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사유할 수 없는가? 최시원 마녀사냥으로 본 K-POP 팬덤의 문화적 지체 [Magazine Kave=Park Sunam기자]](https://cdn.magazinekave.com/w768/q75/article-images/2026-02-20/12906bfc-6725-449b-a86b-8a4584b6d54e.jpg)
[Magazine Kave=박수남 기자] 현대 대중문화 산업에서 아티스트는 단순한 퍼포머(Performer)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기호(Sign)이자 자본의 결절점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K-POP 산업은 지난 수십 년간 고도의 기획과 철저한 통제를 바탕으로 한 '포디즘(Fordism)'적 생산 방식을 통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아티스트의 자아는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해 철저히 거세되거나 은폐되어 왔다. 그러나 글로벌 팬덤의 무한한 확장과 시대적 패러다임의 급격한 전환은 이제 기존의 K-POP 시스템에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완벽하게 조율된 안무와 정제된 이미지 뒤에 존재하는 아티스트 개인의 '자아'와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권'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최근 그룹 슈퍼주니어 소속 아티스트이자 배우인 최시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언과 그에 따른 대중의 폭력적 반응, 그리고 이에 맞선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강경한 법적 대응은 이 근본적인 질문이 마침내 임계점에 달했음을 시사하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다. 본 보고서는 최시원의 발화가 지니는 텍스트적, 철학적 의미와 대중의 폭력적 수용 양상을 낱낱이 해부하고, 이를 통해 '공인(公人)'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허울 아래 자행되는 무차별적 인격살해의 메커니즘을 규명한다.
1. 사건의 재구성: 역사적 변곡점과 텍스트의 다층적 발화
1.1. 12·3 비상계엄 사태와 사법부의 심판
본 사태의 발단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깊은 상흔과 충격을 남긴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사법부의 1심 판결과 궤를 같이한다. 2026년 2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국회에 군병력을 투입하여 전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체포를 시도하는 등 국가의 대의민주주의 심장인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목적이 명백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군 동원을 통한 일련의 행위를 폭동으로 규정하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는 국가 최고 권력자의 폭주와 헌정 질서 파괴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하고 역사적인 심판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헌정 질서의 붕괴 위기와 그에 대한 단죄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거대한 철학적, 윤리적 파장을 일으킨다. 대중은 물론이고,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 역시 이러한 거시적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법부의 선고 직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담론은 이 판결의 의미와 국가의 미래를 향해 집중되었다. 이러한 폭발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 최시원의 SNS 텍스트가 잉태되었다.
1.2. 텍스트의 진화와 철학적 함의의 확장
선고 직후, 최시원은 자신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자로 된 짧은 문구들을 연이어 게재하며 자신의 내면적 사유를 외부로 표출했다. 이 과정은 단발적인 감정의 배설이 아니라, 사유의 정반합(正反合)을 거치는 고도의 지적 개입 과정을 보여준다. 초기에 그는 '불가사의(不可思議)'라는 문구를 올렸다가 곧바로 삭제했다. 이후 '불의필망(不義必亡)'이라는 글을 새롭게 게시하였고, 최종적으로는 '불의필망, 토붕와해(不義必亡, 土崩瓦解)'로 문장을 덧붙여 수정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텍스트의 변천 과정은 최시원이라는 개인이 당대의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소화하고 내면화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가 선택한 한자어들은 수천 년의 동양 철학과 역사적 경험이 응축된 상징적 기호들이다. '불의필망'은 유가 철학의 핵심인 '의(義)'의 관념에 맞닿아 있으며, 권력의 정당성이 오직 도덕성과 민본(民本)에 기인한다는 천명이다. 이는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얄팍한 지지나 맹목적인 비판을 넘어선다. 한 국가의 시민이자 사유하는 주체로서, 헌정 질서를 유린한 불의(不義)는 예외 없이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보편타당한 진리를 통찰한 것이다. 이러한 발화는 예술가가 사회와 맺는 가장 고차원적인 형태의 상호작용이다.
