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빚다... 잃어버린 시간의 향기를 찾아서, 국순당 '설맞이 차례주 빚기 교실'
조선이라는 세계는 '집집마다 술이 익는 마을'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는 가문마다, 지방마다 고유한 비법으로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가 만개했다. 이는 단순한 기호 식품의 생산을 넘어선 것이었다. 조상에게 올리는 제주(祭酒)를 남의 손이나 돈으로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불경(不敬)으로 여겨졌다. 쌀을 씻어 찌고, 직접 띄운 누룩을 섞어 빚는 행위 자체가 제사의 시작이었으며, 그 정성 이야말로 유교적 제의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는 한국의 모든 시스템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고, 술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09년 주세법 시행과 1916년 주세령 공포는 가양주의 숨통을 끊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