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 뒤에 숨은 상처의 이야기 ‘애니메이션 영화 사랑의 하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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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By 최재혁 기자

프리퀄 속에 가득 담긴 ‘당신의 감정’ 100만 관객 돌파...꺾이지 않는 하츄핑 인기

극장 안이 핑크빛으로 물든다. 왕관을 쓴 공주와 동그란 눈의 작은 요정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순간, 아이들은 이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준비를 마친 듯 들썩인다. 마치 겨울왕국의 '렛 잇 고'가 흘러나올 때처럼, 하지만 눈의 여왕 대신 핑크 요정과 함께.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은 TV 시리즈 '캐치! 티니핑'의 첫 번째 극장판이자, 공주 로미(이지현)와 하츄핑(조경이)이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를 들려주는 일종의 '원작 이전 이야기'다. TV에서 이미 수년간 사랑받아 온 캐릭터들의 과거를 파고들면서, 사랑과 상처, 성장이라는 조금은 진지한 감정선을 어린이용 뮤지컬 판타지 안에 꽉 채워 넣는다.

이모션 왕국: 인사이드 아웃의 한국판

이야기의 무대는 감정의 에너지가 빛으로 피어나는 이모션 왕국이다. 왕국의 공주 로미는 어느 날 자신만의 '짝꿍 티니핑'을 찾기 위한 의식을 앞두고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모든 아이들은 각자의 감정과 가장 잘 맞는 티니핑을 만나 함께 성장해 가야 한다는 것이 이 세계의 규칙이다. 마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에서 지팡이를 찾듯, 하지만 마법봉 대신 감정 요정을. 그런데 유독 로미의 짝으로 점괘에 나타난 하츄핑만은 왕국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공주는 사람 좋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혹시 나에게만 짝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시달린다. SNS 시대에 '좋아요' 없는 게시물을 올린 것 같은 그 기분.

한편, 핑크빛 귀와 하트 모양 꼬리를 가진 티니핑 하츄핑은 인간 세상 어딘가에 숨어 지내고 있다. 겉모습은 누구보다 사랑스럽지만, 과거의 상처 때문에 인간을 깊이 두려워하게 된 존재다. 하츄핑은 자신을 마주치는 사람마다 위험한 존재로 상상하며, 조그만 몸을 더 작게 웅크린 채 도시의 그늘만 골라 떠돈다. 마치 토이 스토리 3의 로쏘처럼, 사랑받았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왕국의 다른 티니핑들이 아이들의 곁에서 반짝이는 소원을 이뤄 줄 때, 하츄핑은 혼자서 사랑을 피하는 아이가 되어 버린 셈이다.

로미는 결국 궁전을 뛰쳐나가 직접 하츄핑을 찾아 나선다. 화려한 드레스 대신 활동하기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자신과 함께 자란 친구 티니핑들과 왕국의 경계를 넘는다. 마치 모아나가 섬을 벗어나듯, 하지만 바다가 아니라 감정의 경계선을.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은 저주에 걸려 말로 변해버린 리암(류승곤) 왕자다. 말의 모습 속에서도 기품과 서늘함이 느껴지는 리암은, 로미에게 위험을 경고하면서도 묘하게 그녀의 선택을 돕는다. 표정 하나로 "나도 한때는 너처럼 누군가와 짝이었어"라고 말하는 듯한 존재다. 미녀와 야수의 야수가, 하지만 저주 푸는 게 아니라 다른 이의 저주를 풀어주는.

이 모험의 반대편에는 영화의 빌런인 트러핑(조현정)이 있다. 한때 리암의 짝이었던 티니핑 트러핑은, 오해와 상처 끝에 인간에게 버림받았다고 믿으며 흑화한 캐릭터다. 진홍빛 눈과 검은 날개로 재탄생한 트러핑은, 인간과 티니핑의 관계 그 자체를 부정하며 왕국을 뒤흔들 계획을 세운다. 마치 말레피센트가 오로라를 저주하듯, 하지만 16년이 아니라 영원한 불신으로. 그는 병사핑이라 불리는 티니핑 군단을 저주로 조종하고, 하츄핑에게도 "인간은 결국 너를 버릴 거야"라고 속삭이며 마음을 조여 온다. 그래서 하츄핑에게 로미의 등장은 사랑의 시작이자 또 다른 공포의 시작이기도 하다.