2. '공인(公人)' 프레임의 오용과 디지털 파시즘의 폭력성
2.1. 대중의 자의적 해석과 정파적 이분법의 굴레
그러나 대중문화가 극도로 상업화되고 정치 지형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한국 사회에서, 아티스트의 철학적 텍스트는 그 본질적 의미와 무관하게 수용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참히 난도질당한다. 최시원의 게시물은 그 시점이 전직 대통령의 선고 직후라는 점, 그리고 여러 차례 수정되며 고심의 흔적을 남겼다는 점 때문에 즉각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로 낙인찍혔다. 각종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를 두고 "소신 있는 발언"이라는 일부의 평가도 존재했으나, 대다수는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냈다"며 극렬한 우려와 분노를 표출했다. 심지어 일부 여론은 과거 그의 행적이나 지인 관계를 자의적으로 재조립하여 '친윤(친윤석열)' 혹은 극단적 '반윤(반윤석열)'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억지로 씌우려는 시도까지 자행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대중이 지닌 '정치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강박적이고 협소한 이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이라는 수식어는 곧 우익과 좌익, 보수와 진보라는 흑백 논리의 진영 싸움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치는 본디 폴리스(Polis)의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선(善)을 위해 담론을 나누는 모든 행위를 포괄한다. 내란 혐의로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행위에 대해 "의롭지 못하면 망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진영의 논리가 아니라 상식과 헌법 수호의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이 보편적 윤리의 선언을 기어이 정파적 싸움으로 끌어내려 자신들의 정치적 잣대로 심판하려 들었다. 이는 텍스트에 대한 지독한 오독(誤讀)이자, 모든 사회 현상을 편 가르기로 환원시키는 한국 사회의 지적 빈곤을 여실히 드러낸다.
2.2. 공인 이데올로기와 인격살해의 정당화 메커니즘
이러한 정치적 프레이밍을 거친 후, 대중은 본격적으로 최시원을 향해 무차별적인 악성 댓글과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이 야만적인 폭력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한국 사회 특유의 기제가 바로 '공인(公人)'이라는 폭력적 프레임이다. 본래 공인이란 국가의 공적 업무를 수행하거나 공직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제한적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인지도가 높은 대중문화 예술인, 스포츠 스타 등 대중의 시선을 받는 모든 이를 공인이라는 단일한 용광로에 집어넣는다.
이러한 범주화는 심각한 폭력성을 내포한다. 대중은 연예인이 대중의 환호와 소비를 통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었으므로, 그 대가로 자신의 사생활은 물론 정치적, 철학적 자아까지 대중에게 저당 잡혀야 한다고 맹신한다. 이 논리 구조 안에서 아이돌의 개인적 소신은 '건방진 일탈'로, 철학적 사유는 '주제넘은 짓'으로 폄하된다. 특정 아티스트의 견해가 소비자인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을 때, 대중은 이를 단순한 의견 불일치가 아니라 '팬에 대한 기만'이자 '공인으로서의 본분 망각'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심리적 기저를 바탕으로 자행되는 악플 테러는 비판이 아니라 명백한 인격살해다. 개인의 아티스트가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대중은 집단적 익명성 뒤에 숨어 인신공격과 모욕, 조롱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정의로운 심판관으로 착각하지만, 실상은 '공인'이라는 방패를 악용하여 한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사이버 린치(Lynch)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벤담(Jeremy Bentham)의 파놉티콘(Panopticon) 구조가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된 형태다. 수백만의 대중이 감시자가 되어 아티스트의 일거수일투족과 사상을 검열하고, 통제 범위를 벗어난 주체를 무자비하게 징벌하는 거대한 수용소적 시스템인 것이다.
3. 포디즘적 아이돌 산업의 모순과 K-POP 시스템의 탈영토화
3.1. K-POP 1.0의 유산: '무균실'에 갇힌 피조물
최시원 사태를 산업적 관점에서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K-POP이 지나온 궤적과 그 이면에 도사린 철학적 모순을 짚어보아야 한다. 과거 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 온 'K-POP 1.0' 시대는 철저하게 테일러주의(Taylorism)와 포디즘(Fordism)에 입각한 대량 생산 체제였다. 기획사는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거대한 공장(Factory)이었으며, 이 공장의 가장 중요한 수칙은 규격화와 무결성이었다. 'Made in Korea'를 표방하는 이 문화 상품들은 수년간의 합숙과 트레이닝을 거쳐 완벽한 가창력,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칼군무, 그리고 무엇보다 '무결점의 도덕성'을 갖춘 채 시장에 출고되었다.
