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 in Hell, Psychopath": Why K-Movie Fans Are Review-Bombing a 500-Year-Old Royal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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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AM PARK
By SUNAM PARK 편집장

How the box office hit The King's Warden triggered a wave of 'digital shamanism' and historical revenge on map apps.

"Burn in Hell, Psychopath": Why K-Movie Fans Are Review-Bombing a 500-Year-Old Royal Tomb [Magazine Kave=Park Sunam]
"Burn in Hell, Psychopath": Why K-Movie Fans Are Review-Bombing a 500-Year-Old Royal Tomb [Magazine Kave=Park Sunam]

[Magazine Kave=박수남 기자] 2026년 2월, 대한민국의 디지털 지도 위에서 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전례 없는 역사적 충돌이 발생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조선 제7대 왕 세조의 능인 '광릉(光陵)'의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 검색 결과에는 주차 공간의 편의성이나 주변 경관에 대한 감상 대신, "어떻게 친조카에게 그럴 수 있느냐", "사이코패스야 영원히 지옥에 떨어져라"라는 날 선 1점짜리 '별점 테러(Review-bombing)'와 감정적인 질책들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단순한 여행 리뷰가 아닌, 대중적인 역사적 원한의 공개적 청산 작업이 디지털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진 것이다.  

이 기묘하고도 강렬한 현상의 진원은 2026년 2월 4일 개봉하여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장항준 감독의 사극 영화 〈왕과 사는 남자(The King's Warden)〉이다. 1453년 계유정난이라는 참혹한 권력 찬탈의 역사 속에서,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어 17세의 나이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단종의 마지막 나날들을 재구성한 이 영화는, 대중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역사적 트라우마를 격렬하게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해외 매체들은 이러한 한국의 독특한 현상을 단순히 인터넷상의 '악플 문화'나 글로벌 게임 산업에서 흔히 관찰되는 '소비자 불매 운동(Consumer Activism)'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디지털 지도를 뒤덮은 분노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화선이 된 영화의 서사와 그 파급력을 해부해야 한다. 쇼박스가 배급하고 온다웍스와 B.A.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한 〈왕과 사는 남자〉는 팬데믹 이후 좀처럼 이전의 활력을 되찾지 못하던 한국 영화계의 설 연휴 극장가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 온 장항준 감독은 자신의 첫 사극 연출작인 이 영화에 대해 "우리가 '실현되지 않은 정의'를 어떻게 마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며, 끝까지 충절을 지킨 엄흥도를 기억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이 영화의 서사는 거시적인 궁중 암투가 아니라, 철저히 고립된 개인의 미시적인 고통과 연대에 집중한다. 영화는 권력의 정점에서 하루아침에 강원도 영월의 첩첩산중인 청령포로 추방된 소년 왕 단종(박지훈 분)과, 유배 온 귀족을 통해 마을의 경제를 살려보려다 졸지에 목숨을 건 위험에 처하게 된 속물적인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의 만남을 그린다.  

이 서사가 관객의 가슴에 불을 지핀 가장 강력한 도구는 바로 배우의 '시선'이다. 박지훈이 연기한 단종의 눈빛은 왕으로서의 위엄이나 신파적인 과장이 아니라, "가까스로 숨긴 두려움과 분노"라는 17세 소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투명하게 전달한다. 영화는 대사보다 시선을 통해, 그 눈빛을 마주한 인간이라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연민과 분노를 관객의 내면에 전이시킨다. 박지훈은 이 역할을 위해 무려 15킬로그램을 감량하고 촬영 중 물조차 마시지 않는 극단적인 육체적 변화를 감행하며, 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바스러져가는 소년의 육신을 스크린에 현현시켰다.  

이러한 시각적, 감정적 진정성은 즉각적인 흥행으로 이어졌다. 영화는 설 연휴 전날에만 537,19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020년 3월 이후 설 연휴 최고 일일 관객 수 기록을 갈아치웠고, 개봉 몇 주 만에 누적 관객 수 440만 명을 돌파하며 2026년 최고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영화가 세대를 초월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12세 이상 관람가인 이 작품은 40대 관객이 전체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중장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설 연휴에 극장을 찾아 직접 관람할 정도로 범국가적인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가 극장 안에서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면, 극장 문을 나선 관객들은 이 억눌린 슬픔과 분노(한·恨)를 배출할 물리적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500년 전의 역사적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21세기의 디지털 도구인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집어 들었다.  

