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한류 드라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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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림
By 이태림 기자

뻔한 래퍼런스를 특별한 콘텐츠로 승화하다 2014 SBS 연기대상 수상작

눈을 뜨니, 세상이 달라져 있다. 조선의 강가, 괴이한 빛과 함께 떨어진 운석 속에서 한 소년이 발견된다. 그리고 400년이 흐른 뒤, 현대 서울의 한 대학교 강의실. 얼굴도, 말투도, 심지어 취향까지 전혀 퇴색되지 않은 한 남자가 학생들 앞에 서 있다. 외계인 도민준(김수현)이다. 사람의 시간을 훨씬 초월하는 수명을 가진 그는 조선에 표류하듯 떨어진 뒤, 왕조 교체와 전쟁, 근대화와 산업화를 모두 목격한 살아있는 아카이브이자, 그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자기 사람"을 만들지 못한 철저한 고독의 화신이다. 마치 '인터뷰 위드 뱀파이어'의 루이처럼, 영원한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늙어가는 건 그의 영혼뿐이다. 모든 것은 곧 지구를 떠나야 하는 마지막 세 달, 그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점화한다.

반대편에는 한 시대를 지배하는 톱 한류스타 천송이(전지현)가 있다. 광고판과 예능, 인터넷 기사와 악플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여배우. 겉으로는 어떤 욕도, 비난도 다 반사할 것 같은 강철 멘탈의 소유자지만, 실제로는 가족에게 휘둘리고 매니지먼트와 여론에 끌려다니는, 어딘가 허술하고 외로운 인물이다.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술에 취해 옆집으로 난입한 날, 천송이는 자신 옆집에 사는 이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데, 제일 차갑고, 제일 무뚝뚝한 남자’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렇게 외계인과 톱스타의 최악의 퍼스트 컨택이 시작된다.

도민준은 원래 계획이 있었다. 더 이상 인간과 연루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조용히 지구를 정리한 뒤 고향 별로 귀환하는 것. 그래서 최대한 주변과 거리를 둔다. 학생들과도 적당한 선을 유지하고, 이웃에게도 정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런데 천송이가 그의 생활 반경 안으로 쾅 하고 충돌해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뒤틀린다. 소음 민원에서 발화한 말다툼, 술에 취해 온갖 민폐를 양산하고도 다음 날 하나도 기억 못 하는 천송이의 태도, 그러면서도 무대 위에서는 황홀할 만큼 발광하는 배우로 변신하는 순간들. 도민준은 애써 무시하려 하지만, 그의 눈길은 점점 자주 거실 창 너머로 향한다.

400살 연상의 남자가 이토록 매력적이라니!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지점은,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 안에 스릴러와 가족극, 성장담을 정교하게 끼워 넣었다는 데 있다. 천송이를 둘러싼 재벌 2세 이휘경(박해진), 그의 형이자 서늘한 미소 뒤에 잔혹함을 은폐한 이재경(신성록)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급격히 어두워진다. 사고사로 조작된 여배우의 죽음, 그 배후에 있는 권력과 폭력, 증거를 소각하기 위해 천송이에게 다가가는 손길. 도민준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그녀를 보호하려 하지만, 동시에 외계인으로서의 능력 때문에 점점 더 위험천만한 상황에 흡입된다. 시간을 정지시키고, 순간 이동을 하고, 인간을 훨씬 초월하는 감각을 지닌 존재지만, 이 행성에서 그의 힘은 완벽하지 않다. 특히 떠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능력에는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고 몸은 점점 취약해진다. 마치 '슈퍼맨'이 크립토나이트 앞에서 무력해지듯, 도민준에게 지구는 점점 치명적인 환경으로 변모한다.

