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슈가, 언어와 비트로 상처를 다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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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림
By Itaerim 기자

대구의 작곡 소년이 ‘민윤기’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설득하기까지 Agust D의 고백과 SUGA의 책임감, 2026년 완전체로 이어지는 귀환

민윤기의 출발점은 화려한 조명보다 낡은 책상과 오래된 컴퓨터에 가까웠다. 1993년 3월 9일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를 일찍 배웠다. 음악을 좋아한 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버티는 방식이었다. 학창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힙합을 붙잡고 가사를 따라 적었고, 비트를 쪼개어 들으며 ‘왜 이 한 마디가 심장을 두드리는지’를 스스로 해석했다. 열일곱 무렵부터는 직접 곡을 만들었다. 작아 보이는 장비와 서툰 믹싱 속에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글로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무대에서 ‘말의 속도’가 어떻게 감정을 바꾸는지 배웠다. 가족의 반대와 현실의 압박은 늘 따라다녔지만, 그는 설득 대신 결과로 말하려 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선언보다, 오늘도 작업실 불을 끄지 않는 습관이 그를 지탱했다.

2010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을 거쳐 연습생으로 합류했을 때, 그가 가진 무기는 ‘입증된 스타성’이 아니라 ‘버릇처럼 이어지는 작업’이었다. 연습실이 비면 그는 곡을 만들었다. 랩을 연습하다가도 코드 진행을 붙였고, 멜로디를 떠올리면 바로 데모를 남겼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 집요함은 데뷔 준비 기간 내내 팀의 뼈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2013년 6월 13일 방탄소년단으로 데뷔한 뒤에도 슈가는 ‘무대 위의 사람’과 ‘무대 밖의 사람’을 동시에 살았다.

데뷔곡 ‘No More Dream’에서 그는 거침없는 랩으로 청춘의 분노를 끌어올렸지만, 무대가 끝나면 다시 스튜디오로 향했다. 대중에게는 아직 이름이 낯설었고, 팀은 거대한 시장에서 작은 점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그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음악을 멈추면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매일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더 나은 한 마디, 더 정확한 한 박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쌓인 시간은 그의 성격까지 바꿔 놓았다. 말수가 줄어든 대신, 말해야 할 순간에는 핵심만 남겼다. 대신 음악은 더 길어졌다. 그가 사랑한 건 ‘무대’라기보다 ‘완성도’였고, 그 완성도를 향한 태도는 데뷔 직후부터 이미 고집처럼 굳어 있었다.

팀이 청춘의 불안을 전면에 세우며 성장 궤도에 오른 2015년 무렵, 슈가는 가사와 사운드의 결을 더 날카롭게 다듬기 시작했다. ‘화양연화’ 연작에서 방황과 절박함이 과열되지 않도록 리듬의 균형을 잡았고, 랩 파트가 단순한 ‘강한 장면’이 아니라 서사의 방향타가 되게 만들었다. 무대에서 그는 과장된 동작을 절제하는 대신, 타이밍과 호흡으로 존재감을 만들었다. 2016년 ‘WINGS’의 솔로곡 ‘First Love’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현재로 옮기는지 보여준 대표 장면이다. 피아노로 시작해 랩으로 폭발하는 구성은, 음악이 그에게 ‘기술’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사실을 선명히 했다.