이러한 집단적 행위는 철저하게 권력의 가해자와 희생자를 구분하여 상반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계유정난의 주동자이자 조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조의 능인 남양주 '광릉'은 분노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에는 광릉에 대한 1점짜리 별점과 함께 가해자를 직접 향한 저주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이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건조한 평가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현재의 권력자를 향한 규탄에 가까웠다.  

분노의 화살은 세조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배우 유지태가 압도적인 체격과 카리스마로 연기한, 세조의 왕위 찬탈을 기획한 천재적이고도 잔혹한 책사 한명회의 묘(충남 천안 소재) 역시 폭격의 대상이 되었다. 리뷰어들은 그를 '반역자', '수치'라고 칭하며 영화 속 한명회의 스틸컷과 각종 밈(meme)을 조롱의 의미로 함께 업로드했다.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치닫자, 한국의 주요 지도 플랫폼 중 하나인 카카오는 특정 장소에 본래의 목적과 무관한 리뷰가 쏟아질 때 이를 임시로 가려주는 '안전 모드(Safe Mode)' 알고리즘을 발동해야만 했다. 이는 현대의 기술 자본이 역사적 분노를 알고리즘으로 통제하려는 흥미로운 단면을 보여준다.  

반면, 억울하게 희생된 단종의 능인 강원도 영월의 '장릉'은 완전히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장릉의 디지털 지도 페이지는 영화를 보고 감동한 팬들의 5점 만점 릴레이와 애도의 메시지가 쏟아지며, 일종의 사이버 성소이자 순례지로 변모했다. 이러한 극명한 대비는 대중이 단순히 영화에 열광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역사적 가해와 피해의 저울을 다시 맞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글로벌 독자들과 해외 매체들은 특정 좌표에 쏟아지는 이러한 '리뷰 폭탄(Review-bombing)'을 주로 소비자 행동주의나 인터넷 하위문화의 발현으로 해석하곤 한다. 실제로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서는 문화적 정통성이나 정치적 입장에 불만을 품은 특정 국가의 유저들이 집단으로 별점 테러를 가하는 일이 빈번하며, 출판계에서도 이념적 이유로 출간 전부터 별점 테러가 가해지는 '북래시(Booklash)'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집단적 디지털 행동주의의 강력한 토양을 갖추고 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의 게임 산업을 뒤흔든 '게이머 행동주의(Gamer Activism)'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당시 한국의 게이머들은 스스로를 '게이머-소비자(Gamer-Consumers)'로 규정하며, 게임사의 확률형 아이템 조작이나 가상 자산 가치의 변동성에 분노하여 온라인 별점 테러, 트럭 시위, 크라우드 펀딩, 결제 영수증 인증 등을 통해 집단적 저항을 펼쳤다. 이들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자신들의 막대한 금전적, 시간적 투자를 근거로 '정당한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 왕릉에 가해진 이번 별점 테러는 기존의 '게이머-소비자' 모델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질적인 진화를 보여준다. 분노의 원동력은 가상 자산의 가치 하락이나 기업의 기만이 아니다. 투쟁의 대상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현대의 주식회사가 아니라 500년 전의 절대 군주다. 이들은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영수증을 인증하는 대신, 영화를 통해 뼈저리게 체감한 역사적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역사가(Citizen-Historians)'로 각성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의 기저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적인 시위 문화와 정치적 맥락이 깔려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젊은 세대가 단종의 비극에 이토록 깊이 감정이입 하는 이유를 현대 사회의 세대 갈등에서 찾는다. 즉, 탐욕스러운 기성세대(세조와 한명회)가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젊은 세대(단종)의 권리와 미래를 억압하고 빼앗았다는 은유가 현대 한국 사회의 청년들이 느끼는 무력감 및 박탈감과 강렬하게 공명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디지털 지도의 별점을 깎아내림으로써, 과거의 부패한 권력자뿐만 아니라 현재 자신들을 억압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향해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해외 매체가 전혀 다루지 못한, 그리고 글로벌 독자들이 가장 매혹될 만한 가장 신선하고도 독창적인 해석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무속에서 '굿'은 억울하게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의 맺힌 '한(恨)'을 풀어주며, 동시에 그 고통을 유발한 자에게는 징벌의 기운을 보내는 우주적이고도 영적인 퍼포먼스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스크린과 극장은 이 시대의 거대한 굿판이자 무당의 역할을 수행했다. 영화는 17세 소년의 "가까스로 숨긴 두려움과 분노"를 스크린 위로 부활시켰고, 관객들은 이 영적인 소환 의식의 목격자가 되었다.  

