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VE=최재혁 기자] 아침 출근길, 지하철이 끊기고 버스는 꽉 막힌 사이, 한 고등학생이 자전거로 인도를 날아가듯 질주한다. 빨간 운동복에 뒤로 눕다시피 핸들을 꺾어 코너를 돌고, 간식을 훔쳐 먹다 걸리기도 하고, 길 가는 노인을 잡아끌어 교통사고를 막기도 한다. '스파이더맨'이 뉴욕 빌딩 사이를 날아다닌다면, 진모리는 서울 골목을 자전거로 날아다닌다.
그 와중에도 입 가장자리는 설렁설렁 웃음이 떠 있다. 네이버 웹툰 '갓 오브 하이스쿨'의 첫인상은 이 한 장면으로 설명된다. "대충 사는 것 같은데, 싸움만큼은 미친 듯이 잘하는 놈." 주인공 진모리는 그렇게 화면에 뛰어든다. '나루토'의 나루토가 "나는 호카게가 될 거야"라고 외쳤다면, 진모리는 "나는 강한 놈이랑 싸우고 싶어"라고 웃는다. 더 단순하고, 더 순수하고, 더 위험하다.
가장 단순한 설정, 가장 폭발적인 전개
이야기의 골격은 '드래곤볼'의 천하제일무술대회만큼이나 단순하다.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모아 '갓 오브 하이스쿨'이라는 격투 토너먼트를 연다. 종합 격투기, 전통 무술, 스트리트 파이트 등 싸움이라면 종류 안 가리고 각자의 필살기를 들고 나와 겨룬다. 이긴 자에겐 소원이 하나 주어진다. 죽은 친구를 살려달라든지, 돈, 명예, 복수, 무엇이든.
진모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동기다. "그냥 강해지고 싶다." '원펀맨'의 사이타마가 "취미로 영웅을 한다"고 말했듯, 진모리는 "재미로 싸운다"고 말한다. 이유도 묻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웃고, 누가 센지 궁금해서 몸이 먼저 나간다. 옆에는 반듯한 안경 속에 주먹을 숨긴 한대위, 집안 가업을 잇기 위해 검을 잡은 유미라가 붙는다. 이 셋이 초반부의 삼총사다. '나루토'의 7반, '원피스'의 밀짚모자 해적단처럼.
처음 경기는 교실, 운동장, 체육관 같은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진다. '스트리트 파이터'의 1라운드처럼 친근하다. 그러나 선수가 한 명씩 탈락하고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싸움의 규모가 달라진다. 단순한 주먹질 대결이던 토너먼트는 어느 순간부터 '차력'과 '초능력'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경기장은 말 그대로 신화와 종교, 설화가 뒤섞인 전장으로 변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차력'이다. 신, 요괴, 영웅, 전설 속 존재의 힘을 빌려 쓰는 능력. '페르소나' 시리즈가 페르소나를 소환하듯, 이 웹툰의 캐릭터들은 신화적 존재를 소환한다. 누군가는 중국 신선의 힘을, 누군가는 한국 장군의 권능을, 또 누군가는 괴물의 형상을 끌어와 싸운다. 현실의 고등학생 몸에 전 세계 신화가 장착되는 셈이다. '페이트' 시리즈의 영령 소환 시스템을 고등학생 격투기에 적용한 것 같은 느낌.

진모리는 처음에는 순수한 육체만으로 싸운다. 상대가 화려한 기술과 차력으로 폭풍을 일으켜도, 그는 발로, 주먹으로, 손가락 하나로 반격한다. '원펀맨'의 사이타마가 주먹 하나로 괴물을 때려잡듯, 진모리는 발차기 하나로 신급 존재를 때려잡는다. 오롯이 '손맛'에 의존하는 전통격투 하이브리드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초반 전투의 재미는 "초능력자들을 맨몸으로 패는 미친 고딩"에게서 나온다. '블리치'의 이치고가 영력으로 싸운다면, 진모리는 근력으로 싸운다. 하지만 토너먼트가 깊어질수록, 이 세계에서 단지 물리력만으로 버티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조금씩 드러낸다. 그러면서 진모리의 정체와 과거, 그리고 그가 가진 힘의 출처가 서서히 밝혀진다.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고등학교 격투 대회'에서 벗어나, 신과 인간, 국가와 조직이 뒤엉킨 전쟁으로 확장된다. '헌터X헌터'가 헌터 시험에서 키메라 앤트 전쟁으로 확장됐듯, '갓 오브 하이스쿨'도 학생 토너먼트에서 신들의 전쟁으로 확장된다.
세계관의 인플레이션, 교실에서 우주로
무대는 점점 커진다. 특정 도시나 경기장을 넘어, 하늘과 땅, 다른 차원까지 등장한다. 정부와 비밀 조직, '녹스'라 불리는 종교 집단, 국가 최강 격투가들로 이루어진 '식스' 같은 집단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나루토'의 아카츠키, '원피스'의 칠무해처럼. 이들은 각자 정치적·종교적 목적을 위해 갓오하 대회를 이용하거나 파괴하려 든다.
