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gazine Kave=박수남 기자] 글로벌 문화 산업의 정점으로 추앙받던 K팝 씬의 이면에서, 거대 기획사와 자회사 크리에이터 간의 전례 없는 지배구조 전쟁이 법적, 문화적 파열음을 내며 폭발하고 있다. 피상적으로는 하이브(HYBE)와 민희진 전 어도어(ADOR) 대표(현 오케이 레코즈 대표) 간의 주도권 분쟁으로 보이나, 그 심연에는 K팝 산업을 지탱해 온 다레이블(Multi-Label) 체제의 구조적 모순, 거대 자본의 통제 욕구, 그리고 개인의 사적 공감을 법적 무기로 변질시키는 폭력성이 자리 잡고 있다.
2026년 2월 1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판사 남인수)는 민희진 전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제기한 255억 원 규모의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하이브의 주주간계약 해지 주장을 전면 기각했다. 이 판결은 단순히 거액의 금융 정산을 넘어, 거대 기획사가 자회사 대표의 '독립적 경영 판단'과 '내부 비판'을 어떻게 '경영권 탈취'라는 프레임으로 가공해 냈는지를 해체한 사법부의 날카로운 선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글로벌 슈퍼스타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뷔(김태형)가 자신의 개인적인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법정 증거로 무단 제출된 것에 대해 "매우 당황스럽다"며 불쾌감을 표출하는 사태로 비화되었다. 법정 싸움의 승기를 잡기 위해 사적인 위로와 공감의 언어를 '사실관계에 대한 동의'로 박제하여 무기화한 이 참사는, 글로벌 독자들에게 한국 특유의 고맥락(High-context) 소통 문화와 '눈치', '정(情)'의 개념을 강제로 소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1. 255억 원짜리 청구서: 사법부가 해체한 '경영권 탈취' 프레임의 실체
하이브와 민희진 전 대표 간의 분쟁은 2024년 4월, 하이브가 민 전 대표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고 대대적인 감사를 단행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이브의 핵심 서사는 민 전 대표가 핵심 IP인 뉴진스(NewJeans)를 데리고 나가 어도어를 '빈 껍데기'로 만들고, 외부 투자자와 결탁하여 하이브의 지배력을 무력화하려는 '경영권 찬탈'을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하이브는 이를 근거로 2024년 7월 주주간계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이어 8월에는 민 전 대표를 어도어 대표이사직에서 전격 해임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 부장판사 남인수)의 판단은 하이브의 서사와 대척점에 서 있었다. 법원은 하이브가 제기한 주주간계약 해지 확인 소송을 기각하고, 민 전 대표의 풋옵션 행사에 따른 255억 원 상당의 주식매매대금 지급 청구를 인용했다. 사법부는 거대 자본이 설정한 '배신'의 프레임을 객관적인 계약법적 잣대와 기업 지배구조의 현실적 한계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했다.
지배구조의 한계와 모의의 불능성
재판부는 민 전 대표 측이 카카오톡 대화 등을 통해 어도어의 독립 방안을 모색하고 외부 투자자를 접촉한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나 이것이 주주간계약을 파기할 만한 '중대한 의무 위반'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재판의 핵심 논리는 어도어의 지분 구조에 기반한다. 하이브는 어도어 지분의 80%를 보유한 절대적 지배주주다. 재판부는 "민희진 측이 외부에서 자금을 당겨와 독립을 시도하려 했다 하더라도, 그 대전제는 원고(하이브)의 동의를 얻어야 함을 가정하고 있다"며 "하이브가 동의하지 않으면 민희진의 독립 방안은 아무런 효력이 발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지분율 20% 미만의 자회사 대표가 모회사 몰래 회사를 탈취한다는 것 자체가 상법상,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들의 대화는 실행 불가능한 불만의 표출이거나 하이브와의 협상을 염두에 둔 구상 수준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하이브가 결정적 증거로 내세웠던 "내가 나가면 어도어는 빈 껍데기가 된다"는 발언 역시, 뉴진스를 빼돌려 회사를 망가뜨리겠다는 악의적 계획이라기보다는 민 전 대표 본인이 회사를 이탈할 경우 어도어의 기업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자조적이고 과장된 상황 인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수사기관(경찰)이 민 전 대표의 업무상 배임 고발 사건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린 논리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경영적 가치판단과 내부 고발의 정당성 인정
하이브가 계약 해지의 또 다른 주요 사유로 내세운 것은 민 전 대표가 하이브 산하 다른 레이블의 신인 그룹 '아일릿(ILLIT)'이 뉴진스를 카피했다고 주장하고, 하이브 내부의 '음반 밀어내기(사재기성 유통)' 의혹을 외부로 폭로하여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매우 중요한 판례를 남겼다.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 의혹' 제기에 대해 재판부는 이를 단순한 비방이나 허위사실 유포가 아닌 "단순한 의견이나 가치판단을 표시한 것"으로 규정했다. 문화 예술 산업에서 창작물의 유사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실 적시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인상에 대한 가치판단의 영역에 속하므로, 이를 계약을 해지할 만한 해사 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음반 밀어내기'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실제 하이브 측의 밀어내기 권유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할 만한 단서가 있다"며, 민 전 대표의 문제 제기가 정당한 경영상의 판단 범위 내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자회사 대표가 모회사의 불투명한 관행이나 타 레이블과의 이해 상충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이단시하고 탄압해 온 거대 기획사의 권위주의적 통제 방식에 사법적 제동을 건 것이다.