그러나 제단이 없는 현대의 대중은 이 굿을 완성하기 위해 디지털 인프라로 눈을 돌렸다. 스마트폰 화면 속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은 단순한 GPS 기반의 내비게이션 도구를 넘어, 산 자와 죽은 자가 교감하는 '사이버 성소'로 기능 전환을 일으켰다. 장릉에 5점의 별점과 위로의 댓글을 남기는 행위는 영안실에 향을 피우고 헌화하는 가상적인 애도의 의식이자, 단종의 넋을 달래는 '살풀이'다. 반대로 세조의 능에 1점의 별점과 저주를 쏟아내는 것은 가해자의 영혼이 영면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주술적 타격이다.  

유저들이 스마트폰 유리에 손가락을 대고 세조의 무덤 좌표 위에 분노의 텍스트를 입력할 때, 그들은 물리적인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1457년 영월 땅에 버려진 소년의 식어가는 몸을 영적으로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크고 화려한 능(광릉)을 조성해 가해자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역사의 승리자로 기록했지만, 대중은 디지털 지도를 대항-아카이브(Counter-archive)로 삼아 그 권력의 기념비를 철저히 훼손하고 해체한다. 가해자의 책임은 희생자를 기억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한국의 디지털 생태계 안에서 완벽하게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내의 역사적, 주술적 분노는 영화라는 강력한 매개체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AMC 극장을 비롯한 해외 상영관에 〈왕과 사는 남자〉가 걸리면서, 조선 시대의 복잡한 정치사를 전혀 알지 못하는 글로벌 관객들조차 이 디지털 추모와 분노의 연대에 동참하고 있다.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Reddit)과 트위터에서는 영화의 플롯과 조선 시대의 계보를 묻고 답하는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 레딧 유저는 조선 시대의 왕위 계승 계보(세종-문종-단종-세조)를 세밀하게 분석하며, 단 3년 만에 폐위된 10대 소년 왕의 비극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글로벌 관객들은 유지태가 연기한 한명회의 전설적인 악행에 경악하고, 박지훈이 연기한 단종의 비극적인 운명에 눈물을 흘린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문화적 번역의 기제가 작동한다. K-pop 그룹 워너원(Wanna One) 출신이자 글로벌 OTT 흥행작 〈약한영웅 Class 1〉으로 이미 막강한 해외 팬덤을 보유한 박지훈의 존재는, 해외 관객들이 낯선 조선의 역사에 즉각적이고도 깊은 정서적 투자를 하게 만드는 완벽한 가교 역할을 했다. 글로벌 독자들은 한국의 '한(恨)'이라는 고유한 정서를 셰익스피어 비극에서나 볼 법한 보편적인 왕위 찬탈과 희생의 서사로 치환하여 소화하고 있다. 비록 이들이 한국어로 네이버 지도에 직접 별점 테러를 가하지는 않더라도, 영미권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단종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세조의 잔혹함을 규탄하는 행위는 한국 네티즌들의 사이버 무속 의식을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글로벌 영가(靈歌)'의 메아리와 같다.

그러나 이 뜨거운 현상을 냉정한 학술적, 역사적 잣대로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모순이 발견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의 분노를 이끌어낸 서사의 많은 부분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했다"고 선언하며 다큐멘터리가 아님을 명시하지만, 일부 역사가들은 이 상상력이 역사적 공간과 인물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했다고 지적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공간의 왜곡이다. 실제 단종이 유배되었던 영월의 청령포는 삼면이 깊은 강으로 둘러싸이고 뒤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배가 없이는 결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육지 속의 감옥이었다. 역사 속 단종은 철저히 고립된 채 백성들과의 교류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단종은 자유롭게 강을 건너 백성들을 만나고, 심지어 유배지를 벗어나 마을 관아를 방문하기도 한다.  