이 경직된 시스템에서 가장 억압받은 것은 바로 아티스트의 '주체적 자아'다. 대중음악은 불특정 다수를 만족시켜야 하는 극한의 상업 예술이기에, 특정 집단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어떠한 뾰족한 개성이나 정치적, 사회적 견해도 거대한 리스크로 취급되었다. 기획사들은 아이돌을 이데올로기적 진공 상태인 무균실에 가두었고, 아이돌은 대중이 투사하는 온갖 판타지를 군말 없이 반사해 내는 매끄러운 거울이어야 했다. 정해진 안무를 추고 주어진 대본을 읽는 '인형(Doll)'의 역할을 강요받은 것이다. 대중 역시 이러한 포디즘적 산물에 익숙해졌고, 아이돌을 고유한 생각을 가진 인격체로 대우하기보다는 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흠결 없는 소유물로 인식하게 되었다. 최시원의 철학적 발화에 대한 극단적 거부감은, 이처럼 영원히 무균실에 남아있어야 할 통제된 피조물이 문을 열고 나와 스스로의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을 때 수용자들이 느끼는 당혹감과 배신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3.2. 패러다임의 전환: K-POP 2.0과 서구적 자율성의 요구
그러나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패러다임은 이 경직된 시스템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방향으로 급변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아티스트의 수출을 넘어 'K-POP 제작 시스템' 그 자체를 해외에 이식하는 'K-POP 2.0' 시대로 진입했다. 하이브(HYBE)가 게펜 레코드와 합작하여 론칭한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나 JYP엔터테인먼트의 'VCHA(비춰)' 프로젝트는 이러한 거대한 실험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K-POP 2.0 시대의 핵심 화두는 역설적이게도 'K'의 탈각(脫却)과 시스템의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다. 과거의 지리적, 민족적 정체성을 넘어, K-POP은 스타를 만들어내는 '프로토콜(Protocol)' 내지 '운영체제(OS)'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구 시장의 포스트 포디즘(Post-Fordism)적 소비 문화와 치명적인 충돌이 발생한다. 영미권 중심의 글로벌 팬덤은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찍어낸 듯한 완벽함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젠더, 인종,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기만의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발언하며, 고난과 갈등 속에서도 스스로 해답을 찾아 나가는 '진정성 있는 서사(Authentic Narrative)'를 지닌 아티스트를 원한다.
하이브와 JYP 등 굴지의 기획사들은 이 낯선 시장의 요구에 직면하여 과거의 '디즈니 채널식' 철저한 통제 모델을 폐기하고, 아티스트에게 '자율성(Autonomy)'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뼈를 깎는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멤버 간의 날것 그대로의 경쟁과 갈등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노출시키고, 이들이 '만들어진 인형'이 아니라 '자율적 생존자'임을 입증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3.3. 과도기적 모순의 희생양
최시원의 상황은 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기 한가운데서 빚어진 시대적 모순의 압축판이다. 글로벌 팬덤은 테일러 스위프트나 찰리 푸스처럼 정치, 사회적 이슈에 자신의 소신을 뚜렷이 밝히는 아티스트에게 열광하고 이를 성숙한 예술가의 지표로 삼는다. K-POP 기획사들 역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 아티스트의 주체성과 사유 능력을 길러주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여론과 커뮤니티 생태계는 여전히 과거 K-POP 1.0 시절의 가학적인 소유욕과 엄숙주의에 지체되어 있다. 무대 위에서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세련됨을 요구하면서, 무대 아래의 개인적 삶과 사유에 대해서는 20세기식 감정 노동자의 굴종과 침묵을 강요한다. 한 개인의 아티스트가 자신의 지적 역량과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헌정 사태에 대한 철학적 논평을 남겼을 때,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마녀사냥을 벌이는 대중의 행태는 K-POP 산업의 글로벌화를 가장 심각하게 가로막는 문화적 후진성이다.
4. SM엔터테인먼트의 법적 대응: 기업의 방어와 인권의 회복
4.1. '광야 119'와 무관용 원칙의 천명
이러한 대중의 광기 어린 사이버 린치에 직면하여, 최시원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가 보여준 행보는 단호하고 체계적이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6년 2월 20일, SM은 아티스트 권익 보호를 위해 구축된 온라인 신고 센터인 '광야 119'를 통해 최시원과 관련된 법적 대응 진행 상황을 공식적으로 안내했다.
