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Kave=김정희 기자]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 드라마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JTBC '눈이 부시게'. 이 작품은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를 넘어 삶과 시간, 그리고 기억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치매라는 무거운 소재를 시간 이탈이라는 독특한 장치로 풀어낸 이 드라마는 방영 당시 수많은 시청자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드라마는 스물다섯 혜자(한지민)가 어느 날 갑자기 70대 노인(김혜자)으로 변해버리는 충격적인 전개로 시작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의 부작용처럼 보이지만, 극 후반부에 이르러 알츠하이머를 앓는 혜자의 기억 왜곡임이 밝혀진다. 이 극적인 반전은 단순한 서술 트릭이 아닌, 치매 환자가 겪는 혼란스러운 시간 감각을 시청자가 체험하게 만드는 탁월한 연출적 장치로 기능한다.
평범해서 더 위대한, 우리네 삶의 자화상
'눈이 부시게'가 가진 힘은 '평범함의 미학'에 있다. 극 중 1970년대의 혜자와 준하(남주혁)는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묵묵히 하루를 살아낸다. 사업 실패와 생활고, 시집살이 등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는 거창한 영웅 서사가 아닌, 우리 부모 세대가 온몸으로 감내해 온 생존의 기록이다. 드라마는 특별한 성취가 없더라도, 그저 주어진 하루를 살아낸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배우 김혜자의 연기는 이 작품의 백미다. 그는 몸은 70대지만 마음은 20대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후반부 알츠하이머 환자의 텅 빈 눈빛까지 섬세하게 그려냈다. 한지민 역시 김혜자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며 두 배우가 마치 한 사람인 듯한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남주혁 또한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청춘 준하 역을 통해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받았다.
기억이 사라져도, 순간은 영원하다
작품은 치매를 비극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혜자의 뒤섞인 기억 속에서 가족들은 젊은 날의 어머니를, 아내를 다시 만난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나누는 교감, 아들이 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르며 느끼는 회한은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기억은 사라지더라도 그들이 함께한 사랑의 순간들은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드라마는 증명해 보인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드라마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를 관통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랑하라는 김혜자의 당부는 시대를 초월한 위로로 다가온다. '눈이 부시게'는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우리 모두의 인생에 바치는 헌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