토너먼트는 단순한 쇼가 아니라, "누가 세상의 룰을 새로 쓸 것인가"를 겨루는 전초전이 되어간다. 그 한복판에 격투광 고등학생 셋이 휩쓸린다. 진모리는 '드래곤볼'의 손오공처럼 세계의 운명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친구를 지키고 싶은 한 소년일 뿐이다.
곁가지 이야기들도 꽤 풍성하다. 유미라는 가문 내력과 검술을 둘러싼 부담, '집안의 검을 지킬 마지막 후계자'라는 운명과 맞선다. '귀멸의 칼날'의 탄지로가 가족의 복수를 위해 싸웠다면, 유미라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싸운다. 한대위는 병든 친구를 살리기 위해 싸움에 참여했다가, 점점 더 큰 스케일의 선택 앞에 선다.
이 외에도 유도가, 태권도가, 권투, 가상의 무술까지 각양각색 캐릭터들이 각자 나름의 사연과 스타일로 등장한다. 어떤 이는 초반에 웃기게 등장했다가, 훗날 중요한 국면에서 다시 부활해 강력한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드래곤볼'의 야무챠나 텐진반처럼. 초기에 뿌려둔 캐릭터 씨앗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계속 회수되는 구조다.

결말부로 다가갈수록 세상은 'DOS 게임'이 아니라 'FF7'이나 '엘든 링' 같은 대형 콘솔 RPG처럼 변한다. 도시 한복판에 신화 속 괴물이 떨어지고, 하늘에 이세계의 문이 열리며, 신과 비슷한 존재들이 서로의 신념을 앞세워 충돌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최종 전투를 고등학생들이 벌이는 것 같은 스케일.
인간과 신이 섞인 전쟁은 과장이 아니라 정말 '갓 오브 하이스쿨'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커진다. 그 와중에도 진모리는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한다. "난 그냥, 친구들과 함께 싸우고 싶을 뿐인데." 거대한 신화적 전투 속에서도, 이 만화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건 '고등학생의 우정과 성장'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사다.
'원피스'의 루피가 "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보다 "내 동료를 지킨다"를 더 중요하게 여기듯, 진모리도 "최강이 되는 것"보다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이후의 선택과 결론은 직접 웹툰을 끝까지 따라가 보길 권한다. 스케일만 큰 싸움이 아니라, 나름의 감정적 마침표를 준비해 둔 작품이라서다.
에너지의 폭발...신화의 대연합
'갓 오브 하이스쿨'의 가장 큰 힘은 한마디로 "에너지"다. 전통 격투 만화와 소년배틀물의 장점을 그대로 물려받되, 웹툰이라는 매체에 맞게 속도와 리듬을 재구성했다. '드래곤볼'의 기술, '원피스'의 모험, '나루토'의 성장을 한국 웹툰 스타일로 재해석한 것.
세로 스크롤로 읽히는 구조를 활용해 펀치와 킥, 점프의 궤적을 크게 뽑아내고, 한 페이지를 거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 "쓸어내리듯 보는 액션"을 구현한다. 캐릭터 몸이 공중에서 회전할 때, 독자는 스크롤을 내리면서 그 회전을 함께 따라 내려가게 된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애니메이션을 재발명했다면, '갓 오브 하이스쿨'은 웹툰 액션을 재발명했다. 종이책에서는 프레임 나누기로 해결하던 움직임을, 웹에서는 길이로 풀어낸 셈이다.
작화 스타일도 흥미롭다. 초반에는 비교적 단순하고 가벼운 선으로 캐릭터의 표정과 동세를 살린다.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쩍 벌어지는 SD(슈퍼변형) 스타일과 진지한 얼굴이 자유롭게 교차한다. '은혼'이 개그와 시리어스를 오가듯, '갓 오브 하이스쿨'도 코미디와 액션을 오간다.
그런데 중요한 대결, 특히 후반부 대전에서는 선이 날카로워지고 근육, 충돌, 충격파 표현이 훨씬 더 치밀해진다. 같은 캐릭터가 장난치는 장면과 싸우는 장면에서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내는 방식이다. '진격의 거인'이 일상과 전투 장면의 작화 밀도를 다르게 가져갔듯. 덕분에 개그와 진지함의 스위치가 확실하게 구분되면서도, 이질감 없이 이어진다.
세계관 설계도 소년만화식 과장을 전제로 하지만, 나름 탄탄하게 구축돼 있다. 차력이라는 설정으로 전 세계 신화와 전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고, 그것을 국가 간 힘겨루기, 종교와 이념 대립, 개인의 욕망과 연결한다. '페이트' 시리즈가 영령을 소환했다면, '갓 오브 하이스쿨'은 신들을 소환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국가의 힘'을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또 다른 이는 가장 사적인 이유(사랑, 복수, 가족)를 위해 신의 힘을 빌린다. 같은 차력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이 설정은 단순한 전투 스킬을 넘어 캐릭터 인격의 확장처럼 작동한다. '스탠드'가 그 사람의 정신을 반영하듯, 차력도 그 사람의 본질을 반영한다.