천송이의 주변 인물들도 이야기를 다층화시킨다. 어릴 적부터 그녀를 동경하고 질투해온 라이벌이자 친구 유세미(유인나)는, 늘 조연으로만 소비되던 배우가 어떻게 어둠을 배양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마치 '블랙 스완'의 니나와 릴리처럼, 천송이와 유세미의 관계는 동료애와 질투 사이에서 위태롭게 진동한다. 천송이 가족은 전형적인 ‘문제 많은 연예인 가족’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서로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군상이다. 도민준의 정체를 가장 먼저 간파하는 변호사 장영목(김창완)은, 냉철한 조언자이자 긴 세월을 함께한 거의 유일한 인간 친구다. 이 인물들을 통해 도민준과 천송이의 관계는 단순한 운명적 사랑이 아니라, 현실의 여러 층위와 충돌하는 감정으로 확장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민준은 갈등한다. 떠나야 생존한다. 이곳에 더 오래 체류하면 몸은 붕괴하고, 존재 자체가 위험해진다. 그런데 천송이를 놓고 이탈할 수 있을까. 반대로 천송이도 도민준이 결코 ‘평범한 남자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점점 체감한다. 나이는 동일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는 조선시대부터 살아온 400살짜리 남자다. 이 어마어마한 시간의 격차가 로맨틱 코미디 속 농담거리를 넘어, 실제로 두 사람의 종착점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울지 드라마는 꾸준히 암시한다. 도민준이 마지막 선택을 내리기 직전까지, 별에서 온 남자와 별에 닿고 싶은 여자의 거리는 그렇게 수축했다 팽창했다를 반복한다. 마치 두 별이 서로의 중력에 끌리면서도 충돌을 회피하는 우주의 춤처럼. 그 거리의 최종값이 무엇인지는 직접 마지막 회에서 확인하길 권한다. 이 드라마의 엔딩은,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 한 줄로 정리하기엔 꽤 복합적인 감정을 남기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의 리듬·스릴러의 긴장감

'별에서 온 그대'는 한류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자 동시에 어떤 마스터클래스 같은 작품이다. 외계인과 톱스타라는 설정만 놓고 보면 상당히 만화적이고 가벼운데, 이를 놀랍도록 진지하게 추진한다. ‘400년을 산 외계인의 시선에서 본 인간’이라는 관점을 통해, 시대를 관통한 고독과 죽음, 사랑과 이별을 다층적으로 건드린다. 도민준이 조선과 현대를 오가며 체험한 장면들, 특히 반복해서 제시되는 과거 인연의 비극은 판타지 설정에 비극적 중력을 첨가한다. 이는 '닥터 후'의 타임로드가 수백 년을 살며 축적한 상실의 무게를 떠올리게 한다.

연출 측면에서 이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의 리듬과 스릴러의 긴장감을 능숙하게 조합해낸다. 데이트 장면에서는 밝은 조명과 경쾌한 음악을 배치하다가, 살인 사건이나 위협이 닥치면 한순간에 색감과 사운드가 동결된다. 도민준의 능력을 표현하는 방식도 과하게 튀지 않으면서 세련됐다. 시간을 정지시킬 때마다 카메라가 미세하게 유영하며 정지된 공간을 스캔하고, 인물들이 얼어붙은 와중에 도민준만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은 일종의 시각적 시그니처가 되었다. 마치 '매트릭스'의 불릿 타임이 슬로우 모션의 미학을 재정의했듯, 이 드라마의 시간 정지 연출은 한국 드라마 판타지 장면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다. 덕분에 초능력 연출이 '게임 그래픽'처럼 부유하지 않고, 이 세계의 미묘한 규칙처럼 정착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핵심은 배우들, 특히 천송이와 도민준을 연기한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에 있다. 천송이(전지현)는 말 그대로 "아이콘"으로 승격된 캐릭터다. 톱스타의 화려함과 민낯의 망가짐을 동시에 설득력 있게 구현한다. 이기적이고, 허영심 과다하고, 제멋대로지만, 그 밑바닥에는 자기 삶을 책임지고 버티는 프로페셔널리즘과 상처가 있다. 전지현의 코믹 타이밍과 물 흐르듯 오가는 표정 변화는, 천송이라는 캐릭터를 단순한 로코 여주가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 코드로 증폭시켜 버린다. ‘첫눈 오는 날 치맥 먹기’는 이 드라마 이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정착했고, 천송이의 패션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복제되었다.

