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이라는 세계는 '집집마다 술이 익는 마을'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는 가문마다, 지방마다 고유한 비법으로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가 만개했다. 이는 단순한 기호 식품의 생산을 넘어선 것이었다. 조상에게 올리는 제주(祭酒)를 남의 손이나 돈으로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불경(不敬)으로 여겨졌다. 쌀을 씻어 찌고, 직접 띄운 누룩을 섞어 빚는 행위 자체가 제사의 시작이었으며, 그 정성(Jeongseong)이야말로 유교적 제의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는 한국의 모든 시스템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고, 술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09년 주세법 시행과 1916년 주세령 공포는 가양주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조선총독부는 세수 확보와 미곡 통제를 목적으로 자가 양조를 전면 금지하고, 면허를 가진 양조장에서만 술을 빚도록 강제했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균(菌)의 통제'였다. 일제는 조선의 다양하고 거친 누룩(Nuruk) 대신, 일본식 입국(Koji) 방식을 이식했다. 이는 관리하기 쉽고 수율이 높지만, 획일화된 맛을 내는 방식이었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한반도의 미생물 생태계가 제국주의의 효율성 논리에 의해 말살당한 것이다.
1965년 양곡관리법
해방 이후에도 전통주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 전쟁 직후의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1965년 박정희 정권은 '양곡관리법'을 제정하여 술을 빚는 데 쌀을 사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이 시기야말로 한국 전통주의 '암흑기'였다. 쌀 대신 수입 밀가루나 옥수수, 고구마 전분이 술의 재료가 되었고, 이를 발효시키기보다는 주정(에탄올)에 물을 타고 감미료를 섞는 희석식 소주가 국민주로 자리 잡았다.
1965년부터 쌀 막걸리가 다시 허용된 1990년대 초반까지, 거의 한 세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진짜 쌀로 빚은 술'의 맛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초록색 병에 담긴 공업적 소주와 일본식 청주인 '정종(Jeongjong)'을 전통으로 오해하며 성장했다. 국순당의 차례주 교실은 바로 이 '미각의 기억 상실증'을 치유하는 임상 실험실과도 같다.
왜 지금 '신도주'인가?
국순당이 이번 설맞이 교실에서 참가자들에게 가르치는 술은 '신도주(Sindoju)'이다. 문자 그대로 '햅쌀로 빚은 새로운 술'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쌀로 만든 술이라는 재료적 정의를 넘어선다. 신도주는 한 해의 농사를 무사히 마쳤음을 조상에게 고(告)하고, 그 첫 수확물로 빚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술이다.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수입 밀가루'와 '희석식 알코올'로 대체되었던 제사상의 술을, 다시금 '우리 땅에서 난 햅쌀'로 복귀시키는 것. 이것은 잃어버린 농업과 제의의 연결고리를 다시 잇는 상징적 행위다. 30명의 참가자가 2만 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룩과 입국, 혼돈과 질서의 대립
글로벌 독자들이 한국의 전통주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누룩(Nuruk)'과 일본의 '코지(Koji, 입국)'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발효제의 차이가 아니라, 자연을 대하는 두 문화의 철학적 차이를 보여준다.
일본의 사케(Sake) 양조에 쓰이는 코지는 철저한 '분리'와 '순수'의 산물이다. 일본의 양조장들은 쌀을 깎고 또 깎아(도정) 단백질과 지방을 제거한 순수한 전분 중심부에, 실험실에서 배양한 단일 곰팡이 균주(Aspergillus oryzae)만을 접종한다. 이 과정은 외부의 잡균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된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그 결과물은 수정처럼 맑고, 화려한 과실향(Ginjo-ka)이 나며, 잡미가 없는 깔끔한 술이다. 이것은 자연을 인간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제어하려는 미학의 결정체다.
반면, 국순당 교실에서 참가자들이 손으로 부수어 넣는 한국의 누룩은 '야생(Wild)' 그 자체다. 통밀을 거칠게 빻아 물과 섞어 디딘 후, 자연 상태에 방치한다. 이 과정에서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많은 곰팡이(Rhizopus, Mucor, Aspergillus 등), 효모(Saccharomyces 외 야생 효모), 유산균들이 누룩 덩어리에 내려앉는다.
누룩은 하나의 '미생물 우주'다. 여기에는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는 곰팡이와, 당을 알코올로 바꾸는 효모, 그리고 잡균의 번식을 막고 산미를 더하는 유산균이 공존한다. 이들이 빚어내는 술은 단일하지 않다. 흙냄새, 풀냄새, 잘 익은 배의 향기, 그리고 묵직한 바디감과 산미가 뒤섞여 있다. 일본의 사케가 '선(Line)'의 미학이라면, 한국의 전통주는 '면(Plane)'과 '입체(Volume)'의 미학이다.

아름터에서의 비교 시음... 감각의 깨어남
국순당 '우리술 아름터' 교육의 백미는 바로 이 두 가지 술을 비교 시음하는 시간이다. 참가자들은 일본식 청주(또는 시중의 일반 청주)와 국순당의 전통 제법 차례주 '예담'을 번갈아 마신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명확하다. 일본식 청주는 혀끝을 스치고 사라지는 가벼움이 있는 반면, 누룩으로 빚은 '예담'은 입안 가득 차오르는 무게감과 목 넘김 후에도 남는 은은한 여운(Aftertaste)이 있다. 이 순간 참가자들은 머리가 아닌 혀로 깨닫는다.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가 지워버렸던 '맛'이 무엇이었는지를.