같은 해 그는 ‘Agust D’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꺼내 들었다. 2016년 첫 믹스테이프에서 그는 분노와 상처, 야망을 숨김없이 토해냈고, 2020년 두 번째 믹스테이프 ‘D-2’에서는 ‘대취타’로 전통의 질감과 현대적 힙합을 충돌시켜 자신만의 미학을 확장했다. 2023년 정식 솔로 앨범 ‘D-DAY’는 그 연작의 결산이었다. 타이틀 ‘해금’과 선공개곡 ‘People Pt.2’를 포함해 총 10곡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Agust D’의 3부작을 마무리하며, 과거의 분노가 어떻게 현재의 성찰로 변했는지 보여줬다. 그가 말하던 ‘진짜 나’는 여기에서 감정의 폭이 아니라 감정의 해상도로 입증됐다. 더 크게 외치지 않아도, 더 정확하면 전달된다는 믿음이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이어진 첫 월드투어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공연은 단순한 히트곡 퍼레이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서사’였다. Agust D의 날 것 같은 고백, SUGA의 절제된 균형, 민윤기라는 개인의 흔들림이 한 무대에서 교차했다. 투어는 2023년 4월 26일 뉴욕에서 시작해 아시아를 거쳐 8월 6일 서울에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관객은 화려한 장치보다, 곡과 곡 사이에 잠깐 드러나는 그의 숨소리에서 더 많은 것을 읽었다. 그 숨소리야말로 슈가가 보여주는 ‘현실의 증거’였다. 그는 종종 무대에서 “오늘은 후회 없게 하자”는 식의 말을 던지며 관객을 다잡았다. 짧고 무뚝뚝한 그 한마디는, 사실상 자신에게 하는 약속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약속이 지켜질 때마다, 관객은 ‘퍼포먼스’가 아니라 ‘고백’에 환호했다.

슈가의 커리어를 역사처럼 읽으면, 그는 늘 팀의 중심과 바깥을 동시에 걸었다. 팀 안에서는 래퍼로, 또 많은 곡에서 작사·작곡·프로듀싱으로 존재감을 더했다. 팀 밖에서는 협업의 언어로 실력을 증명했다. 아이유와의 ‘에잇’, 싸이의 ‘That That’ 프로듀싱,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작업은 ‘아이돌의 래퍼’라는 범주를 넘어 제작자로서의 좌표를 찍었다. 그는 무엇보다 ‘과잉을 싫어하는 제작자’다. 사운드를 쌓을 때도, 감정을 말할 때도, 딱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덜어낸다. 그래서 슈가의 곡은 듣는 순간보다 지나고 난 뒤에 더 크게 남는다.

또한 그는 개인적인 고통을 작업의 연료로 삼되, 그것을 미화하지 않았다. 어깨 부상과 관련해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역은 사회복무요원으로 이행했다는 사실도 그 ‘현실’의 연장선에 있다. 2023년 9월 22일 병역 의무를 시작해 2025년 6월 18일 사실상 복무를 마무리했으며 6월 21일 공식 소집해제됐다.

대중이 슈가를 사랑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정직함’에 있다. 그의 랩은 과시보다 고백에 가깝고, 그의 비트는 화려함보다 정확함에 가깝다. 방탄소년단의 곡들에서 슈가가 맡은 파트는 종종 서사의 ‘바닥’이다. 감정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가, 그 바닥에서 다시 올라오는 힘을 만든다. ‘Interlude: Shadow’는 성공 이후의 공포를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Amygdala’는 트라우마의 기억을 날 것 그대로 꺼내 치유의 과정을 음악으로 기록한다. 그가 “괜찮다”고 쉽게 말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믿고 따라온다. 그는 ‘괜찮지 않은 상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그 상태를 통과하는 방법을 조용히 제시한다. 그래서 그의 노래가 위로가 되는 건 따뜻한 말 때문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 덕분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의 ‘정확함’이다. 그는 감정을 크게 부풀리는 대신, 감정이 생겨난 원인을 해부한다. 랩의 속도를 올리기 전에 단어의 온도를 먼저 맞추고, 비트를 세게 치기 전에 침묵의 길이를 먼저 계산한다. 그래서 슈가의 음악은 듣는 순간의 쾌감보다 ‘뒤늦은 공명’이 강하다. 밤에 혼자 걷다가 문득 한 줄이 떠오르고, 그 한 줄이 오늘의 마음을 대신 설명해주는 경험. 그 경험을 반복시키는 힘이 그에게 있다. 팬이 아니어도 그의 가사를 ‘메모’처럼 붙잡는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슈가의 음악은 자기 연민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가 만드는 감정은 늘 책임을 동반한다. 자신이 무너졌다면 왜 무너졌는지 분석하고, 세상이 불공평하다면 그 구조를 질문한다. ‘Polar Night’는 정보 과잉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People’은 인간의 반복과 모순을 담담하게 관찰한다. 거대한 메시지를 외치기보다 작은 문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방식이 그의 특기다. 그 문장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팬덤이 그를 ‘차가운 다정함’으로 기억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무대에서 활짝 웃지 않아도, 음악은 충분히 따뜻하다는 사실을 그는 증명해 왔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감상적 온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현실을 존중하는 온도다. 결국 슈가가 만들어낸 가장 큰 인기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두는 힘’이다. 팬이든 대중이든, 그의 음악 앞에서는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그 안도감이 반복될수록, 그의 목소리는 ‘특별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내 편 같은 사람’의 목소리로 바뀐다.

