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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일주일 만에 240만 건 다운로드한 '던파 모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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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 팬덤 키워와 텐센트의 구세주가 될 모바일 게임

[KAVE=최재혁 기자] 미국도 아닌 중국에서, 2024년 상반기 게임 업계의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가 ‘던전 앤 파이터 모바일(이하 던파 모바일)’이라는 사실을 한국 게이머들은 실감하기 쉽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5월 21일 중국 현지 서비스를 시작한 던파 모바일은 출시 몇 시간 만에 중국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를 찍고, 이후 줄곧 최상단을 지키며 텐센트의 새 먹거리로 급부상했다. 출시 일주일 남짓 만에 240만 건 이상 다운로드, 애플 기기에서만 4,000만달러 이상 매출을 올렸다.

‘국민 게임’이 된 PC 던파, 중국에서 쌓은 15년짜리 신뢰

'덩파(地下城与勇士)'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는 PC 던파는 이미 중국에서 하나의 세대 경험에 가깝다. 텐센트가 2008년 퍼블리싱을 시작한 이후 2D 횡스크롤 액션이라는 비교적 올드한 포맷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꾸준히 중국 온라인 게임 매출 상위권에 머물렀다. ‘던전 앤 파이터 온라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린 PC 게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데, 그 매출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 유저 입장에서 던파는 단순한 액션 게임이 아니라,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를 관통한 인터넷 카페 문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다. 대학 시절, 혹은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PC방에 앉아 파티를 맺고 던전을 돌던 기억, 직장인이 된 뒤에도 밤늦게까지 레이드에 참가하던 습관이 그대로 체화돼 있다. 그렇게 십 수 년 동안 ‘돈 써도 아깝지 않고, 오래 붙잡고 놀 수 있는 게임’이라는 신뢰를 쌓았다.

게임 구조도 중국 시장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빠른 손맛을 주는 콤보 액션, 반복 파밍과 희귀 아이템 드랍의 쾌감, 직업 수십 개가 주는 빌드 다양성은 ‘많이 파고들수록 보상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여기에 2D 도트 그래픽과 애니메이션풍 캐릭터 디자인은 일본식 RPG에 익숙한 동아시아 이용자들에게 넓게 먹히는 스타일이다. 중국에서 ‘시원하다(爽)’는 감각에 집착하는 게임 유저들에게 던파 특유의 폭발적인 스킬 이펙트와 타격감은 중독에 가까운 만족감을 줬다.

이 긴 시간 동안 업데이트와 이벤트가 끊이지 않았고, 텐센트는 QQ, 위챗 등 자사 플랫폼과 연동해 던파를 하나의 거대한 커뮤니티 허브로 만들었다. 그렇게 ‘IP에 대한 신뢰’와 ‘플랫폼의 확산력’이 엮이며, 던파는 중국에서 매우 두꺼운 팬층을 가진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7년 기다린 모바일 버전, ‘기다림 프리미엄’이 폭발하다

사실 던파 모바일의 중국 출시는 훨씬 더 일찍 이뤄질 계획이었다. 넥슨과 텐센트는 던파의 모바일 버전을 7년 가까이 개발했지만, 중국 당국의 게임 규제와 판호 발급 중단 여파로 출시가 몇 차례 미뤄졌다. 그 사이 한국과 일부 국가에서는 ‘던파 모바일’ 혹은 ‘던파 오리진’이 먼저 서비스를 시작했고, 중국 유저들은 유튜브와 스트리밍을 통해 플레이 영상을 지켜보며 ‘언제 우리에게도 오느냐’는 아쉬움을 표해왔다.

이 지연이 아이러니하게도 기대감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중국 던파 유저들 사이에선 '언젠가 모바일이 나오면 무조건 해봐야 할 게임'이라는 공감대가 생겼고, 게임 커뮤니티와 웨이보에서는 출시 루머가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됐다. 마치 연기 끝에 개봉하는 대형 영화처럼, 출시 전부터 브랜드 인지도가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다림 프리미엄’ 위에, 텐센트의 마케팅 머신이 더해졌다. 중국 애플 앱스토어와 여러 안드로이드 마켓 메인 화면을 장식한 배너 광고, 유명 스트리머와 인플루언서들의 사전 체험 방송, 웨이보·도우인(틱톡 중국판)에서의 해시태그 챌린지까지, 던파 모바일 출시는 사실상 ‘국민적 이벤트’ 수준으로 포장됐다. 그 결과 게임은 출시 첫날 중국 앱스토어 매출 1위를 차지했고, 이후에도 틱톡을 제외한 전 세계 앱 가운데 매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손에 쥔 아케이드: 모바일에 맞춘 액션 설계

단순히 “IP가 유명해서”만으로는 중국의 냉정한 모바일 시장을 장악하기 어렵다. 던파 모바일이 인기를 끄는 두 번째 이유는, PC 게임의 핵심을 유지하면서도 모바일 환경에 맞게 ‘손맛’을 재설계했다는 점이다.