이번 강좌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지점은 술을 빚는 방식, 즉 '범벅'이나 '고두밥'이 아닌 '백설기(Baekseolgi)'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레시피의 차이가 아니라, 시간과 싸워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과학적 선택이다.
왜 고두밥이 아닌 백설기인가?
보통 막걸리나 약주를 빚을 때 가장 흔한 방식은 쌀을 물에 불려 시루에 찌는 '고두밥(Godubap, Hard-steamed rice)' 방식이다. 밥알이 살아있어 맑은 술을 얻기에 유리하다. 그러나 '설맞이 차례주'는 시간이 생명이다. 설날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주. 이 짧은 시간 안에 쌀의 전분을 완벽하게 당화시키고 알코올로 변환시키기 위해서는 미생물이 쌀에 침투하기 쉬운 형태가 필요하다.
손맛(Son-mat) 박테리아와의 스킨십
강좌 현장에서 30명의 참가자는 갓 쪄낸 뜨거운 백설기를 손으로 잘게 부수고(Punging), 차가운 물과 누룩을 섞어 반죽한다(Mash mixing). 이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이다. 뜨거운 떡을 만지는 과정에서 쌀의 온도는 효모가 활동하기 좋은 25도 전후로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더 중요한 것은 '손'이다. 한국 음식 문화에서 '손맛'은 비유가 아니다. 사람의 손에 상재하는 미세한 유익균들이 술독에 섞여 들어간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쌀과 누룩을 치대며, 산업화된 양조장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접촉'을 경험한다. 이는 무균실에서 스테인리스 탱크로 이동하는 현대 주류 생산 방식에 대한 인간적인 저항이다.
음복(飮福) 산 자와 죽은 자의 공명
이 모든 과정—누룩을 띄우고, 쌀을 빻고, 백설기를 쪄서 술을 빚는 행위—의 목적지는 단 하나, 차례상이다. 글로벌 독자들에게 한국의 차례(Charye) 문화는 단순한 조상 숭배(Ancestral Worship)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소통'과 '나눔'에 있다.
향은 하늘로, 술은 땅으로
유교적 제의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조상의 혼(Spirit)을 부르는 행위다. 반면, 술을 땅(또는 모사 그릇)에 붓는 뇌주(酹酒)는 땅으로 돌아간 조상의 백(Body)을 부르는 행위다. 즉, 술은 하늘과 땅,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매개체(Medium)다.
국순당의 '예담'이 일본식 청주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예담'은 주정을 섞어 양을 늘리지 않고 100% 순수 발효로 빚었으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종묘제례의 전용 제주로 사용될 만큼 그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참가자들에게 '예담'을 선물로 증정하는 것 은 단순히 상품 홍보가 아니라, "이 술이 바로 당신이 빚어야 할 술의 기준(Standard)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음복... 복을 마시다
차례가 끝난 후 행해지는 '음복(Eumbok)'은 제사의 완성이자 클라이맥스다. 조상신이 흠향(歆饗, 향기를 먹음)하고 남은 술과 음식을 가족들이 나눠 먹는 의식이다. 서양의 제사가 신에게 바치고 태워 없애는(Sacrifice) 개념이라면, 한국의 제사는 신과 함께 식사하는(Communion) 개념이다.
신도주를 마시는 것은 조상의 덕(Virtue)을 물리적으로 섭취하는 행위다. 참가자들이 직접 빚은 신도주를 2주 뒤 설날 아침 차례상에 올리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 술을 마실 때, 그 술맛은 시중의 소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다. 그것은 "우리가 빚었다"는 자부심의 맛이며, 단절되었던 가문의 역사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는 증거의 맛이다.
국순당의 이번 강좌 참가비는 2만 원(대학생 1만 원)이다. 1.5리터 이상의 술을 빚어가고, 고급 차례주 '예담'을 선물로 받으며, 전문 강사의 교육을 받는 비용치고는 터무니없이 저렴하다. 이는 국순당이 이 행사를 수익 사업이 아닌 '문화 투쟁'의 일환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1990년대 백세주(Bekseju)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통주의 현대화를 이끌었던 국순당은, 이제 소비자를 '교육'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소비자가 직접 술을 빚어보지 않으면, 왜 전통 누룩이 귀한지, 왜 100% 발효주가 비싼지를 이해할 수 없다.

글로벌 트렌드 속의 K-Sool
세계 주류 시장의 트렌드는 '내추럴 와인(Natural Wine)'과 '크래프트(Craft)'로 요약된다. 인공 첨가물을 거부하고, 야생 효모를 사용하며, 필터링을 최소화하여 원료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흐름이다. 한국의 전통주, 특히 누룩을 사용한 막걸리와 약주는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1월 24일, 아름터에 모일 30명의 사람들은 2시간 동안 쌀을 씻고 찌고 버무리며, 스마트폰의 속도에 익숙해진 자신들의 시간을 잠시 멈출 것이다.
그들이 집으로 가져간 항아리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혁명이 일어난다. 효모는 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쌀은 딱딱한 고체에서 향기로운 액체로 승화된다. 이 2주간의 발효 기간은 현대인들에게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시간'을 선물한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은 단순히 술 빚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손으로 만든 가장 귀한 것을 나의 뿌리(조상)에게 바치고, 다시 그것을 이웃과 나누며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던 공동체의 마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