물론 그의 길이 늘 매끈했던 것은 아니다. 2024년 여름 전동 스쿠터 관련 음주운전 의혹 보도가 나오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다만 이후 절차와 처분을 둘러싼 보도들이 이어지며, 대중은 ‘완벽한 스타’가 아니라 ‘현실의 인간’으로 그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그럼에도 커리어가 쉽게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스스로의 그림자를 감추는 방식으로 성장해 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그림자를 음악으로 드러내고, 그 드러냄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상처를 ‘콘셉트’로 쓰지 않고, 상처를 다루는 태도를 작품으로 남기는 점이 그를 특별하게 만든다. 논란이 남긴 흔적조차 결국 그의 세계관에서는 ‘정리해야 할 현실’로 남는다. 그래서 그는 변명보다 작업을 택한다. 무슨 말을 하든, 결국 사람을 납득시키는 건 완성된 한 곡이라는 사실을 그는 너무 잘 안다.

공백을 거친 창작자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다시 시작’이 아니라 ‘다시 평소’로 돌아가는 일이다. 슈가에게 평소란 곧 작업이다. 그는 무대가 없을 때 더 자주 스튜디오로 향해 왔고, 화려한 일정이 몰릴수록 오히려 곡을 더 간결하게 만들었다. 그의 프로듀싱은 드라마의 대사처럼 설명적이기보다 영화의 편집처럼 압축적이다. 중요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불필요한 컷을 과감히 덜어내고,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침묵을 길게 남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들으면 한 편의 서사가 ‘장면 단위’로 떠오른다. 이런 영화적 감각은 K팝이 세계 대중음악의 문법과 만나는 지점에서 더 큰 힘을 낸다. 언어가 달라도 리듬과 호흡은 전염되고, 그 호흡을 설계하는 사람이 바로 슈가다.

그가 손대는 곡은 종종 ‘솔직함’을 가장 큰 훅으로 삼는다. 멜로디가 아니라 문장 하나가 노래의 표정을 결정하고, 드럼이 아니라 숨소리 하나가 리스너의 속도를 바꾼다. 그 미세한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이 그를 ‘아이돌 멤버’가 아니라 ‘제작자’로 오래 남게 만든다. 무대의 환호가 사라져도 작업의 규칙은 남는다. 그 규칙 위에서 그는 다시 한 번, 팀의 다음 시대를 설계할 준비를 마쳤다.

2025년 6월 소집해제 이후, 슈가는 급하게 스포트라이트로 달려가기보다 호흡을 고르는 쪽을 택했다. 긴 공백 뒤에는 무대의 체력뿐 아니라 창작의 리듬도 다시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선택이다. 그리고 2026년 1월 1일, 방탄소년단은 3월 20일 완전체 컴백과 이후 월드투어 계획을 공식화하며 ‘다음 장’의 시간표를 꺼내 들었다.

슈가에게 2026년은 ‘팀의 귀환’이면서 동시에 ‘제작자의 복귀’다.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대 위의 과장된 카리스마가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곡의 골격을 세우는 집요함이다. 완전체 활동이 재개되면, 그의 프로듀싱 감각은 팀의 사운드를 새 시대에 맞게 조율할 가능성이 크다. 솔로로는 ‘Agust D’의 서사를 다음 장으로 넘기거나, 전혀 다른 얼굴의 프로젝트로 돌아올 수도 있다. 미래를 전망할 때 그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확장’보다 ‘정교화’다. 이미 넓은 스펙트럼을 갖춘 사람이, 이제는 더 정확하게 자신과 세계를 기록하려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 기록은 늘 그렇듯,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한 줄의 가사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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