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이 실현된 순간 ‘드라마 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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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림
By Itaerim 기자

초인이라 상처받은 아버지, 초인이라 사랑받은 자식 제6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작품상 수상작

|케이브매거진=최재혁 기자 서울의 한 평범해 보이는 고등학교. 체육복 바람의 김봉석(이정하)은 늘 축 처진 어깨로 복도 끝을 걷는다. 교실에서는 꾸벅꾸벅 졸고, 버스에서는 창틀에 머리를 박고 자다 말고 휘청인다. 친구들은 그냥 허약 체질이려니 하지만, 봉석이 알고 있는 진실은 하나다. 마음이 조금만 흔들리면, 몸이 공중으로 붕 뜨기 시작한다. 마치 헬륨 풍선이 된 것처럼. 떨어지지 않으려 일부러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고, 집에서는 납이 들어간 조끼를 입고 잔다. 엄마 이미현(한효주)은 그런 아들을 위해 늘 창문을 막고, 2층 방 바닥에 두툼한 매트를 깔아 둔다. 보통 부모가 자녀의 낙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녀의 '상승'을 걱정하는 집. 이게 무빙의 세계다.

한편, 새 학기에 전학 온 장희수(고윤정)는 첫날부터 학교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싸움에 휘말려도 거의 상처를 입지 않고, 맞아서 피를 흘렸나 싶으면 어느새 상처가 아물어 있다. 마치 울버린의 여고생 버전처럼. 희수는 눈치 빠른 아이가 아니다. 그저 "몸이 좀 튼튼한 편"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편의점 앞에서 양아치들에게 둘러싸여 맞고 또 맞던 순간, 자기 몸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사람은, 늘 조용히 앉아 있던 봉석이다. 초능력자들의 만남은 늘 이렇게 우연을 가장한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또 한 명의 학생이 있다. 모범생이자 반장인 이강훈(김도훈). 시험 성적, 운동 실력, 리더십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체육 시간 달리기에서는 다른 아이들을 가볍게 따돌리고, 봉을 잡는 순간 사람의 힘이라고 믿기 힘든 속도로 기둥을 올려 친다. 마치 치트키를 켜놓은 게임 캐릭터처럼. 강훈 역시 아버지 이재만(김성균)에게서 물려받은 '특별한 몸'을 숨기고 있다. 미혼부에 가까운 아버지는 동네 편의점을 운영하며, 발작처럼 밀려오는 폭주를 억누르며 살아간다. 슈퍼스피드를 가진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직업—편의점 알바—를 선택한 아이러니.

부모 세대의 비밀, 국가가 만든 괴물들

'무빙'은 이렇게 봉석·희수·강훈 세 아이의 학교 생활과, 각자의 부모 세대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교차 편집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현은 과거 국정원 정보요원이자 천재 요원 출신으로, 시력·청력·후각·미각·촉각이 인간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마블의 데어데블이 시각만 잃고 나머지를 얻었다면, 미현은 모든 감각을 동시에 얻은 케이스. 남편 김두식(조인성)은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진 비밀 공작원으로, 북측 고위 인사를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조직에 의해 추적당하는 처지가 된다. 장주원(류승룡)은 엄청난 재생 능력을 가진 전직 조직폭력배 출신 특수요원으로, 지금은 허름한 치킨집 사장으로 살아간다.

세 부모는 모두 한때 국가가 만든 '괴물들의 부대'에서 일했고, 결국 조직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숨어 들어가 평범한 가장의 얼굴을 쓰고 산다. X-Men의 뮤턴트들이 제비어 학교에서 환대받는다면, 한국의 초능력자들은 국정원에서 소모품으로 쓰인다. 이게 K-히어로와 할리우드 히어로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미국에서 슈퍼히어로는 찬양받지만, 한국에서는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국가에 의해 '정리'당한다.

이 평화는 곧 깨진다. 미국에서 파견된 정체불명의 킬러 프랭크(류승범)가 하나둘 한국을 찾은 옛 요원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부모 세대의 과거가 현재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치킨집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장주원은 정체불명의 습격을 받는다. 아무리 잘려 나가도 다시 붙는 자신의 몸처럼, 끝없이 되살아나는 폭력의 기억들과 함께. 동시에 국정원 내부에서는 미현과 두식, 그리고 아이들의 존재를 추적하는 새 세력이 움직인다. 학교 체육선생 최일환(김희원)은 은근슬쩍 아이들의 신체 능력을 테스트하며, 이들이 가진 힘의 한계를 살핀다. 정원고는 어느새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모으고 감시하는 일종의 '실험장'이 되어 간다. 해리포터의 호그와트가 아니라, 트루먼쇼의 세트장에 가깝다.