뮤지컬의 힘 ‘디즈니의 DNA’를 이어받은 듯하다!

영화는 로미와 하츄핑이 서로를 경계하다 조금씩 다가가며 '짝'이 되어 가는 과정을, 모험과 뮤지컬 넘버, 액션으로 리듬감 있게 엮는다. 인간 세상의 놀이공원, 밤의 도시 거리, 이모션 왕국의 궁전과 성탑을 오가며 펼쳐지는 추격전과 공중전, 그리고 각 캐릭터의 테마곡이 이어지면서, 아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로미가 처음 하츄핑을 품에 안는 순간, 하츄핑이 떨리는 목소리로 "믿어도 될까?"를 묻는 눈빛만으로도,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감정의 무게가 전해진다. 마치 ET가 엘리엇에게 손을 내밀 때의 그 감동처럼.

마지막으로 향해 갈수록 로미와 하츄핑, 트러핑과 리암 네 인물의 관계가 서로 교차한다. 과거의 오해가 어떻게 괴물을 만들었는지, 사랑받지 못했다고 믿는 존재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어린 관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사랑받지 못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증거는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아주 부드럽게 건넨다. 결말이 어떻게 봉합되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는 편이 좋지만, 최소한 이 영화는 하츄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랑'이라는 테마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다.

팬 서비스를 넘어 감정적 뿌리를 건드리다

사랑의 하츄핑'이 흥미로운 지점은, '캐치! 티니핑'이라는 장기 시리즈의 극장판이면서도 단순한 팬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세계관의 감정적 뿌리를 정면으로 파고든다는 점이다. 원작 시점보다 과거를 다루는 프리퀄 구조를 택해 "왜 로미의 짝은 하츄핑이었는가", "하츄핑은 원래 어떤 존재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동시에, 인간과 티니핑의 관계를 '첫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으로 재프레이밍한다.

보통 TV 시리즈의 극장판은 팬이 이미 알고 있는 캐릭터를 다른 무대에 던져 놓고, 스케일을 키우거나 적의 레벨을 높이는 방식으로 승부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포켓몬 극장판이 전설의 포켓몬을 등장시키듯. 반면 '사랑의 하츄핑'은 캐릭터의 과거와 상처, 관계의 시작을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 로미가 하츄핑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 하츄핑이 인간을 다시 믿어 보기로 결심하는 순간, 트러핑이 자신이 받은 상처를 타인에게 되돌려 주려는 어두운 욕망 등, 모든 갈등의 중심에 '감정'이 있다. 이모션 왕국이라는 세계 설정을 진짜 감정극으로 활용해 낸 셈이다.

캐릭터 구성이 특히 탄탄하다. 로미는 '공주'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책임감을 지닌 인물이지만, 동시에 열여섯 즈음의 소녀처럼 충동적이고 솔직하다. 왕국의 규범과 어른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위험한 선택을 할 때도 있지만, 그 바탕에는 언제나 "누군가는 저 아이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 마치 엘사가 동생을 지키기 위해 성을 떠나듯. 하츄핑은 전형적인 '상처받은 히어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랑을 상징하는 능력을 지녔지만, 정작 스스로는 사랑을 믿지 못하는 아이. 이 모순이 하츄핑을 단순 귀여운 마스코트가 아닌, 서사적 무게를 지닌 주인공으로 만든다.