캐릭터 서사 측면에서 보면, 진모리·한대위·유미라 삼각축의 균형이 초반부를 탄탄하게 끌고 간다. 세 사람 모두 "세상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사명을 가진 게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지키고 싶은 구체적인 누군가가 있다. 친구, 가족, 가문. 싸움이 거대해질수록 이 사적인 이유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벤져스'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싸운다면, 이들은 옆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특히 한대위의 선택과 성장, 유미라가 가문의 무게를 견디며 "내가 직접 선택하고 싸우겠다"고 선언하는 과정은, 소년향 배틀물 속에서 의외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나루토'의 사스케가 복수를 선택했다면, 유미라는 책임을 선택한다.
연출과 서사의 속도도 장점이다. '갓 오브 하이스쿨'은 크게 보면 한 번도 완전히 쉬는 구간이 없다. 대회, 대회 뒤 정리, 곧바로 다음 위기, 또 다른 대결로 이어지는 구조라, 매주 연재 당시에는 "정신없이 재밌다"는 반응이 많았다. '24'가 실시간으로 달렸다면, '갓 오브 하이스쿨'은 스크롤 타임으로 달린다.
대신 호흡을 길게 뽑고 인물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장면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건 장단점이 동시에 된다. 시원한 전개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최고의 강점이지만, '베르세르크'나 '강철의 연금술사'처럼 인물의 심리 묘사나 감정선을 오래 곱씹고 싶은 독자에게는 조금 가벼운 인상을 남긴다.
‘한국식 소년만화’의 탄생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식 소년만화의 완성형’이라는 점에 있다. 한국 웹툰 시장에서 본격 배틀·소년 장르가 한동안 애매하게 취급되던 시기에, '갓 오브 하이스쿨'은 장수 연재를 이어가며 고유 팬덤을 만들었다. 한국 무술, 태권도·합기도 같은 요소를 적절히 섞으면서도, 일본식 점프 배틀물의 쾌감과 미국식 히어로물의 스케일을 혼합한 느낌이랄까.
'김치찌개'에 '스시'와 '햄버거'를 넣은 것 같은 묘한 퓨전. 이 절묘한 혼종성이 해외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될 정도의 인기를 끌게 만든 동력이다. 2020년 크런치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전 세계에 소개됐고, '기생충'이나 'BTS'와 함께 K-콘텐츠의 파급력을 증명했다.
논리와 개연성을 촘촘히 따지기보다, 컷 하나하나의 박력과 기술 이름이 주는 전율, '원히트 역전'의 짜릿함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면, 진모리의 발차기와 차력전은 더없이 맞춤한 선택이 될 것이다.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에너지파를 쏘는 장면, '원펀맨'의 사이타마가 주먹을 날리는 장면을 보며 짜릿함을 느꼈다면, 진모리의 발차기도 같은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또, 한국 웹툰판에서 제대로 된 소년배틀물을 찾기 어려워 헤매는 사람에게도 '갓 오브 하이스쿨'은 좋은 기준점이 된다. 이 작품을 읽어두면, 이후 나오는 다른 액션·배틀물들이 어떤 점에서 이 작품을 의식했는지, 혹은 벗어나려 하는지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생긴다.

마치 '드래곤볼'을 읽고 나면 모든 배틀만화가 '드래곤볼'과 비교되듯, '갓 오브 하이스쿨'도 한국 배틀 웹툰의 기준점이 된다.
갓 오브 하이스쿨'은 중간에 방향을 틀고 안전하게 내려앉는 대신, 끝까지 인플레와 신화를 향해 달리는 작품이다. '거인의 별'이나 '내일의 죠'가 스포츠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듯, '갓 오브 하이스쿨'은 격투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그래서 어떤 독자에게는 산만하고 과장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독자에게는 "한 작품이 할 수 있는 만큼의 광기를 다 보여준 만화"로 남는다. 만약 당신이 이야기의 세세한 완벽함보다, 한 작가가 가진 에너지를 끝까지 쏟아부은 결과물을 보고 싶어 하는 타입이라면, 이 웹툰은 분명히 인상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진모리가 링 위에서 웃으며 첫 발을 내딛는 장면을 만나는 순간, 아마 당신도 알게 된다. "아, 이건 끝까지 가볼 수밖에 없는 타입의 이야기구나" 하는 걸. 그리고 몇백 화를 읽고 난 뒤, 당신은 말할 것이다. "야, 진짜 끝까지 갔네." 그게 바로 '갓 오브 하이스쿨'의 매력이다. 발차기 하나로 시작해서 우주를 구하는 이야기. 그보다 더 소년만화다운 게 어디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