봉석과 희수, 강훈은 서로의 비밀을 어렴풋이 눈치채면서도 말로 확인하지 않는다. 마치 퀴어 10대들이 커밍아웃 전 서로를 알아보듯, 초능력자들도 그렇게 조심스럽게 서로를 감지한다. 하지만 학교 강당에서 벌어진 '사고'를 계기로, 세 사람의 능력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수준으로 드러난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소년, 칼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소녀, 번개처럼 튀어나가 상대를 제압하는 반장. 이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자, 국정원과 해외 세력, 그리고 과거의 동료·적들이 한곳으로 모여든다. 바이럴 영상 하나가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는 SNS 시대의 디스토피아.

후반부의 무대는 자연스럽게 정원고로 좁혀지고, 부모 세대와 아이 세대가 한 학교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는 대규모 전투로 이어진다. 누가 누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지, 누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까지 버텨내는지는 직접 엔딩까지 확인하는 편이 좋겠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가족, 세대, 국가를 향한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지점이라, 미리 말로 풀어 버리기 아까운 종류의 경험에 가깝다. 어벤져스의 최종전이 뉴욕 한복판이었다면, 무빙의 최종전은 한국의 고등학교 운동장이다. 스케일은 작지만 감정의 밀도는 몇 배나 더 짙다.

장르 혼종의 승리? 슈퍼히어로+가족 드라마+첩보 스릴러

'무빙'이 만들어 낸 독특한 장르 ‘혼종성’이다. 겉으로만 보면 초능력·첩보·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이다. 하지만 실제로 화면을 채우는 건 가족 드라마, 성장물, 멜로드라마의 문법이다. 봉석과 희수의 서사는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처럼 흐르다가도, 갑자기 부모 세대의 피비린내 나는 과거로 넘어가고, 다시 중년 가장들의 삶과 책임으로 이어진다. 한 작품 안에서 세대별 장르 경험이 층층이 쌓이는 구조다. 마치 밀푀유처럼, 각 층이 다른 맛을 내지만 함께 먹으면 조화를 이루는.

연출은 이 복잡한 층위를 과감하게 쪼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초반부는 정원고 3학년 3반 아이들의 시점으로, 중반부는 각 부모의 과거 에피소드로, 후반부는 다시 현재 시점의 집단 전투로 구성된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미니 영화처럼 완결성을 갖고 있어서, 어떤 회차는 거의 장주원의 누아르, 어떤 회차는 미현과 두식의 첩보 멜로, 또 어떤 회차는 이재만의 비극적인 가정사에 집중한다. 덕분에 20부작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점에서 보든 '한 편을 본 느낌'을 안겨 준다. 넷플릭스 시대의 드라마 문법을 정확히 이해한 구성이랄까.

액션과 시각효과는 OTT 시대가 아니면 보기 어려웠을 수준까지 밀어붙인다. 수천 개에 이르는 CG 컷이 투입된 덕분에, 봉석이 하늘을 가르는 장면이나, 학교를 통째로 뒤흔드는 초능력 전투, 북측 요원들과의 혈투가 TV 드라마라기보다 극장용 블록버스터에 가깝게 구현된다. 디즈니+의 마블 시리즈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비주얼. 동시에, 이 화려함이 늘 감정의 바닥을 향해 움직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장주원이 칼에 수십 번 찔려도 다시 일어나는 장면에서 관객이 느끼는 건 '쾌감'보다 '안쓰러움'에 가깝다. 죽지 못해서 다시 일어나는 몸, 끝없이 맞아도 다시 일터로 끌려 나가는 노동자의 운명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이게 무빙이 할리우드 히어로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CGI가 스펙터클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시각화하기 위해 쓰인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모든 층위를 잇는 핵심 접착제다. 이정하는 봉석을 단순한 '순하고 귀여운 능력자'가 아니라, 공중에 떠오르는 몸 때문에 늘 땅을 두려워하는 소년으로 만든다. 마치 물에 빠질까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로 빠져버릴까 두려워하는 사람의 공포. 고윤정의 희수는 상처가 금방 아물어 버리는 몸 때문에 오히려 더 무감각해진, 어른과 아이 사이 경계에 선 인물이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슬픔을 얼굴로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니. 김도훈이 연기한 강훈은 '잘난 반장'의 껍데기 속에, 폭주하는 힘을 두려워하는 소년의 얼굴을 숨겨 둔다. 완벽함의 뒤편에 있는 공허함, 그걸 10대 배우가 이렇게 잘 잡아낸다는 게 놀랍다.