반면 도민준(김수현)은 감정을 압축한 외계인 캐릭터의 정석을 보여준다. 작은 표정 변화와 시선의 떨림으로 마음의 파동을 드러낸다. 말은 차갑고 행동은 느리고 조심스럽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신속하게 작동하는 인물. 겉으론 무표정하지만, 천송이가 부상당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계산이 증발하는 듯한 표정을 통해 "400년 고독해도 결국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치 '데이터'(스타트렉)나 'C-3PO'(스타워즈) 같은 비인간 캐릭터들이 인간성을 학습하듯, 도민준도 천송이를 통해 자신이 억압해온 감정을 재발견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장면에서는, 오글거림 직전까지 몰고 가다가도 한순간에 감정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장르 혼합의 균형도 평가할 만하다. 이 드라마는 멜로, 코미디, 스릴러, 판타지, 심지어 사회 풍자까지 욕심을 내는데, 어느 하나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연예계의 어두운 이면, 재벌가의 권력형 범죄, 악플과 마녀사냥 같은 현실적인 고민들도 판타지 틀 안에서 슬쩍 용해시킨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톤은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사랑 이야기"라는 중심축을 이탈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외 시청자에게도 장르적 장벽 없이 전파될 수 있었다. 중국에서의 폭발적 인기는 우연이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는 보편적 감정 코드를 정확히 건드렸다.

물론 단점이나 호불호 지점도 있다. 중반 이후 재벌가 살인·음모 서사가 반복되면서 다소 정체된다는 평가가 있고, PPL이 눈에 띄게 과다해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치킨 브랜드와 화장품, 자동차 광고가 마치 홈쇼핑 채널처럼 삽입되는 순간들은 판타지의 마법을 깨뜨린다. 천송이의 캐릭터가 초반의 신선한 코믹함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전형적인 눈물 과다 여주로 수렴된다는 아쉬움도 있다. 도민준의 능력 규칙이 때때로 이야기의 편의를 위해 느슨해지는 순간도 있다. 왜 어떤 장면에서는 순간 이동이 작동하고 다른 장면에서는 작동하지 않는지 일관성이 흔들린다. 그럼에도 이런 약점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캐릭터와 장면, 대사가 남기는 인상이 강렬하다.

K-로코의 정점인 작품

‘정통 로코’의 맛을 재체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거의 필청에 가깝다. 요즘처럼 장르물이 세분화된 시대에도, '별에서 온 그대'는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란 이런 것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기준점 같은 작품이다. 설레는 장면과 웃기는 장면, 가슴 먹먹해지는 장면의 비율이 기막히게 정밀해서, 몇 년이 지나 재시청해도 여전히 잘 흐른다.

또, 판타지 설정을 통해 현실을 살짝 비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최적이다. 도민준의 시선은 사실 우리 모두가 어쩌면 한 번쯤 가져보고 싶었던 거리감이다. ‘인간이라는 종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관찰하는 시선.’ 마치 인류학자가 미지의 부족을 연구하듯, 도민준은 인간의 감정을 분석하려 하지만 결국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냉정한 눈이 천송이를 만나 흔들리는 과정은, 사랑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동시에 강력한 감정인지 재인식하게 만든다. '스타트렉'의 스폭이 인간의 감정을 논리로 이해하려다 결국 실패하듯, 도민준도 사랑 앞에서는 400년의 지혜가 무용해진다.

마지막으로, "한류 드라마가 왜 전 세계에서 통했는지"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작품이 완벽한 출발점이 된다. 과장된 설정, 진심 어린 감정, 배우들의 스타성, 음악과 패션까지 한꺼번에 폭발하는 종합 패키지 같은 드라마라서다. 이는 마치 '타이타닉'이나 '라라랜드'처럼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정렬된 순간에 탄생하는 문화 현상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아마도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잠깐은 믿어주고 싶어진다." 그런 종류의 달콤한 환상이 지금 필요한 사람에게, '별에서 온 그대'는 여전히 유효한 한 편의 판타지다. 별에서 떨어진 낯선 존재가 지구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는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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