2. 255억 원 풋옵션
법원이 지급을 명령한 255억 원이라는 금액은 민 전 대표의 뛰어난 창작 역량이 어도어에 얼마나 막대한 재무적 가치를 창출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숫자다. 풋옵션이란 특정 조건이 충족될 때 주주가 보유한 회사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매수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2023년 3월, 하이브와 민 전 대표가 맺은 주주간계약에 따르면 풋옵션 산정 기준은 '어도어의 직전 2개년도 평균 영업이익의 13배'를 적용하여 산출된 기업가치를 바탕으로, 민 전 대표가 보유한 지분율(18%, 약 57만 3160주)의 75%만큼을 하이브가 매입하는 구조였다.
뉴진스가 데뷔한 2022년, 어도어는 초기 투자 비용과 활동 기간의 제약으로 약 4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23년, 뉴진스가 글로벌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어도어는 단숨에 335억 원이라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 두 해의 평균 영업이익(약 147.5억 원)에 13배의 멀티플을 곱하고, 민 전 대표의 지분 권리를 대입해 산출된 금액이 바로 약 255억 원이다. 여기에 함께 풋옵션을 행사한 측근 신모 전 부대표(17억 원)와 김모 전 이사(14억 원)의 몫까지 합치면 하이브가 부담해야 할 현금 유출 규모는 단기적으로 286억 원에 달한다.
하이브는 1심 판결에 즉각 불복하여 항소장을 제출하고 강제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는 255억 원이라는 현금 유출 자체도 타격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하이브가 설정한 '배신자 프레임'이 법적으로 붕괴되면서 향후 다른 산하 레이블 크리에이터들과의 권력 관계에서 치명적인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구조적 리스크'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자본을 대고 판을 깐 것은 하이브지만, 정작 실질적인 가치를 폭발시킨 것은 민희진의 기획력이었다는 딜레마 속에서, 하이브는 풋옵션을 지급하는 순간 자신이 내쳤던 크리에이터의 가치를 제 손으로 정산해 주며 패배를 시인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3. 사적 대화의 무기화: 방탄소년단 뷔(V) 카카오톡 사건의 파장
이러한 거대 자본과 천재 크리에이터 간의 치열한 법적 공방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글로벌 슈퍼스타를 진흙탕 싸움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는 참사를 낳았다. 1심 판결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과정에서, 민희진 전 대표 측이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 의혹'에 대한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뷔(김태형)와 나눈 사적인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고, 법원이 이를 채택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민 전 대표는 뷔에게 아일릿의 표절 의혹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고, 이에 뷔는 "(맨날 표절 얘기나 나오고 한 번도 안 나온 적이 없어) 에잉.. 그러니께요. 나도 좀 보고 아 이거 비슷한데.. 했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재판부는 이 대화 기록을, 아일릿의 카피 문제가 민 전 대표 개인만의 억지가 아니라 업계 내부자(그것도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뷔) 사이에서도 공유될 만큼 정당한 '의견 표명'의 근거 중 하나로 판단한 것이다.