부모 세대의 류승룡·한효주·조인성·김성균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국가에 이용당한 초인"의 슬픔을 보여 주며, 액션과 감정을 동시에 끌고 간다. 류승룡의 장주원은 마치 록키 발보아가 치킨집을 운영하는 것 같은 비장미를 뿜어내고, 한효주의 미현은 슈퍼맘이 아니라 '초감각을 가진 트라우마 생존자'로 그려진다. 조인성의 김두식은 하늘을 날지만 동시에 가장 무거운 짐을 진 남자처럼 보인다. 중력을 이긴 사람이 세상의 무게에는 짓눌리는 아이러니.

디즈니+가 만든 기적...K-히어로의 글로벌 정복

무엇보다 '무빙'은 OTT 플랫폼에서 어떤 방식을 택해야 글로벌 승부가 가능한지를 명확히 보여 준 사례다. 2023년 8월 공개된 직후, 이 작품은 디즈니+와 훌루에서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중 최다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플랫폼의 간판 IP로 떠올랐다. 아시아콘텐츠어워즈·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작品상·대상·연기상·각본상·시각효과상까지 휩쓸며 비평과 대중성 모두를 증명했다. '오징어 게임' 이후 또 하나의 K-콘텐츠 돌풍으로 언급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구 히어로물과는 다른 정서, 즉 '초능력을 가족 안에 숨겨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계 여러 지역의 시청자들에게도 설득력을 가진 것이다.

마블이 "초능력으로 세상을 구하는" 판타지를 파는 동안, 무빙은 "초능력 때문에 세상에 숨어 사는" 현실을 팔았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후자에 더 공감했다는 게 흥미롭다. 어쩌면 우리 모두 어딘가에 숨겨야 할 능력과 상처를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물론 모든 부분이 매끄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와 국가 단위의 서사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북측 요원들의 사연까지 풀어내려는 욕심이 다소 과잉으로 느껴진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인물의 서사는 깊게 파고들지만, 어떤 인물은 기능적인 장치로 소모되기도 한다. 마치 뷔페에 음식이 너무 많아서 다 맛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래도 큰 틀에서 보면, 이 과잉이야말로 '무빙'의 에너지다. 감독과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화면이 넘쳐 흐른다는 인상을 준다. 절제의 미학도 좋지만, 때로는 이런 과잉이 더 강렬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히어로물에 살짝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무빙'은 좋은 해독제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쿨한 수트를 입은 히어로 팀도, 세계를 구하는 거대한 서사도 없다. 대신 치킨집 기름 냄새, 돈가스 집 주방의 김, 편의점 형광등 불빛 아래 서 있는 중년 가장들이 있다. 초능력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그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숨겨야 하는 짐에 가깝다. 마치 슈퍼맨이 일일 노동자로 일하고, 원더우먼이 동네 분식집을 운영하는 세계. 이런 시선이 마음에 들어온다면, '무빙'의 대부분이 설득력 있게 느껴질 것이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찾는 이들에게도 잘 맞는다. 아이들은 봉석·희수·강훈의 학교 생활과 액션에 빠져들고, 부모들은 장주원과 이미현, 이재만과 같은 인물들의 고단한 삶에 공감하게 된다. 한 작품 안에서 서로 다른 포인트로 웃고 울 수 있다는 건, 가족 드라마로서 드문 장점이다. 마치 픽사 애니메이션처럼, 아이들은 캐릭터의 행동에 웃고 어른들은 숨겨진 의미에 운다.

웹툰 원작을 좋아하지만 ‘실사화하면 다 망한다’는 불신이 쌓여 있는 시청자라면 '무빙'을 한 번쯤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원작자 강풀 본인이 직접 각본을 쓰며 세계관을 확장한 덕분에, 웹툰의 감성과 새로 추가된 서사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결합돼 있다. 작가가 직접 각색에 참여하면 이렇게 달라진다는 교과서적 사례.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아마 한국식 슈퍼히어로의 다음 단계가 궁금해질 것이다.

그리고 봉석이 하늘로 떠오르기 직전, 그의 발끝에 매달린 납덩이와 같은 감정이 어쩐지 자기 안에도 조금은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중력을 거스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땅에 붙잡혀 있기를 원하는 모순된 존재들이니까. 무빙은 그 모순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 드라마다. 날고 싶지만 날면 안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게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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