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km/h Through the Centuries: Why Suwon is the Next Essential Stop for the Global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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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AM PARK
By SUNAM PARK 편집장

From Secret Fortress Gates to Hipster Roasteries—Exploring the "Inclusive Architecture" and Tactical Urbanism of Korea’s High-Tech Heartland.

15km/h Through the Centuries: Why Suwon is the Next Essential Stop for the Global Nomad [Magazine Kave=Park Sunam]
15km/h Through the Centuries: Why Suwon is the Next Essential Stop for the Global Nomad [Magazine Kave=Park Sunam]

[Magazine Kave=박수남 기자] 글로벌 메가시티 서울의 단일한 서사에 가려진 한국의 도시 지형도에서 수원(Suwon)은 가장 지적이면서도 이질적인 텍스트로 읽힌다. 흔히 서울의 위성도시나 경기도의 행정 중심지로만 소비되던 이 도시는 최근 글로벌 미디어와 K-컬처를 탐닉하는 ‘글로벌 노마드’들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적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수원은 세계 최대의 테크 자이언트인 삼성전자의 심장부가 박동하는 하이테크의 최전선이자, 18세기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가 설계한 유토피아적 철학이 성벽이라는 물리적 인프라로 보존된 기이한 공존의 장소이다. 이 도시는 과거의 기록 위에 새로운 시대의 기록이 덧씌워진, 그러나 이전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다층적인 의미를 생성하는 '공간적 팔림프세스트(Spatial Palimpsest)'의 전형을 보여준다.

유럽의 중세 성(Castle)이나 요새들이 철저히 외부와의 단절을 목적으로 한 ‘배타적 방어 기제’였다면, 수원 화성은 현대 서구 건축계가 주목하는 ‘포용적 건축(Inclusive Architecture)’의 원류를 200년 전에 이미 제시했다. 이는 군사적 방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성 안팎의 삶을 분리하지 않고 연결하려는 정조의 인본주의적 통치 철학이 반영된 결과이다.

자전거를 타고 총연장 5.7km의 성곽길을 따라가다 보면, 유적지와 시민의 일상 공간을 가르는 경계가 매우 유연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국의 압축 성장을 비판하는 도시학자들이 흔히 지적하는 ‘역사적 단절’에 대한 완벽한 반례(Counter-Example)가 바로 이곳이다. 성벽은 단순히 적을 막는 담장이 아니라, 성내의 주거지와 성 밖의 상업지를 유기적으로 잇는 소통의 벨트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성곽의 암문(Secret Gate)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비밀 통로였으나, 오늘날에는 성 안팎의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통로로 변모하여 공간의 투과성을 극대화한다.

자전거라는 마이크로 모빌리티는 이러한 유연한 경계를 넘나들기에 최적화된 수단이다. 자동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좁은 성곽 하부의 길과 암문을 통과하며, 권위적인 유적이 어떻게 시민들의 일상적 쉼터로 기능하는지, 즉 ‘공간 민주주의(Spatial Democracy)’가 어떻게 물리적 공간에서 구현되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수원 화성에는 북암문, 서암문, 서남암문 등 여러 개의 비밀 통로가 존재한다. 이들은 성벽의 위엄을 유지하면서도 외부 세계와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특히 서남암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울창한 솔숲길과 연결되어 있어, 성곽길 중 가장 호젓하고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꼽힌다. 이러한 암문들은 자전거를 타고 지날 때마다 시각적 반전을 선사한다. 돌로 쌓은 폐쇄적인 성벽 내부를 지나 밝은 햇살이 비치는 현대적인 카페 거리나 재래시장으로 연결되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은, 여행자에게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듯한 감각적 쾌락을 제공한다.

성곽 안쪽의 행궁동(Haenggung-dong) 일대는 최근 글로벌 MZ세대 사이에서 한국의 진정한 로컬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성지로 떠올랐다. 이곳의 변화는 서구 대도시들이 겪는 폭력적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며, '적응적 재사용(Adaptive Reuse)'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과거의 낡은 점집과 철물점, 70년대식 슬라브 지붕을 얹은 주택들은 철거되는 대신 감각적인 로스터리 카페와 독립 서점, 갤러리로 전환되었다. 국제 도시 재생 연구에서 이상적으로 평가하는 이 방식은 마을 단위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아닌, 개별 공간의 자발적 변화가 모여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 밀도 높은 좁은 골목길의 미학은 자동차의 속도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다. 자전거를 타고 시속 10~15km로 골목을 누빌 때 비로소, 과거의 인프라를 부수지 않고 새로운 자본과 문화를 수혈하는 한국식 ‘전술적 도시주의(Tactical Urbanism)’의 정수를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2013년 '생태교통 수원' 축제를 통해 자동차 없는 마을을 실험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한 달간 자동차를 배제하고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의 거리를 운영했던 이 '전술적'인 실험은 주민들에게 보행 환경의 가치를 각인시켰고, 결과적으로 행궁동을 걷기 좋고 자전거 타기 좋은, 즉 사람 중심의 로컬 비즈니스가 꽃필 수 있는 토양으로 만들었다.