인물에 대한 묘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를 속물적이고 유쾌한 '촌장'으로 그리며 그와 단종 사이의 애틋한 유사 부자(父子) 관계를 부각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 엄흥도는 마을을 대표하는 촌장이 아니라 지방 토착 세력을 관리하는 하급 관리인 '호장(戶長)'에 가까웠으며, 그가 단종의 유배 시절에 깊이 교류했다는 기록은 없다. 역사 속 엄흥도의 충절은 단종이 사약을 거부하고 목이 졸려 죽은 뒤(혹은 자살한 뒤), 강물에 버려진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세조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몰래 시신을 거두어 암매장하고 평생을 숨어 지낸 그 묵묵하고도 결사적인 사후 행위에 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단종이 스스로의 겸손함을 강조하며 "노비가 측우기를 발명했다. 내 할아버지(세종)와 아버지(문종)는 그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장영실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으나, 실제 측우기는 1441년 문종(당시 세자 이향)이 직접 발명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오류와 왜곡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대중은 여전히 영화의 서사에 열광하며 별점 테러라는 집단행동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이는 대중이 텍스트로 박제된 승자의 기록(조선왕조실록)보다, 허구를 통해서라도 희생자의 고통을 어루만지려는 '감정적 진실'을 더 우위에 두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은 철저히 가해자(세조)의 시선에서 쓰인 승리자의 전리품이다. 그 차갑고 건조한 기록 속에서 단종은 그저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여 제거된 수많은 정적 중 하나일 뿐이며, 그가 느꼈을 공포와 외로움은 철저히 소거되어 있다. 장항준 감독이 영화적 허용을 통해 단종을 고립된 섬에서 꺼내어 엄흥도라는 가상의 아버지 품에 안겨준 것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려는 오만이 아니라 잔혹한 역사가 허락하지 않았던 최소한의 온기를 소년에게 돌려주려는 살풀이적 시도다.  

대중은 공식 기록의 차가움에 저항하며 영화가 제시한 따뜻한 허구를 기꺼이 진실로 채택한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망자의 목소리를 빌려 억울함을 토해내는 것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유가족에게 완벽한 치유의 진실이 되듯, 대중은 영화 속 픽션을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받고 있는 것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촉발한 조선 왕릉에 대한 디지털 별점 테러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역사적 트라우마와 무속적 세계관이, 최첨단 IT 인프라와 K-콘텐츠의 글로벌 파급력을 만나 탄생시킨 21세기형 '디지털 진혼곡'이다.

대중은 영화를 통해 부활한 500년 전 소년 왕의 억울한 눈빛을 목격했고, 그 즉시 스마트폰을 무당의 방울처럼 흔들며 디지털 지도를 거대한 굿판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피해자의 능에 별점 만점의 꽃을 바치고 위로를 건네며 사이버 성소를 구축하는 한편, 가해자의 무덤에는 별점 1점의 십자포화와 저주의 텍스트를 쏟아내며 그들의 안식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카카오맵이 알고리즘으로 이를 막아서려 한 것은 기술 자본이 역사적 분노를 통제하려는 현대판 검열의 단면을 보여주었으나, 흐르는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아가 이 현상은 국내를 넘어 레딧과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하며, K-콘텐츠가 품고 있는 '한(恨)'의 정서가 어떻게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보편적인 권력 찬탈과 희생의 서사로 공명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이는 과거 게임사들의 횡포에 맞서 '가상 자산'의 권리를 주장하던 게이머 행동주의가, 이제는 역사적 정의와 윤리를 묻는 '시민-역사가'의 초국적 연대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비록 영화가 단종의 유배 생활이나 엄흥도의 실체에 대해 역사적 왜곡을 가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대중에게 중요한 것은 승자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의 무미건조한 팩트가 아니었다. 그들은 차가운 팩트 대신, 소외되고 버려진 희생자의 몸을 영적으로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영화적 허구의 따뜻함을 선택했다.  

대중은 500년 전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져야 했던 17세 소년의 얼굴을 2026년의 디지털 공간 위로 끄집어올렸다. 이 기묘하고도 숭고한 사이버 무속의 의식은, 권력자들이 아무리 화려한 무덤을 짓고 자신들의 죄를 역사 속에 묻으려 해도, 살아남은 자들이 기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가해자의 책임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는 가장 통쾌하고도 준엄한 진리를 전 세계에 선언하고 있다. 디지털 지도는 이제 길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가장 강력한 대항의 기념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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