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은 위로받아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화려한 조명 아래 박수갈채를 받는 무대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의 손을 잡는 그 곳에 있어야 한다. 2025년 12월, 패스브레이킹 싱어즈(Pathbreaking Singers)의 송년음악회 'Adieu 2025, Welcome 2026'은 바로 이 본질을 향한 질문이다. 화려함이 아닌 진정성으로, 명성이 아닌 섬김으로 26년을 걸어온 한 공동체의 결정체다.
포스트 팬데믹 이후 한국 사회는 양극화와 영적 고갈의 늪에 빠져 있다. 대중은 오락이 아닌 위로를, 자극이 아닌 치유를 갈구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대형 교회의 물량주의와 개교회주의라는 오래된 병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은 교회와 개척 교회는 문화적 소외 지대에 방치됐고, 목회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 이것이 현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패스브레이킹 싱어즈의 존재 의미가 드러난다. 이들은 단순한 찬양단이 아니다. 26년간 작은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라는 본질적 신앙 고백을 회복시켜온 문화 선교의 전위대다.
26년 여정의 시작점: 서초교회에서 한섬공동체까지
1999년, 서초교회 김석년 목사가 시작한 '패스브레이킹 워크숍'은 한국 교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급진적 해답이었다. "교회 개척자를 가장 위대한 분으로 알아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섬긴다."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당시 한국 교회는 대형 교회 중심의 성공주의 신화에 매몰되어 있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성공한 목회'라는 환상 앞에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다.
김석년 목사는 이에 정면으로 맞섰다. 워크숍은 목회 기술(Methodology)을 전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2박 3일 동안 참가자들은 "목회 성공이 아니라 나만의 부르심의 목회 길을 간다"는 소명 의식을 재확인했다. 이것은 치유였다. 성공주의에 병든 목회자들에게 본질을 되돌려주는.
2020년, 김석년 목사는 서초교회를 조기 은퇴하고 '한섬공동체(한국교회를 섬기는 공동체)'를 설립했다. 패스브레이킹 사역은 보다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단계로 진입했다. 3대 사명은 명확했다. "작은 교회를 살린다", "쉬지 않는 기도를 살린다", "기독 문화를 살린다."
2021년 11월, 세 번째 사명의 구체화가 시작됐다. 패스브레이킹 싱어즈의 창단이다. 코로나19로 교회의 찬양 소리가 멈춘 시기였다. 대면 예배가 중단되고 공동체성이 무너졌다. 이 침묵의 시기에 패스브레이킹 싱어즈는 '찾아가는 음악회'를 시작했다. 닫힌 교회의 문을 다시 열었고, 위로가 필요한 현장으로 직접 들어갔다. 음악이 관상용 예술이 아니라 치유의 도구임을 증명한 것이다.

패스브레이킹 5P 원리: 지속 가능한 목회의 청사진
패스브레이킹 사역의 핵심에는 '5P 원리'가 있다. Plan(계획), People(사람), Program(프로그램), Power(동력), Pastor(목회자). 이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인 가르침, 전파, 치유를 현대 목회에 재해석한 프레임워크다.
Plan: 목회의 방향성을 설정한다. 성서적 비전과 교회의 본질을 정립한다.
People: 목회는 독주가 아닌 협주다. 평신도 리더십을 세운다.
Program: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기 위한 구체적 커리큘럼을 개발한다.
Power: 기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다. '쉬지 않는 기도' 운동과 연결된다.
Pastor: 목회자 자신의 영적 관리와 성숙. 이것이 '지속 가능한 목회'의 전제 조건이다.
이번 송년음악회는 이 5P 원리의 살아있는 증거다. 단순한 행사(Program)가 아니라, 문화 예술을 통해 사람(People)을 위로하고, 영적 힘(Power)을 공급하며, 목회자(Pastor)와 성도들이 새로운 비전(Plan)을 품게 하는 통합적 사역의 장이다.
영문하 예배: 예배학적 혁신의 실험장
패스브레이킹 싱어즈의 정체성은 '영문하 예배(영성과 문화가 하모니를 이루는 예배)'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매 주일 오후 5시, 이들은 전통적 예배 형식에 문화 예술을 과감히 도입한다.
