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gazine Kave=박수남 기자] 우리가 머무는 공간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거울이다. 차가운 콘크리트와 쉼 없이 돌아가는 현대의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온기를 품은 안식처를 갈망한다. 2026년, 마침내 30회를 맞이한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거대한 전시장. 수많은 최첨단 가구와 모던한 조명들 사이로 유독 따스한 빛을 발산하며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국순당이 선보인 브랜드 체험 공간, ‘백세주당(百歲酒堂)’이다.
이곳은 단순히 자사의 주류를 홍보하기 위해 급조된 상업적 부스가 아니다. 한국의 명주 백세주(百歲酒)와 집을 의미하는 당(堂)이 결합하여 탄생한, 술과 사람이 교감하는 철학적 건축물이다.
한지 기와, 흙의 무게를 덜어내고 빛을 맞이하다
공간에 발을 들이는 순간 가장 먼저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머리 위를 덮고 있는 비일상적인 지붕이다. 국순당은 한옥의 핵심 상징인 기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되, 그 소재를 무거운 흙이 아닌 가볍고 투명한 ‘한지(Hanji)’로 치환해 냈다.
전통 건축에서 흙으로 구운 기와는 외부 세계와 단절시키는 방어막의 역할을 했지만, 닥나무 섬유로 엮어낸 한지 기와는 유기적인 호흡을 한다. 조명이 한지 기와를 투과할 때 피어나는 은은한 빛무리는 단절의 상징이던 지붕을 '소통과 투과의 은유'로 바꾸어 놓았다. 무거운 흙 대신 빛을 머금은 종이를 머리 위에 두름으로써, 백세주당은 전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고루함을 벗어던지고 현대인의 거실 한가운데에 가볍게 내려앉고자 하는 미래 지향적 태도를 완벽하게 번역해 냈다.
지봉유설』의 철학과 생쌀발효의 기적
이 아름다운 공간의 중심에는 명확한 주인공, '백세주'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시대 문헌 『지봉유설』에 기록된 '늙은 아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젊은 아버지'의 해학적인 설화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인 생명 연장과 따뜻한 철학을 품고 있다.
이 오래된 텍스트를 현실의 미각으로 구현해 낸 것은 1991년 개발된 양조 전용 특수미 '설갱미(Seolgaengmi)'다. 단백질 함량이 낮고 미세한 구멍(공극)이 무수히 뚫린 설갱미는 열을 가하지 않는 국순당 특유의 혁신적인 '생쌀발효법'과 만나 기적을 이룬다. 쌀을 찌지 않아 필수 아미노산 등 영양소 파괴를 막고, 독자적으로 배양한 '백하국(누룩)'의 복합 미생물들이 스펀지 같은 쌀의 구멍 속으로 스며들어 빚어낸 맑고 산뜻한 감칠맛. 백세주는 단순한 알코올을 넘어 과학과 농업이 결합한 한 잔의 액체 문화재다.
도예가의 붓터치와 온더락(On the Rocks)의 위로
백세주당이 현대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은 테이블웨어 브랜드 ‘소일베이커(Soil Baker)’와의 굿즈 협업이다. 대량 생산된 규격화된 유리잔의 차가움 대신, 도예가의 대담한 붓터치가 머문 70ml 도자기 잔은 흙의 투박한 질감으로 우리의 촉각을 위로한다. 잔마다 미세하게 다른 높이는 "우리의 일상 또한 조금씩 다르고 불완전하기에 아름답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건넨다.
무엇보다 놀라운 혁신은 백세주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다. 전통적인 상온 스트레이트 시음을 넘어, 투명한 얼음을 띄워 차갑게 즐기는 ‘온더락 시음’을 제안한 것이다. 맑은 얼음과 만난 백세주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한방 향이 차분하게 정돈되고, 차가운 온도 속에서 생쌀발효가 잉태한 풍부한 산미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는 자신을 잃어버릴 때까지 취하는 폭음을 거부하고, 술의 질감과 음식의 조화를 의식적으로 탐구하는 글로벌 '마인드풀 드링킹(Mindful Drinking)' 트렌드의 정중앙을 관통한다.
훌륭한 전통이란 박물관의 먼지 쌓인 유리장 너머에 박제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거실 한편에서 호흡될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다.
무거운 지붕을 걷어낸 한지 기와 아래서, 흙의 온기를 품은 도자기 잔 속에서 경쾌하게 부딪히는 백세주 온더락 한 잔. 이것은 과거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가장 캐주얼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동시대인들과 소통하겠다는 다정한 건배사다. 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스며드는 한지처럼, 이 천년의 향기는 이제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들의 찬란한 일상 속으로 고요하지만 깊숙하게 스며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