우선 조작 방식이 모바일에 맞게 간결해졌다. 가상 패드와 스킬 버튼 몇 개로 구성되지만, 스킬 연계와 타이밍에 따라 여전히 차별화된 플레이가 가능하다. 버튼을 많이 누르지 않아도 화면에서는 화려한 콤보와 에어리얼, 다운 공격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PC 시절처럼 키보드로 난이도 높은 콤보를 연속 입력해야만 ‘베테랑 티’를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모바일에서도 충분히 ‘내가 잘한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만드는 방향이다.

컨텐츠 구조도 모바일 플레이 패턴에 맞춰 짧고 굵게 나뉘었다. 한 판에 2~3분이면 끝나는 던전, 출퇴근길에 소화할 수 있는 일일·주간 미션, 자동 이동과 일부 자동 전투 옵션은 ‘언제 어디서나 던파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을 준다. 동시에 핵심 보스전이나 PvP, 상위 던전은 여전히 수동 조작과 숙련도를 요구해, 헤비 유저의 자존심도 세워준다.

그래픽 역시 ‘완전히 새 게임’이 아니라 ‘기억 속 던파의 고해상도 버전’에 가깝다. 오리지널 도트 감성을 유지하되 이펙트와 애니메이션을 현대적 감각으로 다듬어, 오래된 팬들에게는 향수와 친숙함을, 신규 유저에게는 촌스럽지 않은 스타일을 동시에 제공한다. 중국 유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간지’와 ‘체면’도 챙긴 셈이다.

중국식 과금 감각을 정확히 겨냥한 BM

중국 모바일 게임 시장의 핵심은 냉정한 'BM(과금 모델)'이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돈 쓰는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세 이탈하고, 반대로 IP가 약해도 과금 동기를 잘 자극하면 매출 상위권에 오르곤 한다. 던파 모바일은 이 지점에서도 비교적 노련한 균형을 보여준다.

중국 유저들은 이미 수많은 ‘가챠’ 게임을 경험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을 쓰면 얼마나 빠르게 강해지느냐”와 동시에 “돈을 안 쓰더라도 적당히 할 만하냐”는 체감이다. 던파 모바일은 기본 구조를 장비 파밍과 재료 수집, 강화에 두고, 코스튬·패키지·편의성 상품에 과금 포인트를 배치한다. 당연히 큰돈을 쓰면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최상위 콘텐츠 접근이 쉬워지지만, 적당한 과금으로도 던전과 파티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특히 PC 던파를 오랫동안 즐긴 ‘고래 유저’들에게는 과금 자체가 일종의 팬덤 활동으로 작동한다. 수년 동안 PC에서 이미 수많은 유료 아이템을 구매했던 유저들이, 이번에는 모바일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과 캐릭터를 다시 키우며 장비를 맞추고, 스킨을 사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IP에 대한 충성도가 BM의 마찰을 상당 부분 상쇄하는 구조다.

이 결과 던파 모바일은 출시 1주일 만에 1.2~1.5억 위안(약 2천억 원대) 수준의 유저 지출을 기록했다는 추정이 나왔고, 한 달 30억 위안(약 5,500억 원) 규모의 청구액을 노린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 언론에서는 중국 iOS 매출만 6주 동안 약 4,850억 원에 달했다는 추정까지 나온 바 있다. 이런 숫자는 단순한 ‘반짝 흥행’이 아니라, 텐센트와 넥슨 양측 모두에게 전략적 타이틀로 관리할 유인이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 게이머의 정서와 ‘던파 세계관’의 궁합

IP와 BM, 조작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중국에서 던파가 가진 위치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 ‘성장 서사’에 대한 향수와도 연결된다. 캐릭터 하나를 골라 끝없는 던전과 레이드를 돌며 장비를 맞추고, 수년 동안 같은 길드에서 함께 노는 경험은, 급격한 도시화와 경쟁 사회를 살아온 중국 '80·90허우(1980·1990년대 생) 세대'의 청춘과 겹쳐진다.