이 발표는 과거 연예 기획사들이 흔히 취하던 면피성 경고문을 훌쩍 뛰어넘는다. SM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당사에는 최근 지속, 반복적으로 소속 아티스트에 대해 인신 공격, 모욕 등 악의적인 게시물을 작성, 게시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그 심각성에 대해 엄중히 인지하고 있다"며 사태의 본질을 '표현에 대한 비판'이 아닌 '악의적 인신공격'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들의 대응 방식이다. SM은 "당사는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게시글 내용과 첨부 이미지 등을 면밀히 검토했고, 확인된 범죄 행위에 대해 법무법인(유한) 세종과 함께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온라인 커뮤니티, SNS 플랫폼 등에 당사 소속 아티스트와 관련된 허위 정보를 생성, 유포하는 행위와 조롱 경멸하는 글을 게시하는 행위에 대해도 지속적으로 증거를 확보하고 있고, 해당 게시물들을 검토 후 단계적으로 고소 절차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선언했다.
"어떠한 선처나 합의 없는 민,형사상 법적 조치로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SM의 분명한 입장은 악플러들이 은연중에 품고 있는 '결국은 연예인이니까 용서해 주겠지'라는 알량한 면책 기대 심리를 완벽하게 박탈하는 것이다.
4.2.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의 진화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는 단순히 자사 연예인을 보호하겠다는 차원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이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과거 기획사의 법무팀이나 홍보팀은 소속 아티스트가 정치적, 사회적 구설에 오르면 사실관계를 따지기도 전에 무조건 머리부터 숙이게 만들었다. 아티스트 개인의 인권이나 발언의 정당성보다는 기업의 단기적 이미지와 매출 방어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재산권(IP)의 중심이 아티스트 개개인의 고유한 서사와 정신 건강에 맞춰지는 현대 K-POP 산업에서, 허위 정보와 조롱으로 얼룩진 사이버 폭력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을 파괴하는 명백한 중범죄다.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이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미래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내듯, K-POP 기획사들 역시 급변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서 아티스트를 소모품이 아닌 존엄한 인격체로 대우하고 방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SM이 광야 119라는 자체 생태계 정화 시스템을 가동하고 대형 로펌을 동원하여 무관용 원칙을 관철시키는 것은, 인격살해를 비즈니스의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묵인하지 않겠다는 기업 차원의 숭고한 선언이다. 아티스트가 정신적으로 붕괴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이 곧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K-POP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길임을 자각한 것이다.
5. 표현의 자유의 철학적 당위성과 600년을 관통하는 성찰
5.1. 헌법적 가치로서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근간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모든 기본권에 우선하는 헌법적 핵심 가치다. 이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유롭게 사유하고 표명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가 행사하는 권리조차도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것이며, 진정한 민주 국가는 모든 국민이 권력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하늘같이 섬길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대중의 입맛에 맞는 표현만을 허용하는 사회,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등학생의 풍자 창작품까지 감시받는 억압적 사회는 전체주의로 퇴행하는 지름길에 서 있는 것과 같다. 하물며 사법부에 의해 내란이라는 중대한 범죄가 인정된 역사적 사태에 대하여, 한 개인이 동양 고전의 지혜를 빌려 "불의필망(의롭지 못한 것은 반드시 망한다)"이라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감상을 남긴 것이 어떻게 조롱과 인격살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금치산자 취급을 받으며 침묵을 강요당해야 한다면, 이는 곧 우리 사회의 민주적 시민의식이 참담한 수준으로 전락했음을 방증하는 뼈아픈 현실이다.
5.2. 질문 없는 사회: "무엇이 정답인가"에 매몰된 디지털 야만
이 비극적 현상의 이면에는 현대인들의 인문학적 소양 부재와 사유 능력의 마비가 짙게 깔려 있다. AI와 고도화된 정보 기술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텍스트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그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해가고 있다. 미래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파편화된 정보를 주입받아 "무엇이 정답인가"를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이 답이 왜 정답인가"를 입증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다.
최시원이 던진 '불의필망, 토붕와해'라는 텍스트는 대중에게 "무엇이 정의인가", "불의한 체제는 왜 붕괴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묵직한 화두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악플러들은 이 텍스트가 내포한 역사적, 철학적 의미를 성찰하기는커녕, 누군가가 커뮤니티에 던져준 가벼운 선동적 해석(예: 특정 진영에 대한 공격)을 '정답'으로 맹신하고 복제하며 집단적 린치에 가담했다.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군중 심리에 휩쓸려 타인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는 지성의 게으름이 빚어낸 끔찍한 결과물이다.
