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 웹소설/당신의 원대한 꿈을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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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자가 담아낸 기업 판타지

[magazine kave=최재혁 기자]

성공한 중년 CEO가 다시 신입사원이 된다면, 과연 인생을 어디서부터 다시 고칠 수 있을까. 웹소설 '상남자'는 이 상상에서 출발해, 회귀물의 틀 안에 한국 직장인의 서늘한 현실과 짜릿한 복수 판타지를 동시에 집어넣는다. 주인공 한유현은 한때 그저 눈치 보며 버티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지만, 끝내 대기업 한성전자의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정점에 선 순간, 그의 손에는 회사만 남아 있고, 정작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은 이미 떠나 있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뒤다. 성공의 대가로 모든 것을 잃은 밤, 한유현은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켜야 했을지를 머릿속에서 끝없이 되감는다.

그 절망의 끝에서, 믿기 힘든 기회가 찾아온다. 눈을 떠보니 그의 몸은 다시 한성전자 입사 초기의 젊은 시절로 돌아와 있다. 여전히 쓸쓸한 원룸, 회사 앞 분식집의 기름 냄새, 아침마다 쏟아져 들어가는 출근 인파까지, 모든 것이 낯익으면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무엇보다도 예전에 스쳐 지나가듯 만났다가 뒤늦게 소중함을 깨달았던 동료들이 눈앞에 다 살아 돌아와 있다. 예전에는 그냥 같이 퇴근하던 술 친구에 불과했던 직장 동료, 업무 스트레스로 예민하게만 보였던 상사, 하소연을 들어주던 선배가 이제는 각자 다른 비극의 씨앗을 품은 존재로 보인다.

한유현은 알고 있다. 누구는 과로 끝에 쓰러지고, 누구는 회사의 희생양이 되고, 또 누구는 부당한 인사와 정치 싸움에 짓눌려 회사를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과거의 기억을 가진 채 다시 시작하게 된 그는, 처음에는 그 지식을 활용해 더 빨리 승진하고, 더 정확하게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더 영리하게 실적을 쌓으려 한다. 회의실에서 날카로운 질문이 오갈 때, 그는 미래에서 가져온 답을 토대로 완벽에 가까운 발표를 펼치고,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상대 팀이 준비하지 못한 변수를 미리 차단하며 승리를 챙긴다. 구내식당에서조차 동기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를 보며 저 장면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선택은 점점 단순한 개인 출세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이전의 삶에서 비참한 결말을 맞았던 동기 권세중, 조직 안에서 늘 이용만 당하다 버려졌던 고참, 회사에 헌신하다 가정이 붕괴되었던 상사 등, 각 인물의 미래를 아는 한유현은 자신이 개입하여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 시험해 보기 시작한다. 예전과 똑같이 흘러가는 회식 자리에서 그는 특정 발언을 슬쩍 막거나, 위험한 선택을 하려는 동료에게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부당하게 몰리려 할 때는, 미리 준비해둔 데이터로 힘을 실어준다.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연대의 삶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 회귀물이 아니라, 한 남자의 죄책감과 속죄의 기록으로 변한다. 과거의 삶에서 한유현은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자신의 안위와 승진을 우선했고, 누군가가 잘려 나갈 때 눈을 감았다. 이번 생에서는 그때 외면했던 장면 하나하나를 다시 맞닥뜨리며, 그때와 다른 결정을 내리려고 애쓴다. 하지만 회사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개인의 선의만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위험에 밀어 넣게 되기도 하고, 특정 부서의 구조조정을 막으려 할수록 다른 사업 부문에서 더 큰 칼바람이 불어오기도 한다.