첫째 주일: 성찬예배 -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며 공동체의 일치 확인
둘째 주일: 찬양예배 - 깊이 있는 찬양을 통한 영적 해방
셋째 주일: 문화예술예배 - 클래식, 국악,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복음 재해석
넷째 주일: 선교예배 - 열방을 향한 시선 확장
다섯째 주일: 이슈예배 - 시대적, 사회적 이슈를 신앙적 관점에서 조명
이것은 실험이다. 자원이 부족한 개척 교회 목회자들에게 "우리도 다르게 예배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제공하는. 이번 송년음악회는 '영문하 예배'의 확장판이다. 예배와 공연의 경계를 허무는 거룩한 축제.

세계적 실력, 그러나 낮은 곳을 향한 아티스트들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화려한 경력이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려는 겸손한 영성이다.
패스브레이킹 싱어즈 팀을 만든 손진기 단장은 "예술을 통한 정서적 위로는 현대인들에 주는 예수의 메세지라 생각한다"라는 말 속에서 그의 의지와 사명이 묻어 있다.
이번 송년음악회에 출연하는 성악가들의 프로필 또한 사명감이 아니고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지만 작은 누추한 곳으로 오신 예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하다.
음악감독 이천초 선생을 비롯 소프라노 이고은ㆍ이지민 ㆍ황인애 메조 소프라노 남수지ㆍ테네 김진영 김성결ㆍ카운트 테너 전지헌ㆍ바리톤 양우철ㆍ황지웅ㆍ피아노 조재량 등이 나선다.
남성 4중창 '골리앗과 다윗들': 역설의 하모니
'골리앗과 다윗들'이라는 팀명 자체가 메시지다. 성경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역전의 드라마'다. 거대한 문제(골리앗) 앞에서 물맷돌 같은 믿음(다윗)으로 노래하겠다는 이들의 고백은, 오늘날 거대 자본과 시스템에 압도당하기 쉬운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최고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간다.
"최상의 예술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며, 동시에 가장 소외된 이웃들과 공유되어야 한다." 이것이 공공신학적 실천이다. 작은 교회 성도들이나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김진영, 이고은 같은 최정상급 성악가들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경험은 단순한 문화 향유를 넘어선다. 자신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
'프로'의 실력과 '아마추어'의 열정
패스브레이킹 싱어즈의 멤버들은 생계를 위해 음악을 하는 프로페셔널들이다. 그러나 이 사역에 임할 때만큼은 보수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아마추어(Amateur, 사랑하는 사람)의 열정을 보인다. 이는 다음 세대 기독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롤모델이 된다.
시장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법. '재능 기부'를 넘어선 '재능 봉헌'의 삶. 이것이 진짜다.
지속 가능한 사역 생태계: 연대와 돌봄
패스브레이킹 사역의 가장 큰 특징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돌봄'과 '연대'를 지향한다. 음악회는 만남의 장을 열고, 그 만남은 워크숍과 세미나로 이어지며, 다시 각 지역 교회의 예배 회복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고립되기 쉬운 개척 교회 목회자들에게 든든한 영적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목회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된다.
2026년, 다시 희망을 노래하다
패스브레이킹 싱어즈의 송년음악회 'Adieu 2025, Welcome 2026'은 한 해를 마감하는 마침표가 아니다. 새로운 해를 여는 도돌이표다.
김석년 목사의 "패스브레이킹" 비전과 패스브레이킹 싱어즈와 '골리앗과 다윗들' 등 참여 아티스트들의 헌신적인 연주는 2025년의 아픔을 덮고 2026년의 희망을 싹틔우는 거룩한 거름이 될 것이다.
이 음악회는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화려한 조명 아래서가 아니라, 묵묵히 좁은 길을 걸으며 길을 만드는(Pathbreaking) 이들의 노래는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과 같다.
2026년 새해, 한섬공동체와 패스브레이킹 싱어즈가 만들어갈 아름다운 하모니가 한국 사회 곳곳에 울려 퍼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기적의 역사가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