글로벌 아이콘의 "당황스러움"과 동의 없는 사생활의 박제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글로벌 팬덤은 발칵 뒤집혔다. 뷔는 2023년 발매한 자신의 첫 솔로 앨범 'Layover'의 총괄 프로듀싱을 민 전 대표에게 맡기며 음악적 신뢰를 쌓아온 관계였다. 그러나 자신의 사적인 위로와 공감의 문장이 법정에서 모회사를 공격하는 날카로운 증거로 쓰일 줄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2월 20일, 뷔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관련 기사를 캡처해 올리며 직접 심경을 밝혔다. 그는 "(민 전 대표가) 제 지인이었기에 공감하며 나눴던 사적인 일상 대화의 일부"라며 "저는 어느 한쪽의 편에 서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어 "다만 해당 대화가 제 동의 없이 증거 자료로 제출된 점에 대해서는 매우 당황스럽게 생각한다"며 동의 없는 증거 활용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토로했다.
하이브 역시 재빠르게 진화에 나섰다. 하이브 관계자는 "뷔는 지인(민희진)과의 사적 대화여서 공감해 주는 취지로 말한 것일 뿐, 상대방의 특정 발언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라며, "사적 대화 내용이 동의 없이 재판 자료로 제출된 것에 대한 불만도 얘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User Query].
이 사건은 현대 기업 소송전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승소라는 지상 과제 앞에서, 한 개인이 친분과 의리로 건넨 사적인 말 한마디는 법적 프레임에 끼워 맞춰져 '증거 번호 1호'로 냉혹하게 박제되었다. 뷔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의 문장은 저작권 논쟁의 판단 근거로 소모되었고, 그 결과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기업 간 사활을 건 전쟁의 한가운데서 입장을 해명해야 하는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4. '공감(Empathy)'과 '동의(Agreement)
이 사태를 글로벌 관점에서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권 독자들에게 한국 특유의 고맥락(High-context) 소통 문화와 '정(情)', 그리고 '눈치(Nunchi)'라는 복잡한 언어·사회적 메커니즘을 설명해야만 단다. 서구의 저맥락(Low-context) 문화에서는 대화 상대방의 주장에 "Exactly(그러니께요)"라고 맞장구를 치거나 "Ah, this is similar(아 이거 비슷한데)"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팩트(사실관계)'에 대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동의(Logical Agreement)'로 간주된다. 즉, 발화자가 그 명제의 객관적 참됨을 보증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계층적이고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대화의 방식이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한국의 고맥락 문화에서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대인관계의 마찰을 줄이고 연대감을 유지하기 위한 감정적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러니께요'의 사회언어학: 사실 동의가 아닌 감정적 방어기제
뷔가 민 전 대표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언어학적으로 해부해 보자.
"에잉..": 이는 가벼운 탄식이나 체념을 나타내는 감탄사로, 상대방이 겪고 있는 답답한 상황에 대한 감정적 동조를 의미한다.
"그러니께요": 표준어 "그러니까요"의 방언적·친근한 변형으로, 직역하면 "That's what I'm saying"이나 "Exactly"가 되지만, 한국적 맥락에서는 "네 말이 논리적으로 100% 맞다"는 증명서가 아니라, "네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 답답한 마음을 내가 알아주겠다"는 '감정적 맞장구(Emotional Agreement)'에 가깝다.
"나도 좀 보고 아 이거 비슷한데.. 했어요": 이는 상대방이 제기한 억울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위로의 밀도를 높이는 전형적인 한국식 대화법이다.
이러한 언어 행위의 기저에는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분노, 억울함)을 직접적으로 부정하거나 논박하여 관계를 훼손하는 것을 극도로 피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지인인 민희진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상황에서, 뷔는 논리적 판관(Judge)이 되어 아일릿의 안무와 뉴진스의 안무를 프레임 단위로 쪼개어 표절 여부를 판독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한국 문화에서 요구되는 '정(Jeong)'과 '눈치(Nunchi)'를 발휘하여, 상대방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정서적 피난처(Emotional Sanctuary)'를 제공했을 뿐이다.
최근 한국어 대화의 사회적 영향력을 연구한 학술 자료에서도, 한국어 화자들은 상대방과의 사회적 거리와 서열, 감정 상태를 순간적으로 파악하여, 지나치게 논리적인 반박보다는 관계 지향적인 '과잉 공감(Over-empathizing)'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고 분석한다. "공감은 단지 감정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규제되는 관계 유지의 행위(Empathy is a socially regulated act, not just emotional expression)"인 것이다.
법정의 진공상태로 끌려간 '정(情)'
비극은 이 철저하게 관계 지향적이고 고맥락적인 사적 대화가, 모든 감정과 맥락이 제거된 채 오로지 '승소'를 위한 저맥락의 차가운 법정 증거로 끌려 나왔을 때 발생한다. 법원이라는 공간은 단어의 다의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비슷한데"라는 위로의 말은, 곧바로 표절을 인정한 '전문가의 감정 소견'으로 둔갑해 버린다.