5.3. 1444년의 상소문과 2026년의 온라인 커뮤니티
역사는 종종 섬뜩한 데자뷔를 만들어낸다. 1444년 2월 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당대의 지배 엘리트 학자 7인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에 강력히 반대하며 "오랑캐가 되려 하십니까"라는 명분으로 연명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문은 지식과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백성들의 사유와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려 했던 중세 권력자들의 세계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시 세종이 백성 누구나 쉽게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문자를 창제한 그 혁명적 철학은 6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 디지털 기기의 '천지인' 입력 방식에까지 적용될 만큼 위대한 인본주의적 결단이었다.
그러나 세종의 철학이 기술과 만나 찬란하게 만개한 2026년의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는 어떠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가? 누구나 손가락 끝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완벽한 자유의 인프라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스스로가 21세기의 최만리가 되어 타인의 사상을 검열하고 입을 막으려 들고 있다. 단지 자신과 다른 정치적 입장을 은연중에 내비쳤다는 의심만으로 한 인간의 사회적 생명을 끊어놓으려 하는 이 집단적 광기는, 한글의 철학이 지향했던 소통과 상생의 가치를 완벽하게 배반하는 현대판 오랑캐의 야만과 다를 바 없다. 기기의 기술은 600년을 훌쩍 뛰어넘어 진보했으나, 타인을 향한 관용과 공존의 철학은 여전히 봉건 시대의 검열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 지독한 모순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6. 결론: 불의필망의 예언과 자율적 주체로서의 아티스트 복원
최시원이 12·3 사태의 판결 앞에서 남긴 "불의필망(不義必亡), 토붕와해(土崩瓦解)"라는 문구는, 단지 헌정 질서를 파괴한 구 권력의 비참한 말로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철학적으로 확장되어, 무고한 타인의 인격을 짓밟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릇된 사이버 폭력의 생태계 역시 결국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는 준엄한 메타포로 다가온다. 부당한 억압과 폭력으로 유지되는 모든 권력은, 그것이 국가의 물리적 폭력이든 익명성에 기댄 다수 대중의 언어적 폭력이든 예외 없이 역사의 심판대 위에서 와해될 운명에 처하기 때문이다.
본 사태의 심층적 분석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어떠한 대중문화 예술인도 대중의 감정적 배설을 받아내는 쓰레기통이나 정파적 대리전의 볼모가 될 수 없다. 아티스트 역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온전히 누릴 권리가 있는 주체적 시민이다. 한 개인의 예술가가 지닌 정치적 성향이나 철학적 사유가 자신의 이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공인이라는 핑계를 삼아 무차별적인 인격살해를 가하는 행위는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비열한 범죄일 뿐이다.
둘째, SM엔터테인먼트가 최시원을 보호하기 위해 보여준 '선처나 합의 없는 강경한 법적 대응'은 소속사를 넘어 전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본받아야 할 새로운 위기관리의 이정표다. 법무법인을 대동한 체계적이고 무관용적인 사법 처벌만이, 군중 심리에 취해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악플러들에게 법의 엄중함을 일깨우고 기획사의 핵심 가치인 아티스트의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실효적 수단이다.
셋째, 대한민국 K-POP 산업이 포디즘적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글로벌 K-POP 2.0 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수용자인 대중의 의식 수준 향상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아티스트를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꼭두각시 장난감으로 취급하는 폭력적 소유욕을 버리고, 그들이 시대를 고뇌하고 자신의 철학을 발화하는 지성적인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관용의 미덕이 필요하다.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아티스트와 그 질문의 본질을 함께 사유할 수 있는 성숙한 팬덤 문화가 결합될 때 비로소 K-POP은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야만의 시대와 지성의 시대가 교차하는 아슬아슬한 변곡점 위에 서 있다. 최시원을 향한 무분별한 돌팔매질을 방관한다면, 우리 사회는 영원히 다른 이의 눈치를 보며 침묵만을 강요하는 거대한 파놉티콘의 감옥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나 SM의 이번 단호한 조치와 깨어있는 시민들의 이성적 성찰이 맞물려 작용한다면, 이 사건은 한국 대중문화계의 고질적인 악습을 타파하고 마침내 아티스트의 잃어버린 시민권과 인격을 복원하는 위대한 철학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불의한 것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역사의 통찰을 굳게 믿으며, 진정으로 자율적인 주체가 살아 숨 쉬는 건강한 담론의 장(場)이 도래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