트러핑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치고는 꽤 입체적인 악역이다. 그는 처음부터 세계를 파괴하려는 절대 악이 아니다. 과거에 겪었던 배신과 오해, 인정받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켜켜이 쌓여 결국 괴물의 얼굴을 만들어 낸다. 마치 코코의 에르네스토처럼, 사랑받고 싶었던 욕망이 왜곡된. 그래서 그의 분노는 이해 가능하고, 그가 하츄핑에게 "인간을 믿지 말라"고 속삭이는 장면에서는, 어른 관객일수록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상처와 불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리암 역시 '저주에 걸린 말'이라는 귀여운 설정을 넘어, 책임과 미안함, 자책을 안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음악은 이 영화의 또 다른 히어로다. 메인 테마곡 '처음 본 순간'은 걸그룹 에스파 윈터가 불러 화제를 모았고, 실제로 "한국판 '렛 잇 고'"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극장에서는 이 곡이 흐를 때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고, 부모들은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촬영한다. 일부 상영관은 아예 '싱 어롱' 상영회를 열어, 불을 켜고 모두가 함께 노래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마치 '위대한 쇼맨'의 '디스 이즈 미' 상영회처럼. 노래가 단순 삽입곡이 아니라, 로미와 하츄핑의 감정 변화와 딱 맞물려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OST를 찾아 듣게 된다.

브랜드 차원에서 보더라도 '사랑의 하츄핑'은 국산 애니메이션 IP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TV에서 이미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티니핑' 시리즈가 극장판으로 넘어오면서, 장난감·완구·음반·패션 아이템과 연계된 거대한 생태계가 작동한다. 하지만 영화 본편이 단지 상품을 팔기 위한 긴 광고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서사와 감정선이 충분히 탄탄하기 때문이다. "귀엽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저 아이들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이해가 따라붙는다. 트랜스포머가 장난감 광고로 시작해 서사를 얻었듯, 티니핑도 그 길을 걷는다.

아이만 보는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타깃이 어린이임에도 불구하고 20~30대 성인 관객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귀여운 캐릭터와 화려한 색감에 끌려 보기 시작하지만, 정작 마음을 크게 흔드는 건 "어릴 때의 나를 보는 듯하다"는 묘한 데자뷔다.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 먼저 마음을 닫아 버리는 하츄핑, 남들 앞에서는 밝은 척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는 로미의 모습은, 성장 과정에서 한 번쯤 누구나 겪었을 감정이다. 그래서 일부 어른 관객들은 "아이보다 내가 더 울었다"는 후기까지 남긴다. 마치 업에서 어른들이 칼의 인생에 울었듯.

아이와 함께 볼 영화를 고르며 "나는 조금 지루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온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다. '사랑의 하츄핑'은 아이를 위한 맞춤형 판타지이면서, 동시에 어른에게도 작지 않은 위로를 건넨다. 성장 과정에서 한 번쯤 잃어버린 '나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감각을, 알록달록한 화면과 노래 사이에 슬쩍 숨겨 두었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아웃이 감정을, 코코가 가족을 다뤘다면, 하츄핑은 상처를 다룬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궁금해하는 관객에게도 이 작품은 충분히 볼 만한 텍스트다. 캐릭터 디자인과 세계관, 뮤지컬 연출, 브랜드 확장 전략까지, 국산 IP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OTT와 극장을 동시에 공략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콘텐츠가 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좋다.

마음 한구석에 아직도 어린 시절 상처를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한 번쯤 몰래 혼자 봐도 좋겠다. 하츄핑이 두려움을 이겨 내고 다시 손을 내미는 장면, 로미가 "나는 너를 믿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말해 보고 싶어질지 모른다. 우리가 히어로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작은 용기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영화. '사랑의 하츄핑'은 그런 의미에서, 귀여운 캐릭터를 넘어선 꽤 근사한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극장을 나서며 이렇게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하츄핑이 되어줄 수 있을까?" 상처받은 이에게 다가가 "괜찮아, 나는 너를 믿어"라고 말할 용기가 있을까? 그 질문을 품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이 90분짜리 핑크빛 모험은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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