행궁동 일대에서는 화성어차, 플라잉수원과 함께 '수원화성 자전거택시'가 주요한 이동 수단으로 활약하고 있다. 2인용 전기 자전거 택시는 10~15km의 속도로 생태교통마을의 골목을 속속들이 여행하며 관광객들에게 도시의 숨겨진 서사를 전달한다. 이러한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활성화는 대규모 상업 자본이 아닌 로컬 소상공인 중심의 경제 생태계를 보호하고, 여행자들에게는 보다 친밀하고 깊이 있는 장소 경험을 제공한다.

수원 자전거 탐방의 클라이맥스는 해가 질 무렵 방화수류정(Banghwasuryujeong)이라는 아름다운 정자에 닿을 때 완성된다. 18세기의 우아한 목조 건축물 너머로 21세기의 스카이라인과 네온사인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는 경험은 여행자에게 묘한 시간의 왜곡을 선사한다.

정조 시대 건축 미학의 정수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인접한 화홍문(북수문)의 일곱 개 홍예 수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과 어우러질 때 가장 빛을 발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수원의 풍경은 이 도시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고도의 현대 문명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유기체임을 보여준다. 가장 전통적인 장소에서 가장 하이테크적인 국가의 일상을 관망하는 이 시각적 대조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단순히 속도전으로 이룩된 사상누각이 아니라 깊은 역사적 토대 위에 세워진 혁신의 용광로임을 증명한다.

흥미롭게도 수원의 두 상징적 기둥인 화성과 삼성전자는 모두 ‘물길’과 깊은 풍수지리학적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과 생명력을 의미하며, 도시와 기업의 번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1. 화성과 수원천 (유천): 정조는 수원 화성을 건설할 때 북쪽 광교산에서 흘러내려온 수원천이 성내를 관통하도록 설계했다. 당시 이 물길은 성 밖으로 기운이 너무 빠르게 빠져나가는 '수구(水口)'의 약점이 있었으나, 정조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버드나무를 대량으로 심는 '비보(裨補)풍수'를 시행했다. 이는 거친 민심을 다독이고 경제적 안정을 꾀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장치였다.  

  2. 삼성전자와 원천리천: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는 원천리천을 옆구리에 끼고 자리 잡고 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69년 이곳에 삼성전자공업을 창립한 이래, 원천리천의 생태 복원 시점과 삼성전자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솟은 시점이 맞물린다는 해석은 기업과 지역 자산이 맺는 운명적 관계를 시사한다.  


이러한 물길의 정비는 과거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던 정조의 의지와, 현대에 이르러 수질 개선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도시 생태계를 회복하려는 삼성전자의 사회공헌 활동과 맥을 같이 한다.

수원의 성벽 안쪽이 18세기의 개혁 철학을 담고 있다면, 성 밖 매탄동의 삼성 디지털시티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현대판 ‘만석거(저수지)’이자 하이테크 요새이다. 이곳은 단순히 휴대전화와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클러스터로 기능한다.

삼성전자 수원 디지털시티는 162개 봉사팀과 3만 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사회공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활동 중 눈에 띄는 것은 수원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알리는 ‘지역 문화유산 보호’ 활동이다.  

  • 문화유산 보호: 매년 300여 명의 임직원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 능력을 활용해 화성행궁에서 문화해설 봉사를 진행한다. 이는 첨단 기술 인력이 지닌 글로벌 감각이 지역 유산의 글로벌 마케팅으로 연결되는 독특한 지점이다.  

  • 환경 보전: 수원천, 원천리천 등 4대 하천의 수질 개선 및 생태계 복원 캠페인인 '수원사랑愛 물사랑愛'를 통해 도시의 생명력을 관리한다.  

  •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지동마을을 시작으로 수원 전역에서 벽화 그리기와 환경 개선 사업을 전개하여, 낙후된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활동들은 정조가 만석거를 조성해 가뭄을 이겨내고 백성을 보살폈던 ‘애민 정신’의 현대적 변용으로 읽힌다. 테크 기업이 가진 자원과 인재가 지역의 역사적 자산과 결합할 때, 도시는 단순한 생산 기지를 넘어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진화한다.

삼성전자의 사회적 책임은 문화유산을 넘어 복지와 교육 분야에서도 두드러진다. 매년 30여 명의 청각장애 아동에게 인공와우 수술을 지원하고, 재활을 돕는 프로그램은 단순한 금전적 기부를 넘어 전인적인 케어를 제공한다. 또한 1997년부터 운영해 온 시각장애인정보화교육센터를 통해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아동센터에 과학·예능 교실을 지원함으로써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수원은 더 이상 서울을 방문한 김에 들르는 반나절짜리 관광지가 아니다. 이곳은 전통과 현대, 글로벌 자본과 로컬 커뮤니티가 어떻게 충돌하지 않고 공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치열한 현장이다. K-Pop의 비트가 한국의 맥박이라면, 수원 화성의 골목을 누비는 자전거의 페달링은 한국이 가진 깊고 느린 호흡이다.

뻔한 관광지의 공식을 벗어나 낯설고도 지적인 자극을 갈망하는 현대의 여행자들에게 수원은 완벽한 텍스트를 제공한다. 두 바퀴에 의지해 성벽 안으로 진입하라. 그곳에서 당신은 단순히 과거를 구경하는 관광객이 아니라, 18세기의 유토피아와 21세기의 하이테크가 교차하는 거대한 역사적 실험의 목격자가 될 것이다. 수원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단순한 속도전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 토대 위에 세워진 혁신의 용광로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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