한성전자 안에서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과 그룹 후계 싸움도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다. 오너 일가의 갈등과 경영진의 정치 싸움이 본격화되면서, 한유현은 단순히 유능한 샐러리맨이 아니라, 판 전체를 움직이는 플레이어로 끌려 들어간다. 과거의 기억 덕분에 누가 어느 타이밍에 배신할지, 어떤 프로젝트가 향후 그룹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지를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뜻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살리고 싶었던 사람을 위해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위험에 빠뜨려야 하고, 때로는 회사의 미래를 생각해 냉정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독자는 한유현이 성공과 행복 사이에서 서서히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그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예전의 삶에서 자신이 진짜 후회한 것은 CEO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두 번째 인생에서 그는 승진과 연봉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가족과 동료들과의 관계를 붙들어 보려고 애쓴다. 물론 현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가족에게 시간을 더 쓰기 위해 회식 자리를 빠지면, 그만큼 승진 경쟁에서 불리해지고, 동료를 지키기 위해 상사의 명령에 반기를 들면, 인사고과에 빨간 줄이 그어진다. 작품은 이 딜레마를 피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이며, 독자로 하여금 나였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수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결말을 향해 갈수록 이야기는 기업의 흥망과 개인의 인생사가 겹쳐지며 스케일을 키운다. 국내 시장뿐 아니라 해외 사업, 신사업 투자, 기술 유출, 금융권과의 줄다리기 등, 회사가 처한 현실적 위기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한유현은 그 한복판에서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도달해 간다. 이때 작품은 단순한 역대급 스펙의 회귀 주인공 성장기에서, 한국식 자본주의 시스템과 노동의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드라마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독자는 마지막까지 그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지, 어떤 형태의 성공을 선택할지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그 결말의 구체적인 선택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쌓인 무수한 감정의 층위와 질문들이다.

K-회귀이자, K-직장인의 민낯

'상남자'는 회귀물이라는 장르의 클리셰를 익숙하게 쓰면서도 한국 직장인의 현실적인 정서를 촘촘하게 녹여냈다는 점이다. 회귀물 독자들은 이미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온 주인공이 인생 2회차를 시작한다는 구도에 익숙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회귀의 능력을 압도적인 전능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어떻게 써도 결국 어딘가는 어긋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선택으로 그려낸다.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에서 한유현은 항상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겠다"고 마음먹지만, 그 선택이 다른 비극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런 구조 덕분에 이야기는 단순한 사이다 판타지로 흐르지 않고, 성공과 윤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드라마로 확장된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지점은 회사라는 공간의 활용이다. 많은 현대 직장물들이 회의실과 사무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결국 인물들의 연애나 사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면, '상남자'는 상당히 집요하게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와 이해관계를 파고든다. 특정 사업부의 투자가 왜 필요했고, 그 의사결정이 회계장부와 인사, 심지어 협력업체와의 관계까지 어떤 연쇄 효과를 낳는지 비교적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내가 다니는 회사의 위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겠다는 현실감을 느끼게 되고, 동시에 주인공이 그 판을 읽어가며 수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 전략 게임을 보는 듯한 쾌감을 맛본다.

김태궁 상남자 작가, 전 LG디스플레이 연구원
김태궁 상남자 작가, 전 LG디스플레이 연구원

인물 구성도 단순하지 않다. 선과 악이 칼같이 갈리는 서사가 아니라, 각자의 사정과 욕망을 지닌 회색톤의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야망을 앞세운 상사는 회사에 대한 충성과 사적인 욕망이 뒤엉켜 있고, 비겁해 보이는 동료는 가정을 위해 버티고 있는 인물일 수 있다. 심지어 노골적인 빌런처럼 보이는 인물도, 기업의 생존을 위해 냉혹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입장에 서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한유현이 내리는 선택은 늘 누군가에게 정의롭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배신이 된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완벽하게 옳은 선택이 존재하기나 하는가에 가깝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회귀물, 재벌 드라마, 회사 정치물의 요소를 한데 모으다 보니, 특정 구간에서는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본 듯한 전개가 반복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특히 초반부의 사이다 전개가 강렬했던 독자라면, 중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진지한 정치 싸움과 구조조정, 경영권 분쟁의 비중이 늘어날 때 다소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의 능력치가 워낙 압도적인 탓에,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결국에는 유현이 다 해결하겠지라는 예측이 생기면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회차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판타지의 쾌감과 현실의 씁쓸함, 두 가지 맛을 모두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는 한편으로는 나도 저렇게 회의실에서 한 번만 시원하게 이겨보고 싶다는 대리 만족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저런 자리에 선다고 해서 진짜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남는 여운은 결국 후자의 질문에 가깝다. 성공과 돈, 명예를 손에 넣는다 해도, 나 혼자만 남게 되는 삶이 과연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작품은 이 질문에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 2회차가 만들어내는 시행착오와 후회의 궤적을 통해 각자 나름의 답을 찾게 만든다.

