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VE=박수남 기자] 그룹명 '키스 오브 라이프(KISS OF LIFE)'는 말 그대로 인공호흡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획일화된 K-팝 시장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겠다는 이 거창한 포부는 2023년 7월, 네 명의 소녀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이들의 결성은 대형 기획사의 철저한 공장형 시스템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JYP와 큐브 엔터테인먼트를 거치며 포미닛, 비스트 등 전설적인 그룹을 배출한 '미다스의 손' 홍승성 회장이 설립한 S2엔터테인먼트가 이들의 둥지였다. 하지만 멤버들의 면면은 신인이라기엔 이미 완성형에 가까웠다.
트와이스를 선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식스틴'과 '아이돌 학교'를 거치며 장장 10년의 연습생 기간을 견뎌낸 나띠, YG 산하 더블랙레이블 출신의 탄탄한 래퍼 쥴리, 르세라핌의 곡 작업에 참여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질을 검증받은 벨, 그리고 이 쟁쟁한 언니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는 올라운더 막내 하늘까지. 각기 다른 곳에서 피어나지 못했던 재능들이 모여 비로소 하나의 팀으로 태어났다.
'중소의 한계'를 '기본기'로 돌파하다
자본과 네트워크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중소기업인 S2엔터테인먼트가 키스 오브 라이프를 성공시킨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정공법'에 있었다. 대형 기획사들이 화려한 세계관과 막대한 프로모션 비용으로 시장을 점유할 때, S2는 아티스트 본연의 역량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가장 과감했던 수는 데뷔 앨범에 멤버 전원의 솔로곡을 수록한 결정이었다.
신인 그룹에게는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적인 시도로, 멤버 한 명 한 명이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손색없는 실력을 갖췄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회사는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쫓기보다 멤버들이 가진 개성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숏폼 챌린지용 음악이 범람하는 시대에 2000년대 팝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적 방향성을 제시했고, 이는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S2의 성공 비결은 기교가 아닌 본질, 즉 '음악과 퍼포먼스'라는 기본에 충실했던 뚝심에 있었다.
키스 오브 라이프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배경에는 K-팝 팬들이 오랫동안 갈증을 느껴온 '라이브 실력'과 '건강한 섹시함'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아이돌 시장은 완벽하게 보정된 비주얼과 듣기 편한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반작용으로 무대 위에서의 라이브 실력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키스 오브 라이프는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대학 축제와 각종 행사 무대에서 보여준 흔들림 없는 라이브와 폭발적인 성량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고,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했다.
특히 나띠의 솔로곡 'Sugarcoat'는 Y2K 시대의 R&B 향수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입소문을 탔고, 그룹 전체의 인지도를 견인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단순히 과거를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2000년대 팝스타들이 보여주었던 당당하고 주체적인 '핫 걸(Hot Girl)'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마르고 가녀린 소녀의 이미지 대신 무대를 장악하는 에너지와 건강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들의 모습은 동시대 여성 팬들에게 '워너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쉿 (Shhh)', 'Bad News'를 거쳐 'Midas Touch', 그리고 최근의 'Sticky'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앨범을 낼 때마다 대중의 기대치를 상회하는 퍼포먼스로 자신들의 상승세가 우연이 아님을 증명했다.
다국적 배경이 만들어낸 유일무이한 시너지
수많은 다국적 걸그룹 사이에서 키스 오브 라이프가 독보적인 생존력을 보여주는 이유는 단순히 국적이 다양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다국적 배경은 멤버 각자의 음악적 뿌리와 결합하여 K-팝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냈다. 태국 출신의 나띠는 오랜 한국 연습생 생활로 다져진 K-팝의 규율 위에 동남아시아 특유의 리드미컬한 그루브를 더했고, 미국에서 자란 쥴리와 벨은 본토 팝 시장의 감성과 힙합 바이브를 팀에 이식했다. 여기에 한국인 멤버 하늘이 주는 단단한 보컬의 안정감이 더해지며 이질감 없이 세련된 팝 사운드를 완성했다.
글로벌 팬덤, 특히 서구권 팬들은 이들의 음악에서 익숙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느낀다. 기존 K-팝 걸그룹들이 보여주었던 짜여진 군무와 귀여움보다는, 서양의 팝 걸그룹이나 힙합 아티스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자유분방함과 '날것'의 매력이 키스 오브 라이프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어적 장벽이 낮은 것 또한 큰 강점이다. 영어권 멤버들의 유창한 소통 능력은 글로벌 인터뷰나 콘텐츠에서 팬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실패한 연습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화려하게 비상한 나띠의 드라마, 유명 가수의 딸이라는 그늘을 벗어나 실력으로 인정받은 벨의 성장기는 국경을 넘어 수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는 키스 오브 라이프를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상품이 아닌, 응원하고 싶은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다국적이라는 요소가 마케팅 수단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음악적으로 융합되어 폭발력을 내는 '화학적 결합'을 이뤄낸 것이다.
무대 위에서 영원히 숨 쉴 키스 오브 라이프
앞으로도 키스 오브 라이프가 수많은 팬들에게 무대의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은 무대를 '숙제'가 아닌 '놀이터'로 여기는 몇 안 되는 그룹이기 때문이다. 데뷔 3년 차라고는 믿기 힘든 무대 장악력과 관객과의 호흡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노련해질 것이다.

유행을 쫓기보다 자신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영리함, 그리고 멤버 전원이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는 점은 그들의 수명을 길게 만든다. '중소의 기적'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그들에게 좁다. 키스 오브 라이프는 K-팝이 잃어버릴 뻔했던 '보는 음악'과 '듣는 음악'의 균형을 되찾아주었다. 다음 무대에서는 또 어떤 자유로움으로 우리의 숨을 멎게 하고, 다시금 숨 쉬게 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