될 것이다. 그런 감정의 굴곡을 기꺼이 통과해 보고 싶은 독자라면, ‘광마회귀’는 분명 잊기 힘든 독서 경험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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