‘상(上)남자’는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상남자'라는 제목 자체가 던지는 반어적 뉘앙스도 흥미롭다. 전통적인 의미의 상남자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가족에게도 퉁명스러우며, 회사에서는 묵묵히 일만 잘 하는 사람으로 그려지기 쉽다. 하지만 작품 속 한유현은 두 번째 인생에서 감정을 숨기기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미안했던 사람에게는 직접 사과하고, 고마웠던 사람에게는 고맙다고 말하려 애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진짜 상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강해 보이는 사람보다, 끝까지 버티고 책임지려 애쓰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묵직하게 던진다.

이 작품이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 크게 와닿는 이유는, 한국식 조직 문화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하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야근이 당연시되는 분위기, 회식 자리에서 오가는 미묘한 눈치 싸움, 승진 심사에서의 모호한 기준, 윗선에서 떨어지는 비합리적인 지시 등, 많은 직장인들이 이미 겪어봤을 장면들이 변주되어 등장한다. 독자는 그 속에서 한유현이 조금씩 판을 바꾸고, 때로는 정면으로 부딪치고, 때로는 우회하며 살아남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기 삶의 기억과 자연스럽게 겹쳐 읽게 된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장점 중 하나는 두 번째 인생이라는 거창한 소재를 쓰면서도, 결국 아주 사소한 선택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점심시간에 누구와 밥을 먹을지, 회식 자리에서 누구 편을 들어줄지, 회의에서 침묵할지 아니면 한마디를 보탤지 같은 사소한 결정들이 모여, 어느 순간 사람의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밀어버린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 덕분에 독자는 작품을 보며 단지 저 사람은 회귀해서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금 자기 앞에 놓인 작은 선택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직장인이 해볼 발칙한 상상

'상남자'를 어떤 독자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퇴근길 지하철에서, 하루 종일 회사에서 치이고 돌아오며 "나 말고 누가 회귀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생각해본 적 있는 직장인이라면 이 작품에서 깊은 위로와 동시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한유현의 선택과 후회, 좌충우돌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내일 아침 출근길에 그래도 나는 아직 인생 1회차고, 지금이라도 다르게 선택해볼 수 있다는 기묘한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회귀물과 성공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이 단순한 성장 치트키를 넘어 어느 정도 현실과 윤리의 무게까지 함께 끌어안으려 한다는 점에서 더 깊게 즐길 수 있다. 호쾌한 사이다 전개와 묵직한 성찰이 번갈아 가며 등장하기 때문에, 쭉 달리며 읽다가도 문득 한 회차를 덮고 생각에 잠기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한국식 자본주의와 회사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서 소모되거나 버티는 개개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서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상남자'는 충분히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경영과 투자, 인사와 조직을 다루는 설정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회의실과 이사회, 오너 일가의 갈등이 촘촘히 엮인 전개에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서사 속에서도 끝내 사람을 놓지 않으려는 한 남자의 고집을 보며, 우리가 성공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쓰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질문을 한 편의 긴 회귀 드라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는 점에서, '상남자'는 단순한 오피스 판타지를 넘어, 오늘을 사는 한국 독자에게 유효한 이야기를 건네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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