하이브가 뷔의 심경을 대변하며 "뷔는 사적 대화여서 '공감'해 주는 취지로 말한 것일 뿐, '동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추가 설명을 내놓은 것은 단순한 언론 플레이가 아니다. 그것은 사법적 잣대에 의해 난도질당하고 왜곡된 한국적 '관계의 언어'를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안간힘이자, 사적 공감이 공적 무기로 변질된 폭력에 대한 항변인 셈이다.
5. 결론은 학살인가 상생인가: K팝 멀티 레이블의 구조적 붕괴와 향후 전망
1심 판결 이후, 거대 자본을 대변하는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음콘협)는 이례적으로 강한 우려를 담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음콘협은 "재판부가 신뢰 관계 파탄 행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바라보고 그 판단 기준을 과도하게 높게 설정했다"며, 이번 판결이 자칫 기획사의 막대한 선투자를 딛고 성장한 아티스트와 핵심 경영진이 부당하게 독립을 모색하는 이른바 '탬퍼링(Tampering)'을 정당화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본의 관점에서는 재능(민희진)이 투자(하이브)의 우산 아래에서 보호받고 육성되었음에도, 성공 후 투자의 주체를 부정하고 이탈을 꿈꾸는 행위는 산업 생태계 자체를 붕괴시키는 구조적 위험(Structural Risk)이라는 항변이다.
하지만 이 사태를 단순히 '자본을 훔치려는 배신자'와 '그것을 지키려는 기획사'라는 이분법적 틀로 바라보는 것은 가장 빠지기 쉬운 '오해의 함정'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하이브가 표방했던 '멀티 레이블 체제'의 태생적 모순에 있다. 하이브는 각 레이블에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여 다양하고 창의적인 IP를 생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정작 그 자회사(어도어)가 모회사의 거버넌스를 비판하고 타 레이블(빌리프랩의 아일릿)과의 카피 문제를 지적하며 진짜 '독립적 목소리'를 내자, 모회사는 이를 '배신'과 '경영권 탈취'로 규정짓고 압도적인 80% 지분의 폭력성과 감사권을 동원해 크리에이터를 무자비하게 축출하려 했다.
상생을 부르짖으며 멀티 레이블을 구축했으나, 그 결론은 모회사의 통제에 순응하지 않는 천재에 대한 가차 없는 '학살'적 축출 시도였다. 그리고 사법부는 하이브가 주장한 그 '학살의 명분(주주간계약 해지 및 해임)'이 부당하다고 선고한 것이다. 법원은 크리에이터가 모회사에 이의를 제기하고 독립적인 사업 방안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계약 체제를 파괴하는 중대 범죄는 아니라고 판단함으로써, 창작자의 최소한의 방어권과 발언권을 법적으로 승인했다.
그럼에도 이 승리의 과정에서 남겨진 상처는 너무나 뼈아프다. 민희진 전 대표는 255억 원이라는 재무적 승리를 쟁취하고 하이브의 논리를 법적으로 파훼했지만, 그 과정에서 방탄소년단 뷔라는 제3자의 사적인 '공감'마저 무단으로 법정에 전시해야 할 만큼 절박하고도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뷔가 느낀 '당황스러움'은, 거대 자본과의 소송전이라는 맹수 앞에서는 사적인 신뢰도, 일상적인 정(情)도 언제든 파편화되어 무기로 쓰일 수 있다는 비정함을 생생히 증언한다.
하이브는 즉각 항소했고, 분쟁은 2심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판결의 승패를 떠나 K팝 산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자본이 크리에이터를 공장 부품처럼 종속시키려는 한, 그리고 크리에이터가 생존을 위해 사적 신의마저 저버려야 하는 극단적 대결 구도가 계속되는 한, K팝의 기적적인 성장을 가능케 했던 '시스템'과 '창작' 간의 신뢰는 영영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100만 개의 중소기업 중 단 7개만이 대기업으로 졸업하는 한국의 기울어진 경제 구조처럼, 거대 기획사 산하의 독립 레이블 역시 결국은 자본의 거대한 인력(引力)에 포획당하거나 처절하게 찢겨나갈 수밖에 없는가. 255억 원짜리 판결문과 뷔의 씁쓸한 탄식은, 가장 화려해 보이는 K팝 산업의 가장 어둡고 폭력적인 구조적 민낯을 전 세계에 폭로하고 있다.