이 세대가 이제는 30·40대가 되어 경제력을 갖췄고, 모바일 게임에 돈을 쓰는 핵심 타깃이 됐다. 그들에게 던파 모바일은 “예전에 하던 게임을 스마트폰으로 들고 다니는 감성”을 선물한다. 자녀 재우고 침대에 누워 예전 직업을 다시 키우거나, 출근길 지하철에서 예전 길드 친구들과 채팅을 주고받는 모습은 브랜드가 세대를 관통하는 방식의 전형이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중국 게임 시장의 장기 흐름이다. 최근 몇 년간 ‘원신’, ‘붕괴: 스타레일’ 같은 대형 오픈월드 RPG들이 등장했지만, 이들 게임은 비교적 젊은 층과 코어 애니메이션 팬층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반면 던파는 상대적으로 짧은 플레이 세션, 가벼운 조작, 뚜렷한 성장 목표를 제공해, ‘시간은 부족하지만 한때 하드코어 게이머였던’ 30·40대 유저들에게 더 맞는 포맷이다. 이 세대는 중국에서 소비력도 크고, 장기적인 라이브 서비스를 떠받치는 충성 고객층이기도 하다.

텐센트 입장에서 던파 모바일은 오랜 가뭄 끝에 얻은 대형 히트다. 기존 간판인 ‘왕자영요(왕자영요, Honor of Kings)’와 ‘화평정영(Peacekeeper Elite)’ 매출이 정체 혹은 둔화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플래그십 타이틀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지속돼 왔다.(Reuters) 던파 모바일의 흥행은 텐센트가 다시 한 번 ‘중국 모바일 게임 1위 퍼블리셔’로서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앞으로의 경쟁력을 따질 때도 이 구조는 중요하다. 텐센트는 중국 내 게임 유통 인프라, 마케팅 자원, 스트리밍 플랫폼, 메신저까지 모두 쥔 플레이어다. 던파 모바일은 이 모든 생태계의 정중앙에 놓인 IP다. 대형 스트리머들의 레이드 콘텐츠, e스포츠형 대전 이벤트, 오프라인 팬미팅과 굿즈, 애니메이션·웹툰과의 연계 등 IP 확장을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게임 하나로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던파 유니버스’를 중국 내에서 더 넓게 키울 수 있는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리스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중국 정부의 게임 규제는 언제든 다시 강화될 수 있고, 미성년자 게임 시간 제한, 신규 판호 발급 정책 변화 등 외생 변수는 늘 존재한다. 모바일 게임 시장 특성상 초반 흥행 후 빠르게 매출이 꺾이는 ‘반짝 히트’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국내 게임사들이 내놓을 후발 액션 RPG들의 견제도 거셀 것이다.

또한 과금 구조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공격적으로 변한다면, 초반의 호감도가 “또 하나의 돈 먹는 게임”이라는 피로감으로 바뀔 수 있다. PC 던파에서도 경험했던 밸런스 논란과 인플레이션 문제는 모바일에서도 다시 터질 수 있는 잠재적 지뢰다. 모바일 버전과 PC 버전 간의 콘텐츠 차이, ‘어느 쪽이 진짜 본편이냐’는 팬덤 내부의 논쟁도 장기 서비스 과정에서 조정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파 모바일의 경쟁력은 단기 매출 지표를 넘어선 지점에 있다. 무엇보다 15년 동안 쌓인 던파 IP의 신뢰, 그리고 그 신뢰를 여전히 지지하는 중국 유저들의 기억과 감정이 가장 큰 자산이다. 여기에 텐센트의 퍼블리싱 역량, 모바일에 맞게 재설계된 액션성과 성장 구조, 이미 확인된 매출 규모까지 더하면, 던파 모바일은 쉽게 사라질 반짝 유행 상품이라기보다 향후 몇 년간 중국 모바일 시장의 상위권을 지키며 롱런할 가능성이 큰 타이틀에 가깝다.

결국 관건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 IP에 재미와 의미를 계속 쌓아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행보만 보면, 중국에서의 던파 이야기는 아직 엔딩이 아니라 새 시즌 오프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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