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gazine Kave=박수남 기자] 솔직해지자. K팝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매끄럽고 정교한 환상이다. 전 지구적인 '고독의 전염병(Epidemic of Loneliness)'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결점 없고 안전하게 통제된 '주문형 남자친구(Boyfriend on Demand)'를 배송해 주는 거대한 공장이랄까. 하지만 이 완벽하게 통제된 세계 속에서 10년 넘게 살아남은 두 청춘의 서사는 어떨까?
2026년 2월 23일, 전 세계에 뚝 떨어진 NCT JNJM(엔시티 제노재민)의 첫 미니앨범 'BOTH SIDES(보스 사이드)'는 그저 잘생긴 두 청년의 서브 유닛 데뷔작이 아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친밀감을 어떻게 기획하고 상품화하는지 보여주는 묵직한 사회적 다큐멘터리이자, 글로벌 팬덤이 왜 이토록 이 둘의 연대에 목을 매는지를 증명하는 완벽한 해답지다.
화려한 퍼포먼스나 피상적인 브로맨스 찬양 따위는 뻔해서 재미없지 않은가? 본 비평은 제노(Jeno)와 재민(Jaemin)이라는 두 실존적 주체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구축해 온 진짜배기 관계성이 글로벌 팬덤의 시선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그리고 이들이 앨범을 관통하는 '이중성(Duality)'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자본주의적 모순을 얼마나 짜릿하게 예술로 둔갑시켰는지 파헤쳐 볼 것이다. 안전벨트 꽉 매시라.
아이돌 산업은 24시간 돌아가는 CCTV와 같다. 모든 것이 전시되고 소비되는 이 투명한 정글 속에서 제노와 재민은 무려 10년을 함께 굴렀다. 이들의 서사가 기가 막힌 이유는, 이것이 엔터사가 짜준 대본이 아니라 진짜 '실전'이기 때문이다. 최근 매거진 에스콰이어(Esquire) 유튜브에 출연한 이들의 모습을 보라. 연습생 시절 쓰던 교통카드에 그려진 너구리 캐릭터를 네가 아느니 모르느니 하며 핏대를 세우는 그 유치찬란한 티키타카는, 알고리즘이 억지로 빚어낸 무균 상태의 케미스트리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10년 짬바의 산물이다. 파편화된 현대인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고 안락한 '안정제'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해외 K팝 팬덤—특히 레딧(Reddit)의 열혈 유저들—이 NCT JNJM의 출범에 그토록 안도하며 환호하는 속사정은 꽤 눈물겹다. 이들은 화려한 조명 이면에 도사린 아이돌의 삶이 사실상 '고요한 지옥'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극단주의적 소비자(악성 개인 팬, 일명 악개)들은 '내 새끼 보호'라는 명목하에 타 멤버를 헐뜯고, 2023년 NCT 재현의 숙소에 무단 침입해 인증샷을 올렸던 사생팬의 광기 어린 소유욕은 자본주의가 낳은 끔찍한 촌극이었다. 팬들은 소속사에 법적 조치를 부르짖으며 이 살얼음판 같은 아이돌의 일상에 깊은 실존적 우려를 표해왔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 제노와 재민의 유닛은 그 자체로 '성역'이다. 쏟아지는 루머와 폭력적인 시선의 파도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서로의 멘탈 지킴이가 되어 살아남은 두 사람. 해외 팬들은 이 끈끈한 생존기에서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팍팍한 삶을 위로받고 있는 것이다.
2026년 2월 23일 발매된 'BOTH SIDES'는 대놓고 '이중성(Duality)'을 들이민다. 낮에는 엑셀 시트에 찌든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가 밤에는 치명적인 '비밀 요원'으로 돌변한다니, 현대인들이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쾌락과 일탈의 판타지를 기가 막히게 긁어주지 않는가? 타이틀곡 'BOTH SIDES'의 뮤직비디오는 작정하고 볼거리를 쏟아낸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상대를 두고 두 남자가 벌이는 유쾌한 신경전은 한국 영화의 전설 '늑대의 유혹'과 명작 '위대한 개츠비'의 명장면을 위트 있게 오마주하며 극강의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세계적인 안무가 리에 하타(Rie Hata)가 짜준 춤을 추는 두 사람의 상반된 신체성(제노의 폭발적인 근육 vs 재민의 유려한 선)은 눈을 뗄 수 없는 '통제된 혼돈' 그 자체다.
가장 불티나게 해석 담론이 쏟아지는 트랙은 단연 재민이 단독 작사한 3번 트랙 'What It Is'다. 알고리즘이 매칭해주는 프로필 텍스트만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디지털 성(Digisexuality)' 시대에, 재민은 냄새, 시선, 손끝의 감각 같은 원초적이고 물리적인 전염을 노래한다. 랜선 너머의 무균실 사랑 대신 "진짜 살결이 닿는 감각을 느껴보라"는 이 관능적인 도발은 K팝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실존적 반항이다.
아이돌의 본질이 결국 '뼈를 깎는 신체적 노동'이라는 걸 쿨하게 인정하는 5번 트랙 'WIND UP'은 또 어떤가.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 에너지를 한껏 끌어올리는 야구의 와인드업(Wind-up) 동작에 자신들의 무대를 빗댔다. 매일같이 자기 착취를 강요당하는 '피로사회'의 우리들에게, 한계까지 에너지를 응축해 전력투구하는 이들의 물리적 은유는 이상하리만치 큰 해방감을 안긴다.
'I.D.O.L.'은 아예 대놓고 직업명을 제목으로 박아버렸다. 맹목적인 우상(Idol)으로서 군림하는 짜릿함과 팬들을 향한 애틋함을 동시에 던지는 이 곡은, "우리가 대중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인 건 맞지만, 호락호락하게 나침반을 잃진 않겠다"는 발칙하고 능동적인 선언이다.
음악이 아무리 철학적이어도 결국 K팝의 꽃은 '포카(포토카드) 경제'다. 기본 버전부터 포스터 버전(Poster Ver.), 에비던스 버전(Evidence Ver.)까지 끝없이 쏟아지는 실물 앨범들은 수집욕에 불을 지른다.
카루셀(Carousell)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특정 멤버의 포카를 구하기 위해 마치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들처럼 치열한 거래가 오간다. 랜선으로 맺어진 팬과 아이돌의 무형의 친밀감이, 내 지갑 속에 고이 모실 수 있는 빳빳한 종이조각(포토카드)으로 치환되어 물리적인 안도감을 주는 이 정교한 연금술! 자본주의의 상술이라 욕하기엔, 팬들이 얻는 심리적 위안이 너무나 즉각적이고 달콤하다.
NCT JNJM의 'BOTH SIDES'는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완벽하게 기획된 상품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관능적인 포식자('sexier')와, 땀 흘리는 청춘('WIND UP')을 오가는 이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공장식 부품이 아니라 상처를 보듬고 살아남은 '진짜 인간'의 냄새가 훅 끼쳐온다.
글로벌 팬들이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이 험난한 판옵티콘 속에서도 두 사람의 우정과 서사가 부서지지 않았다는 걸 증명받고 싶을 뿐이다.
자, 이제 NCT JNJM이 우리에게 발칙한 질문을 던진다. 안전한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무해한 감정만 구독할 텐가? 아니면 기꺼이 통제되지 않는 밤의 거리로 뛰어들어 인간의 양면(Both Sides)을 전부 껴안아 볼 텐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 흥미진진한 두 청춘이 뿜어내는 뜨거운 숨결은 당분간 K팝 씬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